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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전창수 지음
1. 난, 어쩌면, 이미 로그아웃되었는지도 모른다
2. 달라진 돌파구
3. 그놈 어시스트
4. 킥킥킥 아웃
5. 텔레레터 - 접속
난, 어쩌면, 이미 로그아웃되었는지도 모른다
1.
“시버, 시버, 시버…”
나의 아들인 그 녀석은 연신 싫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뭐가 싫으냐고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하기는 그른 저녁이었다. 이 녀석이 자꾸 왜 이러지? 내가 방송에 나온 게 싫다는 건가, 내가 싫다는 건가, 아니면 밥을 먹기 싫다는 건가? 나는 녀석에게 다시 물었다.
“아들! 싫은 걸 말을 해야지? 엄마가 잘 모르겠어서 그래.”
“시버, 시버, 시버…”
아들은 꺼져 있는 TV를 바라보면서, 차려놓은 밥은 쳐다보지도 않고 연신 싫다고만 했다. 도대체 이 녀석이 왜 이러는 걸까.
“아들? 밥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
“시버, 시버, 시버…”
도대체, 이 녀석이 오늘 왜 이러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녀석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은 안 먹을 거야?”
“머거 머거… 시버 시버…”
그러면서, 녀석은 밥을 흘겨넣은 채, TV를 계속 바라보았다.
“TV 켜줄까?”
“시버, 시버, 시버…”
아들 녀석은 계속해서 싫다고만 할 뿐, 그 이상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아들은 계속해서 밥을 먹으면서 꺼진 TV만 바라볼 뿐, 더 이상의 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다.
2.
“오늘은 발달장애 아들을 돌보면서 10년을 살아온 공공이의 엄마 설상희씨를 모시고,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설상희씨, 발달장애 아들을 벌써 10년째 돌보고 계시는데요,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제 아들인데, 힘들기는요. 아들이니까, 사랑스럽기만 하죠.”
“그래도,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드는데요?”
“아, 그러신가요? 오히려, 저는 아들을 사랑하기에 같이 있는 게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회자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아, 정말로 아들을 사랑하시는군요. 제가 잘못 생각한 거 같습니다.”
생방송에서 발달장애 아들을 두고 있는 설상희씨의 방송은 그렇게 어색하게 종료되었다. PD는 빨리 다른 화면으로 돌리라고 재촉하였고, 설상희씨와의 인터뷰는 부랴부랴 마무리되었다.
3.
“공공이 엄마, TV에 나왔네?”
“어, 봤어?”
“근데, 인터뷰를 뭐 이렇게 빨리 끝냈어?”
“글쎄, 원래 질문하기로 되어 있는 게 있었는데, 시간관계상 여기서 생략한다고 하면서 빨리 끝내 버리네?”
“아, 그런 거지? 어쩐지. 너무 싱겁게 끝나 버려서.”
“싱거웠어? 인터뷰가?”
“아니, 방송이.”
“방송이, 왜?”
“많은 발달장애 어머니, 아버지들, 그리고 발달장애인 센터 원장님들께서 잔뜩 기대하고 계셨는데, 몇 마디 하고 끝났잖아? 너무 싱겁게 끝나버려서 아쉬웠대.”
“아, 그래? 인터뷰를 좀더 길게 하자고 말을 할 걸 그랬나?”
“아, 다음에 혹시 또 나갈 기회가 있으면 좀 길게 하자고 해.”
“아, 그래야겠네.”
4.
남편이 들어왔다.
“밥은?”
“먹었어.”
“먹었는데, 일찍 들어왔네?”
“배고파서.”
“저녁은 안 해도 돼?”
“아들 녀석은 먹었어?”
“아, 대충 먹었어. 계속 싫다고만 하네.”
“뭐가?”
“나도 모르겠어. 아까 엄마가 TV에 나온 걸 보더니, 그 다음부터 계속 싫다고만 해.”
“TV는 껐어?”
“응, 껐어. 자꾸 싫다고 해서 껐더니, 그래도 계속 싫다고만 하네. 뭐가 싫다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 왜 그러지.”
그런 다음, 남편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더니, 자기 서재로 들어가려 했다.
“책 보려고?”
“아니.”
“그럼?”
“그냥 쉬고 싶어서”
“응 그래”
“나, 쉴게.”
“응.”
5.
