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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비둘기에 관한 명상
안 휘
큼지막한 ‘할렐루야’ 글씨와 빨간 십자가 표식이 선명한 밥차가 역전 광장 모퉁이를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역전에 흩어져 있다가 진작부터 광장 한 켠 음수대 근처로 비둘기처럼 몰려들어 밥차를 기다리고 있던 행려들이 술렁거렸다. 그들은 습관처럼 4열종대로 줄을 맞춰서 얌전히 앉아 있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나이다. 시편 119장 65절부터 80절에 이르는 성경 봉독에 이어 설교가 시작됐다.
목사님의 설교는 늘 너무 길다. 나처럼 만 칠년간을 수없이 들어온, 시작했다하면 최소한 이십 분을 넘기는 목사님의 설교는 따분하다. 더구나 분명히 아침밥도 걸렀을 노숙자들, 아니 어쩌면 십중팔구 전날 저녁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을 예순 명이 넘는 노숙자들을 눈 감겨 비둘기처럼 조르르 줄맞춰 앉혀놓고 하는 긴 설교는 매번 지루하다 못해 잔인하다. 오늘처럼 황소같이 생긴 여전도사가 함께 온 날은 마지막으로 약장수 광고 같은 기도까지 곁들인다. 그러면 최소한 삼십 분이다. 목사님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앞에 모인 노숙자들로부터 연속해서 ‘아멘’ 합창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이럴 때면 나는 차라리 딴 생각에 빠져드는 것이 덜 괴롭다고 생각한다.
근이영양증. 열한 살적부터, 누구보다도 활달하던 몸 안에서 꿈틀거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놓은 유전성 병명이다. 의사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근육섬유가 퇴화되고 지방조직이 침윤되어 있으며, 염증반응은 발견되지 않는 비염증성 근육위축질환’이란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지만, 열 살을 못 넘기고 사망에 이르기 쉬운 ‘가성비대형’이 아니라, 예후가 그리 험악하지 않은 ‘지대형’이라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도 했다.
나는 외아들로 태어났다. 간 경화증으로 삼 년 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아버지가 숨을 거둔 다음, 홀로 남은 어머니는 결국 나를 버리고 사라졌다.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가 이미 아버지가 죽기 한참 전부터 다른 남자와 놀아났었다고 수군거렸다. 버려진지 보름 만에, 목사님 내외분은 나를 할렐루야 교회로 데려왔다. 그 무렵 이미 나의 몸은 어깨와 둔부의 근육이 약화되기 시작하여 아주 조금씩 굳어져가고 있었다.
나는 목사님보다 훨씬 더 성품이 좋아 보이는 사모님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교회 안에서 자랐다. 칠년 동안 병원치료를 계속 받아왔고, 학교도 다녔다. 내 몸의 병이 현대의학으로 어쩔 수 없는 불치병인 줄 뻔히 알면서도 사모님은 한 번도 절망의 표정을 짓지 않았다.
목사님이 원하는 대로 내가 신학대학에 진학을 하지 않은 일로 인해 사모님이 속상해하는 일은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신앙심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몸은 점점 기형이 되어 가는 상황에서 제 아무리 좋은 성경구절을 들이대고 설득을 해도 내 귀에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적지 않은 기독교 관련서적을 읽은 편이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도무지 신심이 일어나지 않았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태어난 이스라엘의 한 빼어난 마술사였을 것’이라는 불경하기 짝이 없는 발상만이 뇌리를 맴돌았다.
신학대학을 가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나는 대학진학 자체를 포기했다. 좀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것이 나의 요구였고, 다그치지 말자는 사모님의 설득이 목사님의 분노를 막아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내가 역전 광장에 나오게 된 것은 결식 노숙자들에게 제공되는 점심을 배식하는 일 때문이기도 했으나, 솔직히 말해서 거기에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할 일을 찾지 못한 지체부자유자를 비롯해서 실직으로 졸지에 거리로 밀려난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더러 그들과 어울리면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들곤 한다. 물론,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는 늘 많은 비둘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찬송가가 시작되는 것을 보니까, 식전(食前) 예배행사가 다 끝난 모양이었다. 나는 부지런히 배식대로 향했다. 내가 맡은 역할은 줄지어 밀려드는 사람들에게 수저를 챙겨주는 일이었다.
