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핑크돌핀스의 해양동물 이야기 24] 바다의 신음 소리,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의 역습
구조원들이 바다거북의 콧구멍에 박힌 플라스틱 빨대를 빼내고 있다. 동영상 캡처
2015년 8월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괴로워하는 바다거북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다. 연구팀이 거북에게서 빨대를 제거하는 동영상은 3천만 번 이상 조회되며 화제가 되었고, 인간이 무심코 버린 해양쓰레기에 해양동물이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일회용품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다국적 음료업체와 패스트푸드 점에 대한 소비자들의 압박이 심해졌고, 결국 스타벅스는 얼마 전 전 세계 2만8천개 매장내에서 사용되는 플라스틱 빨대를 2020년까지 없애겠다는 발표를 하게 되었다. 당장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완전히 중단하지는 못하겠지만 10억개 가량으로 추산되는 플라스틱 빨대만이라도 먼저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영국 맥도날드도 플라스틱 빨대 대신 자연분해되는 종이 빨대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했다.
해양쓰레기로 인해 폐사한 뱀머리돌고래. 사진 고래연구센터
해양쓰레기는 동물의 직접적인 죽음으로 이어진다. 2011년 서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바다거북과 고래류의 위에서도 비닐, 플라스틱 등이 발견되었다. 제주에서는 2012년 8월 김녕 해안에 어린 암컷 뱀머리돌고래가 떠밀려왔다. 한국 해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종 돌고래여서 지역 주민들이 바다로 돌려보냈지만 다시 해안가로 밀려오고 말았다. 힘없이 좌초한 뱀머리돌고래는 구조된 지 5일만에 구토를 반복하다 폐사하고 말았다. 그런데 고래연구센터에서 이 돌고래를 부검한 결과 위속에서 비닐과 엉킨 끈뭉치 등의 해양쓰레기가 발견되었고, 소화기 폐색으로 인한 만성적인 영양결핍이 폐사 원인으로 밝혀졌다. 한국에서도 일찌감치 돌고래가 쓰레기를 먹고 죽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폐사한 뱀머리돌고래 위에서 발견된 비닐 등 이물질. 사진 고래연구센터
2017년 8월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비닐봉지를 지느러미에 감고 헤엄치는 모습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쓰레기인지도 모르고 어린 돌고래들은 이를 놀잇감으로 착각해 폐비닐과 한참을 즐겁게 노는 모습이었다. 보호종 돌고래들이 쓰레기에 잘못 휘감기거나, 몸이 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물의 일부가 등지느러미에 걸린 남방큰돌고래도 발견되었다. 이제 죽은 해양동물의 위장에서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의 이물질이 나오는 건 흔한 일이 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태국에서 구조되었다가 죽은 들쇠고래에게서 비닐봉지 80장이 발견되었고, 스페인과 노르웨이와 남미에서 고래와 바다거북이 비닐봉지 때문에 죽은 채 발견되고 있다.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환경문제인 것이다.
매년 8백만~1천3백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버려진다. 해류를 따라 흘러간 커다란 플라스틱들은 태평양 한가운데 모여 한반도 7배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 섬을 만들었다. 조그만 플라스틱은 부서지고 녹으면서 바다가 플라스틱 수프처럼 변해가고 있다. 인류가 처음 플라스틱을 발명한 111년 전에는 바다가 플라스틱으로 뒤덮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다 수면 위에 떠있는 투명 플라스틱 봉지는 해파리 등으로 보이기도 한다. 해양동물이 실수로 먹었다간 위가 막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촬영 핫핑크돌핀스
바닷가 포구와 갯바위에는 어선에서 나온 폐그물과 어구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양동물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촬영 핫핑크돌핀스
크릴새우가 미세플라스틱을 먹으면, 오징어와 물고기들이 이를 먹고, 차츰 먹이사슬을 따라 우리 식탁에게 돌아온다. 오징어튀김이 실은 미세플라스틱 튀김이었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고등어 뱃속에서도 플라스틱이 발견되는 세상이다. 영국에서는 식탁에 오르는 어류 3분의 1에서 플라스틱 성분이 검출되었다.
핫핑크돌핀스가 활동하는 제주도 남쪽의 마을 항구와 해안가에도 어딜 가나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누군가 버리고 간 담배꽁초와 음료수 캔과 물병, 비닐포장지 등 쓰레기며 어선에서 나온 폐그물과 스티로폼 어구들이 갯바위를 뒤덮고 있다. 물 위에 떠있는 투명 비닐봉지는 빛에 반사되어 해파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우와 비슷한 냄새까지 나면서 바닷새와 해양동물이 먹이로 착각한다. 중국에서 떠밀려 온 쓰레기도 제법 된다. 해안가 구석에는 온통 중국어 간체자로 쓰여 있는 플라스틱 병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보더라도 물 위에 떠 있는 쓰레기들이 목격된다. 손으로 건져내보지만 역부족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핫핑크돌핀스는 돌고래 서식처에서 쓰레기 제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핫핑크돌핀스는 해안가에서 수거한 플라스틱과 썩은 나무 그리고 쓰레기들을 모아 물고기와 돌고래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몇 차례 진행하였다. 그리고 돌고래 서식처 일대에 현수막을 달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 것을 호소하고 있다. 앞으로 해양생태 교육 참가자들과 함께 정기적인 쓰레기 수거도 벌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결국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류가 지금의 추세대로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 대량 소비한다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핫핑크돌핀스가 쓰레기로 만든 돌고래 형상
그래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부터 금지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높이 쌓인 쓰레기더미가 붕괴하며 32명의 사망자를 낸 스리랑카는 비닐봉지와 스티로폼 박스의 사용과 제조를 금지했고, 케냐 역시 비닐봉지 사용금지 법안을 발효시켰다. 유럽연합도 플라스틱 쓰레기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각국 정부가 미세 플라스틱 규제 방안, 비닐봉지 유료화 방안, 플라스틱 재활용 방안 등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플라스틱 소비량 세계 1위인 한국도 어서 일회용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흐름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마닐라만에 설치된 길이 15미터의 고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은 모습이다. 그린피스 필리핀 제공
한국 바다는 지난 48년간 해수온도가 1.11도 상승하여 세계 평균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급격하게 뜨거워지고 있다. 플라스틱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하고, 소비된 플라스틱들은 바다로 버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해양환경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플라스틱 빨래와 비닐봉지를 없애는 것으로 완전한 해결이 이뤄지지는 못하겠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함으로써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쓰레기를 먹고 죽은 고래를 통해 우리는 신음하는 생태계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원문 보기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287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