“공공이 엄마, 오늘은 TV에 안 나와?”
“글쎄, 인터뷰는 하루로 끝나는 거 아냐?”
“출연료는 얼마나 받았어?”
“30만원.”
“에게? 고작 그거?”
“작은 건가?”
“어떤 사람은 인터뷰 한번 하면 3천만원도 받는다던데?”
“아, 그래? 작은 거구나.”
“그래, 다음에 또 나가게 되면, 출연료 좀 많이 달라고 해봐.”
“그래야겠네.”
6.
“아들, 오늘 또 왜 그래?”
공공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시버, 시버, 시버…”
“도대체 왜 그래? 왜 자꾸 싫다고만 해?”
나의 신경질에 아들 녀석은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시 시작했다.
“시버, 시버, 시버…”
아들 녀석의 눈물에 잠시 마음이 동하기도 했으니,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아들, 다음부터 싫단 말 하면, 엄마도 더 이상 아들하고 대화할 마음 안 생겨.”
그러자, 아들 녀석, 글썽이던 눈물을 터뜨려 버렸다. 그렇게 서럽게 울던 모습을 본 건, 내가 공공이를 본 이래 처음이었다.
7.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고?”
“밤새 울었는데,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아침에 그냥 맛있는 반찬 해줬어.”
“그게 다야?”
“응, 다른 때보다 반찬에 더 신경을 썼어.”
“그랬더니?”
“한참 울던 애가, 반찬을 먹더니, 뚝 그치더라구.”
“그리고?”
“더 이상 시버, 시버, 시버… 이 소리를 안 해”
“왜지?”
“모르겠어. 도대체 얘 왜 이런 거야?”
“우리도 모르겠어.”
“난 지금까지 공공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하면 정말 모르겠어.”
“그러게, 왜 그랬을까? 궁금하다.”
“공부를 좀 더 많이 해야 할 거 같아.”
“공부?”
“심리학 공부?”
“아니, 발달장애인에 대한 공부.”
“왜?”
“모르니까.”
“심리나 상담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가?”
“아닐 거야. 발달장애인에 대한 책도 나올 거야.”
“그걸 본다고?”
“그래야 할 거 같아.”
“뭐가 맞지?”
“모르겠어.”
“일단, 공부를 해 보고 난 다음에 결정하자구. 뭘 공부할지는.”
“근데, 이거 같이 하자구?”
“싫어?”
“싫어.”
“넌 또 왜? 왜 공공이처럼 말하고 그래?”
“싫다는 게 공공이 같은 거야?”
“아,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
“그래서, 공부 안 할 거야?”
“난 안 해.”
“왜?”
“왜 싫냐고?”
“응.”
8.
남편이 출근하려고 서재에서 나오고 있다.
“밤새 거기 있었어? 거기서 잔 거야?”
“응.”
“왜?”
“그걸 말해야 돼?”
“말하기 싫어?”
“응”
“왜?”
“그냥.”
9.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그런 일이 있었어?”
“응, 다혜는 안 와?”
“여기 있으면, 공부 같이 해야 할 거 같다고 자기는 오기 싫대. 공부 끝나거든 부르래.”
“그래?”
“응.”
“그리고”
“응”
“이 말 해서 미안한데.”
“응”
“우리도 공부 안 해.”
“왜???”
“하기 싫어서”
10.
아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웃음을 보였다. 그러다가 또 다시 “시버, 시버 시버”를 하더니, 다시 “괘안아져쪄”라며, 괜찮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있는 요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늘은 뭐 해 주까?”
“마싰는 거, 마싰는 거, 마싰는 거.”
“알았어, 맛있는 거 해줄게. 그럼, 맛있는 거 같이 찾아볼까?”
녀석이 연신 깔깔대며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냉장고 속에는 앞으로 익혀가야 할 많은 요리들이 대기 중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각지 않기로 했다. 냉장고 안에서 들리는 소박한 소음들이 하나 둘 나의 마음에 들리고 있었다. 그렇지! 녀석, 그것 때문이었구나. 이제야 이해한 녀석의 마음이 내게도 들려왔다. 나는 또 하나의 결심을 하였다. 그 결심은 내게 공공이를 더욱 더 이해하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냉장고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 한편에는 남편까지 들어 있었다. 공공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길게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달라진 돌파구
01.
“한희야!”
“왜 불러?”