*
오늘도 배식 양을 잘 맞춘 덕분에 밥이 모자라지 않아서 다행이다.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올 때면 난감해진다. 그래서 배식을 하기 전에 인원파악부터 서두르고, 준비된 식사형편에 맞게 밥주걱과 국자를 잘 조절해서 요령 있게 퍼 담는 일이 중요하다.
배식을 마칠 무렵 제일 마지막 순번으로 황 씨 아저씨가 밥을 타러 왔다. 여전히 베레모를 옆으로 눌러 쓰고 옅은 갈색 색안경을 끼고, 그리고 언제나처럼 낡은 밤색 인조가죽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어떻게 보아도 노숙자 같지 않을 정도로 황 씨는 얼굴이 늘 멀쩡했다. 때로는 기름기가 돌아 부티마저 나는 듯이 보이기조차 했다.
남은 식판에 밥과 국 반찬을 조금씩 담아 저만치 앉아있는 황 씨 아저씨 옆으로 다가갔다. 배가 고팠던지 황 씨 아저씨는 옆도 돌아보지 않고 분주히 밥을 퍼 넣고 있었다.
“며칠 안 보이시더니? 편찮으셨어요?”
“아, 아냐. 어디 좀 갔다 올 데가 있어서…….”
“고향 갔다 오셨어요?”
“서울 사는 딸네 집에 잠시…….”
“그래, 따님은 만나셨나요?”
“만나긴 했지.”
“좋으셨겠네요.”
황 씨 아저씨는 밥을 먹느라고 입을 실룩거리면서 빙그레 웃음만 지을 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내는 일찍 죽고 시집간 딸이 하나 있는데, 젊었을 때 아비노릇을 제대로 안한 죗값으로 그 딸로부터 괄시를 받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표정으로 보아서 아무래도 딸네 집 갔던 게 시원찮았던 낌새라, 더 이상 말을 시킬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찌감치 줄을 서서 밥과 반찬을 받았던 사람들이 식사를 끝낸 뒤 식판을 반납하느라고 다시 줄을 서고 있었다.
*
그 사내, 내가 역전에서 텁석부리 그 사내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개축공사가 한창인 역사 앞, 임시로 지어놓은 가건물 승객 대기실에는 이미 30여 명의 행려들이 어디에선가 꾸역꾸역 나타나 플라스틱 의자에 앉거나 누워서 초점 없는 시선으로, 쉼 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역전에서 시간을 죽이는 단골(?)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우선 입고 있는 옷에 변화가 거의 없다. 나처럼 역전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분별이다.
그의 얼굴은 턱수염과 콧수염이 텁수룩했다. 형편없이 구겨지긴 했어도 때 국물에 절거나 하지는 않은, 짙은 잿빛 바바리코트에 커다랗고 까만 가방을 어깨에 멘 모습이었다. 코트 안에는 검은 색 폴로 티셔츠에 잿빛 체크무늬 목도리를 걸치고 있었다. 한동안 감지 않은 듯 심하게 헝클어진 긴 머리나, 손질이라곤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같은 턱수염만 아니라면, 그리고 몇 번이고 끊어진 것을 다시 묶어 맨 듯한 낡은 감청색 농구화만 아니라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행색이었다.
그가 두리번거리며 다가와 벤치 옆자리에 앉았을 때, 솔직히 나는 더럭 겁부터 났다. 딱히 인과관계를 설명할 뭔가가 있는 현상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색안경을 썼거나 수염이 난 사람을 보면 두려움이 먼저 엄습하곤 한다.
그러나 나의 첫 느낌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 사내가 나를 바라보며 한번 말없이 씩 웃어주었을 때, 내 마음의 문은 힘없이 열렸다. 따뜻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내의 얼굴이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금세 그의 외양이 내가 교회 그림성경책에서 숱하게 본 예수님과 쏙 빼 닮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기실 내게 신앙심 같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목사님이 내게 엄하게 구는 것도 아마 신앙에 대한 나의 태도가 그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게 꿈일지라도 예수님을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긴 하다. 그랬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텁석부리의 부드러운 미소 한 번으로, 움찔했던 첫 경계심을 봄눈처럼 녹여내고 있었다.
