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전사 대원이 되다
1970년 2월 특전사로 전출명을 받았던 우리 4명 모두는, 정확히
3일 후
오후 4시 쯤에 약속했었던 장소인 서울역 대합실에서 다시 만났다.
그런 후 우리들은 귀향해서 가족과
친구들과 보냈던 이야기를 떠들썩
하게 나누면서, 경인선 기차를 타고는 경기도 소사로 가서, 언덕 위에
주둔해있던
공수특전사령부 (空輸 特戰司令部)를 ?아 갔었다.
그런 그 때 우리가 그 곳 특전사
정문에 도착했을 때“안되면 되게하라!”
라는 커다랗게 쓴 구호를 보았고 늠름하게 생긴 정문근무대원의 기합이
꽉 찬 우렁찬 호령을 듣게 되었다.
“신병 일동차렷! 따블빽 옆에놓고 쪼그려 띄기 준비!
쪼그려 뛰기 시작!
하낫, 뚤,
셋, 넷……”우렁찬 검은 베레모 근무자의 호령에 따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쪼그려
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30 여번을 뛰고 나서는 힘들어하는 우리
신입대원을 보고서는 “그만!”
하더니 주의사항을 말했다. “ 제군들은
이 시간 이 후부터 부대안에서
3보 이상을 이동할 때는 무조건 구보(驅步)다 알았는가!” 라고……
그렇게 특전사령부에 들어 선
순간 부터서 나는 3년 동안 내내 부대 안
건물 밖에서 3 보 이상을 이동을 할 때는,
무조건 자신의 구령에 따라서
뛰어가야만 하는 ‘단독구보(憺驅步)’가 바로 시작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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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블 빽을 둘러메고 구령에 맞추어
헐떡거리며 뛰어 올라가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우리들 뿐만 아니라, 모든 특전대원들이 뛰어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임시로 배정되었던 사령부 내무반에다 따블 빽을
정렬한 후에 저녁식사를 하려고 식당으로 뛰어가서 배식대 앞에
섰을 때
나는“와아!”라는 감탄의 소리를 마음 속으로 내질렀다.
완전히 돼지살코기가 모든 대원들에게
듬뿍듬뿍 배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밥도 듬뿍주면서 “더 먹고 싶으면 다시 와! 충분히 먹도록 해!”
라고 배식원은 인심 좋게 권고를 했었다. 그 날 저녁 그 식당에서 나는
분명히 그 곳에
지원해서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저녁이 일주일에 한번있는
특식날인것까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 후 특전사에서 복무했던 2년
8개월 동안,1971년 10월
하순에
지리산으로 무장 산악훈련을 갔을 때 천왕봉에서 아침에 일어나 ?아지는
찬비와 추위 때문에 아침을 거른 체 빗속을 뛰어 노고단에 도착할
때까지
10시간? 정도 전혀 음식을 먹지못했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대를
할 때까지 단 한번도 더 이상은 배고픈 일은 없었다.)
제2유격여단으로
배속
경기도 소사 특전사령부에서 이틀
정도 대기한 후 나는, 여러 분야에서
특기교육을 받은 후에 모여든 하사관들과 더불어, 불과
몇 개월 전에
창단되어 남원에 주둔하고있던 제 2유격여단 ( 2년 후 5 공수여단이 됨)
으로 전출명을 받아서 기대와 흥분속에 전라선 하행기차를 탓었다.
그 때 동행하던 대원들을 보면서
자의이든 타의이든 일단 특전 대원이
되고나면 모두가 뜨겁게 사기가 살아나는 것으로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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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그 때 함께갔던 모든
대원들은 비록 신참 대원이지만, 따블빽을
등에 둘러메고 새로이 배속되어 가는 중에도, 매우 당당하게 행동했고
새로운 각오와 자긍심으로 정신무장이 잘 된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 남원 제 2 유격여단 정문에 도착했을 때도 어김없이
쪼그려
뛰기로 신고식을 했었다.
(비록 신고식으로는 괘팍했지만 크고 작은 기합으로 행했던 그 쪼그려
뛰기가 대원들의 전투력과 체력을 키우는
데는 더 없이 좋은 기합이었고
그것은 작전상으로 실시되었다는 것을 얼마 후에 곧 알게 되었다.)