“나랑 놀자!”
“엄마 왜 그래?”
“장난 한번 해 봤어!”
“근데, 뭐 먹는 중이야?”
“호빵”
“왜 이렇게 조금씩 먹어?”
“목 말라서”
“음료수에 마시게?”
“음료수가 참 맛있어. 최고급 과일로 갈아 만든 건데, 세 번씩이나 농축한 거래.”
“말이 돼?”
“뭐가?”
“과일을 세 번씩 농축하면, 그게 음료수야?”
“그게 음료수가 아니고 뭐야?”
“내가 보기엔 그건!”
“그건?”
“밥풀이야”
“한희야!”
“농담 같은 진담!”
02.
“엄마가 호빵 줄게!”
“엄마, 나도 호빵 있어.”
“그래도, 내가 주는 호빵은 달라”
“어떻게 다른데?”
“말을 해.”
“그게 무슨 소리야?”
“한번 시험해 볼까?”
“진짠지 한번 보고 싶네.”
나는 호빵을 한희에게 주고 호빵에게 말을 시켜보라고 했다.
“호빵, 너 진짜 말해?”
“빙그레.”
“뭐야 그게?”
“다시 한번 해봐.”
“호빵아, 웃지 마.”
“흑흑!”
“엄마, 진짜!”
“재밌잖아.”
“하나도 없어, 재미.”
“그럼 뭐 재밌는 거 없어?”
“엄마?”
“응?”
“내 호빵 어디 갔어?”
“안 속아!”
“아니, 진짜로 내 호빵 어디 갔어?”
“응?”
“나, 방금까지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장난치지 말고.”
“장난이 정말 아니고.”
“아니라고?”
“진짜로 사라졌어.”
“잠깐만.”
나는 한희와 함께 집안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호빵아, 호빵아.”
“엄마, 뭐하는 거야?”
“날아갔을지도 몰라서 찾고 있어.”
“그게 말이 돼?”
“호빵이 말하고 날아다닌다는 것을 믿으면.”
“믿으면?”
“정말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질 텐데.”
“엄마, 무슨 엉뚱한 소리야?”
“그걸 믿으면.”
“응.”
“호빵을 통째로 삼킬 수가 있어.”
“엄마, 무슨 헛소리야? 호빵을 어떻게 통째로 삼켜?”
“통째로 삼키면.”
“응.”
“아주 재미있는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질 거야.”
“엄마, 그 말 정말이지?”
“정말이야. 한번 믿어보지?”
“잠깐,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엄마가 여태까지 너를 키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아, 맞다.”
“그럼, 믿을 수 있지?”
“아, 믿을 수 있어. 엄마는 직업이 없지.”
“그래, 맞아. 아빠도 없고, 직업도 없는데, 널 어떻게 키웠겠어. 호빵 덕분이야.”
“아, 그럼?”
“그래. 너도 믿어 봐. 이제 나의 호빵을 너에게 물려줄 때가 됐어.”
“그래야겠네.”
“호빵아, 호빵아. 어디 있니?”
“엄마, 호빵이 대답 안해?”
“안 하네.”
“내가 불러볼게.”
“그래.”
“호빵아, 호빵아!”
“나, 여기 있어. 여기 너무 캄캄해.”
“어, 호빵이 드디어 대답했다.”
“엄마, 호빵 목소리가 원래 이래?”
“아니, 원래는 아주 어른스럽고 중후한 남자 목소리였는데, 갑자기 애기 목소리는 왜 나는 거지? 호빵아, 너 누구니?”
“나, 방금 태어났어. 근데 여기 왜 이렇게 캄캄해? ”
“아, 또 태어났구나. 캄캄해?”
“응, 여기 너무 캄캄해. 나 좀 꺼내줘.”
“얘!”
“응?”
“화장실 가서 꺼내야겠다.”
“아, 진짜!”
“빨리!”
“알았어!”
03.
“엄마, 얘야?”
“잘 씻었지?”
“호빵이 먹을 것처럼 안 생겼네?”
“얘!”
“응?”
“진짜 호빵이면 먹었지.”
“아, 이름이 그냥 호빵이야?”
“응. 내가 그냥 호빵이라고 부르는 거야.”
“아, 그런 거야?”
“응. 호빵처럼 즐거움을 주라고 호빵이라고 불러. 우리 호빵 먹으면 즐겁잖아.”
