38화 손 부터 씻는 겨
“나가 누구랑가? 웨매 이 가시나가 예비군 교육장에 옹개. 치마만 입은 것 보고도 다들 눈이 돌아강겨? 환장하겄고만. 나가 누군지 아는 사람?
나가 누구지라우? 아는 사람 있으믄 손을 드셔라. 선물 줄 텅개. 그랴. 저그 두 번째 줄 안경 낀 양반. 말해 보셔라.”
“고성애요”
기룡자동차. 직장 예비군 교육장. 대 식당 안이 술렁거렸다. 공장에서 일하다 두 시간씩 교육받으러 나온 직원들 얼굴이 만개한 해바라기꽃이 되었다.
“고렇게 짧게 하면 감질나제. 여자는 만족 못혀. 좀 더 길게 혀봐. 화끈하게. 고 뒤 손든 사람, 말해 보쇼 잉. 좀 더 길게라우. 난 길게 하는 사람 좋응 개.”
“남자들을 들었다 놨다 웃겨 죽이는, 겁나게 얼굴도 섹시하게 생겨 죽이는, 전국 성교육 명강사, 고성애지라우.”
“앗따. 고 양반 길게도 허네. 숨 넘어가긋네. 그려야. 이제 만족이 쬐끔 되네. 고럼. 나도 받았응 개. 숨겨둔 것 풀어서 팍팍 줘버려야 것구만 그려 그려. 퍼뜩 나와 보시오. 이 선물 받아 가드라고. 자자, 어서.“
고성애 앞으로 한 남자 직원이 나가자, 팩 한 개를 손에 얹어주며 그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요것이 뭔지는 아시겠지라. 뭐시냐, 거시기 할 때 쓰라고 준 것 잉개. 잘 쓰쇼 잉.”
고성애 강사가 팩에서 하나를 꺼내 남자에게 불어보라고 주었다. 남자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부니, 요상한 하얀색 풍선이 길게 뻗어 나왔다.
키득키득, 킥킥 거리는 예비군들의 웃음소리에 예비군 교육장이 초토화가 되었다. 작업장에서 땀 흘리다 나와서 받은, 엔돌핀 웃음 폭탄에 불끈불끈 했다.
“아니, 예비군 교육 시간에 어째스꺼나. 이거 뭔지 아시겄지라. 가족계획 풍선이어라우. 미국말로는 콘돔이라커드만. 우리말이 좋쟈. 가족계획 풍선.
1980년대 천 불 국민소득의 길이 뻗어 나가지라우. 누가 뭐랴도 이 구호는 아시지라.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 한 개.“
예비군 들이 웃느라 눈에 눈물을 찔끔거릴 정도로 되자, 고성애 강사는 본론에 들어가며 서서히 악셀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역시 들었다 놨다, 폭소 장을 만들었다.
“자 오늘 한번 허벌나게 즐겁게 한번 웃어 보는 기여. 세 가지만 얘기할랑깨.
새겨들으쇼 잉. 다 피가 되고 살이 됭깨. 딴 데서 돈 주고도 못 듣는 겨. 마누라한테 가서 꼭 써먹어 보랑깨. 반찬이 확 달라져 불거여.“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직장 예비군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윤재도 신기사도 입이 헤하니 벌어졌다. 무슨 일을 해도 저렇게 재미나게 하면 얼마나 좋은가. 바로 고성애의 속사포 강의가 온 교육장 열기를 뜨겁게 했다.
“결론부터 먼저 얘기할랑 개. 첫 번째 손 씻고 일 보자. 두 번째 포경 수술 하자. 세 번째 정관 수술하자. 자, 들어보셔라. 다 그 이유가 있당개. 자 그럼 시작하지.
남자들 매너 좀 챙기셔라우. 숙녀 방에 들어갈 때, 왜 모자를 안 벗고 들어간댜? 숙녀방에 들어갈 때는 노크를 해야 제. 머리에 먼지랑 때도 많드만.
모자를 쓰고 그냥 급하게 들어간당개. 못 써라우. 앞으로 그러면 절대 안되지라우. 공장에서 작업하다 화장실 일 보러 가는디.
그 손으로 일 보고 손 씻으면 뭐 한댜? 순서가 틀렸제. 이빨 쑤시고 갈비 뜯는 거랑 뭐가 다르댜? 순서가 엄청 중요하제라. 먼저 손부터 씻는 겨.
그 손에 기름, 먼지 묻었는 디. 집에 가선 급하다고 모자도 안 벗고 숙녀 방에 불쑥 들어간 당 깨. 자들 따라서 복창 하쇼 잉? 손 씻고 일보자! 손 씻고 일보자!“
“손 씻고 일보자! 손 씻고 일보자!”