“반가워요. 여기 매일 나오시나?”
그가 그렇게 묻고 있을 무렵, 나는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 이런 천형(天刑)을 내리신 거냐고……. 나로 하여금 이런 처절한 고통을 받게 하시는 당신의 참뜻은 정녕 무엇이냐고…….
그의 말이 내 생각의 허리를 뚫고 건성 들려왔기 때문에 집중이 되지는 않았으나, 대략 알아듣기는 했다. 나는 덤덤하게 답했다.
“거의 매일 나옵니다.”
그러자 그는 불쑥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가늘고 하얀 손이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의 손을 살짝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내 손으로 전해왔다. 문득, 나는 이 사람이 혹시 진짜 예수가 아닐까, 그런 엉뚱한 상상을 했다. 물론 그게 터무니없는 생각이란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내게 이름 같은 걸 물어오지는 않았다. 역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름이 없다. 아니, 한 때는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불러야 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의미를 잃어버렸고,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정말 자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상당수가 알코올 중독자들이어서 어쩌면 술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잠시 멀뚱 앉아있는 동안 그는 다시 한 번 나와 눈을 마주쳤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슬며시 그 자리를 떠났다.
*
다음날 아침 나는 텁석부리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니, 내가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텁석부리는 내가 임시대합실 앞 의자에 앉아서 습관처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상상을 즐기고 있을 때 불쑥 다가와 말을 붙였다.
“안녕하신가?”
“네. 안녕하세요?”
역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 눈으로 멀뚱 눈인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서로 나이를 잘 모르니까, 겉모습 보이는 대로 어림잡아 반말과 경어를 섞어서 쓴다. 물론 어쩌다가 오간 반말 때문에 시비가 붙어서 곧잘 드잡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내가 어둔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걷는 동안 그도 내 발걸음 속도에 맞춰서 걸어주었다. 사내와 나는 역전 가장자리 느티나무 아래 빈 벤치 쪽으로 걸어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기설기 둘러쳐진 공사용 강관 비계에 갇혀 있는 역사(驛舍) 지붕에서 비둘기 떼가 날아올라 타원형으로 군무(群舞)를 하며 내려와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푸득푸득 내면서 광장 한복판으로 오구구 모여 앉았다. 광장이래야 증축공사를 하느라고 차지한 건설현장을 제외하면 예전의 절반도 채 안 되는 공간이었다. 군청색과 끝부분 녹색이 어우러진 부리, 목 부분부터 군청색에서 서서히 변해 내려와 회색으로 바뀌는 날개, 그리고 주황색을 띄는 다리에 이르기까지 비둘기의 색깔은 자세히 볼수록 신기하다.
비둘기 떼가 몰려와 내린 마당 한가운데는 언제나처럼 박 영감이 나와 있었다. 비둘기 깃털이 수북이 꽂힌 낡은 갈색 중절모자를 쓴 박 영감은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비둘기를 불러 모이를 준다. 박 영감이 하는 일은 모이를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다친 비둘기를 잡아서 치료를 해주기도 한다. 박 영감은 ‘비둘기 할아버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언젠가 텔레비전 방송에 기인(奇人)으로 소개된 적도 있다.
박 영감의 그런 행동은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비쳐지지 않았다. 그를 수상히 여긴 역무원과 경찰이 달려 나와서 다그쳤을 때, 박 영감은 담담히 자기 이야기를 했다. 박 영감이 비둘기할아버지가 된 데는 뜻밖의 동기가 있었다.
박 영감은 평생 이런 저런 직업들을 전전하며 살았으나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도 신병이 잇달았다. 그런 어느 날 밤 오래 전에 죽은 부친이 현몽(現夢)을 했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단호한 어조로 박 영감에게 역전에 나가서 비둘기들을 돌보라고 말했다. 꿈속의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픈 몸이 낫지 않을 것’이라는 단서까지 붙였다. 처음엔 믿지 않았던 박 영감은 질병이 계속되자 어쩔 수 없이 부친의 현몽대로 비둘기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아픈 몸이 씻은 듯이 나았다…대략 그런 사연인데, 어쨌든 인과관계가 쉬이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비둘기에 대해서 좀 아나?”
