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양양투어 여행기 2] 커피의 거리/오죽헌/신복사지/아들바위공원/낙산사
바깥은 추적추적 가을 비가 내리고 있다. 비 오는 날은 여행객이나 등산객들에게는 김이 새고 맥이 빠지는 날이다. 그렇다고 모텔방에서 구시렁거리며 시간만 축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엊저녁 늦은 시각에 끼니를 때운 탓에 음식 생각들도 없는 모양이다. 궂은비는 그칠 기미가 없으니 이참에 안목 해안가의 커피 거리를 찾아갈 셈이다. 안목 해수욕장의 기다란 모래사장의 안목 해변, 해변도로변에 각양각색의 상호를 내건 카페 등이 줄지어 들어선, 전국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커피의 거리다(10시 30분)..
날씨 탓인지, 카페 규모가 널찍한 까닭인지, 카페 안은 비교적 썰렁한 데, 몇 안 되는 손님들만이 비 내리는 바닷가를 바라보며 '멍 때리기'를 즐기고 있다. 카페 안은 나지막하고 느릿한 음조의 음악이 조용하게 흐르고 있다. 바다는 뭐니 뭐니 해도 짙푸르러야 제격 아닌가? 칠흑의 밤바다의 검은 파도나 지금처럼 검은색에 가까운 잿빛의 물빛은 우울과 비탄, 슬픔에 더 잘 맞는다. 여행객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채색이다.
내리는 빗줄기가 사뭇 가늘어졌다. 그나마 바람을 동반하지 않은 얌전한 테가 역력하다. 자연에 대한 도전의 의미가 담긴 등산이 아니고 그에 순응하고 동반하는 행태의 테마 여행이니 우산을 이용해도 가능한 일정이다. 오죽헌(烏竹軒), 가옥 뒤뜰에 검은 몸피의 오죽(烏竹)이 자라고 있어, 이조참의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당대의 유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최치운(崔致雲)이 처음으로 지은 당호, 신사임당과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태어난 조선 전기의 사대부 가옥이다(12시).
율곡을 낳기 전에 검은 용(龍)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와 서리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는 몽룡실이 있고, 정조 임금이 율곡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글을 지어 하사하고 지은 어제각, 율곡의 영정을 봉안한 문성사 그리고 강릉시립박물관, 율곡기념관, 강릉화폐전시관, 율곡인성교육관, 야외전시장 등의 다양한 문화유산이 보관 전시되어 있는 여러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오죽헌 전경
정문 바로 곁에 검문소처럼 보이는 매표소를 지나고 나면 우측으로 왼손에 두툼한 서책을 펼쳐 들고 서 있는 모습의, 빗물로 전신이 희번덕거리는 율곡 이이의 동상이 기다린다. 동상 맨 앞에는 사자성어 견득사의(見得思義)를 깊숙이 새겨놓은 자그마한 장방형의 대리석이 눈길을 끈다. 견불사의(見得思義), 이득을 보면 반드시 의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조금 전보다 사뭇 부드럽게 들린다. 대리석 계단 대여섯을 오르면 오죽헌의 정문 격인 자경문(自警門)이 기다린다. 자경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안 마당 건너편으로 정면 3칸에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인 아담한 전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율곡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 문성사(文成祠)다. 그리고 문성사 앞 쪽에서 좌측 편에 자리하고 있는, 정면 3칸의 전각이 몽룡실을 곁에 두고 있는 오죽헌이다.
문성사 뒤뜰로 돌아드니 빗물로 번질거리는 오죽의 거뭇한 대숲이 빼곡하다. 문성사와 오죽헌, 몽룡실을 차례로 둘러보고 오죽헌 좌측으로 살며시 돌아들면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그리고 그의 식솔들의 보금자리인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정조 임금이 하사한 어제각(御製閣)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우산을 접어도 될 성싶으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자꾸 떠올라 머뭇거리게 되는 데, 가을비는 꽤 조심스러운 테가 엿보이고 다소곳한 행색이 역력하다. 오죽헌의 핵심은 이제 죄다 둘러보았으니 이제 발걸음은 부속 전각들이다. 오죽헌의 정문 격인 솟을대문 형식의 우람한 입지문(立志門)을 나서면 오른편으로 강릉화폐전시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두 손을 가지런히 그러모으고 앉아 있는 모습의 신사임당 좌상(坐像)이 자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화폐인 오천 원권과 오만 원권의 모델이 강릉 출신의 율곡 이이와 그의 모친 신사임당이 각각 차지하고 있으니 강릉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을 테다.(13시 30분).. 강릉시립박물관 등의 부속 시설까지 두루두루 둘러보고 오죽헌을 뒤로한다. 조금 전부터 그동안 내리던 비는 슬그머니 긋기 시작한 모습이다. 오늘 저녁의 숙영지는 속초시내이니 북쪽으로 더듬어 올라가면서 여행을 즐길 참이다. 맨 먼저 들를 곳은 강릉시 내곡동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신복사(神福寺) 절터가 되겠다.
