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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교회: 내 자녀 성경 교육과 신앙 교육 Million Church: My Children's Bible Education and Faith Education
샬롬! 가을은 깊어가고 추석 연휴는 깁니다. 이 긴 연휴에서 가장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5년 긴 추석의 휴가 기간에 내 자녀를 어떻게 일생을 잘 살게 성경을 가르치고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은 축복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하는 모든 분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목사이고 제 아들은 이제 대학교 1학년입니다. 목사가 아들을 누구보다 성경적으로 신앙적으로 잘 키워야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겨우 한글을 배웠을 무렵 성경 동화책을 사서 보게 했습니다. 약 60권으로 된 책인데 너무나 성경 전체를 잘 요약했고 그림도 이뻤습니다. 여러 번 읽게 했고 당연히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아기 때도 교회에 가면 대형교회라 권사님 집사님들이 보살피고 우리는 둘이서 어른 예배를 잘 드렸으니 교회가 어려서부터 익숙한 아들이며 학년별로 영아, 유아, 초등, 중등, 고등부를 거쳐서 대학생이 되어서 청년부에서 주일을 잘 지키고 교육도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아버지가 해야 되는 성경 교육과 신앙 교육에 대해서는 부족한 면이 있다 늘 생각을 했는데 이는 제가 많은 성경의 내용 중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순서가 바로 잡히지 않은 까닭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여러분의 자녀에게 무엇을 강조합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가 개신교의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천주교에서 신앙생활을 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당연히 자녀들이 예수님을 일생을 잘 믿고 교회에 출석도 잘 하고 배우자도 믿는 사람을 얻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듬뿍 받아서 후손도 넉넉하게 낳고 직장이나 하는 일에서 형통하고 교회에서 인정을 받아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혹은 목사가 되고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서 원만하게 지내며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의 바램일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위한 기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아래와 같이 교육을 할 것입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암송하게 하는데 그 말씀을 쉐마라 불리우는 신명기 6장의 말씀입니다. 유대인의 교육과 똑같습니다. 아들을 유대인과 같이 온 세상에서 모든 면에서 가장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구절이 모든 성도 모든 자녀들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같이 보시겠습니다. 제가 목사로서 교육을 시킬 기회가 온다면 모든 성도 교육생에게 이렇게 가르칠 것입니다.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하고 가장 기본이 되며 일생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살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
신 6:1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보다 더 중하고 먼저 해야 되고 기본이 되는 일이 모든 지구상의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방법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을 받고 전도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그분의 나라를 전하고 하면서 그리고 성경을 배우면서 최근 약 3년 동안 이 말씀으로 묵상하면서 가장 먼저 배웠을 말씀을 이제 묵상함을 느낍니다. 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가장 먼저 배워줍니다. 성도가 예수님도 믿고 성경도 잘 배워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면 그 신앙을 일생을 이 땅에서 복을 받고 형통해서 헛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에 대한 말씀이고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셔서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성령께서도 우리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이 사랑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사랑하신 하나님을 위와 같이 사랑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면 우리 부모님을 일생의 기회를 통해서 사랑하지 못한 것보다 수백 배 수천 배 후회를 할 일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내 일과 관심사를 사랑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되는 일이, 더욱 강력하게 해야 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을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면 내 사랑이 줄어서 아내도 남편도 애인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일과 관심사도 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로 절대로 그렇지 않고 사랑은 끝이 없는 깊고 넓은 미덕이기에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셔서 내 아내와 자녀와 내가 하는 일을 더욱더 깊이 넓게 사랑하게 하고도 남고 또 남게 하시니 절대로 좁은 생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일생의 실수를 마시고 이제부터라도 위의 구절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신앙의 첫 단추가 올바로 끼워져야 다른 부분도 올바로 가는 것입니다. 순서를 반드시 지키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모세 오경의 율법을 잘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 모세 오경의 율법을 성경의 기초입니다. 모세 오경이 있기에 그 말씀으로 산 삶의 기록 역사서 12권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가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이 율법대로 사는 삶에서 순종하고 불순종하면서 겪는 지혜와 찬양과 기도와 그리고 율법대로 되지 않는 의인의 고난에 대한 말씀이니 모세 오경을 이해를 해야 시편, 잠언, 욕기 등도 잘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언서도 역시 모세 오경 즉 율법대로 살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서 그렇게 살면 심판이 있고 아니 된다 돌이켜라 하는 내용을 선지자를 통해서 기록한 것이니 이도 모세 오경의 법을 모르면 이해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 전체는 모세 오경 즉 율법서가 기본이 되고 기초가 되니 율법을 잘 배우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분이 아는 바와 같이 법은 세상에 사는 사람에게 질서를 부여하고 이 법대로 질서가 유지가 되면 서로 평안하게 행복하게 사는 가장 중요한 기재입니다. 법을 모르고 법대로 살지 않고 마음대로 살게 되면 반드시 제재가 따르니 사형에서 다양한 물질적인 손해가 따릅니다. 따라서 한국인은 헌법과 각종 법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법을 어기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역시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도 받고 천국에 가서 상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법을 잘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이 법대로 믿지 않고 마음대로 믿고 살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이를 신학자나 목사가 하는 말이 아니고 나를 최후에 율법으로 심판을 하시고 천국에 갈지 지옥으로 갈지를 결정하시는 분의 말씀입니다.