비둘기의 비상과 하강, 박 영감의 익숙한 손놀림을 지켜보느라 한동안 계속됐던 나의 침묵을 비집고 텁석부리 그가 내게 물었다.
“아뇨. 평화를 상징하는 새. 빨간 발. 무리 지어 다니는 조류…그 정도 말고는 잘 모르는데요?”
“비둘기는 우선 먼 곳에서도 자기 둥지를 찾아 돌아오는 귀소성이 잘 발달한 새지. 그래서 옛날에는 ‘전서구’라고 해서 통신전달용으로 많이 이용했어. 이놈들은 한 시간에 무려 육십 킬로미터나 날 수 있다고.”
“…….”
“알을 품는 기간은 17일 안팎, 일 년에 여러 차례 번식을 하지만, 한 번에 알을 많이 낳지는 않아. 보통 수컷과 암컷이 교대로 알을 품는데 한 번에 대략 암수 두 마리 정도 부화를 시키지. 또, 어미 비둘기는 치즈 비슷한 ‘비둘기 젖’을 내어 물과 함께 새끼한테 먹이고, 수컷이 날라 온 재료를 가지고 암컷이 주로 벼랑의 틈이나 구멍에다가 둥지를 만들곤 하지. 곡식낱알 등 주로 식물성 먹이를 먹고…….”
예수님처럼 생겨서 목사님보다도 하늘나라 얘기를 더 잘 해줄 것 같았던 사내의 입에서 뜻밖으로 절반이나 알아먹을까 말까한 비둘기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렇게 내가 물었는데도, 그는 다시 한 번 빙긋이 웃어주기만 하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집비둘기라고 불리는 저 비둘기들은 길들여진 양비둘기야. 천 팔백 년대만 하더라도 개체수가 오십억 마리에 이르던 여행비둘기라는 이름의 진짜 비둘기는 오늘날 멸종해버렸지.”
텁석부리는 신들린 사람처럼 설명을 계속했다. 그의 이야기는 마치 무슨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들렸다.
“사냥 때문이었어. 나그네비둘기라고도 하는 이 비둘기는 마구잡이로 멸종된 대표적인 북아메리카산 비둘기야. 미국 개척시대에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온대 전역에 걸쳐 널리 분포하던 가장 흔한 들새였지만, 식량과 깃털을 얻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냥한 끝에 불과 백년 만에 전멸해버린 거라고. 1914년엔가 동물원에서 기르던 마지막 한 마리마저 죽고 말았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비둘기에 대해서 잘 아느냐 이 말이지?”
“네.”
“난 조류학을 전공한 사람이야. 특히 비둘기의 수호자, 평화의 사도라고 할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빛에 슬픈 그림자가 스쳤다. 그리고 그 슬픈 그림자는 곧바로 형언키 어려운 분노로 바뀌었고, 이어서 그 분노를 삼키느라 애쓰는 모습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말이 끊어졌는데,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양팔을 허공에 내두르며 외쳤다. 뜻밖으로 날카롭고 큰 목소리였다.
“비둘기를 학살하지 말라! 비둘기를 더 이상 죽이지 말라!”
그는 눈을 부라리며 사방을 잠시 두리번거렸다. 그는 더 이상 따뜻한 음성을 지닌 예수님 비슷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과 벤치에 나눠 앉아있던 역전패들이 갑작스런 그의 소동을 뜨악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 그는 가슴을 쓸며 다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박 영감 주변에 오구구 몰려있는 비둘기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박 영감은 모이를 던지며 이따금 씩 새를 잡아 몸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비둘기들은 박 영감을 전혀 피하지 않았고, 그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평화로웠다. 나는 뒤뚱거리며 그를 따라갔다.
텁석부리는 정신없이 모이를 쪼는 비둘기 떼를 야릇한 눈빛으로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빛에서 나는 나를 바라보는 목사님 사모님의 시선에서 느껴지던 안타까움의 빛을 잠시 보았다.
