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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벗이 되어>: 이 달에 만난 사람(4)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참과 이웃을 위하여
金亨錫 교수는 평남 대동군에서 태어나 숭실, 제3공립중학에서 수학하고, 일본 上智大 철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부터 연세대 철학과에서 30여 년간 교편을 잡았고, 하버드‧시카고 대학의 연구교환교수 및 오스틴 대학에도 출강했다. 현재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이며 50여 권의 철학 에세이 및 논저가 있다. 성천문화재단에는 93년부터 이사로 참여하였고, 가을 학기에는 동서인문고전강좌에서 "서양사상사"를 강의한다. (대담 김홍근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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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선생님께서는 성천문화재단에 이사로 참여해오시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서양사상사> 강의를 직접 맡으시게 되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강의를 해주시겠습니까?
그 동안 <동서인문고전강좌>가 주로 특정한 서적 위주로 진행되어오다 보니, 수강생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흐름의 파악이 쉽지 않고 따라서 지식이 단편적으로 그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헤겔’을 공부하면 그의 사상을 충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전체 서양사상의 흐름 중에서 헤겔의 철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사전 이해가 필요한데, 담당 강사가 나름대로 설명을 해주시지만 아무래도 전체 강의 시간 배정 상의 제약에 의해 충분치 못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체 강좌의 초입에 동-서양사상사의 입문적 성격의 강좌를 개설해 달라는 수강생의 요구가 있었고, 그에 따라 이번에 처음으로 이런 과목이 개설되었다고 봅니다. 고전이 탄생한 시대성과 환경성을 배경으로 고전을 읽게되면 고전의 생명력을 보다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욕구에 충실하고 또한 현장성을 반영한 강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고전교육에 현장성을 반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를 들어, 동양철학을 공부한 서양인이 한국에 와서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데, 유교에 대해서 무지하다면 우리가 보기에 그의 학문이 어딘가 현장성과 현실감각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마찬가지로 동양사람이 서양철학을 공부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면 그것도 문제 아니겠어요? 그런 점에서 성천아카데미에서 개최하는 고전강좌는 강사나 수강생이 함께 생활 속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를 같이 고민해 보는 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현장을 떠난 고전이나 철학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고전강좌가 10년 가까이 진행되어오는 동안 좀 더 보충되었으면 하고 느끼던 점을 선생님께서 지적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서양 고전에서 파스칼의 <팡세>를 읽고 충분히 이해하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의 기독교 신학의 문제, 당대의 새로운 합리주의와 철학적 과제 그리고 파스칼 개인의 내면적인 고민과 신앙적 깊이 등을 이해해야겠지요. 그런데 그 문제는 파스칼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될 수도 있기에 의미가 있고, 또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가 되겠지요. 이런 여러 점을 고려한다면, 수강생 각자는 한 번의 수강으로 그치지 말고 계속 회수를 거듭하며 공부하여야 합니다. 학교는 졸업이 있겠지만, 평생교육으로서의 고전공부는 지속적으로 쌓아 올라가는 공부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속에서 인생의 의미가 찾아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아카데미에서도 다양하고도 새로운 과목을 계속 신설하여 회원들이 선택적으로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평생 철학을 공부해오셨는데, 그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지만, 가장 주된 것은 청소년기 자아형성의 정신적 욕구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지요. 중학교에 들어가 종교, 문학,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내가 다니던 숭실중학교가 일제 때 신사참배 거부 문제로 폐교가 되어 1년 동안 학교를 쉬게 되었지요. 그래서 학교 대신에 평양시립도서관에 가서 철학 책을 읽기 시작하여 그 동안 가져오던 문제를 철학을 통해 집약적으로 풀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 길로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벌써 60년 이상 한길을 걸어온 셈이 되는군요.