예수와 율법(개역개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의 완성(공동 번역)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는 신학자가 이신칭의로 결정하는 것도 분명하게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절대로 믿는다고 하면서 정의롭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다 지옥입니다.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은 예수님께서 오신 후 2000년 동안 한시도 빠짐없이 늘 존재했으니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이 지금 제가 가르치는 데로 자녀를 가르칩니다. 저는 이를 유대인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성경을 이해하고 이렇게 가르치는데 유대인의 가르침과 같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먼저 신명기 6장 쉐마를 가르치고 모든 공부에 앞서서 11세까지 모세 오경의 율법을 가르칩니다. 너무나 정확하고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제가 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지 신학을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율법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사랑이시고 정의로우시며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고 세상의 모든 법보다 더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모든 신약의 시대를 사는 성도의 찬양의 대상이며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법이다라고 표현이 가능한데 그 법이 율법이며 모세 오경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단추를 이렇게 끼워야 합니다. 첫째 둘째 단추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잘 배우는 것입니다. 이제 율법을 잘 배우면 법대로 살게 되어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게 되고 이 세상이 천국으로 되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있으니 어떤 분은 지도자로 예수님께서 신약의 말씀과 구약의 말씀을 적절하게 성도에게 먹이시는 일을 하셨는데 이 일을 예수님을 대신해서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5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는 누구나 자기 곳간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And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scribe who has become a disciple of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head of a household, who brings forth out of his treasure things new and old."
새것 헌 것이 아니라 새 보물과 옛 보물입니다. 율법을 잘 배운 학자가 예수님께 천국에 대해서 잘 배운다면 지금의 유대인이 예수님을 잘 믿는다면 이란 표현과 같고 또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 율법학자와 같이 모세 오경 즉 율법을 잘 배우고 예수님께 천국에 대해서 잘 배운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보물을 적절한 때에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니 이 귀한 일을 할 사람을 예수님께서 오늘도 찾으시는데 그 조건이 율법을 잘 배운 사람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 원리를 알고 자녀에게 먼저 모세 오경을 유대인과 같이 잘 배우도록 한 가정은 위대한 인물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은 영원한 복이기에 겨우 100년 사는 동안 수백억 수천억의 재물을 갖고 사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율법이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하며 어떻게 살고 정의롭게 사는 법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신실한 삶을 사는 것이 어떤 삶인지 정해 놓은 법이 율법이기에 절대로 어렵거나 복잡한 법이 아닙니다. 먼저 사랑은 두 사랑이 있으니 위와 같이 하나님을 모든 것을 다해서 사랑하고 이웃을 또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를 더 세분화 한 것이 10계명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모든 일에 일순위로 놓고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고 하나님의 성호를 함부로 부르지 말고 그분의 성일을 즉 주일을 거룩하게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5-10계명도 반드시 우리가 이 땅에서 서로 행복하게 사는데 필요한 규정입니다. 부모님 공경하고 이웃에 대해서 폭행이나 상해나 살인을 하지 말고 가정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겨서 남의 아내와 남편과 바람을 피지 말고 각자의 일로 가진 재산을 존중해서 훔치지 말고 어떤 일에 대해서 정직하게 증언하고 거짓을 말하지 말고 모든 이웃의 가진 것에 대해서 탐하지 말고 사라는 것으로 이 정도만 모든 인간이 지키면 이 땅에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온 인류가 다 행복하게 사는 법입니다. 얼마나 쉽고 얼마나 위대한 법입니까? 사랑이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법이기에 이렇게 멋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세 오경은 이 법을 실천하기 위해서 세분화 한 것인데 어떤 랍비가 613조문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하라 248조문 하지 말라 613조문 합쳐서 겨우 613조문인데 우리는 부동산 중개인 공부만 해도 너무나 법을 많이 배워야 하고 행정고시가 사법고시를 하고자 하면 온갖 법을 잘 배우는데 이 법들에 비하면 율법 공부는 너무나 쉽고 양이 적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원리대로 배우면 모든 분이 쉽습니다. 사랑하지 않고 정의롭게 살지 않고 오직 믿으라고 가르치니 어렵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기 율법 중에서 제사 제도 제물, 제사장과 성막에 대한 부분은 예수님께서 몸을 피로 친히 그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이 의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복잡한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우리 자녀가 행복하게 살게 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법입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정의와 사랑과 믿음이 율법의 정신이 됨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시면 이 원리를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적어도 10년은 가르치고 다음에 해야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제 예수님을 가르치고 믿고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우선 예수님을 잘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 역사서를 잘 배워야 가능합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잘 설명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누구시고 어떻게 오시고 무슨 일을 하실지 구약에 미리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구약 전체에 흩어져 있는데 약 수백년 전에 그리고 수천년 전에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각각 다른 시대에 그리고 다른 사건을 예언을 했는데 그 예언대로 정확하게 예수님께 일어나는 것을 통해서 성경이 과학이며 너무나 정확하며 믿을 수 밖에 없는 책인줄 알게 되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잘 이해를 하게 되니 구약의 공부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율법을 잘 가르쳐서 실천하게 하면 너무나 잘 가르치신 것입니다. 유대인은 여기까지 잘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에 충실하다 보니 순서도 놓치고 이런 부분을 잘 교육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교육을 먼저 시키는 교회는 정말로 올바로 가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아직 기회가 있으니 예수님을 믿는 것은 너무나 잘 배웠으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잘 배우는 일을 속히 시작해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동안 가장 먼저 열심히 해야 되는 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법을 잘 배우고 지키는 것입니다. 다 기회가 있습니다. 성경을 백독하는 것도 중하지만 이 원리를 이해를 하는 것이 더 중하고 성경을 읽고 반드시 이렇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시고 어떤 사역을 하셨고 어떻게 오셨는지는 너무나 다들 잘 배우셨기에 생략을 합니다. 아시는 데로 가르치시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이해를 시켜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양으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심도 맞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심도 가장 정확합니다. 그런데 구원한 후에 예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이 해야 되는 일 즉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 깊이 들어가는 부분은 또 멈추고 관망합니다. 그 목적이 위에서 말씀드린 율법의 완성을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율법을 완성해서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질서의 나라입니다. 믿음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법이 지켜지고 법대로 통치가 되는 나라입니다. 목사나 신학자가 마음대로 하는 나라가 절대로 아니고 오직 법대로 통치가 되는 나라입니다. 이를 반드시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그 법이 내가 만든 법이 되어서는 아니 되고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온 인류에게 주신 법입니다. 위에서 특징은 다 설명을 드렸습니다. 아니 오직 믿고 의롭게도 되고 천국에도 간다고 배웠는데 넌 뭐야 할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고 마음대로 살면 언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섭니까? 무질서가 난무하고 사는 것이 어렵게 되면 가장 큰 피해는 내 자녀입니다. 자녀가 직장이 없고 결혼도 못하고 자녀도 낳지 않고 50이 되고 60이 되는 세상! 이런 헬 조선을 만드려고 이런 온 자본주의 세상을 만드려고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시고 오직 율법이 잘 지켜지는 세상을 만드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율법은 그렇게 온 지구상의 인구를 살맛이 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유일한 멋진 법입니다.