한참을 그러던 그는 말없이 돌아서서 예의 성큼한 걸음걸이로,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광장을 가로질러 시내 방향으로 난 지하도 입구까지 걸어가 사라져 버렸다. 그때까지 옆에 서 있던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몸짓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가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역전파출소 윤 순경이 병숙을 데리고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벤치에 나타난 건 할렐루야 교회 밥차가 가고도 한참이 지난 오후 두 시쯤이 되어서였다. 병숙은 이십대 말인지 삼십대인지 나이가늠이 잘 되지 않는, 정신박약 증세를 가진 여자였다. 한때 노숙자들 사이에서는 병숙을 어찌어찌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치들이 더러 있었다. 병숙도 이따금씩 누군가 자기를 성폭행했다며 파출소에 찾아가 범인을 잡아달라고 떼를 쓴다. 대개의 경우 경찰들은 피식피식 웃으며 건성으로 대거리를 해주거나 얼러가면서 넘기지만, 젊은 경찰 윤 순경은 그럴 때마다 그녀와 함께 노숙자들 사이를 한 바퀴 돌아다니며 범인을 색출하는 시늉을 해보이곤 한다.
“누구에요? 여기 그 사람 있어요?”
윤 순경이 병숙에게 자신을 건드린 사람을 지목하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노숙자들은 잔뜩 긴장을 하게 되는데, 언젠가 오십대 중반의 남자 하나가 그녀의 지목을 받아 한바탕 소동이 빚어진 적이 있었다. 사실여부를 밝히지 못해 유야무야되긴 했어도, 어쨌든 그날 이후 노숙자들 사이에서 병숙을 어찌어찌했다는 무용담이 나오는 일은 사라졌다. 잘못하다가는 공개적으로 무참한 낭패를 당할 수 있음을 다들 알아차린 덕분이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윤 순경을 찾아가 여성으로서 병숙의 자존심을 지켜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자, 윤 순경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병숙을 건드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자꾸만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보건소에 데려가 검사해보면 성병에 결려 있곤 했으니까요. 공개적으로 떠들기 시작하자 그런 일이 사라졌습니다. 병숙의 인권을 생각하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건드리지 못하도록 그렇게 경고를 하는 것이 그나마 판단력이 부족한 병숙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요?”
*
텁석부리 사내는 오후 다섯 시를 넘기고 나서야 다시 광장에 나타났다. 도착한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과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수시로 몰려다니는 출입구 앞이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사내는 나와 황 씨 아저씨가 말없이 멀뚱 앉아 있는 벤치로 다가왔다.
“서로 인사하시지요. 이 분은 황 씨 아저씨예요.”
아무래도 내가 인사를 시켜야겠기에 나섰다. 텁석부리는 눈에 표시가 나게 긴장하는 표정으로 황 씨 아저씨를 쏘아보았다. 눈시울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안녕하시오?”
황 씨 아저씨가 먼저 수인사를 했다. 마주선 두 사람을 번갈아 살펴보니 수염 때문에 약간 혼동은 있을지언정 황 씨 아저씨가 아무래도 훨씬 연배일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텁석부리가 떠름한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으나, 나에게 했던 것처럼 손을 내밀거니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잠시 흐른 다음, 텁석부리가 불쑥 제안을 했다.
“괜찮으시면 우리 어디 가서 소주나 한 잔 하십시다. 술은 내가 사왔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어깨에 걸린 가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황 씨 아저씨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저 쪽 공사장 모퉁이를 돌아 안쪽으로 가면 좋은 장소가 있는데…….”
“그래요. 그럼 그리로 갑시다.”
텁석부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황 씨 아저씨가 가리킨 쪽으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황 씨 아저씨가 안내해서 간 곳은 5층 건물 중 콘크리트 공사가 이미 끝난 1층 모퉁이였다.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합판과 각목으로 막혀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드나들었던지 황 씨 아저씨는 못이 빠져있는 각목과 합판을 젖혀 구멍을 만들었다. 그가 열어준 틈으로 텁석부리가 먼저 들어가고, 다음으로 내가 발을 들이밀었다.
안쪽은 별천지였다. 바깥쪽에 공사안전 울타리가 처져있어서 전혀 몰랐던 곳인데, 아마도 새롭게 증축 개장할 신 역사(驛舍)의 도착 대합실쯤으로 보였다.