“아, 그런 거구나.”
“근데, 얘는 왜 내 뱃속에 들어가 있었지?”
“호빵아, 너 거기 왜 들어가 있었어?”
“어, 나 지금 태어난 거 아니야?”
“아, 그런 건가?”
“엄마, 호빵은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어?”
“처음에?”
“응.”
“호빵아?”
“응?”
“너 아빠가 누군지는 아니?”
“내가 아빠도 있어?”
“있을 리가 없나?”
“없을 걸. 근데, 나는 왜 이렇게 작아? 둘은 이렇게 큰데?”
“아, 그게 문제네.”
“잠깐만, 호빵, 너 남자야, 여자야?”
“그런 것도 있어?”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먹기도 해야 돼?”
“잠깐만, 얘 생식 기능이 아예 없네.”
“먹으면 안 되겠다.”
“호빵아, 너 왜 거기 있었는지 몰라?”
“응. 나 태어나보니 캄캄했고 밝은 데로 나오니까 둘이 있네. 나 왜 여기 있는 거야?”
“아빠는 갔나 보다, 한희야.”
“아, 그럼?”
“얘를 남겨 두고 갔나 봐.”
“엄마?”
“응?”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냐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호빵을 처음 알게 된 건.”
“알게 된 건?”
“네 아빠를 알고 나서부터인데.”
“응.”
“호빵이 아빠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호빵이 데려갔어. 아빠를. 그래놓고.”
“그래놓고?”
“나한테 와서, 아빠를 살리고 싶으면 자기 말을 들으라고.”
“어?”
“호빵이 우리를 먹여 살린 거 아니야?”
“호빵이 아빠를 데려갔으니까, 자기가 우리를 먹여 살리겠다고 자기가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어.”
“아, 그럼?”
“호빵이 없으면, 우리는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없어. 그런데, 이 애를 남겨놓았다는 건, 이애가 우리를 먹여살려야 하는데.”
“엄마, 나 직장 구하면 되는데.”
“스무 살인가?”
“응. 이제 나 직장 구할 수 있어.”
“그래?”
“내가 이 호빵 아이 먹여 살릴… 아니지. 얜 안 먹어도 되지.”
“얘가 아니라, 우리가 먹고 살아야지.”
“그럼?”
“당장 직장 구할 수 있어?”
“얘는?”
“내가 데리고 있을게.”
“그래, 알았어. 당장 전화해 볼게.”
“선불 받아야 되는데.”
“가불해 주는 직장으로 알아볼게, 선불이 아니라.”
“알았어.”
04.
“직장은 구했어?”
“응.”
“가불은?”
“받았어, 3개월치 먼저 받았어. 중간에 그만두거나 하면, 두배로 변상해야 돼.”
“그럼, 이제부터.”
“나, 잠만 자고 바로 회사가야 돼.”
“이 애는 내가 데리고 자?”
“응.”
“알았어. 호빵아, 자자.”
“자는 게 뭐야?”
“잠도… 안 자는구나, 참…”
“엄마, 얘 안 자면 어떻게 해야 돼?”
“엄마도 못 자.”
“어, 그럼 어떻게 하려고?”
“호빵아빠가 있으면 해결되는데, 어디로 간 거지, 대체.”
“호빵아빠는 자?”
“자는 게 아니고, 호빵아빠는 내가 잘 때면 다른 데 어딘가로 갔다 와. 그런데, 이 애는 안 자면 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아, 난 자야 되는데.”
“괜찮을 거야. 자고 회사 가. 먹고 사는 게 먼저지.”
“알았어, 나 잘게”
호빵아이는 뭐가 좋은지,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호빵아이에게 대답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라고 부르면 돼?”
“그래. 엄마라고 불러.”
“아니야, 내가 엄마야.”
“응?”
“내가 엄마고, 이 분은 할머니. 호칭 헷갈리지 마.”
“그래? 그럼, 이쪽은 엄마, 이쪽은 할머니?”
“한희야, 그냥 내가 엄마하면 안돼?”
“엄마, 나 잘게. 내일 아침에, 아니, 나중에 얘기해.”
“알았어.”
“엄마라고 불러, 할머니라고 불러?”
“호빵아.”
“응?”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아, 그럼 둘다 엄마라고 부를래.”
“응?”