예비군들 복창 소리 좀 보소. 교육장 천장이 들썩들썩한다. 군기가 만 땡이다. 교육효과 120%다. 윤재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저런 강사를 기룡자동차 차량판매 영업 부문에 데려다 일하면 차량 판매 팍팍 올라가겠는데. 윤재 마인드가 영업본부장 레벨로 벌써 올라갔나? 바쁘네.
“똑똑한 아이 둘만 낳아 잘 키우면 되지라우. 나머지 시간은 부부가 시간을 즐겨부러. 서구 잘 사는 나라는 다 그런댜. 지금은 그런 시댕개.
쎄빠지게 일만 허지말구. 자식 여럿 낳아 뒤바라지 하다 죽지말랑개. 기왕 왔응개, 선물 하나 더 챙겨가쇼잉. 두말말고 기회가 왔을 때 퍼뜩 잡아부러.
저 밖에서 여러분들한테 공짜로 정관 시술을 해 준댜. 증명서를 발급 해 준디. 그 증명서 주택청약 때 우선순위 0순위랴. 그러면 꿩 먹고 알 먹는 겨.
도랑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월매나 좋당가. 나 만나 오늘 부자 된기여. 맞으면 박수! 칠라믄 허벌나개 씨게 들 쳐봐. 건성 박수치다 죽는댜.“
다시금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고성애 강사도 얼굴이 빨간 튤립처럼 물들었다. 벙긋거리는 노오란 해바라기 밭에 군계일학으로 빛나는 고성애 강사가 한마디 더했다.
“나가 간호장교 출신이당개. 소위로 제데했제.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여그 거개가 다 상병, 아니면 병장 출신 맞제.
나가 계급이 쬐금 높아서 재미나게 반말 한겨. 혹시 나보다 높은 계급 있으면 미안하제. 만약 있다면 나와 보쇼잉. 내 미안하니까 선물 줄 텡개.”
그때 윤재가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고성애 강서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저런 열정적이고 기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기룡에서 꼭 뭔가 할 텐데.
“고성애 강사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 감동적으로 잘 들었습니다.”
“아니. 거그. 중위님 아니셔라. 전 소윈데. 어쩌스까나. 시방~ 나도 모르겄다.
순간, 고성애 강사가 윤재 앞으로 다가오더니 왼뺨에 기습 뽀뽀를 해버렸다.
“찰칵!”
동시에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렸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감?
윤재가 어안이 벙벙한 채, 볼을 만지는데 고성애 목소리가 또 덮쳤다.
“특전사 강윤재 중위님. 저 국군수도 통합병원 간호장교 고성애 소위랑개요.”
윤재가 눈을 껌뻑거리자, 고성애가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반말 대시를 했다.
“아, 그때, 특전사 강윤재 중위. 낙하산 훈련에 다리 부러져 우리 병원에 왔지라. 주민증 까보니 나랑 동갑이더만. 내가 쪼까 맴이 동혀서 욕심을 냈제.
근디 강중위는 별 관심 안 보였제. 그렁깨 나를 지금까지 기억 못 하제. 난 지금도 생생한디. 시방은 나헌티 엄청 관심있는 얼굴이고만. 둘 다 사회인 됐응개. 말도 놓고 한번 사귀어보더라고. 공개적으로.
강윤재. 좋나? 난 니 좋다. 우짤낀데?“
“Call!”
성애가 입 맞춘 뺨을 어루만지며, 윤재가 서슴없이 성애 말에 답했다.
“그 밝은 성격, 활기 넘치는 열정. 이 회사에서 나랑 일하자. 성애야.”
“난 기술 같은 거 모른디. 혹시 네가 영업 본부장이나 하면 몰라도. 아마 영업본부장 하면 나가 거기서 영업 뒤집어 놓을 낀데.”
“영업본부장. 알았어. 좀만 기다려. 공장 일 곧 마무리 하면 영업이니까.”
고성애가 주위 사람들의 의아한 눈길도 개의치 않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시라. 난 농담으로 한 말인디. 윤재 넌. 시방 다큐로 듣고 쿨하게 나오니깨, 나가 쪼금 당황하는 디. 우쨌든 듣기는 좋아 부러. 접수는 됐단 깨.”
윤재와 성애가 오랜 친구인 듯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걸 보며, 신기사가 벌어지는 입을 가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아니, 저 강 대리님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왜 그리 사람을 놀래키지? 앞으로도 얼마나 놀래킬 일을 만들어 갈지. 오히려 다음 편이 기대되네.’
윤재와 성애가 명함을 주고받으며 악수를 했다. 부러운 시선들이 두 사람 손에 꽂혔다. 무슨 영화라도 보는 듯.
그러다 오늘 따 담은 말, 손 씻고 일 보자를 생각하며 각자 일하다 온 처소로 발길을 돌렸다.*
38화 끝 (3,666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