우리는 그 안쪽 구석자리를 찾아 둘러앉았다. 황 씨 아저씨가 가방에서 신문지를 꺼내어서 깔았고, 텁석부리는 어깨에 메고 있던 큼지막한 가방에서 네 병의 소주와 종이컵을 꺼내어 세웠다. 그리고는 서둘러 술병마개를 땄다.
“아, 참. 내게 좋은 술안주가 있어요.”
황 씨 아저씨가 다시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신문지와 은박지에 싼 주먹만 한 무언가를 꺼내어 풀기 시작했다.
“뭐예요?”
내가 궁금증을 못 견디고 물었다. 그러자 황 씨 아저씨는 다소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닭고기 구이야.”
“닭고기?”
그 사이 텁석부리가 세 개의 종이컵에다가 소주를 따르고는 차례로 돌렸다.
“이렇게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텁석부리가 잔을 들며 건배를 제의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공사장 건물 안 어둑한 공간에서 그렇게 소주잔을 들어 건배하는 것도 괜찮은 맛이 있었다. 황 씨 아저씨가 내놓은 안주는 소금을 많이 뿌렸는지 좀 짰다. 그래도 깡 소주를 먹는 것보다는 한결 낫지 싶었다.
우리는 조용히 소주를 나눠 마셨다. 마치 서로 상대방에게 먼저 말을 꺼내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는 했으나, 누구도 먼저 말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어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텁석부리는 안주를 먹지 않았다. 내가 안주를 먹으라고 권하자 자기는 닭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넉 잔인가를 마셨던 것 같은데, 취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주량이랄 것도 없이 두 잔 정도면 충분한, 나는 심한 약골이었으므로 조용히 비실비실 거기를 빠져나와 교회에 있는 내 숙소로 향했다. 어지러워서 심하게 비칠거렸다.
*
할렐루야 교회 옆 판잣집 부속건물에 있는 내 잠 터에서 깨어나, 교회 반대편 부속 취사장 건물로 나갔다. 정상인이라면 이십 초면 충분할 거리였지만, 발걸음 떼어놓기가 쉽지 않은 나는 이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간밤에 마신 술의 취기가 안 풀려서 더욱 걷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어젯밤 역전 공사장에서 술을 마신 걸 목사님이 알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라도 누군가가 내 음주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다. 웬만하면 오늘 하루쯤 외출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텁석부리 그 사내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교회에서 밥 차가 나가는 점심 배식시간은 아직 두 시간도 더 남은 시각이었다. 취사장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바지런을 떨기 시작했을 십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밥솥을 걸어놓고 불을 땐다, 반찬을 만든다, 비지땀을 흘려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이봐, 한 군!”
환하게 열린 취사장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목사님이 뒤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텁석부리, 황 씨와 함께 저지른 일탈 때문에 자못 깊은 심리적 불안 속에 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어제 외출은 재미있었나?”
“네, 목사님.”
나는 가능한 목사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애를 썼다. 평소에도 늘 그렇긴 했지만, 오늘따라 목사님은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칠년 전 맨 처음 목사님 등에 업혀 이 교회에 올 때부터 이상하게도 목사님은 줄곧 내게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목사님은 잠시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한 표정을 짓다말고 그냥 교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을바람이 산들 불어와 옷깃을 파고들었다. 요 며칠 사이 바람은 여름 늦더위의 날개를 확연히 꺾어버린 양 기세가 달라져 있었다.
나는 교회 마당 가장자리 빨래터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가슴을 시원하게 적셨다. 하지만 간밤에 마신 소주기운이 냉수에 씻겨나가기는커녕 역한 느낌이 새삼스럽게 거꾸로 훑어 올라 온몸에 한바탕 진저리를 만들어냈다.
플라타너스 아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취사장 밥 짓는 자원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더욱 분주해지면서 덜그럭덜그럭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밥 짓는 작업이 한창인 교회 취사장 쪽에서 앞치마를 두른 사모님이 큰 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뒤뚱뒤뚱 취사장으로 걸어가서 차려놓은 아침밥을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다가 수저를 놓았다.