“이쪽은 한희 엄마, 이쪽은 한 엄마.”
“아, 그래. 알았다.”
“그럼, 나 정말로 잘게”
“그래, 알았어.”
“호빵아?”
“응?”
“너는 정말로 왜 거기 있었는지 몰라?”
“응.”
“왜 거기에 있었을까.”
“근데, 한 엄마.”
“응?”
“엄마가 먹는 거 그거 나도 먹으면 안돼?”
“먹을 수 있어?”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 그거 뭐야?”
“이거 빵이라는 건데?”
“무슨 빵?”
“찐빵.”
“나도 줘.”
“그래, 여기 조금 떼어줄게”
나는 호빵아이에게 찐빵의 한 부분을 살짝 떼어서 건넸다. 호빵아이는 그 빵을 맛있게 쩝쩝 먹었다.
“맛있어?”
“응.”
“더 줄까?”
“응.”
“그래, 더 줄게.”
“응.”
나는 찐빵의 부분을 조금 더 떼어서 호빵아이에게 건넸다. 호빵아이는 또 찐빵을 맛있게 먹었다.
“어때?”
“너무너무 맛있어. 더 줘.”
“응?”
“그거 그냥, 나 다 줘.”
“응.”
나는 찐빵을 통째로 호빵아이에게 건넸다.
“엄마도 먹어야 되는데?”
“엄마도 먹어야 돼?”
“응.”
“그럼, 잠깐만.”
호빵아이가 입 속에서 우물우물거리더니, 호빵의 일부를 입에서 뱉어내고는, 거기에다 바람을 훅 불었다. 조금 후, 호빵 세 개가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먹어 봐.”
“너도 할 줄 아는구나.”
“나도?”
“아빠도 그랬는데.”
“아, 그런 거였구나.”
“응!”
“호빵아.”
“응?”
“앞으로 우리 계속 먹여 줄래.”
“응. 그럴 수 있어. 근데, 꼭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뭔데?”
“아빠라고 했던 그 사람.”
“응.”
“그 사람을 찾아줘.”
“아, 그래야지.”
“그럼, 내가 먹여줄게.”
“그럼, 한희 직장은 어떡하지?”
한희의 잠꼬대가 무르익어갈 무렵, 호빵아이는 찐빵을 먹고 나랑 조금 얘기를 하더니 놀랍게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호빵아이도 꿈결에서 아빠를 찾고 있는지, 아빠, 아빠를 계속 외쳐대었다. 나는 꼭 호빵아이의 아빠를 찾아주리라 다짐했다. 한희는 직장을 계속 다녀야겠지. 한희의 인생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미더움으로 다가왔다. 한희의 인생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몸을 떨었다. 호빵의 아빠가 없다는 사실은 내게 너무도 슬픈 일이었다.
그놈 어시스트
1.
그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놈은 나를 모른다. 내가 그 녀석의 돈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그 녀석은 분명 내가 목사인 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녀석을 속이는 것은 너무 쉬웠다. 나는 그 녀석에게 내게 돈을 바치면 영생을 주겠노라고 했다. 너무 쉬웠다. 그래서 그 영생을 얻겠다고 그놈은 내게 전 재산을 바쳤다. 이제 이놈에게 내가 만든 영생약을 주면 된다. 그놈과는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2.
나는 하늘에 있다. 분명 그놈에게 영생약을 먹였는데, 내가 왜 하늘에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놈이 내게 물어본 딱 한 마디 한 것이 기억났다.
“나, 이 약 먹으면 어떻게 돼?”
“어떻게 되긴, 영생을 얻지!”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그놈은 그 말을 했고 약을 먹었다. 근데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3.
눈앞에 그놈이 보인다. 그놈도 분명 영생약을 먹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영생약을 먹지 않았는데 왜 여기 있는 것일까. 그놈이 내게 말했다.
“덕분에 진짜 영생을 얻었네요!”
미칠 노릇이다. 나 때문에 영생을 얻다니.
“목사님, 그럼 목사님도 영생을 얻으신 건가요?”
“아, 네… 네, 그렇군요. 환영합니다. 하하하…”
4.
여기가 어디인가. 내 두 손이 뒤로 묶여 있고 눈은 가려져 있다.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은 어딨어?”
눈 가리개를 푼다.
“나 누군지 알지?”
“아니, 전도사님이?”