1000만 성도 5만 교회 10만의 목사가 있는 나라가 헬 조선이 된 것은 이렇게 율법대로 성도가 살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마음대로 살기에 이런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나라를 만든 주범이 1000개 대형교회 목사로 모두가 지옥에 틀림없이 갑니다. 그냥 대형교회 목사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 아니고 반드시 성도를 올바른 길로 가게 해서 이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서 이 나라를 정의롭게 굴러가도록 해야 되는 사명이 있는데 이들이 율법을 어기고 지키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해서 물질로 그렇게 해야 된다고 먼저 자신들이 하나님께 바친 물질로 적어도 100년에서 300년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하고 장로 권사에게도 그렇게 살아라 하니 이들이 모든 한국 문제의 주범으로 한 명도 천국에 갈 놈이 없는 것입니다. 10억원은 2억을 전세에 걸고 8억으로 약 한 달에 200만원 쓰면 40년 입니다. 20억원은 100년이고 30억원은 150년 일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돈입니다. 이렇게 돈을 밝혀서 이 세상에 살 수가 없는 집 없는 사람 국민의 50%, 땅이 한 평도 없는 사람 국민의 70%를 만들고 자살자 하루에 40명을 만들었으니 이 책임이 이들 대형교회 목사 1000명에게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위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대로 살아라 라고 가르치고 자신들이 율법을 지켜서 집도 땅도 소유도 없게 살고 사례도 지금의 1/10로 받고 성도들을 그렇게 사라고 가르쳤다면 이 나라는 이런 사람이 겨우 150만 명만 있어도 너무나 질서가 있고 모두가 행복하게 집도 땅도 가지고 살고 자녀도 낳고 직장도 갖고 노인은 자녀들에게 공경받고 홀로 쓸쓸하게 살지 않고 행복하게 할 것인데 이런 율법의 위대한 기능과 축복을 모두 받지 못하게 일생을 오직 믿음으로 만 주장하고 가르쳤기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고 성도도 모르게 하면서 살았으니 예수님 말씀대로 혹 천국에 가기는 간다면 지극히 작은 자요 그렇게 영원히 살고 이도 못하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지옥으로 가시렵니까? 그리고 자녀도 지옥으로 인도하시렵니까? 이제 제 말이 거짓이 결코 아니고 너무나 정확하고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성경적임을 다시 로마서로 증명합니다. 제발 끝까지 보시고 올바른 로마서의 이해로 지옥으로 가는 길에서 돌이키는 수많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래 내용을 긴 추석 기간에 반드시 숙독하시고 재독하셔서 내 것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나의 영혼이 소성하는 원년이 될 것입니다.
밭에 대추나무를 심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냥 두었더니 위의 사진과 같이 온갖 덤불이 나무를 완전히 감쌌습니다. 일부의 덤불을 걷어내니 속에서 자라지 못한 대추나무가 약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어떤 나무는 견디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는 나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저를 탓할 것입니다. 왜 나무를 심어 놓고 이 지경이 되도록 돌보지 않았나 하고 저를 책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 사진은 작년의 사진이고 이제는 잘 자라서 대추가 올해 100kg은 수확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나무들이 각종 신학 교리에 깊이 뒤덮여 신앙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성도로 보입니다. 같은 성경을 두고 천주교와 개신교는 로마서 1장 17절을 두고서 심히 논쟁을 합니다. 500년을 서로 옳다고 다투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각 교단은 서로 조금 다른 성경의 이해로 분열이 되어 200개의 교단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주교와 개신교 공히 성경의 이해에 있어서 아직은 온전하지 못한 분야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이단은 말도 되지 않은 성경의 이해로 성도를 유혹하고 있고 이단에 속한 이들은 많은 이들이 교회를 잘 다니다가 그들의 꾀임에 빠져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니 한국에만 50만이 넘을 것입니다.
나무가 아무런 장애 요인이 없이 햇빛과 물과 영양을 공급 받으면서 가지도 자라고 줄기도 자라서 꽃도 피고 열매도 맺어야 하는데 이를 막는 것이 덤불로서 제 사진과 같이 완전히 나무를 덮으면 햇빛이 공급되지 않아서 자라지도 못하고 덤불에 휩싸여 나무가 휘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 제 밭을 보고서 이렇게 이상한 가르침에 덮여서 결실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제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자 하니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개신교 성도는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를 오직 믿음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믿음 하나면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데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오직 믿음이 아니라 믿음과 이에 대해서 행위나 행동이 동반되어야 의롭게도 되고 구원도 받는다고 합니다. 같은 본문을 두고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500년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냥 자신이 믿는 진영의 교리를 맹목적으로 따라 갔습니다. 이제 루터 시대 성경이 한권도 없던 시대가 아니니 우리가 가진 각종 번역본으로 살펴 봅니다.
