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나라 세워지리라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시편 132:13-14)
하나님의 사랑은 끝나는 곳이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멈추는 곳이 없도다
하나님의 능력은 쇠하는 때가 없으며 하나님의 비전은 모든 나라에 있도다
그 사랑이 닿는 곳에 주의 백성 구원 받으며 그 은혜가 흐르는 곳에 평화와 행복 가득하도다
그 능력이 쓰이는 곳에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며 그 비전이 이루어진 곳에 주의 나라 세워지리라
[하나님의 나라 Kingdom of God]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때로 그 나라의 백성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현재, 미래)이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혹은 지배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는 사람 혹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만이 미래의 그 복된 통치를 받을 수 있다(막 10:15).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생해야 한다(요 3:3-5).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적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영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으셨던 권세는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 중에 이미 임한 증거가 된다(마 12:28).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주권, 왕직을 의미한다. 구약은 그 나라에 대한 기대와 준비 및 약속이며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약속의 성취이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은 주로 공관복음에만 나타나는 중심적인 용어로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로 나와 있고(막 10:15, 24; 눅 8:10; 9:2) 마태복음에서는 천국(마 3:2; 4:17)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지역을 차지하는 영역으로서의 나라이기보다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신 백성들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신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한 주의 백성으로 구성된 이 나라는 민족성이나 혈통을 초월하기 때문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이가 없다.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과 현재성] 하나님 나라의 시제는 이중적이다. 즉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할 때 이것은 그 나라가 현재적으로 임하여 있는 것을 말한다(마 12:28).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였는데(눅 17:20)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어떤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 안에 임하여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실은 사도행전에 여러 가지의 표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보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 귀신을 내어 쫓는 것, 신유와 기적이 일어나는 것, 중생과 회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구별된 삶과 고난 등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하나님 나라는 가까웠느니라(마 3:2)는 말씀과 같이 미래적이기도 하다.
즉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말하고 있는 한편 그의 재림으로 미래에 완성될 나라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아직’의 상태이며 신약에 와서는 ‘이미’의 상태이지만 종말론적으로 볼 때 그 나라는 ‘아직’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비유를 통하여 선포하셨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하늘 나라,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들이 나타난다. 이 비유들은 매우 조직적인 구성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속성의 다양한 측면들을 제시해 준다. 하나님 나라는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형태라 할지라도 그 씨앗이 일단 뿌려진 때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 결실할 때까지는 성장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 성장과정에 있어서 그 반대 세력이 아무리 강해 보인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 나라의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다는 것(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이 자기 소유를 전적으로 포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 즉 자신의 모든 소유권을 포기하고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자신의 소유를 다 포기할 때 슬퍼하며 한 것이 아니라 기뻐하며 하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마 13:44). 이는 그 농부에게 있어서 그 보화를 얻는 것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파는 것보다 훨씬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충분히 모르거나(가시떨기, 돌밭) 아예 관심이 없거나(길가) 심지어 배척 혹은 대적하기까지 한다(가라지). 결국 그런 반응을 보이는 자들은 마지막 날 풀무불에 던져져 거기서 슬퍼하고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마 13:41-42). 마태복음 19장의 부자 청년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몰랐기에 재물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분명 좋은 반응을 보일 것이며(좋은 밭) 그런 반응을 보이는 자들은 결국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됨으로써 마지막 날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마 13:43).
시온 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모든 원수 모든 원수 모든 원수 모든 원수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 근심 없도다 근심없도다
[시온] 예루살렘 내의 남서쪽에 위치한 산이다. 고고학 발굴로 인해 다윗 성이 예루살렘의 동남쪽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밝혀져 시온의 위치는 후대에 와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시온은 원래 여부스 족의 영토이자 요새의 이름이었다(삼하 5:6). 후에 이곳을 정복한 다윗이 다윗 성이라 칭하고 이곳에 법궤를 안치하면서부터 시온은 이스라엘의 중심지가 되었다(삼하 5:6-9; 왕상 8:1; 대상 11:5). 그래서 시온은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예루살렘을 나타내는 말로 자연스럽게 사용되었고(시 48:12; 사 1:27; 렘 14:19; 애 1:17) 시온의 딸은 예루살렘 주민과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말로 쓰였다(왕하 19:21; 시 48:11; 69:35; 미 4:7; 슥 9:9).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시온에서 자신을 보여 주시며(암 1:2) 구원을 베푸시고(시 14:7; 53:6) 그곳에서 그의 백성을 축복하신다고(시 128:5; 134:3) 믿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로 상태에서도 시온의 회복을 사모했는데(시 137:1) 시온의 회복은 하나님의 축복과 임재의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사 49:14; 51:3; 52:1-8; 슥 2:10-11).
시온,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 시온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의 대명사로 쓰였으며(시 9:11; 20:1-2; 암 1:2) 거룩한 산(시 2:6)으로 상징되었고, 안전과 구원(시 53:6; 사 14:32),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상징하였다(시 125:1; 128:5; 134:3). 신약에서도 시온은 하나님의 거처(히 12:22), 새 예루살렘(벧전 2:6), 신천신지(계 14:1)를 의미했다.
솔로몬의 기도는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시 132:8). 솔로몬이 성전을 다 완성했습니다. 지금 솔로몬이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 내가 성전을 완성했사오니, 주여, 당신의 법궤와 함께 평안하게 저 성전으로 들어가시옵소서!" 이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이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두어 두겠다는 생각이었습니까? 하나님은 성전에만 거하시는 분이란 뜻일까요? 결코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대하 6:18)
이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지만 이 성전이 하나님을 모시기에 너무 좁은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의 하늘이라도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지은 이 성전이오리이까! 그렇다면 솔로몬의 "성전에 평안히 들어가소서!" 라고 한 기도는 무슨 뜻일까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사 66:1)
'권고'라는 말은 '그 사람을 내가 돌아보거니와'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이 지은 성전에 거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거할 곳은 심령이 가난한 자, 마음에 통회하는 자, 나의 말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는 자, 그 속에 내가 돌아보고 거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여부스족이라는 가나안 이방 족속이 살고 있었고 그들의 성소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다윗이 정복한 후에 다윗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바로 이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또 법궤가 그전까지는 이방 민족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또 다시 찾고 나서도 정해진 장소 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녔는데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땅에 있는 예루살렘만 성소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거하는 우리의 심령이 우리에게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또 우리가 믿음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우리에게는 새로운 예루살렘입니다. 시편 132편을 보면 예루살렘이 법궤를 모심으로 성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 된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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