“내가 왜 네 전도사야? 나 전도사 아닌 거 알잖아!”
“아니, 그러니까 여기 왜?”
“왜는? 돈은 어딨어?”
“돈, 돈은… 근데, 옆에 있는 분은 누구?”
“내 친구야. 이분도 목사님이셔. 근데, 이분은 진짜 목사님이야.”
“네? 그게 무슨 소리?”
“알게 될 거야.”
5.
눈을 뜨니, 하늘이 온통 하얀색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 옆에 누워 있는 뭔가를 보았는데, 고양이다. 이놈은 왜 여기 있는 거지. 너무 평온하게 자고 있는 고양이. 나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너, 왜 여기있니?”
“야옹!”
“너, 왜 여기 있냐고?”
“야옹!”
“야, 너 왜 여기 있냐고!!!!!!!!”
“야옹!”
“야, 너 진짜 그럴래!!!!”
“야옹!”
하늘이 점점 어두워진다.
6.
“목사님, 영생을 얻으니 어떠신가요?”
“영생을 얻으니 좋은데, 여기는…”
“목사님, 지금 어디 계신지는 알고 계신가요?”
“왜 벽이 온통 연두색이죠?”
“목사님,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그게 무슨…”
“알게 될 거예요…”
7.
하늘이 온통 푸른색이다. 그놈은 내게 여전히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놈에게 말했다.
“내게 전 재산을 바쳤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영생을 얻을 걸 믿겠느냐?”
“목사님,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시고 계시는 건가요?”
“그게 무슨 말이느냐?”
“저, 지금 갖고 있는 돈이 없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냐?”
“집에 두고 왔어요. 돈이요.”
“음… 그… 그러하냐?”
“목사님께서 돈 없어도 재산을 바치면 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 그러하냐?”
“네, 그래서 저의 전 재산인 영생을 바쳤잖아요!”
“그… 그러하냐?”
“네, 그러한대요?”
“그, 그럼 돈은 어디 있느냐?”
“저 집에 있어요. 돈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좀 드릴 수 있는데요?”
“그…그러하느냐?”
하늘에 있는 파란색이 갑자기 맑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영생을 바라는 그놈의 목소리가 맑은 구름 사이로 덮쳐왔다.
킥킥킥 아웃
나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뭐가 그리 분주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부다. 가정이 있고, 딸이 있다. 물론, 직장까지 있다. 평소에는 딸을 등교시키느라, 밥 차리느라 분주했을 터인데, 오늘은 달랐다. 토요일이다. 출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임이 있다. 무슨 모임이냐면, 그냥 되는대로 모임이다. 그날그날에 따라 주제가 달라지는 모임이다. 어떤 날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어떤 날은 그냥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또 다른 날은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며, 어떤 날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수다만 떨다 오기도 한다. 보통은 혼자 가지만, 때로 가족을 초청하기도 한다. 아이만 데려갈 때도 있고, 남편이 같이 갈 때도 있다. 물론, 그런 날은 특별한 날이 된다.
매일 토요일 아침에 혼자 갈 때마다 남편의 양해를 구해야 하고, 딸에게도 잘 설명해줘야 한다. 이 인간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삐지곤 한다. 남편도 딸도 그렇다.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할 때는 반드시 딸도 같이 간다. 아직은 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만 데려가려면 굳이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날은 잘 갔다 오라며 남편은 혼자 신났다.
오늘은 남편이 신나는 날이다. 나의 여섯 살 배기 딸은 엄마를 좋아라, 하며 따라 나선다. 오늘은 아이를 데리고 모임에 참석하는 날이다. 그리고 아이들끼리 노는 걸 도와주는 날이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우리는 엄마들끼리 많이 머리를 맞댄다. 머리를 맞댄 끝에 찾아낸 해결책이라곤 아이들끼리 노는 걸 그냥 지켜보다가 필요하면 뭔가 해주기. 어쩌면, 그게 가장 지금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임 장소는 매주 달라진다. 주로, 한명씩 돌아가면서 집을 장소로 내주지만, 때로는 카페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체육관을 대여하기도 한다. 오늘은 아이들을 위해 마음껏 뛰놀라고 넓은 체육관을 대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이 놀 기구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러고 보니, 아이들한테 뭐하고 놀 건지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쳤다. 왜, 이런 기본적인 것을 잊어버렸을까. 자책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급한 대로 딸에게 물었다.
