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권 제2강. 육체의 집: 정욕이라는 야수 길들이기 (The House of Body: Taming the Beast of Appetites)
이 장엄한 자아 통치의 두 번째 단계, 육체를 다루는 이 훈련은 성경과 교회사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터입니다. 먼저 우리 영혼의 뼈대를 세울 위대한 말씀들을 선포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7)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12-13)
우리의 내면, '맨소울(Mansoul)'이라는 왕국을 탐험할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외곽 성벽이 바로 '육체의 집(The House of Body)'입니다. 이곳에는 식욕, 수면욕, 안락함을 추구하는 욕구 등 생존을 위해 하나님이 심어두신 강렬한 본능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정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샬롯 메이슨의 혜안 위에 고전 철학과 신학의 깊이를 더하여 네 개의 장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제1막. 신전의 하인인가, 왕국의 폭군인가?
샬롯 메이슨은 우리 몸의 욕구들(Appetites)을 가리켜 "유능한 하인이지만, 끔찍한 주인(Good servants, but bad masters)"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배고픔을 주신 것은 생명을 유지하라는 선한 목적입니다. 피곤함을 주신 것은 안식을 누리라는 축복이지요. 이 본능들은 왕국을 유지하는 아주 성실하고 필수적인 '하인'들입니다.
문제는 언제 발생합니까? 나태해진 이성(Reason)과 무너진 양심(Conscience)이 왕좌를 비워둘 때입니다. 주인이 졸고 있는 사이, 식욕은 '탐식'이라는 폭군으로 변하고, 휴식의 욕구는 '나태'라는 괴물로 둔갑하여 왕좌를 찬탈합니다. 감각적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버리는 순간, 위대한 맨소울 왕국은 그저 짐승의 사육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제2막. 성 어거스틴의 '사랑의 질서(Ordo Amoris)'의 회복
여기서 우리는 성품을 세우기 위해, 고대 교회의 위대한 교부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의 심오한 통찰을 가져와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죄악을 단순히 '나쁜 것을 사랑하는 것'으로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를 "무질서한 사랑(Disordered Love)"이라고 통찰했습니다. 좋은 것들을 사랑하되, '순서가 뒤바뀐 채 사랑하는 것'이 곧 죄요,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고, 그다음 이웃의 권리를 사랑하며, 마지막으로 내 육체의 만족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맛있는 음식, 편안한 소파, 성적인 쾌락이라는 가장 하위의 선(Lesser good)을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맹렬히 사랑합니다.
따라서 육체를 통치한다는 것은 금욕주의자들처럼 몸을 학대하고 굶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의 '사랑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내 육체의 쾌락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 열렬히 사랑하겠다!"는 영적 질서의 재편, 이것이 바로 성품 훈련의 찬란한 본질입니다.
제3막. C.S. 루이스의 『인간 폐지』: 가슴(Chest)의 회복
이 육체의 야수를 길들이기 위해, 현대 기독교의 최고 지성 C.S. 루이스(C.S. Lewis)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는 인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이성을 상징하는 '머리', 육체의 정욕을 상징하는 '배', 그리고 그 둘을 중재하는 도덕과 양심의 상징인 '가슴(Chest)'입니다.
루이스는 현대 교육이 아이들의 머리(지식)만 비대하게 키우고, 배(욕망)는 한없이 채워주면서, 정작 욕망을 통제하고 이성에 순종하게 만드는 도덕적 훈련, 즉 '가슴'을 길러내는 일을 철저히 유기했다고 탄식했습니다. "우리는 가슴 없는 사람(Men without chests)을 만들어 놓고 그들에게 미덕을 기대한다"는 그의 탄식은 이 시대 교육의 뼈아픈 현실입니다.
우리가 샬롯 메이슨을 통해 배우는 '의지(Will)'와 '양심(Conscience)'의 훈련이 바로 이 위대한 '가슴'을 튼튼하게 벼려내는 작업입니다. 강력하게 깨어난 양심과 훈련된 성품만이, 이성의 명령을 받아들여 짐승처럼 날뛰는 배(욕망)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제4막. 존 오웬과 바울: 영적 사형 선고, 죄 죽이기 (Mortification of Sin)
자, 이제 이 모든 철학적, 신학적 통찰을 실천할 마지막 칼을 뽑아들 시간입니다. 청교도의 황태자 존 오웬(John Owen)은 그의 명저 『죄 죽이기』에서 이렇게 피를 토하며 외쳤습니다.
"네가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가 너를 죽일 것이다! (Be killing sin or it will be killing you!)"
사도 바울이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 했을 때, 그 단어는 복싱 선수가 상대의 눈덩이를 가격하여 멍들게 한다는 뜻의 맹렬한 단어입니다. 자아 통치란,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명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육체가 나태함과 이기적인 쾌락을 요구할 때,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그 정욕의 멱살을 잡고 사형장으로 끌고 가는 피 튀기는 전투입니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아침에 이불 속에서 더 자고 싶은 그 달콤한 나태함을 향해 칼을 뽑아라! 식탁에서 내 배를 채우기 위해 타인의 몫까지 탐내는 그 이기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 몸이 너에게 명령하게 두지 마라. 네 영혼이 성령의 능력으로 네 몸을 노예처럼 부리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