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 丁卯胡亂
병자호란 丙子胡亂 | 원인 배경 | * 친명 배금(親明 排金) 정책 : 인조와 서인정권 * 인조반정 이후, 집권세력이었던 <서인>의 <친명배금정책>은 후금(여진족)을 자극함 = 서인세력의 외교정책, 친명배금정책 * 친명배금정책 : 명을 가까이 하고, 후금을 배척하는(멀리하는) 정책 |
경과 | 서인 정권(인조)의 <친명 배금 정책>은 후금의 경계심과 우려를 삼 → 이괄의 난(1624) → 조선의 혼란을 틈타 후금의 침입 → 정묘호란(1627) → 3만의 후금 군대 의주, 정주 거쳐 남하 → 의병 항쟁(정충신, 정봉수, 이입) → 강화 체결(형제 관계가 체결됨) → 후금(형), 조선(동생)
→ 그 후, 후금은 국호를 (청.1636) → 청은 조선에 군신(君臣) 관계 요구 → 조정의 대신 분열(주화파, 척화파) → 척화파(주전파) 우세 → 청의 군신관계 요구 거부 → 청 태종의 침입(병자호란. 1636) → 청의 10만 군대 서울 점령, 강화도로 미처 피난 가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 → 남한산성 고립(아군 14,000여 명과 50일간의 식량) → 45일간의 농성(籠城. 적에게 에워싸여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킴) 풀고 항복 → 삼전도의 치욕(1637.1.30) → 청과 군신(君臣) 관계 체결 → 두 왕자(소현세자와 봉림대군)와 척화론자(윤집, 오달제, 홍익한) 인질로 잡혀 감 |
결과 | * 조선은 청과 군신관계를 체결함 → 조선은 청에 신하로서의 ‘예(禮)’를 갖추게 됨 * 청(임금), 조선(신하) |
척화 斥和 ∥ 주전 主戰 | * 척화론 = 주전론 : 청나라와 싸우자! * 힘의 강약을 돌보지 말고 옳은 길을 가야 한다는 명분론(名分論) * 싸우기를(전쟁(戰爭)하기를) 주장(主張)하는 파 (조경, 정온, 김상헌, 유계) * 명나라는 조선에게 부모의 나라다. 후금(청)과 싸워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에 의리를 지키자! * 대표적 인물 : 김상헌, 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 |
주화 主和 | * 주화 : 청과 싸워서는 안 된다. 화의(和議, 화친, 평화)를 맺자! * 청은 군사력이 강하고 조선은 약하다. 국력이 소진된 상태다. * 민심을 수습하고 국방력을 강화하자. 실리론(實利論) * 전쟁을 피하고 화해하거나 평화롭게 지내자고 주장하는 파. * 외교적 교섭을 통해 청과의 문제 해결(최명길, 이귀, 홍서봉) * 대표적인 인물 : 최명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