본문을 봅니다. 본문도 그냥 보아서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영어와 같이 보아야 합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개역개정, 공동번역, NIV순)
(복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한 의가 나타나 있는데,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의한 의인데, 기록이 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살 것이다" 함과 같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영어를 번역한 데로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이면 다 된다입니까? 아니면 오직 의인은 믿을 가지고 삶을 사는 사람입니까? 본문에 500년 논쟁의 답이 나옵니다. 바로 초등학생이면 야! 본문을 통해서 의인은 어떤 사람이야 하고 물으면 믿음만 있으면 되는 사람입니다. 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이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쉽고 쉬운 것을 왜 500년 동안 헤매고 있는지 모습니다. 이를 잘못 이해하면 너무나 큰 덤불이 성도를 숨도 못쉬게 덮은 상태가 됩니다. 우리 말로 번역도 이해가 어렵게 되어 있고 또 신학적으로 개신교 신학은 오직 믿음이면 된다고 하니 이렇게 이해를 하고 모든 성경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풀고자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바로 보면 바로 이해가 되는 구절을 갖고 우리는 500년을 그냥 신학적인 주장에 목을 메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 오직 믿음의 기준에 특히 로마서의 모든 내용을 끼워서 맞추고자 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려서 본문을 그대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어서 이 구절을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누구를 책망하고 비난하고자 함도 절대로 아닙니다. 오직 진리를 찾고자 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구절을 잘못 이해를 하면 너무나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올바르지 않는 이해는 성도가 올바로 살고 결실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행위와, 모세 오경의 율법의 준수에 대해서 너무나 성경과 다른 쪽으로 인도를 해서 천국에 가는 것도 어렵게 하고 상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어렵기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가 이 구절의 올바른 이해와 다 깊이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신학의 덤불에서 벗어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믿음+ 삶을 사는 자"가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의 500년 묵은 굵고 두터운 덤불에서 속히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그대로 이해를 하면 누구나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인정을 받는 자는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사는 자임을 본문은 누구에게나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똑같습니다. "내가 의롭다 인정을 하는 자는 나를 믿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사는 자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똑같고 또 "내가 의롭다 인정을 하는 자는 오직 믿음만 갖고 아무런 행동도 행위도 없는 즉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하루하루 삶을 살지 않는 자는 절대로 될 수가 없다"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덤불을 제거하는 시작에 불과 합니다. 이제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사는데 어떤 삶을 사는 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또 어떤 믿음인지 분명하게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신학의 덤불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두 가지 믿음인데 어떤 믿음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삶은 어떤 삶인가?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을 같이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분명하게 밝혀 두셨습니다. 저는 성경을 설명하고 있지 소설이나 다른 책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성경으로 갑니다. 여러분이 가지신 성경에 있는지 확인을 하시기 바랍니다. 제 성경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로마서 4장 17-12절의 말씀을 봅니다. 오직 믿음의 덤불에 갇히면 성경을 백번 보아도 이 구절이 절대로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이란 생각과 이해는 이렇게 분명한 성경의 구절을 그대로 건성건성 지나가게 합니다. 제가 거짓으로 끼워넣는 말이 절대로 아니고 여러분이 가지신 성경책 로마서에 분명하게 있는 내용입니다. 믿지 않으시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7. As it is written: "I have made you a father of many nations." He is our father in the sight of God, in whom he believed -- the God who gives life to the dead and calls things that are not as though they were.
18.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 and so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just as it had been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 -- 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 -- 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20. Yet he did not waver through unbelief regarding the promise of God, but was strengthened in his faith and gave glory to God,
21. being fully persuaded that God had power to do what he had promised.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초등학교 국어 실력이면 어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롭다 인정을 받았는지 바로 압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떻게 얼마나 믿습니까? 조금만 성경을 보신 분은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을 때가 그의 나이 75세임을 압니다. 그리고 100세가 될 때까지 자녀가 없습니다. 여러가지 약속은 처음 하나님을 뵈올 때 받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라고 하시며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약속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하나님을 믿고 고향을 떠납니다. 그런데 100세가 될 때까지 자녀가 없습니다. 그런데 위의 본문은 아브라함이 이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다고 합니까? 그 믿음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오늘 믿고 어제 믿고 믿다가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랫동안 적어도 25년 동안 역경이 와도 나이가 들어도 늙어도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실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습니다. 어떤 일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비록 아내의 경도가 끊기고 자신의 기력이 쇠했지만 인간적으로 자녀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아들을 낳게 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하심을 초등학생이면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냥 믿으면 의롭다 한다는 의미를 이렇게 하나님께서 로마서 4장 17-22절에 자세하게 설명을 하심은 우리가 이렇게 믿어야 의롭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예수님을 믿기로 하셨다면 이렇게 적어도 오랫동안 어떤 역경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의롭게 되는데 이렇게 분명하게 성경에 설명이 자세하게 있는데 이 설명은 아무리 읽어도 그냥 지나감은 오직 믿음의 덤불이 나를 너무나 강하게 얽매고 있기에 진리에 눈이 멀어진 것입니다. 오직 믿으무그 덤물을 넘어 의롭게 인정을 받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아는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이미 제가 설명하는 이 내용을 저는 확인을 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하신 어떤 분께서 성경을 백독하셨고 이 분은 어떤 내용이든지 한 번 읽으면 대부분 암기를 하시는 인재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백독을 하셨으니 성경 전체에 모르는 부분이 별로 없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로마서 4장 17-22절의 구절만 딱 집어서 읽어 보시라 하니 이 구절을 다 읽으시고는 "아니 이 구절이 성경에 있기는 있는데--- "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구절이 보이니 이 구절대로 믿어야 됨이 이해가 오기는 오는데 오직 믿음만 있으면 다 된다고 지금까지 세뇌가 되어 이 교리를 너무나 굳게 믿고 있으니 이 로마서 구절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갈등이 생기신 것입니다. 이분께서 이렇게 확인을 하셨는데 과연 어떤 믿음으로 어떻게 믿음으로 성도가 의롭게 되는지를 지금은 이해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우리를 얽어맨 신학의 덤불은 깊고 강하고 그리고 그 줄기가 강하고 굵습니다. 이번 기회에 끊어내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이 이 성경의 기록대로 그냥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석을 분명하게 달아 놓으셨는데 이대로 믿지 않으시고 어찌 버티십니까? 의롭게 되는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하신 설명입니다.