그 결과로 만들어진 선생님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서양철학에는 몇 가지 길이 갈라집니다. 먼저 인식론적으로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철학 계통이 있고, 또 하나는 종교, 윤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실천철학 분야가 있습니다. 저는 서양철학자로서 특히 이런 실천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왔습니다. 또한 서양철학자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 하나 있는데, 예를 들면 일본에는 평생 헤겔만 공부하면서 그 중에서도 개념하나에 매달리는 철학자들이 흔히 있지요. 나는 그런 세밀한 공부보다는 동서양 할 것 없이 한 인간으로서 사회-윤리-종교-역사문제들을 보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풀어보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좌우명이나 핵심적인 무슨 키워드가 있습니까?
나는 가훈이나 좌우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 가지 불변하는 개념을 설정해 놓으면 자유로운 지성인이 되기에 방해받기가 쉽기 때문이죠. 지성인의 요소로는 먼저 자의식이 강해야 합니다. 어디서 감투를 씌워준다고 해서 쉽게 달려가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 다음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나는 기독교인인데, 기독교도 나를 위한 기독교지 무슨 교파나 교리에 얽매이면 안 되는 것이지요. 또 항상 새로워져야 합니다. 늘 새로운 생각과 발상을 해야 하는 것이 지성인의 사명이지요. 그래도 살다보면 역시 “아! 지금까지 그것 가지고 살았구나!” 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굳이 말하자면, 진실과 사랑이 나의 길이 아니었는가 하고 회고해 봅니다. 즉 ‘참과 이웃을 위하여’가 나의 가치관이 아니었는가 하는 거지요.
기억에 남는 학창시절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젊었을 때는 당연히 스승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성장하게 되면 스승인 동시에 친구가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철이 없는 상황에서 톨스토이를 읽었는데, 당시는 톨스토이에게 미쳤지요. 다음 도스토예프스키도 읽고, 칸트도 읽고, 니체도 읽고 나니까, 톨스토이의 문학성은 존경하면서도 당시 많은 사람들이 빠져있던 톨스토이의 사상은 그렇게 높은 수준의 것이 못되는구나 하고 느꼈지요. 결국 자아의 성숙과 함께 그렇게 좋아하던 톨스토이의 생각을 넘어서게 되었고, 따라서 스승은 넘어서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 젊어서 대학 때의 스승에게 배운 학문하는 자세, 강의하는 태도 등은 평생 남는 재산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가깝게 느껴지는 서양철학자는 누구입니까?
나는 영미철학 계통보다 대륙철학에 보다 가깝게 느꼈고, 자연 큰 봉우리인 칸트와 헤겔은 놓칠 수가 없었지요. 그 다음 조금 더 내려와서 과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철학자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입니다. 그 뒤로는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 친근감을 많이 느꼈지요.
그 동안 한국 철학계의 산 증인으로 늘 현장에 계셨는데, 그 동안 가깝게 지낸 知人은 누구입니까?
‘우리 시대’라는 느낌을 주는 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비유해보면, 일반인들과 학생들은 강남에 살고 소수의 철학자들은 강북에 살고 있었는데, 그때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를 놓기 위해 애쓰던 때가 있었죠. 몇 몇 선배들을 제외하면, 우리 사회의 계몽기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던 대표적인 사람들이 김태길 교수, 안병욱 교수 그리고 저라고 볼 수 있겠지요.
당대에는 그런 계몽적인 역할의 중요성이 절실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면 앞으로 21세기 사회에서의 철학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 되겠습니까?
지금의 젊은 철학자들은 각자 유명한 철학자를 전공하는 것으로 자부심을 가질지 몰라도, 학위논문이나 관련저술을 쓰고 나면 그런 지식은 거의 그냥 없어지고 맙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 시대에 이 사회가 요구하는 철학적 과제에 대해 해결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한 때 미국에서 윌리엄 제임스나 존 듀이가 프래그머티즘을 주창하면서 미국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켰고, 독일에서는 빌헬름 딜타이 같은 사람이 <생과 해석>이라는 과제를 제시하여 독일사회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앙리 베르그송이 프랑스 사상을 종합하여 새로운 길을 열어나갔죠.
