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1. 로마제국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황제로 즉위한 이후 본격적인 고대 로마제국이 시작되었다.
당시 로마의 영향력은 지중해 서쪽으로는 스페인과 영국을 아울렀고 동쪽으로는 이집트와 유대 지방까지 이르렀다.
오늘날 유럽인이라는 단일 개념으로 쓰이게 된 것은 로마제국의 단일한 역사에 기원하고 있다.
로마가 제국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외적으로는 도로와 항만을 발달시켜 시간과 공간을 단축하여 단일한 문화와 경제권으로 묶어낸 것이고 내적으로는 로마의 다문화 다신교 정책때문이었다. 로마는 정복지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였고 그들의 자치도 허용하였다. 게다가 로마의 법과 의무를 준수할 경우에는 로마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의 정책에 불편한 관계를 가진 지역이 바로 유대 지역이었다.
2. 로마제국 변방의 유대 지역
구약 성서에 따르면 기원전 1030년 사울이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숱한 역사 속에서 기원전 63년에 로마제국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유일신을 믿었던 유대인들은 기원후 66년 로마에 저항하다가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점령당하면서 유대 왕국이 무너진 이후 나라없는 유대인으로 전세계에 흩어져 떠돌다가 1948년 다시 이 지역에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무려 2000 년만의 일이다.
3. 예수의 생애와 사상
예수의 탄생은 기원전 7년에서 기원전 4년 사이로 본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령으로 잉태했음을 알렸다.
아버지 요셉은 이를 용납할 수 없어서 조용히 파혼하려 했으나 천사의 계시를 받고 결혼을 받아들였다.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돌아가 성장했기에 그를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다.
아버지 요셉의 직업을 따라 목수 일을 배웠고 유대교 회당 예배에 참석했다. 당시 그는 사람들 앞에서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고난받는 민중들을 이끌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고 비웃었다.
때가 이르러 예수는 요한을 찾아갔다. 요한은 마리아의 사촌인 엘리사벳의 아들이었다.
당시 요한은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세례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세례운동의 핵심은 율법과 제물봉헌에 충실하지 못하여, 죄인이 된 사람들에게 회개하면 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그와 더불어 요한은 유대교가 지닌 민족적 배타성을 배제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이 돌에게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으키실 수 있다.”(누가 3:9)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내세워 타민족 앞에 우월감을 갖는 관행을 비판하는 말이다. 타민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우월감은 그 민족 안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우월감으로 연결되었다. 유대교는 율법사와 사제들의 권위를 과장하면서 하나님이 자비하시고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 지 물었다. 그러자 요한은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같이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예수는 요한의 세례 운동에 일시 가담하였다가 후에 독자적인 길을 간 것으로 보인다.
예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후 홀로 광야로 나갔다. 그 곳에서 40일 간 금식하면서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했다. 스스로 고행하는 예수에게 사탄이 찾아와 세 번 시험했다.
여기서 사탄은 어찌보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 세 가지는 물질적 욕망,종교적인 욕망,정치적인 욕망에 대한 유혹이었다. 이 3 가지 유혹을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친 예수는 가난한 자들을 제자로 삼고 지방인 갈릴리에서 말씀을 전했다.
그의 초기 가르침인 산상설교(산상수훈)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도덕적 행위의 지침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설교의 주제는 바로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공동번역 성서>
기독교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주기도문도 산상수훈의 가르침 속에 등장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바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공동번역 성서>
여기서 우리는 일부 신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의 교리와는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현실과 분리된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단순히 착하게 살면 사후에 복을 받는다는 기복적인 믿음이 아니라 나의 삶과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실천적 삶이 내세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유대 사회는 오랜 기간 여러 제국들의 지배를 받았고 노예의 신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같은 민족임에도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율법가나 제사장들은 로마 제국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일반 민중들에게는 엄격한 종교적 규율만 강요했다.
그래서 당시 민중들은 이사야서에서 예언이 실현되기르 기대했다. 그들의 삶을 개선하고 민족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가 도래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들에게 예수의 등장은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 예수는 당시 부패한 기득권을 비판했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았으며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고된 현실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임을 설파한 것이다. 그렇게 민중들은 예수를 정치적 혁명가로 생각한 것이다.
이런 예수를 당시 기득권자이 그냥 둘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 중에 한 명이 자신을 팔아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는 사형제도가 있는 로마법정에서 십자가형이 선고되고 최후를 맞이했다.
이 때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다 이루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그 후 예수는 3일 만에 다시 살아나 제자들의 앞에 나타났으며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했다. 그리고 승천하는 모습 그대로 다시 오겠다고 했다.
예수는 요한이 요구하던 바를 더 발전시켜 몸소 실천하였다. 예수는 요한과 같이 물로 씻는 의례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의 죄를 직접 용서하는 일을 실천했다. 예수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마가복음 2:17)고 주장했다. 예수는 유대교가 절대화하여 강요하던 안식일 계명에 대해서도 가히 혁명적인 말을 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는 않았다.”(마가 2:27). 유대교는 질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벌이라고 가르쳤지만 예수는 병자들을 고쳐주면서 병고가 하느님이 주신 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예수는 하나님이 우리 죄에 대해 보복하지 않고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실천으로 보여 주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 실천에 충실하였다. 그리고 그 실천들이 그 시대 유대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예수가 행한 일이 하느님의 것이었기에 그는 하느님 안에 살아있다는 부활 신앙이 생겼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바로 그 예수의 실천에 동참한다는 말이며 그러한 삶을 살겠다는 마음의 다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