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藝人들의 단골식당 순례 (5) 행복식당 술자리… 나와 너는 없고 '우리'만 있다
◇…사람은 신선 같고, 술은 한없이 착하다
대구 반월당 근처 행복식당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단골중에 음성이 가장 혈기방장한 정당인 박유남(55)과 통화를 하게 됐습니다.
왁~자~지~껄~.
보통사람보다 두 배 이상 목소리가 큰 박씨. 민주당 대구지부와 동고동락해왔고 지역에선 알아주는 웅변전문가입니다. 대구·경북 학원강사연수원 원장까지 역임했으니깐 그의 화술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도 '인정'이 고프면 여기로 옵니다. 주차 걱정할 필요없고, 지하철 반월당 역에 내리면 바로 식당 앞이니 그로선 더없이 좋은 놀이터입니다. 과메기를 안주로 낮술에 취하던 중인가 봅니다. 행복식당 기사 적는다고 하니 그가 행복식당 대변인을 자청하네요.
"행복식당은 묘한 위상의 술집입니다. 한없이 추웠던 세월과 흥청거리기 시작한 세월의 접점에 서 있습니다. 민주화 시대와 군부독재시대의 접점에도 서 있었습니다. 주단골층인 50~60대가 여기로 오는 건 다른 술집에 없는 지난 세월의 흔적이 이 집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의 흔적. 그래, 그건 '낭만'의 다른 말입니다. 지금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다지 짙지 않았던 어떤 세월에 대한 그리움이랄까요.
선인선주(仙人善酒).
대구시 중구 봉산동 행복식당, 사람은 신선으로 만들고 술은 한없이 착하게 만드는 목로주점이죠. 나와 너는 없고 우리만 있습니다. 입구 풍광은 단연 '문화재급'입니다. 대구에 이렇게 허름하면서도 운치있고 그러면서도 푸석한 표정의 골목이 있다는 사실에 다들 적이 놀랄 겁니다. 행복식당 바로 옆은 40여년 역사를 가진 봉산동 학사주점 골목입니다. 책 맡기고 술 먹던 7080세대들, 다 그 골목에 대한 한 추억담을 갖고 계실 겁니다. 학사주점은 20~30대 손님이 주류이지만 행복은 60대가 축을 이룹니다. 그보다 더 나이든 분들은 중구 종로의 무림식당으로 가죠.
행복은 예전 길 건너 은정과 함께 반월당의 양대 막걸리집으로 유명했습니다. 그 옆에 곡주사와 공주식당, 그리고 남산동 막걸리집 도로메기까지 모여 '대구 막걸리 5인방 시대'를 구가하기도 했죠. 은정은 사라졌고 거기 단골 중 한 명인 수필가 엄지호씨가 요즘 여기로 아지트를 옮겼답니다.
◇…달빛 한 자락 어른거리는 주모의 깔끔함
술을 마시면 맘의 주름살이 만져집니다.
주점에서 먹는 것과 집에서 먹는 술은 차원이 다르죠. 누추해도 일부러 행복에 오는 이유? 예술적 모티브를 훔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쩌죠. 갈수록 예술가와 일반인의 구분이 애매해져가고 있습니다. '국민 예술가 시대'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30년전만 해도 예술가의 고담준론은 먹혀들었습니다. 폼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젠 "내가 예술가요"하다간 "그래서 어쩌란 말이요"란 말이 돌아올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쩝니까, 서로 처지를 너무 잘 아는 예인끼리 골방에서 낄낄댈 수밖에 없죠.
달빛 한 자락이 미소에 감도는 주모 신현월씨(58).
종업원 없이 그 공간을 끌고 갑니다. 충남 강경 출신으로 1980년 대구로 왔습니다. 이 집의 최고 기본안주는 들깨와 땅콩, 그리고 고구마와 배추뿌리입니다. 사카린 들어간 달짝지근한 고구마 안주는 70년대 향촌동 막걸리집의 히트상품이었죠.
신씨는 그냥 수더분해보이지만 눈치 하나는 무척 빠릅니다.
이런 곳에선 남 흉보는 게 특별 안주일 겁니다. 누가 술 안주감으로 전락합니다. 욕먹는 사람이 방안에 앉아 있는 걸 모를 때 신씨가 슬그머니 방에 그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가끔 야당인사와 여당 인사가 모이면 여당 인사한테 지금 구석에 야당인사가 술먹고 있다는 정보도 흘리죠. 원래 이런 곳에선 야당은 떠들고 여당은 조용합니다. 예전 선거철이면 형사들도 단골이 되죠. 특히 근처에 민주당사가 있으니 '요주의 술집'이 될 수밖에 없죠.
◇…벽에 가득한 예술인의 작품들
폭주는 용서해도 가무는 질색입니다.
더욱이 욕이 난무하면 주모는 잘 아는 분이라도 정색합니다. 행복에 오면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몇 분이 있다. 대표적 인사가 소설가 이수남, 정당인 조희락과 박유남입니다. 최근 대구 문단 이면사의 일단을 훑어볼 수 있는 소설집 '심포리'를 펴낸 소설가 이수남은 김원중, 송일호, 우호성 등처럼 문단 뒷방 변사(邊事)를 잘 챙기고 있습니다.
화가와 서예인들이 많이 오다보니 적잖은 작품도 기증받습니다. 하지만 주모는 그냥 받지 않습니다. 안주로 적잖게 대접하고 액자로 잘 갈무리해줍니다. 터주 작품은 추사체 전문가로 유명한 서예인 현사 김승호가 시인묵객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이곳을 위해 남긴'자적(自適)'이란 작품입니다.
작고한 목인 전상렬 시인도 여기를 사랑했습니다. 그분은 대취해도 좀처럼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목인은 동양화에도 일가견있어 잉어그림을 걸어줬습니다. 행복을 예인들의 사랑방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분은 요즘 무림으로 캠프를 옮긴 취석 금동식 시인이었습니다. 몸이 많이 약해진 윤장근 죽순문학회 회장도 요즘은 잘 들리지 못하지만 예전엔 단골이었습니다.
도광의 시인은 대취한 상태로 자주 들러 맥주 딱 한 병 마시고 잘 사라집니다. 그 옆엔 어김없이 권기호 시인도 한 자리합니다.
사진작가 박경대는 아프리카 사진, 화가 김일동은 하회탈을 선물했고 가끔 화가 최종모·손문익·김건규 등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수 남일해는 지난 3월25일 대구에 공연차 왔다가 후배들에 이끌려 여기로 왔습니다. 남문시장 근처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이기에 행복에 더욱 심취했던 모양입니다. 청도에 안착한 가수 이동원도 지인들과 막걸림 파티를 위해 여기 몇번 앉았습니다. 벽에 걸린 부채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언론인 출신 수필가 구활도 최근 새 방명록에 스케치화 한 수를 남겨놓았네요. 여걸 수필가 백정혜도 온기를 더해주곤 하죠.
정식은 4천원. 일요일에는 오후 5시에 개봉. 자정 무렵 문닫으려 하나 뜻대로 안된다네요. (053)427-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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