지금 우리 후배 철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그런 과제를 한국 철학계에 던지는 것이죠. 그래서 21세기 전반에 걸쳐 한국인들이 살아갈 과제를 21세기 초반에 철학자들이 제기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죠.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한국의 지성계가 지금 상태로 계속 가다간 아마 30년 내엔 그런 사상이 못나올 것 같다는 것이죠. 우리 선조가 한때 실학정신으로 살았듯이 21세기 한국인은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우리도 꼭 마련해야 합니다.
그 동안 저술하신 저서는 몇 권이나 되는지요?
전문적인 학술서는 6권이 있고, 철학적 에세이는 약 20권, 사회문제를 취급한 것도 한 20권 있으니 모두 약 4-50권이 되는군요.
그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책들은 무엇입니까?
마치 모자라지만 사랑스러운 딸처럼 애정이 가는 책이 초창기에 썼던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정년 퇴직 후에 대학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추린 <종교철학>, <역사철학>, <윤리학> 등도 소중한 책입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삶의 내밀한 대화를 적은 책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적인 업적이 되는 책이군요. 말하자면, 선생님이 평생 견지해 오신 ‘사랑’과 ‘참’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책 한 권을 든다면 무엇입니까?
제 전공은 철학이지만, 제 삶의 길목에서 항상 떠오르는 인물이 세 사람 있습니다. 파스칼과 키에르케고르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내 뼈뿐만 아니라 세포와 살과 피를 만들어준 사람들이죠.
<진리의 벗이 되어> 독자에게 꼭 권할 책 한 권을 소개해 주십시오.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 좋은데 일반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떨지 모르겠고, 그 보다는 파스칼의 <팡세>가 이해하기 좀 났죠. 정말 권하고 싶은 한 권의 고전이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家의 형제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내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할 때,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의 하나인 폴 틸리히도 칸트나 헤겔의 철학책들과 함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 소설도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지성인인 베르자예프가 말하기를, “러시아의 전통이 쭉 내려오다가 공산주의 때문에 단절되었지만 언젠가 공산주의가 망하고 러시아의 전통이 다시 부활할 때 그 출발점이 될 사람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아직 생의 경험이 부족해서 이 책을 얼마나 소화해낼 지 의문이지만, 만약 자기 삶의 문제를 깊이 깨닫고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이라면 이 책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 같아요.
선생님은 기독교인이면서 철학자이신데, 진리와 신앙의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켜 오셨는지요?
나에게 신앙은 철학과 같은 비중을 지닌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렸을 때, 건강이 나빠서 우리 어머니 소원이 내가 스무 살까지 사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일 정도였으니까요. 그 문제를 나는 기독교 신앙으로 극복했어요. 그 과정에서 인간적 삶의 깊이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에 눈을 뜨게 되어 종교와 철학과 예술을 서로 연결시켜서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나와 같은 문제로 고민했던 파스칼과 키에르케고르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신앙을 어떻게 보십니까?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교회주의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침묵을 지켜야 그리스도의 정신이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교리주의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나의 기독교는 ‘가장 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철학에서 받는 것보다는 종교에서 받는 것이 더 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학이다, 교리다, 교회다 하는 형식이 아니라 한 인간이 인간문제를 탐구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아우구스티누스에 가게 되고, 파스칼에 가게 되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가게 되는 것이지요. 나라고 하는 하나의 과일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향기와 의미 그것이 곧 저의 신앙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직위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한 인간이 그리스도를 붙든 것’입니다.
