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나무
산골짜기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졸랑졸랑 개울물이 노래를 한다.
뻐꾸기가 개울물 소리에 가락을 맞추어 ‘뻐꾹뻐꾹’ 합창을 하면 겨울잠에서 눈을 비비고 일어난 붉은 진달래가 온 산을 아름답게 치장을 한다.
산 밑의 호수는 얼음이 녹아 파란 모습을 자랑하며, 구름을 안고 놀고, 밤이면, 별들이 새까만 물 속에서 동녘에 해가 뜰 때까지 재미있는 별들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호수에게 들려준다.
호수 바로 옆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 중간쯤에 자그마하고 앳띈 예쁜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그 어린 소나무는 늘 자기의 몸매를 물속에 비춰보고는
‘난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을까? ’
이렇게 생각하며 우쭐거렸다.
줄기에 더덕더덕 상처투성이의 험상궂은 할아버지 소나무, 가시가 튀어나와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가시나무, 엄지손가락만큼이나 굵은 벌이 윙윙거리는 참나무, 더욱이 땅위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칡은 정말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
‘왜 저렇게 못나고 징그러울까? 나는 이곳에 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단 말이야.’
이렇게 생각하며 또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기뻐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몹시 더운 여름날이었다.
칡은 잎을 축 늘어뜨리고
“나 좀 너에게 올라가게 해 주렴. 땅 위는 덥고 답답해서 못살겠어.”
“안돼요, 아저씨는 내 가까이 오지 마셔요 징그러우니까 다른 곳으로 가 보셔요.”
어린 소나무의 다부진 말에 힘없이 고개를 떨꾼 채 혀를 끌끌 차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할아버지 소나무가 이 광경을 보고
“얘, 어린 소나무야! 그렇게 남을 무시하면 못쓴단다. 칡 아저씨께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
“싫어요. 난 정말 칡 아저씨가 싫단 말이어요.”
“넌 할아버지 말도 안 듣니?”
“싫어요.”
뾰로통하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동산위에 큰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고 별들이 잠에서 깨어나 도란도란 속삭이는 저녁이 되었다.
두 눈을 둥그렇게 뜬 부엉이 아줌마가 못 위를 지나다.
“어린 소나무야! 나 여기 좀 쉬어갈까?”
“안되어요. 내 옷에 똥이라도 묻으면 어떡해요?”
“아니야, 조심할게.”
“내 예쁜 가지의 껍질이 벗겨지면 어떻게 해요. 저 위의 할아버지 소나무에 가 보셔요.”
“얘는 참”
하고는 어린 소나무의 당돌한 행동에 혀를 차며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그 이튿날 저녁이었다.
갑자기 달님도 별님도 어디론가 가버린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더니 소나기가 오고 큰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온통 산 전체가 날아가 버릴 듯한 큰 바람에 어린 소나무는 정신이 아찔하였다.
‘작년에도 이 정도의 바람은 이겼으니까 별탈이 없을 거야.’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바람은 점점 세어져서 윙윙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였으며 뿌리까지도 흔들렸다.
“할아버지 도와주셔요.”
하고 위쪽을 향해 큰 소리를 질렀다.
“얘야, 나도 지금 허리가 부러질 정도이니 꼼짝할 수가 없구나.”
하고 말하는 할아버지 소나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뻐꾸기 아주머니 좀 도와주셔요.”
“흥, 조금 쉬어 갈 수도 없다고 할 때는 언제인데……. 나도 지금 내 살 곳 찾기도 바쁘단 말이
야. 혼자 잘난 체 하고 살아 보렴.”
하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 뿌리가 뽑힐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칡 아지씨에게는 부탁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너무도 지나친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급해진 어린 소나무는
“칡 아저씨……”
하고는 정신을 잃었다.
그 다음날은 밝은 해가 함빡 웃음을 머금은 채 맑은 호수와 산골짜기를 비췄다.
어린 소나무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았다. 틀림없이 호수에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소나무의 줄기를 껍질이 벗겨지고 잎도 갈갈이 찢어진 칡 넝굴이 꽝 잡고 있었다. 그 덕택에 어린 소나무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칡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저도 지금부터는 남을 도우며 살겠어요. 전번에는 정말 미안했어
요.”
“어제는 정말 큰 바람이었구나. 이렇게 모두 무사하니 기쁘단다.”
기운이 다 빠지고 힘없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어린 소나무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버릇없는 나를 위해 밤새껏 보살펴 주느라 잠도 못 주무시고 자기 몸까지도 다치신 칡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어린 소나무는 칡 아저씨의 아픈 팔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이 광경을 본 뻐꾸기 아저씨도 먼 산을 향해 뻐꾹뻐꾹하며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