여기서 다시 힘을 내셔야 합니다. 다시 로마서 1장 17절에 기록된 본문이 어디에서 왔는지 다시 살펴 보아야 합니다.
Rom 1: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복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한 의가 나타나 있는데,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의한 의인데, 기록이 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살 것이다" 함과 같습니다.)
이 구절은 하박국서 2장 4절에 있는 것을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인용을 한 것입니다. 하박국서로 갑니다. 역시 개역개정, 공동번역, 그리고 영어를 같이 봅니다. 어렵지가 절대로 않습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
(역시 이 구절도 제가 번역을 해 봅니다. "보아라 그는 교만하다; 그의 의도들은 올바르지 못하다 ---- 그러나 정의로운 사람은 그의 믿음으로(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이다.)
이 구절의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우리는 오직 3장으로 구성이 된 하박국서를 읽고서 바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서 1장과 3장을 읽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이 구절을 올바로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짧은 3장의 성경(하박국서)을 우리는 가서 바로 확인을 해야 합니다.
먼저 하박국서는 기원전 B.C 608년 경에 하바국에 의해서기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586년에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여러 번 바벨론이 남 유다를 침공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B.C 586년에 멸망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남 유다의 가장 말기의 시절입니다. 율법이 해이해지고 정의는 볼 수가 없으며 모두가 악을 행할 때 정의롭게 사는 하박국과 같은 사람은 더 이상 생활이 어렵게 됩니다. 하루하루 정의롭게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율법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됩니다. 모두가 법을 어기고 마음대로 사는 무법천지가 되었는데 법을 지키려고 하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이런 살 수가 없는 세상을 보고서 선지자 하박국은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타락한 자신의 동족 남 유다를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하고 하나님께 여쭙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남 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라 답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하박국 선지자가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비록 남 유다가 악하기는 하지만 더욱 악한 나라가 바벨론인데 이 악한 나라를 어떻게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까? 하고 여쭈니 이에 대한 하나님의 두 번째 대답이 우리가 보는 본문 하박국 2장 4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절대로 옳다고 하지 않으시고 교만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바벨론도 심판하실 것이라 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비록 심판과 멸망이 다가왔지만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는 의인들은 믿음을 가지고 하루 하루 살 것이다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보는 본문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입니다. 과연 의인들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산다는 말씀입니까? 동족 이스라엘 즉 남 유다가 멸망하고 악한 바벨론도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멸망한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악한 나라를 척격하시는 정의로우시고 능력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제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박국과 같은 의인은 하루하루 어떻게 살 것입니까? 악해서 망하는 동족 남 유다와 같이 막 삽니까? 아니면 더욱 악한 바벨론과 같이 교만하게 삽니까? 절대로 절대로 의인은 이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무언가 악해서 멸망하는 동족 남 유다와 바벨론과 같이 살지 않고 달리 살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이 악해지고 선한 이가 찾기가 어렵게 되어서 그 나라들이 멸망하는 가운데 이들과 같이 막 산다면 절대로 악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불의하게 살아서 망하게 되는 악한 이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실리가 1%도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의롭다 인정을 받을 이가 절대로 이들과 같이 악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있다 해도 남 유다와 바벨론과 같이 멸망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남 유다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얼마나 세상에 뻐기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분명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멸망을 할 정도 타락을 했습니다. 그런 민족의 타락 속에서 의롭게 율법대로 사는 하박국은 너무나 사는 것이 어려워서 탄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냥 나도 악하게 마음가는 데로 이익이 되는 데로 힘이 있으면 약자를 강탈하면서 산다면 무엇이 어렵습니까? 자본주의를 굳게 믿고 하나님의 법 즉 율법도 어기고 마음대로 재산을 축적해서 수십대 수백대를 벌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력이 있는 자가 무엇이 어렵습니까? 국가도 교회도 모두가 정신이 나가서 자본주의에 빠져서 허우적 그릴 때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에 소망을 두지 않고 정의롭게 하루하루 어렵게 사는 사람이 어려운 것입니다. 진실로 지금 시대에도 정의롭게 살고자 하면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정의에 목이 마른자는 이 제 말을 분명하게 이해할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서 온갖 불의를 체험하고 어느 곳에서 하소연도 못하고 사는 모든 이는 제 말이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박국의 삶에 대해서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제 이러하신 하나님! 즉 이렇게 더러운 세상을 속히 심판하고 악을 척결하고 하박국을 괴롭게 한 악한 사람을 모두 바벨론의 군사로 죽게 하시고 포로로 잡혀 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당시에 하박국과 정의롭게 어렵게 사는 백성들이 믿습니다. 이제는 이런 하나님의 약속에 숨통이 터인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정의를 세울 것이라는 믿음에 이제 더욱 힘을 내어서 이런 하나님과 하실 일을 믿고 정의롭게 산다는 표현이 위의 하박국서 2장 4절의 분명한 의미입니다. 모두가 악으로 망하는 때입니다. 심지어 믿는 이스라엘도 망하는 때입니다. 이런 상황에 믿음을 가지고 악하게 산다는 해석은 0.0000001%도 이 본문에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오직 의인은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어렵지만 곧 악한 세상이 정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는 희망으로 견디며 정의롭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제 이런 설명을 대부분의 분들은 다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신학의 굵고 오랜 덤불이 걷어 내어지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고 살고 천국에 가고 못가고 천국에 가도 상을 받고 못 받고를 결정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 아니라 믿음의 삶으로 의롭게 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도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오랜 세월 변치 않고 믿는 믿음이 되어야 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삶이 정의롭게 사는 삶임도 분명하게 밝히어졌습니다. 여기까지 흔들리지 마시고 진리에 대해서 들었으니 굳게 믿으셔야 합니다. 제가 천주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성경의 내용을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제 설명을 들으시고 조용히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과 로마서 4장 17-22절의 내용과 하박국서 2장 4절의 내용을 동시에 묵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고 살고, 천국에 가고 못가고, 천국에 가도 상을 받고 못 받고를 결정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성경의 구절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살았다면 진리를 듣고 바로 회개하고 올바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누구를 벌하시고 책망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올바른 길로 행하여 예수님 안에서 열매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란 부분은 로마서 4장과 야고보서 2장에 있으니 찾아서 다시 보여 드립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로 다시 재 설명을 드립니다.