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 힐링(healing)의 동의어인 경우도 많다.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 어려움·위험·죽음·고통·죄악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구원의 길은 여러 가지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자력 신앙, 타력 신앙이나 세속 이데올로기가 구원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 힌두교 최고 경전 중 하나인 『바가바드기타』는 크리슈나와 같은 ‘인격신(人格神)’에 대한 헌신이 구원을 얻는 가장 쉬운 지름길이라고 설파한다.
헌신의 대상인 ‘인격신’이란 무엇인가. 인간적인 용모·의지·감정 따위의 인격을 지닌 신이다.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난 신이다.
헌신이란 무엇인가. 온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다.
독일 수도사 토마스 아 켐피스(1379/80~ 1471)의 『그리스도를 본받아(遵主聖範)』(이하 준주성범)는 예수에 대한 헌신을 통해 구원 받는 길을 제시하는 책이다. 기독교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출간된 책은, 둘 중 하나다. 개신교에서는 존 버니언(1628~1688)의 『천로역정』이, 가톨릭에서는 『준주성범』이 있다.
『준주성범』은 가톨릭·개신교 모두가 인정하는 신앙 지침서다. 『유토피아』로 유명한 성(聖) 토머스 모어(1477~1535)는 『준주성범』이 모든 사람이 소장해야 할 3권의 책 중 하나라고 했다. 감리교회를 창시한 성공회 존 웨슬리 신부(1703~1791)는 『준주성범』이 크리스천이 지향해야 할 삶을 가장 잘 요약한 책이라며 그의 새로운 신앙 운동에 가담한 이들을 위해 『준주성범』을 손수 번역했다.
예수회를 창립한 로욜라 이그나티우스(1491~1556)는 『준주성범』을 매일 한 장(章)씩 읽었으며 지인들에게 이 책을 즐겨 선물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이 책이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의 『명상록』과 더불어 자신의 최고 애독서라고 밝혔다. 평생 22억 명의 사람들에게 설교한 침례교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성경 다음으로 좋아하는 책으로 『준주성범』을 꼽았다.
『준주성범』은 세계 100개 국어 이상, 2000여 가지 이상의 판본으로 번역됐으며 독자는 10억 명 이상이다. 세계적인 고전이지만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좀 부담스러운 책이다. 책의 중심에 예수가 있기 때문이다. 『준주성범』에서 켐피스는 이렇게 말한다. “길이 없으면 갈 수 없고, 진리가 없으면 알 수 없고, 생명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여기서 길·진리·생명은 예수다.
젊은이들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책이다.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방황하고 모색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어쩌면 젊은이의 특권이 아닌가.
재물과 권력의 문제를 어떤 형식으로든 ‘해결’하지 않았다면 『준주성범』은 따분한 책이다. 재물과 권력을 쟁취했거나, 애초에 관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포기했다면 『준주성범』의 메시지가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다. 『준주성범』은 세상을 포기하고 수도자가 된 켐피스가 수도자들을 위해 쓴 책이다.
돈이나 힘 때문에 번민하지 않게 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허영심, 자만심, 남들에게 인정받고 뻐기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켐피스는 이를 경계하며 ‘겸손’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신(神) 앞에서 인간은 모두 다 겸손할 수밖에 없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재물의 수명도 한계가 있다. 노벨상 할아버지를 받아도 소용없다. “위안은 오로지 예수”라며 켐피스는 이렇게 말한다. “심판의 날에 우리에게 던져질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읽었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다. 우리가 말을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게 살았는지에 대해 대답해야 할 것이다.”
사실 지식욕·학문욕은 물욕·권력욕·성욕 못지않은 인간의 욕구다. 켐피스는 이렇게 말한다.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것보다는 너를 겸손하게 낮출 줄 아는 것이 하느님께로 가는 확실한 길이다. 그렇지만 학문 자체를 탓하는 것도, 사물에 대한 연구와 지식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학문 자체는 좋은 것이며 실제로도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이나 돈이 있으면 사람들이 굽실거리기도 하지만 욕도 많이 먹는다. 욕먹는 게 싫어 학문과 학식을 선택했는데 ‘악플’에 시달릴 수 있다. 권력자·부자·학식자에게 보내는 켐피스의 권고는 이것이다. “칭찬에도 비난에도 신경 쓰지 않는 자에게는 거대한 마음의 평온이 그의 것이 된다.”
비관적·패배적·부정적이라는 비판도
『준주성범』에는 신앙을 초월해 건질 말들이 많다. 이런 말들이다.
-“남을 네 뜻대로 바꿀 수 없다고 해서 분노하지 말라. 너 자신도 네 뜻대로 바꿀 수 없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부모들, 부하·상관들, 유권자들, 부부가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다.
-“누가 이런저런 말을 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말라. 말의 내용에만 유념하라.” 세계적인 석학이 한 말이건 초등학생이 한 말이건 옳은 말은 옳은 말, 틀린 말은 틀린 말이라는 얘기다.
-“복종하는 위치에 있는 게 권위를 행사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 독립을 꿈꾸며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려는 직장인들이 한 번 곱씹어볼 만한 말이다.
-“복종하는 법을 잘 배운 자만이 안전하게 다스릴 수 있다.” 모든 일은 밑바닥부터 배워야 우두머리가 돼서도 안정감 있게 할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우리의 능력에 대해선 알지만 우리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유혹에 직면해야 알 수 있다.” 각종 중독을 부르는 유혹에 강한 것이 진짜 능력이라는 뜻 같다.
모두가 『준주성범』을 칭찬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가톨릭·개신교 신학자들은 『준주성범』에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나치게 비관적·패배적·부정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켐피스로서는 억울한 평가다. 그는 낙천주의자다. 켐피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완전히 버리고 완전히 헌신한다면 누구나 완벽하게 될 수 있고 누구나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켐피스는 독일 뒤셀도르프 부근 켐프켄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제철공, 어머니는 교사였다. 1399년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에 들어가 33세인 1413년 사제가 됐다. 1471년 92세 나이로 선종할 때까지 켐피스는 그가 믿는 예수에 대해 연구하고 묵상하는 평온한 삶을 살았다. 그는 가톨릭의 복자도 성자도 아니다.
『준주성범』은 삶의 마지막에 함께하는 책으로도 유명하다. 평화와 사랑을 위해 온몸으로 평생을 헌신한 사람들의 머리맡, 가슴에 이 책이 있었다. 다그 함마르셸드(1905~61) 전 유엔 사무총장, 디트리히 본회퍼(1906~45) 목사, 요한 바오로 1세(1912~78)가 그들이 믿은 신의 품으로 떠날 때 지척에 둔 책이 바로 『준주성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