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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속바지
외할아버지의 상여가 나갈 때 펄럭이던 만사(輓詞)는
나중에 어머니의 지갑이 되고 속바지가 되었다.
어머니는 왜 외할아버지의 만사로 지갑을 만드셨을까
그러나 어머니의 그 지갑은 늘 비어 있었다.
마치 가문 날 우물처럼 메말라 있었다.
야간학교에 다닐 때 나는
그 만사로 된 지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학교까지 시오리길을 그냥 걸어갔다.
어머니는 왜 외할아버지의 만사로
속바지를 해 입으셨을까
그러나 어머니의 속바지는
당신의 조그만 육신과 함께 불에 탔다.
불쌍한 어머니의 생애와 함께 새까맣게 숯덩이가 되어
내 가슴에 재로 남고 말았다.
어머니의 속바지 속에는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그 주머니도 늘 비어 있었다.
아, 나는 얼마나
그 주머니를 채워드리고 싶었던가
외할아버지의 만사로 만든
그 속바지 주머니 속을 가득 채워주고 싶어
나는 얼마나 울어야 했던가
(2022. 6. 30.)
사모곡(2)
어머니,
4월의 끝자락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다시금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께서 계신 그곳에도 지금쯤 아카시아꽃이 피고 있나요?
우리들의 고향 뽕나무배기 호밀밭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밀밭 물결이 그곳에도 있나요?
당신께서 떠나신 후
저는 당신을 가슴에 묻고 허깨비처럼 살았지만
그 날 이후 제 삶은 전부 덤으로 산 것이었어요.
당신의 어여쁜 생애보다 더 길게 살고 있어서
정말 죄송해요.
어머니,
그곳에 가셔서 아버지를 만나셨나요?
눈이 우묵하고, 늘 따뜻하게 젖어있고,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내 마누라라고 하셨다는,
평생 저리가라는 말씀 한번 안하셨다는 그 분을 만나
진정 행복하신가요?
저희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답니다.
저 같은 아들 낳을까봐 딸만 둘을 둔 저희는
이제는 배곯지 않고 잘 살고 있답니다.
큰 애는 소망대로 법관이 되었고
작은 애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어요.
당신의 며느리는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해마다 고구마순 김치를 담가준답니다.
저 이만하면 제법 잘 살았지요?
그러면 어머니께서 저 어릴 때 하시던 대로
저를 보며 췌- 하시는 그 독특한 추임새로
칭찬의 말씀 한번만 해주세요.
하지만 어머니,
저도 참 힘들었답니다.
당신을 가슴에 품고 험한 세상 살아오다보니
울고 싶을 때도 많았답니다.
물론 당신께서는 다 알고 계셨겠지만요.
어머니,
그러니 다음 생에는 제 딸로 태어나셔요.
그러면 저는,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더운 품에 품어 안고 애지중지 길러서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사랑을 줄게요.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켜줄게요.
서쪽 하늘에 바람이 불고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릅니다.
이제 곧 저도 저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야겠지요.
그곳에 가면 그리운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겠지요.
그때까지 안녕히 계셔요, 어머니.
우리 다시 만나 손을 잡고 부둥켜 안아볼 그 날까지
어머니, 부디 부디 안녕히 계셔요.
(2023. 4. 30. 어머니 떠나신지 40년)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늘 한결 같았다.
고향, 봄, 푸른 보리밭, 하늘을 날던 종달새, 아카시아꽃 향기.
온종일 일을 하고도 저녁이면 시보리틀 앞에 앉아 시보리를 뜨시던 모습,
따르락 따르락 울리던 그 소리,
가을이면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이삭을 주우시던 모습, 그 빛바랜 낡은 치맛자락.
겨울이면 함박눈 내리던 장독대,
그 추운 겨울 새벽에도 혼자 일어나 부엌에서 어린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고 분주하시던 어머니.
따뜻한 이불 속에서 제비새끼처럼 모여 있으면 잠결에 들리던 그 소리,
가마솥을 열고 닫는 소리, 겨울바람에 빳빳해지고 추운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서 도울 줄도 몰랐던 철없는 자식새끼들.
지금은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그 소리.
그리고 어느 해 여름 무너지는 논둑과 빗줄기,
철산리의 먼지 나던 길,
잔디뗏장을 머리에 이고 언덕길을 힘겹게 걸어가시던 그 눈물겨운 모습,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식당에 계시던 모습 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몇 번 다듬은 끝에 2023년 8월 5일 「思母曲(사모곡)」의 가사를 완성하였다.
사모곡
눈을 감~으면 아득한 고향/ 아카시아 꽃 향기
보리밭/ 어머니 고운 얼굴에/ 굵은 땀~방울
등잔불~ 아래 들리던/ 따르락 따르락 시보리 소리
추수 끝~난 빈들에서/ 이삭을 주우시던 뒷~모습
빛바랜/ 그 치맛자~락이/ 눈물겨~워~라.
(간주)
거룩하신 당신의 은혜/ 그~ 사랑 갚기도 전에
봄비 따라 홀~로/ 떠나가신 님이시여
돌아보~면 눈물뿐인 발자취를/ 내 어찌 기록하오리~이~까
바람 불~고/ 비오는 밤~이면/ 더욱 생각나 우노니
어머니, 그 슬픈 음~성을/ 제가 듣~나이다.
어머니, 그 슬픈 생~애를/ 제가 듣~나이~다.
그리고 2023년 12월 15일, 구광일작곡가를 만나 채보(採譜)를 하였고, 2024년 1월 15일 3단악보가 완성되었으며, 2024. 5. 18. 신세계장충레코딩스튜디오에서 바리톤 박경준의 연주와 피아니스트 엄은경의 반주로 녹음되었다. 그 후 2024년 6월 24일 세종문화회관 챔버홀에서 공연된 ‘가곡의 밤’에서 바리톤 송기창의 연주로 첫 무대에 올랐다. 이로써 나는 어머니께 나의 가곡을 바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나는 그날 송기창교수의 연주가 너무나 훌륭하였으므로 이를 녹음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2025년 1월 7일 위 같은 스튜디오에서 바리톤 송기창의 가창으로 녹음을 하였다.
https://youtu.be/EkzIFTa3J-8?si=YkMuBm4J3L45VxD1
첫댓글
김성만작가 님의 음악의
역사를 잘 봅니다
송기창 님의 사모곡
잘 듣습니다
(사모곡) 1 ~ 4편,
가슴 아픈 사연을 미어지는
가슴으로 모두 읽었습니다.
어머니를 그리는 절절한 가곡
<사모곡> 호소력 있는 음색으로 연주하신 송기창 성악가 님의 연주도 잘 들었습니다.
이 곡이 저 세상에 계시는 어머니도 들으셨으리라
믿고 싶네요.
아드님의 효심도 어머니께 잘 전달 되셨을 것입니다.
저도 눈물로 쓰는 위로의 댓글 남기면서 이젠 아픈 마음
내려놓으시고 부디 건강한 일상으로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마음 따뜻한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부모세대, 누나들 세대에게 저는 끝없는 감사와 연민과 사랑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요.
선생님의 글 속에도 그 시대의 정서와 아픔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시와 시조가 있음을 압니다.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