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75-85세 경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심입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심입니다. 세 번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옵는 것은 어떤 사람은 자주이고 이제는 매일 주님을 뵈옵고 동행합니다.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10세 때 무렵입니다. 분명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이런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 잘 믿다가 어떨 때 하나님께서 오셨는데 그 사람이 믿음을 버리고 악을 범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절대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서를 보시면 의인이 악을 행할 때 이미 행한 의는 기억되지 않고 악인이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왜 성급하게 로마서 1장 17절만 보시고 또 이렇게 깊고 정확한 의미가 있는 로마서를 겉만 보시고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조금도 지키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로마서도 중요하지만 로마서를 쓴 바울 사도의 주인이 되시는 우리 모두의 최후의 심판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중요합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로마서로 예수님의 어떤 말씀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진리입니다.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칭의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먼저 이렇게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매일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과 믿음의 질과 종류가 분명하게 성경에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로마서 4장이 증명하고 야고보서 2장이 증명합니다. 이 이해를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 논쟁을 접고 서로 부족한 이해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이렇게 믿고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를 이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믿습니다.
여기까지 이해를 했다고 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다시 우리는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로마서 7장 6절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를 해야 비로소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영적인 갈증과 호기심을 발동하셔서 힘을 내시고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신학의 덤불이 다 걷히고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가 거기까지 가기를 바라십니다. 본문을 세가지 버전으로 동시에 보시겠습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
(제가 영어를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때 우리를 얽어 매였던 것(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기록된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옛날 방법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모든 제 설명이 하나님의 깨닫게 해 주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특히 이 부분은 제가 어떤 말씀을 전하고자 인용을 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영어와 한글의 번역을 동시에 보게 하시고 너무나 잘못 번역이 된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 전에는 저도 이 번역대로 어떻게든 이해를 하고자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율법에 대해서 찬양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냥 위의 한글번역대로 이해를 하고자 할 때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영어 구절을 올바로 이해 하도록 은총을 베푸시기 전에는 저도 위의 구절대로 믿고 이해하고자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라고 모든 분과 다를 바가 없고 잘난 점도 하나도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오직 망극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고 성령님의 감동이 쉬지 않고 있었을 뿐입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와 찬양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할렐루야!!
유튜브를 보아도 이 구절을 정확하게 설명하시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이는 이 구절의 해석이 위와 같이 천주교와 개신교가 같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다른 한글번역을 확인해 봅시다. 표쥰 새번역입니다.
롬 7:6.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얽어 매던 것에서 죽어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를 따르는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낡은 법조문,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은 같이 해석한 위의 개역개정과 공동번역은 법조문(율법)이 문제가 있다는 의미를 강하게 풍깁니다. 절대로 이런 의미가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번역한 기록된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옛날 방법과, 표준 새번역의 문자를 따르는 낡은 정신은 서로 비슷합니다. 표준 새번역이 이부분은 가장 정확합니다. 천주교의 번역이 이렇게 되어 있음에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속히 바로 잡아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제 이 구절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여러 본문을 보고서 이해가 되었다면 모든 분이 이 구절을 정확하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구절의 이해를 위해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 말 번역으론 잘 이해가 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분이 함께 저와 함께 바울 사도의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쓴 해는 기원 후 약 57년 경입니다. 고린도에서 자신이 가서 세운 교회가 아닌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는데 이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57년 이라는 년도는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지 약 2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이 바울 사도의 전도여행과 경력을 이해를 해야 이 구절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 사도의 삶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해를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대부분의 분이 사도행전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같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 사도는 율법학자로 율법으로 흠이 없게 율법을 잘 배우고 잘 실천하던 사람입니다. 유대교의 전통과 구약을 굳게 믿고 오직 율법대로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삶이라 그는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후 200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렇게 믿는 이들이 지금의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모세 오경을 잘 배우고 그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믿던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늘자 이들을 유대교를 해치는 집단으로 알고 잡아서 옥에 가두고 핍박을 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합니다. 그만큼 율법에 대한 굳은 신념과 배움과 실천에 있어 당대 최고였습니다. 이렇게 믿으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절대로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바로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되시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시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시자 바울은 눈이 멀게 되고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혼이 나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누구십니까? 