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실의 하권 제 6편(7-8)
* 6-7 중국 선비가 말한다:
“무엇 때문에 골치를 썩이며 (오지도 않은) 미래를 염려하느냐? 오직 오늘 눈앞에 일만 해라!” 하는 말을 (저는) 일찍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참된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내세來世를 논하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참으로) 고루 하십니다. 만약 개나 돼지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한다면, 그 말씀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서양에서 옛날에 한 사람이, “걱정을 하지 말고 오로지 즐기기에만 힘을 써라.”라는 교설을 세웠습니다. 그때에도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당장 먹고 마시며 즐겁게 놀아라. 죽은 후에는 아무 낙도 없느니라!”(철학자:시노페 디오게네스) 여러 선비들이 이들을 *돼지 학파(견유학파:문명과 허례허식 비판, 자연 그대로 본능대로 삶을 강조함)라고 불렀습니다.
어찌 선배님의 나라 (중국)에도 이들과 암암리에 뜻이 통하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까?
무릇 멀리에까지 염려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거리가 있게 되는 법입니다.
(철인哲人의) 도모함이 원대하지 못하면 시인時人들의 풍자諷刺를 받습니다. 제가 보니 사람이 지혜로울수록 그들의 생각은 그만큼 멀리까지 미쳤고, 사람이 어리석을수록 그 생각은 그만큼 짧았습니다.
무릇 사람의 부류라면, 어찌 미래를 예비하지 않을 수 있으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미리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농부가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은, 가을에 수확을 도모하려는 것입니다. 소나무는 심은 지 백 년이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른바 “농원의 노인(主人)이 (지금) 나무를 심을 뿐이요, 현손玄孫(그의 손자의 손자)이 열매를 딴다.”라는 뜻입니다.
여행자들이 산천경계를 따라서 두루 다니는 것은, 늙어서 고향에서 편안히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많은 기술자들이 자기 직업을 부지런히 배우는 것은, (그것으로) 의지할 것(생계生計)을 얻고자 함입니다. 선비는 어린아이 시절부터 고달프지만 부지런히 폭넓게 공부하는 것은, 훗날에 나라를 돕고 (섬기는) 군주를 바르게 하려 함입니다. 무릇, 이 모두가 다 눈앞에 (당장) 오늘의 일들을 긴급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것들입니다.
불초한 자식들이 조상들의 업적을 망칩니다.
우공虞公은 미련하여 나라를 잃었고, 하夏 나라의 걸桀 임금과 은殷 나라의 주紂 임금은 (멋대로 폭정을 하여) 천하를 잃었습니다. 이것은 (임금이) 아주 멀리까지 생각을 하지 않고, 한갓 오늘 눈 앞의 일만을 돌본 탓이 아니었겠습니까?
* 6-8:중국 선비가 말한다:
그 말씀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으니 염려하는 것이 비록 원대하다고 해도, 현세現世에서 그칠 뿐입니다. 죽은 다음에 일은 (아무래도) 우원迂遠한 듯싶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공자孔子는 『춘추春秋』를 지었고, 그의 손자 즉 자사子思는 『중용中庸』을 저술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수많은 세대(만세萬世) 이후(의 일)을 염려한 것입니다. 무릇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염려를 하였지만, 여러 올바른 선비들은 결코 우원迂遠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영혼을 위하는 우리들의 염려가 현세와 내세를 오직 두 세계에만 미칠 뿐인데, 선비께서는 그것을 우원迂遠하다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어린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이미 늙었을 때 일을 준비합니다. 그들이 (성숙한) 장년에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미래를 염려하는 것을) 우원迂遠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도모하고 있는 사후死後의 일이, 혹시 곧바로 내일 이른 아침에 일이 될 수도 있는데, 선비께서는 (그것을) 우원迂遠한 일이라고 보시는 것입니까?
(그렇게 앞일을 못 믿으신다면) 선비께서 결혼하시어, 어떻게 나중에 자손을 얻기를 바라실 수 있겠습니까?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 20270713;AM 10:45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