신복사지의 석조보살 좌상과 삼층석탑
도시 한복판의 나지막한 구릉 산기슭에 있는 이 절터에는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삼층석탑과 석조보살 좌상이 남아 있는데, 석조보살 좌상은 바로 앞의 삼층 석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자세로 앉아 있다. 머리에는 원통 모양의 높은 관을 썼고, 그위에는 팔각형 덮개가 올려져 있으며,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리 장식부를 올려놓은 형식의 석탑이다. 이 두 보물들 덕분에 소박한 규모의 절터가 지금까지 그나마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14시).
비는 그쳐 시야는 좀 더 말끔해졌지만 천지사방은 축축하다. 신복사지를 뒤로하고 강릉시의 최북단 강원도 어획물의 집산 포구 주문진을 향하여 박차를 가한다. 주문진의 소돌항 주변의 바윗돌 해변에 조성한 아들바위 공원으로의 행차가 되겠다. 3,4십 분여만에 득달한 소돌항 주변의 해안가에는 바윗돌 해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오랜 기간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에 씻기고 닳아서 기암괴석의 행색이 된 터이다.
아들바위 공원의 기암괴석과 등대
바위 해변가에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왕년의 인기 가수였던 배호의 노래 '파도'의 노래비도 세워져 있으며, 코끼리 바위, 소바위 등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즐비한 해변의 공원이다. 바람에 장단을 맞추는 듯 파도는 출렁이고 바람은 덩달아 신바람을 낸다. 오전 중에 내렸던 가을비가 이곳 아들바위 공원에서까지 바람과 수작을 피웠더라면 우리 일행들의 아들바위 공원 나들이는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14시 50분).
여행 중에서 가장 바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카메라가 아닌가. 똑같은 장소를 배경 삼아도 앵글을 이리저리 여러 차례가 다반사, 구경을 왔는지 카메라 촬영을 나섰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카메라가 분주하면 볼거리가 그만큼 많았을 거라는 방증일테다.
주문진 횟집타운
때는 오후 3시, 아침나절 케이크를 곁들여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점심을 걸렀으니 좀 출출하다. 주문진항까지 왔으니 생선회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 쫄깃쫄깃 참돔에 소주 한 병을 게눈 감추듯이 해결하고, 다음 코스인 양양 낙산사를 향하여 역마를 재촉한다.
낙산사 칠 층 석탑과 보타전
낙산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5시가 지났다. 의상대와 홍련암은 시간상 어렵게 되었다. 낙산사 경내와 해수관음상까지 둘러본 뒤 오늘 일정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다. 때는 해거름이니 어둑 발이 저만치까지 다가선 느낌이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시절 화엄종의 종조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동해에 면한 오봉산에 창건한 사찰이다. 이 천년사찰은 팔자가 매우 사납기로 유명하다. 호란, 왜란, 전쟁 등과 최근에는 산불 화재 등으로 수 차례의 갖은 고초를 겪은 탓에 중건과 보수는 셀 수 없다.
해수관세음보살상
낙산사 경내를 거쳐 오봉산 꼭대기에 조성이 되어 있는, 동해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해수관세음보살상 앞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상징이다. 중생이 괴로울 때 그의 이름을 정성으로 외우면 그 소리를 듣고 곧 구제한다는 가장 널리 존중되는 보살이 아닌가. 동해 바다는 이미 어둑한 색깔로 변해 있고 해안을 따라 줄지어 자리하고 있는 어촌의 등불만이 바다를 지키는 등댓불처럼 반짝거린다(17시 30분).
여행 동료인 세 자매
오전 나절 비만 내리지 않았다면 낙산사 일원에서 두어 시간 느긋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일 여정을 위한 숙영지 속초시내를 향하여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우리 일행은 30분쯤 지나서 속초재래시장에 들러 손님이 길게 줄을 선 닭집에서 '닭강정'을 사들고, 근처에 또 줄을 길게 선 '막걸리 술빵'집에서 술빵까지 사들고 오늘 숙박지인 동명항 영금정 주변의 M모텔을 들어선다.(2024,11/19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