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를 넘기고 1월 2일 겨울방학의 꽃이 피었다. 당초에는 지난 12월 31일에 개장한다던 화성행궁광장의 썰매 장, 나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꼬마 녀석들과 함께 신나게 찾아갔지만 할아비의 체면만 구겨지고 말았다. 그날 그렇게 무료입장권 한 장을 내밀며 내일은 틀림없이 개장할 것이라고 장담하던 현장의 그분이 누군지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것과는 다르게 또 하루를 더 기다린 끝에 2일 찾아간 것이다.
겨울방학의 꽃, 썰매장을 찾아서_1 서울에서 겨울방학을 하면 수원 할아버지 집에 간다며 손꼽아 기다리던 손자들이었다. 그러나 아는 것이 병이라는 말처럼 나는 처음 예정된 이곳 썰매 장 개장 소식을 자랑삼아 알리며 손자들을 초대하게 되었다. 이날도 혹시나 싶어 개장여부를 전화로 확인 해본 뒤에야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반쪽짜리 개장이었다. 나머지는 제빙 설비의 기술적인 문제로 하여 내일 개장할 것이라고 했다.
찬바람이 몹시 불고,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 썰매 장 안의 입장 인원은 50명쯤 되어보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서서 끌어주기도 하며, 실제로 썰매를 타고 있는 아이들은 그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도 30여명 정도가 되었다. 나는 지난번에 허탕을 친 대가로 받아놓은 무료입장권을 내밀며 특혜를 좀 받아볼까 했지만 입장할 수 없는 이유가 뜻밖에도 썰매의 부족 탓이라고 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일인 당 썰매 대여료 1천원만 내면 된다고 입장권 판매자는 말했다. 하지만 외지 어딘가에서 들어와야 할 썰매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정일보다 이틀이나 늦게 개장을 하였고, 기술적인 문제는 그렇다지만 썰매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예정대로 개장한다며 말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겨울방학의 꽃, 썰매장을 찾아서_2
썰매 장의 면적은 가로30미터 세로30미터의 크기로 200명까지는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반 토막의 빨간 줄 경계선을 쳐놓고 보니 100명은 수용할 수 있었겠지만, 이 또한 썰매가 부족한 탓으로 발만 동동 구르며 서 있는 아이들을 보려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할아비의 체면이 또 말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비료포대나 쌀 포대라도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들고 들어가 태워주고 싶었다.그러나 "얘들아, 안 되겠다. 추운데 우리 안에 들어가서 어묵이나 먹자!" 하며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이 추위를 녹이며 자리에 앉아 쉴 수가 있었다.
손이 시려 워, 발이 시려 워! 꽁꽁 얼어붙어도 그저 신나기만 한 것이 썰매 장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내가 사는 고색동에는 들판이 있어 겨울방학 때면 썰매를 타고 놀 수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서울에 사는 친척 아이들을 내려오게 하여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그때가 생각나서 손자들에게 나는 어린아이처럼 수원에 내려오라며 자랑했던 것이다.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가 된 썰매 장 풍경은 겨울 놀이의 꽃이라 할 만큼 어른 아이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찾을 수 있어 즐겁고,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겨울방학의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어 즐거운 일이다. 그런 우리의 민족 정서가 담긴 썰매 장이 겨울방학을 맞아 행궁광장에 생긴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옛날 시골의 미나리꽝에서는 얼음이 녹아 깨지면 풍덩! 빠져 양말이며 옷을 젖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남이 빠지는 것에 더없이 신이 나서 좋아하고 소리쳤다. 흙탕물에 젖은 옷을 씻어 모닥불에 말리기도 했지만, 발은 얼고 부르터 집에 오면 부모님의 야단에 무사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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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도 변변치 못하던 시절, 야생마처럼 자라야 했던 것을 떠올리며 뜨끈한 어묵 국으로 속을 덥힌 가운데 다시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싫증이 나서 퇴장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다시 그 썰매를 이어 받아 다음 순서의 대기자가 입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도무지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한번 잡은 기득권 포기란 없다는 것인지도 몰랐다. 알아본 바로는 매 시간마다 10분간씩 휴식을 취하며 썰매 장을 정리한다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한번 입장하면 주어진 시간이 50분이라고도 했지만 그 역시도 알 수가 없었다.
운 좋게 입장하였다가 한번 나가게 되면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들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누구도 썰매를 반납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신나게 끌고 달리기도 하며, 남이야 애타게 기다리거나 말거나 알바 아니라는 듯 저마다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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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가요!" 원망의 소리가 드높은 가운데 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썰매가 준비 안 된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예정 날 보다 이틀이나 늦었는데도 어찌 이런 일이, 또. 내일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리려니 씁쓸한 마음에 어린 손자들 볼 면목이 없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