그 당시 2 유격여단장은 정형택 장군이었다.
그 곳에서 내가 여단본부에
전입신고를 마치고 나니 장교 한 분이 내 신상카드를 자세히 ?어보면서,
“임이병! 이곳 여단 본부 작전처에서 근무 할 생각이 있어?”라고 물었다.
나에게 여단 본부 행정요원으로 근무 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 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 할 필요없이
한 마디로 거절했었다.
(그 장교가 경동고 선배였음을 한참 후에
알게 됨) 왜냐면 나는 산야를
누비면서 군 생활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의사를
밝혔던 까닭에 나는 며칠 동안 더 대기병 생활을 해야만 했다.
우리가 그 곳에 도착했던 그날
저녁에 산악행군을 떠났던 부대가, 바로
내가 배속되어 갈 4대대였었고, 그 때 그 부대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2주 동안에 실시했었던 유격훈련을 모두 끝내고서, 다음 교육인
공수지상교육을
받기위해서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시키려는 목적으로,
1주일 동안 지리산으로 산악무장행군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까닭에 여단본부에서 대기하던
우리는 여단본부 통신병이 무전기를
통해서, 훈련 중인 4대대 대원과 교신하는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다.
2월 초라 잔설로 덮여있는 지리산 능선을 오르기가 무척이 힘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와 통신기 잡음소리에 섞여서 “독수리
한 걸음을 오르려다 세 걸음 미끄러진다 오바!” 라는 목이 쉰 듯한 대대
통신대원의 교신내용도 들려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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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 중대원이 되다 지리산의 설경
그런 며칠 후 늦은 오후에 얼굴이
온통 새까맣게 그을리고 수염을 깍지
못해서 마치 도깨비 형상이 된 용맹스러운 진짜사나이들이 나뭇잎으로
위장한 커다란 군장을 메고서 우렁차게 군가를
부르면서 매우 절도있고
힘 찬 동작으로 보무당당하게
여단 정문을 통해서 행진해 들어왔었다.
그 부대가 바로 내가 명을
받아 소속 할 제2유격여단의 4대대 였었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에 나는 여단본부와 멀지않은 낮은 언덕너머 막사에
주둔해 있던 4대대 본부를 ?아가서 전입신고를 했었다.
그래서 마침내
나는 소망해 왔던 특전부대의 대원이 되었고, 바라던 대로 특전사 말단
조직인 16 지역대 16중대의 12명중 한 명인 특전대원이 되었다.
그 때 내가 소속한 중대의 구성원들은 일반부대와는 많이 다르게 중대장
(이경주 중위)과 부중대장 1명인 장교 2 명과 선임하사를 포함해
6명의
하사관과 4명 사병으로 총12명으로 구성되었고 각 대원들은 각자 작전,
정보, 통신, 화기, 폭파, 의무등의 주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 행운이라고 할까? 내가 전입해 간 1주일 후 부터 나는 4 대대 전체
대원 177명이 바로
공수지상교육을 받게 되어 갖 전입을 해 온 말단 사병
이었던 나도 그 훈련에 참가 할 수 있었다. (다른
군인이면 기겁을 하면서
훈련에 빠지고
싶겠지만 나의 경우는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왜냐면 나는
용맹스러운 군인이 되고싶었고 이왕 받아야 할 고생스런 훈련이라면 일찍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그 때 4 대대 대원들 모두는 공수교육을 받기위해
이미 충분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듯이 느껴졌음) 127
또한 그 때 내가 받은 공수교육
지상훈련은 월남으로 파병하기 위해 실시
했던 독수리교육 2차 공수지상훈련과 같은 깃수 훈련이었고 우리 대대는
월남에는 파병되지 않지만, 그 깃수와 함께 지상교육을 받도록 사령부로
부터 훈련 명을 받은 것이었다.

특공 훈련중인 대원들
진짜 사나이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훈련과 짬프 속에 맺어
진 전우야
푸른창공에 낙하산타고
뛰어내릴 때
행주나루터 아가씨들이
나를 반긴다
나~를 반긴다
(훈련 중에 즐겨
불렀던 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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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자들이 맛볼수 없는 군대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시어
운좋은 글사랑 회원.
감사합니다.크로니클한 이야기, 재미있습니다.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