“주영아, 오늘 친구들하고 같이 놀 건데, 뭐 했으면 좋겠어?”
“수건돌리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주영이가 대답했다.
“수건돌리기 할 줄 알아?“
“할 줄 알아. 재밌어.”
나는 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마침, 꽃무늬로 장식된 손수건이 하나 있었다. 꼭 손수건이 아니어도, 체육관에 수건은 비치되어 있을 테니, 걱정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도 수건돌리기를 하고 싶어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일단 수건돌리기를 해 보자고 제안할 터였다. 다른 아이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나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면 될 터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 둘 예정이다.
체육관에 도착했다. 체육관에서는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가야 했으므로, 나와 주영이는 발에 맞는 실내화로 갈아 신고 신발은 신발장에 넣어두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몇몇의 엄마들이 나와 있었다
“아, 주영엄마. 일찍 왔네요.”
“아, 다른 분들은요?”
“뭐, 아직 시간이 안 되었으니”
“오겠죠. 그것보다 애들은 벌써 신났네요.”
“어, 그렇네요. 주영이도…”
가서 놀아, 라고 하는 말도 튀어나오기 전에 주영이는 벌써 다른 아이들이 뛰어노는 데 합류했다. 아이들은 체육관을 여기저기 휘저으며 방방 뛰어 다니고 있었다. 술래잡기를 하는 듯도 했고,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애들은 역시…”
“주영엄마, 오늘은 그냥 애들끼리 저리 놀게 하고 우리끼리 앉아서 얘기나 하다 가는 게 좋겠어요.”
“하하, 그렇네요. 어, 그런데 이분은?”
“아, 참 주영엄마 처음 보시죠? 이분은 공연하시는 분이예요. 오늘 시간이 나서 한번 와보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데려왔어요. 다른 엄마들한테는 미리 말씀드렸는데, 주영엄마한테만 말씀 못 드렸네요. 오늘도 공연이 있는데, 시간 날 때마다 여기 모임 참석하고 싶다네요.”
“아이가 있나요?”
“어, 저기 있네요. 신났네. 영호라고.”
수건돌리기 하자는 말은 미처 꺼내지도 못했다. 이어서 다른 엄마들도 속속 도착했다. 다른 아이들도 애들이 뛰어노는 걸 보더니, 거기에 합류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엄마들도 정신없긴 마찬가지. 그냥, 애들 뛰어노는 걸 보다가 내가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저러다 다칠라.”
선영 엄마처럼 걱정하는 엄마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다가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남편 이야기, 애들 이야기, 그리고 시어머니 이야기. 온갖 이야기들이 다 나왔지만, 역시 그 중 탑은 아이들 교육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을 1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매번 뛰어놀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토요일마다 아이를 남편한테 맡기고 오는 것도 좋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한 나이인 거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대했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는 것도 필요하다고, 가끔은 우리들도 자유를 누리는 것이 좋다고 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뉘었지만, 교육적 측면에서는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나의 의견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오전 시간이 훌쩍 갔다. 이제, 점심 시간이 다 되어가므로 각자의 집으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불렀다.
“주영아, 이제 가야 할 시간이야. 어서 와라.”
“어, 벌써? 아앙, 더 놀고 싶은데.”
“이제 가서 밥 먹어야지. 다음번에 또 오자.”
“아앙, 다음번에 또 언제?”
“한 달 후에?”
“언제 기다려, 아앙…”
“오늘따라 왜 이래?”
“꼭 가야 돼?”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은 이미 체육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럼, 가야 돼지. 다른 아이들은 벌써 가고 있는데?”
“아앗, 벌써 다 갔어, 나만 두고, 아앙. 정말!”
나는 주영이를 달래며 이제 그만 가자며, 신발장으로 향했다.
“어, 신발이 어디 갔지?”
그때까지 나처럼 애들을 불러 모으느라 진땀을 뺀 경화 엄마가 나를 보았다.
“어, 신발 없어요?”
“이거 내꺼 아닌데?”
나는 신발장을 다시 뒤져 보았다. 경호엄마의 신발과 그 신발 외에는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아, 이거. 오늘 처음 온 그 영호엄마인가? 그분꺼 같은데?”
“아, 이런. 처음 오셔서 헷갈리셨나 보네요. 어쩌지? 그 신발 월요일에 신고 가야 하는데.”