교회에서 기차역은 멀지 않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일이 조금 벅차긴 해도, 내 느린 걸음걸이로도 이십 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저 만치 아래쪽에 보이는 역 광장에는 벌써 사람들이 붐볐다. 광장 일대를 눈여겨 살펴본 셈인데, 눈에 전혀 띄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텁석부리는 역전에 나타나지 않은 게 분명하다.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갔다.
‘동물은 먹어야 산다, 인간은 동물이다, 고로 인간은 먹어야 산다. 아아 밥이란 진정 무엇이던가? 나는 밥에 대해서 기어이 복수하리라.’
기차역 임시화장실 칸막이벽에 새로 써놓은 누군가의 낙서를 바라보는 동안 뜬금없이, 그 낙서를 쓴 사람이 어쩌면 텁석부리 그 사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처음 다녀온 이래로 벌써 세 번째다. 지난 밤 텁석부리, 황 씨 아저씨와 함께 마신 소주가 내게는 과했다. 그래도 배탈이 난 건 순전히 그 께름칙한 술안주 때문이 아닐까. 사실 잠이 들 때까지는 몰랐는데, 깨어나고 보니 숙취 탓만도 아니게 구역질이 솟아났다. 황 씨 아저씨가 안주로 내놓은 그것은 정말 닭고기였을까…….
화장실을 다녀 온 나는 역전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동편 분수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벌거벗다시피 하고 다니던 아가씨들의 차림새가 눈에 띄게 변했다. 바지나 소매 길이가 길어진 것도 그렇지만, 갈색이나 검은 색 옷을 입은 사람들도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내게 있어서 이렇게 우두커니 앉아서 하는 사람구경은 좀처럼 질리지 않는 즐거운 일이다.
그때 경찰 순찰차 한 대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광장 안으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왔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린 윤 순경을 포함한 네 명의 경찰들이 역사 신축공사장 쪽으로 다다닥 구둣발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역전을 오가던 승객들과 여기저기 앉아있던 행려들이 근처로 몰려왔다. 누군가가 흥분이 진득하게 밴 목소리로 말했다.
“간밤에 황 씨 아저씨가 공사 중인 저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대요. 자살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 같다는 말도 있는데…….”
공사장 안으로 들어간 경찰들이 다시 나타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먼저 나온 두 명의 경찰들의 손에 밤색 인조가죽가방과 까만 가죽가방이 들려 있었다. 모두 낯익은 가방들이었다.
뒤이어 경찰들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나오는 사람이 보였다. 텁석부리였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마치 둔탁한 돌에 심장을 강타당한 것처럼 숨이 훅 하고 막혀왔다. 저 텁석부리가 황 씨 아저씨를 죽였다고? ……. 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무리에 섞여 수첩을 펼쳐들고 있는 기자 하나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소리치듯 물었다.
“왜 사람을 죽였나요?”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나오던 텁석부리가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큰 목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충혈이 그득한 그의 눈에서 불꽃이 뿜어 나오는 듯 날카로운 광채가 쏟아졌다.
“그 놈은 비둘기들을 무수히 잡아먹었다! 평화를 학살한 놈이다! 그 놈은 비둘기만 죽인 게 아니다! 오래 전 내 사랑하는 아내를 강간살해하고 달아났다! …….”
윤 순경이 손바닥으로 텁석부리의 입을 허겁지겁 막았다. 그는 시뻘게진 얼굴을 가로저어 입을 막은 윤 순경의 손을 한사코 밀치며 무엇인가를 외쳤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으으으으 하는 신음 같은 소리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다른 경찰이 그의 머리채를 잡고 거칠게 눌러 순찰차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다.
저 멀리 광장 모퉁이를 돌아 들어오는 할렐루야 밥차가 보였다. 노숙자들은 살인사건 구경거리를 버리고 일제히 예배와 배식이 이뤄지는 광장 한 켠 음수대 근처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텁석부리의 말은 사실일까. 아니면, 그저 미친 사람의 헛소리일까……. 나는 더 이상 걸음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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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삶은 먹고 싸고 먹고 싸고............... 먹고 싸고 죽는것
우리가 만든 기본에 충실 한다면 배고프지는 안을것 같네염 ~~~ 잘 읽었어염.
말미에서 경찰들에게 끌려나오며 부르짖는 텁석부리의 절규가 심상치 않습니다. 재미지게 배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