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머무는 곳
마음은 우리 가슴 속에 깃든 철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한 철 정든 곳이지만 철이 바뀌면 자신을 철에 맞추는 텃새와 달리 철새는
자신에게 맞는 철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납니다. 계절의 장벽을 거슬러서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를 볼 때면 떠도는 자의 숙명적인 외로움과 함께 삶을 이끄는 알 수 없는 힘의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첫사랑의 만남 이후 서로 다른 사람과 살다가 이혼한 후 35년 만에 결합한
찰스 왕세자와 커밀라의 결혼식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56세의 영국 찰스 왕세자와 57세의 커밀라가 틈틈이 밀회하던 베일을 벗고
첫사랑의 만남 이후 35년 만에 결혼했습니다. 연상의 신부는 웨딩드레스도 입지 않은 채였고,
예식은 28명의 하객이 단출하게 모인 가운데 25분만에 끝났습니다.
1970년 어느 폴로 경기장에서 처음 커밀라를 만난 22세의 찰스는 왕실의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으며 푸근한 성격인 연상의 여인에게 푹 빠졌습니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던 찰스는 커밀라에게 청혼하지 않고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자연 뜸해졌고 이 틈에 찰스의 친구인 파커볼스가 커밀라에게 집요하게 청혼했습니다.
마침내 커밀라는 찰스를 잊기로 하고 파커볼스와 결혼했습니다.
찰스는 첫사랑을 가슴 깊이 품고 지내다가 8년 후 다이애나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커밀라와 찰스의 은밀한 사랑이 알려지면서 두 부부는 1년을 사이에 두고 각각 이혼하였고,
이혼한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한지 8년 가까이 되어서 두 사람은 초로의 나이에
재혼하게 된 것입니다.
젊은 날의 씩씩한 모습이 희미해지고 뒷머리가 벗겨진 찰스와, 머지않아 할머니가 될
나이의 신부가 팔짱을 낀 채 서있는 모습은 고단한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 여행자와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대로 만족하려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우아한 미소도 두 사람의 관계를
어울리게 해주었습니다
.
무엇이 두 사람을 그토록 잊지 못하게 했을까, 나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부신 미인이었던 다이애나를 못 잊어 하고 두 사람의 만남을 불륜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그 숱한 눈길의 가시덤불을 헤치고 두 사람은 사랑의 고백성사를 하듯
사람들 앞에 고요히 섰습니다. 두 사람은 몸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생각하는 행복과 내가 원하는 행복은 다르다는 외침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이애나의 시각적 미모와 매력에 눈부셔 했지만 배우자인 찰스는
영혼의 향기와 평안을 목말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스타들이 결혼에는 불행해진 예는 너무 많습니다.
사람의 모습이 아름다우면 내면도 아름다울 거라고, 아니 아름다워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세상의 기대가 모아지면 사람은 시선에 갇히게 되고 배우가 되기를
강요당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남들이 원하는 대로 맞춰야 합니다.
기대를 거역했을 때 던지는 비난과 돌멩이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물은 개울을 거쳐 바위틈을 휘돌다가 폭포 되어 부서지고 다시 모여
바다에 이르렀습니다. 두 사람은 바다 가까이 이르러 하나가 되었고, 커밀라는 사랑을
얻은 대신 왕비가 아니라 ‘왕의 배우자(consort)’가 되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다이애나의 환영을 잊지 못하나 찰스는 첫사랑의 환영을 잊지 못했습니다.
찰스는 커밀라에게 청혼하는 결단을 미룸으로써 기나긴 사랑의 방랑자가 되는 선택을
하였고, 커밀라를 끝내 잊지 못하는 마음을 놓지 않음으로써 늦게나마 첫사랑을 회복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커밀라는 찰스의 마음을 잡고 다이애나는 찰스의 눈길을 잡았습니다.
눈을 감고 가는 길인 사랑의 행로에서 다이애나는 길을 잃었고, 커밀라는 더듬거리며
길을 찾았습니다. 남들은 가져보지도 못한 눈부신 다이애나를 외면한 찰스가 얄밉지만,
‘남부러운’ 사랑보다 ‘나 부러운’ 사랑이 더 소중함을 일깨워준 인생무대의 명배우
찰스와 다이애나, 커밀라에게 우리가 뜨거운 마음을 바치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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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을 잡으면 떠나도 님이나
몸을 잡으면 있어도 남입니다.
<박형준님의 글을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