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이정록 詩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감 상 ]
이제끼지 이정록의 시는 자연과 일상의 구체적인 체험의 관찰을 통해 삶의 의미를 포착해 왔다. 그의 시에서 유난히 거주에 대한 언급이 많은 것은 삶의 본질로 곧장 육박해가는 사유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보잘것없는 생명이나 사소한 사건일지라도 시인의 집요한 시선에 이끌리면 의미심장한 삶의 증거가 된다. 대상과 자아의 일체감을 통해 삶의 의미를 이끌어내는 그의 일관된 시작 방식은 서정시에서 익숙한 동일성의 시학을 충실하게 실현하고 있다.
이정록의 시는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상당히 정밀한 구상화에 가깝다. 주로 자연을 그리지만 단순한 풍경화화는 다른다. 그의 시는 박수근의 그림처럼, 인간화된 자연 혹은 자연화된 인간을 연상시킨다. 자연에 대한 묘사 속에서도 늘 인간적 시선을 담아내며, 자연과 인간에게서 동일하게 연민과 공감을 끌어내는 그의 시를 '따뜻한 구상'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시인에게 삶은 서로에게 의자가 되어주는 배려와 연민으로 지각된다. 삶을 지켜주는 것은 경쟁과 차별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주는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고통을 나누고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감상이다. "진리는 내 머릿속이 하니라/ 내 머리맡에 있던 따뜻한 손길과 목소리" (머리맡에 대하여) 라는 단언처럼 자애와 연민이야말로 이성을 능가하는 삶의 동력이다.
이혜원 (따뜻한 구상, 시집 해설 중에서 )
첫댓글 시가 홍수처럼 범람하다 보니
감각시를 인정하는 추세인데
나태주 시인이나 이정록 시인의
사실적 시가 와 닿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 정서에 맞는 시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