내가 일본에서 대학 다닐 때 동창 중에 엔도 슈사쿠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유명한 카톨릭 작가가 되었지요. 그가 하는 말이, 자기는 일곱 살에 어머니에게 손목을 잡혀 성당에 나가서 세례를 받고 살았는데 철이 들면서부터 자꾸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사는 것같이 느껴져서, “이것은 내 옷이 아니다. 나는 일본문학을 하는데 서양 옷을 입어서야 되겠는가” 하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자기에게 맞는 옷을 찾아보았죠. “그러면 불교의 옷을 입겠느냐? 그건 못 입겠다. 유교의 옷을 입겠느냐? 그것도 못 입겠다. 그러면 神道의 옷을 입겠느냐? 그건 더 우습다. 그러면 양복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결국 옷이 아니라 내 삶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거죠.
그 사람도 신앙과 글쓰기와 삶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마지막 가서 뭐라고 했나 하니, “예수라고 하는 인격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로 결론지었지요.
신앙의 문제는 인간을 고민 속으로 빠트리기도 하고, 동시에 크게 성숙시키는 것 같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불교계의 원로였던 이기영 교수가 나에게 한 말인데, “지금 김 선생은 교회 목사님이나 신학자들에게 오해받고 있지만, 한 20년이 지나면 김 선생의 신앙의 입장이 크리스찬답고 올바랐다는 평가를 받게 될 거다. 또한 기독교 토착화라는 문제도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한 한국인이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나아가 어떻게 사회문제화 시키느냐에 달렸는데, 그것은 목사나 신학자의 손으로는 안 되고 오히려 김 교수 같은 사람이 토착화의 씨앗을 뿌렸는지 모른다.”고 하는 거예요. 나는 그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하여튼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는 믿고 살아왔습니다.
요즘 인문학의 장래에 대해 우려하는 말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라고들 하는데요, 위기의 실체는 신문지상에서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한 200년 뒤에서 현재를 조망해볼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200년 뒤쯤 가면 서구문명에서는 영어권, 독어권, 불어권 그리고 슬라브권 문화 정도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상당히 쇠퇴될 것으로 보입니다. 동양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문화가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남느냐 못 남느냐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이 우리 한국의 문화예요. 그때도 남는 것은 자연과학이나 기계기술이 아니라, 인문학입니다. 그때를 바라보면 지금의 한국인문학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지요.
왜 인문학이 핵심인고 하니, 인간문제와 사상을 다루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그런 문제가 사회에서 소외되고 말았기 때문에 걱정입니다. 구라파에서도 보면, 하나의 사회의 뿌리는 인문학이고, 그 위에 사회과학이 줄기를 뻗고, 자연과학과 기계기술이 무성한 잎과 열매를 맺게 되는 거지요. 몇 백년 뒤 한국 문화가 살아남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지요. 현 인문학자들의 어깨에 무거운 과제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문학의 문제는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안목에서 통찰해야 하는 것이군요. 그 외 이슬람권과 인도권 문화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들은 살아남기는 하겠지만, 세계적으로 주변국들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겠지요.
그렇다면 지금 성천문화재단에서 펼치는 고전교육사업과 인문학 지원사업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습니다. 인문학은 인간, 사상, 고전으로 되어있거든요. 성천문화재단에서 하는 일은 애국적인 위치에서 상당히 소중한 작업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덩치 큰 무슨 모임이 아니라 소수지만 깨어있는 사람들의 집단이지요. 일반인들도 성천아카데미의 교육사업에 관심을 갖고 많이 동참해야 합니다. 배움만큼 소중한 것은 없는 것 아닙니까. 한 권의 고전다운 고전을 읽는 것이 그 고전에서 흘러나온 열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낫습니다. 인간의 문제와 더불어 영원히 남는 것이 고전이라는 말입니다.
