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벚꽃 (춘천댐 벚꽃길) 구경 중에 운명을 깨닫다

춘천에도 연륜있는 벚꽃길이 있습니다. 춘천댐 바로 못미쳐 한국수자원공사 주변입니다. 길 이름은 영서로이고요. 주소로 찾으면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일대입니다. 괜찮은 벚꽃길의 기본 조건은 길 양쪽의 벚꽃나무가 하늘에 서 서로 만나 터널을 만들어야 합니다. 1970년대 김제 금산사 들어가는 길 양편 벗나무가 최고 압권이었는데... 이곳 춘천댐 벚꽃길도 터널 직전 수준입니다. 인도가 있는 2차선 도로에서 그 정도면 대단한 겁니다.
춘천에 벚꽃이 있는 것도 모르고 매년 저 멀리 강릉에까지 다녔습니다. 강릉과 춘천의 벚꽃피는 시기가 같을까 다를까가 궁금해졌습니다. 같네요! 양쪽 다 주말 기준으로 4월 10일이 절정이었다네요. 이해가 안갑니다. 단풍소식은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고, 꽃소식은 남에서 북으로 올라와야 할텐데 왜 남쪽 끝에서부터 춘천까지 같이 피는지가요. 혹시 벚꽃 개화조건이 기온이 아니라 일조시간? 아시는 분께서 보시면 댓글요~!^^

벚꽃구경을 간 날은 4월 14일. 절정기를 막 지났습니다. 꽃잎은 바람에 제법 떨어져 구석진 곳에 소복히 쌓였습니다. 바람이 갑자기 부니까 초록손이가 꽃잎을 한웅큼 집어 날립니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대부분의 꽃들에는 시간 개념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일수록 사라짐이 더 아쉬워서일까요?
이제는 연식이 낡아지기 시작해서인지 가을에 잎 떨어질 때 감정이입이 더 쉽게 됩니다. '노세노세 젊어서노새'가 퇴폐풍조의 표현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사람은 전생애에 걸쳐 놀아야 합니다. 놀 형편이 안돼 못노는 건 슬픈 일입니다. 놀 형편이 되는데 못노는 건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도 오늘 이렇게 잘 놀고 있습니다~^^

숲길은 늘 어떤 정취를 불러 일으킵니다. 가로등도 있고 벤치도 드문드문 있습니다. 모기가 맨살에 안착하기 어렵게 바람부는 여름밤, 운취는 더할 듯 싶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 제가 볼 때 신의 직장입니다. 당연한 얘기라고요? 공기업이니까 그럴 겁니다. 하지만 지금 제 관점은 급여, 안정성, 복지 그런 거 아닙니다. 툭 트인 강변에 잘 조성된 전원에서 근무하면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사택이 있는 근무환경을 부러워하는 중입니다. 저의 30대는 매일 출퇴근 시간에 3시간여를 들여야 했습니다. 에고~ 피같은 내 시간!

나물캐는 분들입니다. 아마 쑥 뜯는 중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저 부류에 속합니다.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머나먼 선조의 채취 유전자가 전승되어 왔을 겁니다. 특히 사상의학의 소음인들이 이 부류에 들어갈 것입니다. 저도 소음인입니다. 송이 따러 갔다가도 흩어져있는 도토리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초록손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새처럼 살지 않으면 답답해하는 소양인입니다. 당연히 땅에 붙어 꼼지락거리는 채취 행위를 끔찍하게 생각합니다. 채취를 싫어하는 사람과 세트가 되어 함께 나다니는 것도 큰 재미 놓치고 사는 겁니다. 제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제가 원자에서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 성질이라면 초록손이는 외곽을 도는 전자 성질입니다. 한시도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는 오두방정 전자! 그런데. 어떤 종류의 외곽전자는 원자에서 이탈도 잘 하던데, 이 외곽전자는 헬륨이나 아르곤 종류인지 쉽게 이탈도 안하는 전자인 모양입니다. (나트륨의 외곽전자는 잘만 떨어져 나가던데) 운명입니다 -_-!
첫댓글 지금은 아직 자연을 관찰하면 그저 '와, 아릅답다~'와 같은 평범한 느낌 밖에 들지 못해요. 늙어야 정말 감정이입이 잘 될까요? ㅠㅠ 그래도 차츰 느낌의 확장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ㅋ
감사함으로 함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