하니 예수님께서 바울이 그렇게 핍박하는 예수라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돌아가셔서 없으진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살아계시며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오시면 모든 인간은 제 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옳다고 믿던 모든 과거의 신념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죽을 죄를 지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교회와 믿는 이를 핍박하는 것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도 멀게 되고 먹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하는 도리 외에 아무런 살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명령대로 성안에 들어가서 아나니야를 만납니다. 아나니야의 안수로 눈도 뜨게 되고 음식도 먹게 됩니다. 3일을 그렇게 죽은 사람과 같이 있었으니 그 동안에 얼마나 자신이 한 일이 흉악한 일인지 잘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율법만 알고 행하면서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오셔서 이 바울 사도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작품이 되었으며 구약의 에스겔서의 말씀대로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있는 사람으로 재 창조가 되었습니다. 이 구절도 확인을 하고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바울 사도의 위대한 삶은 새 사람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지 바울의 초인적인 인내와 불굴의 신앙이 아닙니다. 모든 이가 이렇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자신 있게 잘 알던 구약의 내용이 성령님의 조망으로 모두가 예수님에 대한 말씀임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구약의 말씀이 드디어 바울 사도에게 열립니다. 그리고 직접 3층천에서 가셔서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천국의 모습을 봅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많은 것들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는데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을 합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교회를 세웁니다. 모든 과거의 지위를 다 버리고 예수님과 같이 들판에서 강도를 맞고, 돌에 맞고, 파선을 당하고, 굶고, 옥에 갖히고 하면서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웁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로 약 20년을 살고 난 후에 로마서를 기록하고 로마서 7장 6절의 말씀도 기록합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의 위대함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리고 율법을 찬양하고 높히는 분이십니다. 절대로 율법을 조금도 건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한 모습을 봅니다. 예전의 자신이 율법을 잘 알고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려고 했던 모습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예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신자를 힘들게 한 것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율법만 알 때와 너무나 다르게 성령을 받고 나서 진정으로 율법이 모두가 예수님을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 난 자신의 모습도 다 기억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오직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일을 봅니다. 이제 이전의 율법을 가지고 조문 조문 지키려고 하면서 섬기던 옛 방법과 이제는 성령의 인로로 섬기는 방법을 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섬기는 새 방법으로 섬기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는 사랑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율법을 다 완성하고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에서 잘 표현을 했습니다. 절대로 율법이 낡아서 그렇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과거 예수님도 모르고 성령도 모르고 오직 율법 조문만 알고 조문 조문 지키려고 했던 옛날에 섬기던 방법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 살아본 경험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 방법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성령을 받고 큰 성경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고 성령의 인도로 기적을 행하고 성령의 인도로 진리의 말씀을 전하게 되고 성령의 인도로 교회를 세운 경험으로 자신과 같이 이제는 옛날의 방식이 아니라 새 방식으로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의미는 정말로 0.0000%도 없는 성경 말씀이 로마서 7장 6절의 말씀이니 천주교에서 속히 고치시고 개신교도 이 구절을 올바로 고쳐야 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고린도 전서 13장도 사랑 장입니다. 로마서 13장도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모든 성도가 예수님의 명령대로 성령을 받고 새롭게 되고 거듭나게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기를 자신의 너무나 분명한 경험을 토대로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여전히 율법을 조문 조문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성령도 없고 율법도 자신이 지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처음 성령을 받은 데로 자신과 같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성령도 없이 예수님도 모르고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옛날 섬기던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복음을 전하고 선하게 살면서 새로운 방법의 섬김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삶을 사는 의미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라는 것이 또 밝혀졌습니다. 이제 이를 로마서 1장 17절로 대입을 시키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이는 믿음으로 삶을 사는 이이며, 성령의 인도로 삶을 사는 사람임이 밝혀집니다.
성령의 인도로 새롭게 섬기는 사람이 믿음으로 삶을 살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사람임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의 삶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새롭게 섬기는 삶임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완벽하게 일치를 합니다. 이제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바울 사도는 로마서 3장 31절에서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리고 율법의 요구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로마서 8장 3-4절로 증명합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1.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
31. Do we, then, nullify the law by this faith? Not at all! Rather, we uphold the law.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을 존중하기에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와 같이 반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7장 6절에 낡은 법조문이나 혹은 법조문의 낡은 방법이란 말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오직 율법은 그대로 두고 섬기는 방법만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어는 분명하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예수님도 성령님도 모르던 그리고 참다운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에 대해서 모르던 옛 사람 바울이 율법을 조문 조문 신경을 써서 형식적으로 섬기던 옛 방법과 새 사람 바울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방법을 대조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절대로 율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 아님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영어로 제가 번역한 바와 같이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옛 사람 바울이 섬기던 옛날 방법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작품이 된 새 사람 바울이 성령으로 섬기는 새 방법을 서로 대조하면서 설명한 것입니다.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고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되고 공경의 대상이 되는 율법에 대한 어떤 지적도 없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이해를 해야 로마서 7장 6절이 올바로 이해가 된 것이고 많은 성경의 문제들도 풀립니다.
