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옥은 조선 말기의 문신인 만산(晩山) 강용(姜鎔,
1846∼1934) 선생이 고종 15년(1878)에 건립하였다 한다. 정면 11간의 긴 행랑채 중앙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 서쪽에
사랑채와 안채가 연접하여 口字(구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고, 좌측에 서당을, 우측에 별도의 담장을 돌리고 별당을 배치하여 사대부집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중간은 정면을 피하고 측면에서 Z형으로 꺾어져 들어가도록 하여 사대부집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랑채의 전면에는 晩山(만산)이라 쓴 대원군의 친필편액이 걸려 있다.
만산 선생은 영릉참봉(英陵參奉), 통정대부(通政大夫),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 도산서원장등을 지냈으나 1905년 이후 망국의 한을 학문으로 달래며 자택 뒷산에 망미대(望美臺)를 쌓고 국운회복의 념을 읊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