얼마 전부터 성천아카데미 고전과목에 문학 과목을 넣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더불어 괴테나 셰익스피어도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이죠. 예를 들어, 정의의 문제를 논할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한 구절보다 더 절실히 그 문제를 제기하는 글은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어느 변호사가 소냐라고 하는 비참한 매춘부에게 도둑질을 했다고 하는 누명을 씌우지요. 그 어머니가 자기 딸이 아무리 비천해도 물건을 훔치지는 않는다고 홀로 중얼거리다가, 너무 답답하니까 거리로 뛰쳐나갑니다. 그리고 "이 시대 이 땅에 정의가 있나 보자" 하고 호소하며 다니다가 결국 실성하고 맙니다. 이것이 어디 소설 속에서 만의 일입니까? 요새 우리들의 고백 그대로 아니겠어요.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괴테의 친구였던 시인 실러는 칸트를 참 좋아해서 괴테에게 칸트를 읽으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지요. 내 생각에 만일 괴테가 칸트를 한참 읽다가 뭐라 생각했을까 상상해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다른 생각도 있고, 먼 후일 가면 그것 가지고는 안될거다”라고 했을 거 같아요. 그러나 뛰어난 문학작품은 인간에 대한 깊은 함축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 평가는 쉽게 넘어서지요.
평생 철학과 인간문제를 탐구해 오신 선생님께로부터 들을 수 있는 귀중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첫댓글 “예수라고 하는 인격에서 문제를 해결하자”
"우리 시대에 이 사회가 요구하는 철학적 과제에 대해 해결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동창 중에 엔도 슈사쿠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유명한 카톨릭 작가가 되었지요. 그가 하는 말이, 자기는 일곱 살에 어머니에게 손목을 잡혀 성당에 나가서 세례를 받고 살았는데 철이 들면서부터 자꾸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사는 것같이 느껴져서, “이것은 내 옷이 아니다. 나는 일본문학을 하는데 서양 옷을 입어서야 되겠는가” 하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저도 그 대목에서 '앗!!글쿤...' 그랬죠.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사는 것같이 느껴져서"===> 교회 다니는 분들은 이런 고민이 없더라구요.
김형석 교수에철학 에세이를 읽은 기역이 납니다. '운명도 허무도 아니다는 이야기"등 참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베스트셀러였죠?
'고독이라는 병' 을 저는 무척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마을에서 철학하기를 즐기던 권태영이라는 형이 갖고 있던 양장본이었는데, 지금도 김형석교수님 하면 바로 떠올라요. '영원과 사랑의 대화' 와 '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이야기'는 삼중당문고본을 지금도 갖고 있지요. '고독이라는 병' 도 꼭 입수하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도 한 번 읽어보셔요.
넹^^
깊어가는 가을밤에 엣 시절을 상기시키는 추억의 말씀들을 하시는 걸 보고 이렇게 한자 적어봅니다. 박상익님은 저와 나이도 같고 여러모로 상통하는 생각을 갖고계서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감을 느끼게 해 주시는군요. 중앙일보에 쓰시는 글도 잘 읽고 있습니다.
님, 나이가 28로 나오던데요? 제 나이는 그 두 배가 넘어요...그럼 혹 차명 아이디신가요? ^^
1953년생입니다. 박 교수님의 예전 신문 인터뷰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번역에 관련된 인터뷰였지요? 그때 나와 나이가 같은 분인데, 참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신문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 '쉽게 읽는 밀턴'인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생각이 어쩜 저하고 똑같은지. 아 그래서 그때 교수님의 책 '.....구약성서'란 걸 구입해서 읽은 기억도 납니다. 그 책 어딘가에 있을 텐데.... . 이런 인터넷 공간에서 제가 쓴 글에 답변을 주셨으니 더욱 친근감이 가는군요. 감사합니다. 맞네요. 차명 아이딘가 봅니다. 본의 아니게 차명을 다 사용해 보네요.
그렇군요.^^.동갑내기와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쉽게 읽는 밀턴' 인터뷰가 제 생각에는 1999년 <언론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 출간 때로 짐작되는군요. 그때 인터뷰했던 조선일보 이준호 기자는 3년인가 뒤에 직장암으로 작고했더군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