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4월 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고창의 방장산(方丈山, 743m)을 둘러싸고 있다.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시대 때 고창 지역이 '모량부리'라 불렸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1453년(조선 단종 원년)에 축조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계유년(癸酉年)에 호남의 여러 고을 사람이 축성하였다고 성벽에 새겨져 있다.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16만 5,858㎡이며, 동·서·북의 3문과 치(雉) 6곳, 옹성(甕城), 수구문(水口門) 2곳 등이 남아 있다.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읍성으로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관아를 비롯해 22개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전란에 모두 소실되어버렸고 현재 북문 공북루, 서문 진서루, 동문 등양루와 이방과 아전들이 소관업무를 처리하던 작청, 동헌, 객사, 풍화루, 내아, 관청, 향청, 서청, 장청, 옥사 등 일부만 복원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성밟기놀이가 전해오는데, 여인들이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돈 다음 성 입구에 그 돌을 쌓아둔다. 이렇게 쌓인 돌은 유사시에 좋은 무기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성내에는 1871년에 세운 대원군 척화비가 서 있고 읍성 앞에는 조선 후기 판소리의 대가인 신재효의 생가가 있다.조선시대 고창현의 읍성으로서,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창읍성(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매표소에서- 북문 - 맹종죽림 - 팔각정 - 동헌 - 객사 - 동문 - 동북치 - 북문 - 매표소까지 50분 소요)
입장료는 3,000원, 고창사랑상품권으로 환급해준다
북문(공북루)
공북루
맹종죽림가는길(맹죽림은 1938년에 유영하선사가 보안사를 세우고 조성하였다고 한다)
죽순대(맹종죽-중국원산이며 대나무중 크게 자라지만 무르다)4~5월에 죽순이 올라온다. 지름 20cm이고, 마디 사이는 40cm 이상인데, 아래쪽일수록 마디사이가 점차 짧아지고 줄기는 굵어지고, 키는 20m 이상으로 자란다. 처음에는 마디사이에 흰 가루가 있으나 점차 떨어져 없어진다. 마디고리는 가지 없는 마디에서 거의 두드러지지 않으나, 가지 달린 마디에서, 또 가지가 가늘수록 더 두드러지고, 엽초흔 가장자리에 강모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죽순대(맹종죽) (벼과 · 왕대속)
죽순이 올라온다
소나무가 대나무를 휘감고 올라간다
팔각정
동헌
객사
작청
풍화루
동문(등양루)
동문
동북치
좌측 옥사, 북문(공북루)
화장실과 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