긴 여정으로 여기까지 이해가 되신 분은 많은 덤불이 제거가 되신 분들이십니다. 모든 분이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 이렇게 된 상태에서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보일 것입니다. 신학의 덤불에 가려 있으면 그냥 지나 갈 수가 있는 너무나 중요하고 중요한 말씀이 그대로 이해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미 말씀을 드린 부분입니다. 반복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
율법의 완성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내가 죽고 살고 천국에 가고 못가고 가더라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 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보다 로마서 1장 17절의 잘못된 이해를 더욱 굳게 믿고 살지는 않으셨습니까? 오늘 그 굴레에서 벗어나시고 천국에 빛난 자로 사는 삶에 대해서 위의 말씀을 통해서 깊이 묵상하시고 위의 말씀에 굳게 서시고 절대로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입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예수를 믿는 거듭난 성도가 성령을 따라서 섬기게 되면 율법이 완성되고 율법이 굳게 섭니다. 그리고 율법의 요구하는 바가 이루어집니다. 모세 오경의 율법이 굳게 서는 나라는 법이 잘 지켜지기에 정의가 넘칩니다. 정의가 있는 곳에 평강이 옵니다. 평강이 있는 곳에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고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진정한 목적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잘 배우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잘 지킴은 이렇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잘 세우는 일과 너무나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성령도 없고 율법도 없고 마음대로 하는 곳은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교회는 너무나 분명하게 성령의 인도대로 율법이 굳게 세워지고 완성되는 공간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목사나 신학자는 그냥 성도에게 어떻게 하면 성도가 율법대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설교도 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해야 되는 일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성령을 받는 일이요 성령을 받았다면 성령의 인도대로 사는 것이요,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우리가 잘 받기 위해서는 율법을 반드시 잘 배우고 잘 지켜야 하는 일입니다. 이제 율법을 공경하고 잘 배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전하는 저는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아직도 온전하지 못한 도구입니다. 제가 전하는 모든 내용은 다 예수님께서 순서대로 차근차근 주신 것입니다. 약 예수님을 믿고 38년 정도 걸렸습니다.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삶을 주로 살았고 목사가 되었지만 세상에서 모든 분과 똑같이 일을 하고 가정도 있습니다. 늘 제가 하고 싶은 데로 살았고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목이 곧았습니다. 그리고 늘 가난했습니다. 은행에서 나온 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가장 극빈한 삶을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늘 평안했고 행복했습니다.
목이 곧고 고집이 센 저를 하나님께서 늘 참아주셨고 격려하셨습니다. 제가 들을 수가 있게 쉬지 않고 말씀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힘을 내어라,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 저는 죄도 여러 번 범했습니다. 참으로 패역된 죄도 범한 자로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이렇게 영적인 것을 이해할 능력도 열의도 없는 평범하지도 못한 못난 죄인에 불과합니다. 모든 영적인 깨달음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제가 온 것입니다. 제가 한 일은 조금도 없습니다. 이런 저를 사랑하시고 품고 긴 세월을 참으시며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우신 사랑과 우리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과 함께 하심 그리고 성령님의 내주와 감동하심을 찬양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올립니다. 주님의 나라가 굳게 서고 주님의 이름이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소서! 할렐루야!!!
이를 도표로 설명을 3차로 드립니다. 3번 반복이니 조금은 덤불이 걷어진 것입니다. 부디 결실하시기 바랍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홀로 이렇게 이해하고 믿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으셨다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천주교 개신교 좌파 우파의 틈에서 이러 저리 휘들리거나 속하지 않고 성경의 진리에 굳게 서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은혜를 말로 다하지 못하게 부어 주신 까닭입니다. 이 은혜속으로 속히 들어오시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후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를 세워야 한국이 살고 온 세상이 살고 내 자녀가 행복해 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세워집니다.
※ 도표를 통한 한 눈에 보는 이해
이제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를 도표로 보여 드립니다.
로마서 8장 3-4절의 율법의 요구하는 바를 이루는 길도 역시 성령의 인도로 믿음 생활을 하루하루 잘 하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이 내용은 도표에 없어서 이렇게 글로 추가합니다.
로마서가 분명하게 어떻게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믿음 생활을 할 때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며 율법의 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루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이 됨도 설명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분명한 이런 성경의 진리를 듣고 이제는 이 진리대로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 생활을 통해서 성도가 의롭게 되고, 성도가 율법을 완성하고, 성도가 율법을 굳게 세우며, 성도가 율법의 의를 이룸을 우리는 분명하게 이해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없이 사는 브리스 길라 아굴라를 만나기 전의 아볼로와 같이 오직 성경을 잘 배우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남보다 조금 더 아는 성경 지식으로 목회를 하면서 성도가 성령을 받는 일에 주목하지 않고 교회의 하나님께 바쳐진 재물로 학교를 세우서 인재를 양성한다 하는 소리는 다 거짓이며 하나님의 방법도 일도 아닙니다. 단지 학교가 없는 곳 즉 우리나라 약 150년 전의 상황과 같은 곳에 학교를 세움은 달리 뭐라 할 수가 없겠지만 한국에서 학교로 인간이 교육을 통해서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도 방법도 아닌 인간의 뜻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사의 가장 큰 일을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아 성령을 받으면 가장 큰 중요한 일을 다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을 일생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양육하시면서 온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신앙인으로 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정확한 성경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을 뵙고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이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렇게 아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최근 약 8년 사이에 이렇게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령께서 순서대로 제가 이해하도록 하셨습니다. 제 스스로 연구나 묵상으로 이해가 된 부분이 거의 아무것도 없으니 제 공로가 없고 그래서 모든 분이 값없이 가져가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 자녀에게도 이렇게 가르쳐야 하고 제 아내에게도 가르쳐야 합니다. 미리 알지 못했으니 어찌합니까? 기회를 볼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소개할 것입니다.
추석에 진리가 자유하게 하고 진리가 기쁘게 하는 복된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가족이 함께 이 부분에 대해서 토론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가정에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위로와 축복이 가득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의 하나님! 죄인을 부르시고 이렇게 복을 주시고 전하게 하시니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님의 감화와 인도로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하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이 대대로 영광을 받으소서! 모든 성도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이 글을 읽고 깨닫게 하소서! 긴 글을 쉽게 다 읽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글을 읽는 동안에 자유하게 하시고 몸과 마음이 따뜻해 지게 하시고 온갖 질병이 떠나가고 문제가 해결이 되고 평화가 생수같이 넘쳐나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가 되고 율법을 잘 배우고 성령의 인도로 잘 실천해서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서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