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의 집
김양일
입을 꾹 다문 바다가
떨어지는 노을을 하나하나
가슴으로 주워담는다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서로 어루만지기도 하고
보듬고 감싸며 살아간다
첫새벽 닭들의 홰치는 소리마냥
부다당, 하루를 출렁이는 그들은
출렁이는 만큼 넘어진 햇살을
세 치도 안될 가슴에 가득 담고
붉게 익어간다
아름답다거나 쓸쓸할 틈도 없이
문득문득 비춰오는 물비늘에
간간이 삼킨 눈물은 얼마나 뜨거웠을까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잡으려고
또 얼마나 가슴 달구었을까
늘 수평의 거리에서
바람 불면
노을이 바다를 잡아주고
해가 기울면
바다가 노을을 품어주는
여수시 군자동 00번지
붉게 놀란 바다는
노을과 한통속이 되어
아담하게
성사의 집을 한 채 짓는다
""""""""""""""""""""""""""""""""""""""""""""""""""""""""
김치를 담그다
김양일
두터운 바람에 견디어 보자고
겨우내 흙의 뿌리를 붙들고
얼었다 녹았다 힘에 부친
전쟁 같은 떨림을 뽑아다
김치를 담는다
마음의 바닥에서 살얼음처럼 울고 있는
손시린 기억들을 남김없이 떨구고
무성하게 자라난 겨울을 툴툴 털어내고
매운 꽃샘의 물 퍼다가
씻고 자르는 동안
바람든 속살이 숭숭한 구멍으로
제 무게를 덜어냈던 것일까
간간이 무너지는 저,
푸석한 삶 앞에서
가슴의 독기를 해제한 채
축축한 바람에 어김없이 젖어가는
삶의 부채여
많은 시간 흙의 뿌리를 붙들고
아무것도 없는 경건한 가슴에
두터운 바람, 축축한 바람, 매운바람, 순한 바람
못다 한 우리들의 삶에 성령을 붓는다
비비고 버무린다
사는 일이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올 때
묵언의 가슴에 성사의 집을 짓고
거룩하게 김치를 담가 볼 일이다
"""""""""""""""""""""""""""""""""""""""""""""""""""""""""""""""""
닭발 볶음
김양일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할까 하고 생각하다
대전역 어름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맵다.
맵다. 후, 후,
끝끝내 놓지 않았던 닭발을 생각한다
불이야! 불
종종걸음으로 가로등 불빛 가득 받아들인 동무들
이러쿵저러쿵 부산을 떨며 먹었던 닭발
먼 시간 달려온 뜨거운 기억들을 볶는다
그래!
볶는다는 건 사는 일이다
찬바람 휘휘 도는 작업장에서 지지고 볶는 일이다
밀린 관리비며 전기세 수도세 가스 세 끊어진 인터넷
덧대가는 생채기를 양념하여
적적하게 흐르는 시간을 지지고 볶는 일이다
바람 세찬, 흔들리는 날
매운 닭발 먹어본 사람은 안다
기울어진 삶이 맵다며 푸른 강물 들어본 사람은 안다
끝끝내 놓지 못하는 내일이 강물로 흐르고
같은 처지의 우리는 순하디순한 가슴으로
녹록지 않은 하루를 먹는다
온 사방 휘젓고 다녔을 닭의 발들이
맵게, 때로는 뜨겁게 나를 휩쓸고 간다
제 몸 다 주고 닭의 발로 살아온 날들이
저마다의 보시로 허공이 된다
첫댓글 글을 다 쓰셨네요. 좋은 글입니다. 아주 고뇌와 삶의 번민들과 살아가는 무게가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공동생활을 통해, 함께 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 서로 돕고 도우며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의지도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출품하여 좋은 결과가 있길 기도합니다. 유야고보 교우님 집에서 씁니다.
신부님! 죄송하지만 신문사에 투고좀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