“아, 잠깐, 화영엄마가 연락처 알 거에요. 화영엄마가 데리고 왔으니까.”
나는 경호엄마가 화영엄마한테 전화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조금 후, 경호엄마는 내게 영호엄마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영호엄마 되시죠?”
“아, 맞아요. 누구시죠?”
“저, 오늘 모임에서 뵈었던 주영엄마라고 하는데요.”
“아, 기억나요. 웬일이세요?”
“저, 혹시 신발 맞게 신고 가셨나요? 저랑 신발이 바뀐 거 같은데.”
“아, 혹시 이거 주영엄마 신발? 아, 제가 정신없이 나오다 보니, 신발을 바꿔 신은 것도 몰랐네요. 제가 가고 싶은데, 지금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가지를 못하는데, 혹시 급하신 거면 이리로 오실 수 있나요?”
“아, 제가 가죠. 그 신발 월요일에 신어야 되거든요. 공연장이 어디예요?”
나는 주영이랑 영호엄마가 알려준 공연장으로 갔다. 가면서, 주영이가 웃으면서 물었다.
“엄마, 신발 없어졌어?”
“응. 지금 찾으러 가는 중이야.”
“밥 먹으러 집으로 간다매.”
“신발부터 찾고 먹으러 가자.”
“킥킥킥”
“뭐가 그렇게 웃겨?”
“아니, 그냥.”
주영이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공연장입구에서 영호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여기서 어떻게 가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공연장 무대가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관객석이 보였다. 주영이와 내가 멀뚱히 서 있자, 영호엄마가 말했다.
“아참, 잠깐만 여기 있으세요. 신발 곧 갖고 나올께요.”
“신발, 신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자, 영호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공연장에서는 다른 신발을 신거든요. 금방 올께요.”
영호엄마가 무대의 뒤쪽으로 사라졌다. 1분쯤 지났을까. 공연이 벌써 시작되려 하는지, 관객석에 사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영호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서 나는 그냥 기다렸다.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것이 느껴졌다. 주영이는 옆에서 계속 킥킥대고 있고,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참 난감했다.
관객석에 사람들의 거의 찰 때 즈음, 영호엄마가 나타났다. 그런데, 신발이 없다. 나는 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데, 영호엄마는 나를 첫 손님으로 소개했다.
“저희 공연에 참석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첫 손님이자, 이 무대를 같이 꾸며주실 주영이와 주영엄마입니다.”
나는 다짜고짜, 나를 이 무대에 올린 영호엄마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 상황을 즐거워해야 할지 난처했다. 하지만, 옆에서 주영이는 계속 킥킥대고 있었다. 그러자, 이 모든 걸 주영이도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화를 내려는 마음이 사라졌다. 주영이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구나. 그래, 주영이가 언제 그렇게 웃어보겠느냐며 나는 이 무대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주영이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너무 신났고, 나는 끝나고 내 신발을 돌려받았고, 공연에 참석해줘서 고맙다며 사례비와 추가로 내 신발과 똑같은 신발 하나를 더 선물 받았다. 그러면서, 미리 연락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게 누구의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아이들 의견이었다고 한다. 주영이도 포함되느냐고 물었더니, 주영이가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애들은 계획이 다 있었군요…”
“네, 그렇죠. 어른들을 놀리는 게 재밌나 봐요? 그래도 지나치게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을 보면 참 기특하기도 해요.”
“선이요?”
“네, 주영이가 그러더라구요. 엄마가 마음이 이상해지지 않게 해 달라구요.”
“아, 그런 말도 했었군요.”
“네, 참 똑똑한 아이를 두셨어요. 그리고 오늘 공연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공연하시는 거면, 종종 보러 올께요.”
“네, 그래 주시면 저도 감사하지요. 저 다음 주에 모임 참석해도 되지요?”
“물론이죠. 그럼, 다음 주에 뵐께요.”
“네, 안녕히 가세요.”
“주영아, 가자!”
신나게 웃고 있던 주영이가 나를 따라왔다. 집에 왔는데, 남편이 TV를 보고 있었다.
“오늘 늦었네? 재밌었어?”
“밥은?”
“기다렸지. 내가 밥도 다 차려놨어.”
“어라? 이 인간이 웬일이야?”
“웬일은? 주영아, 재밌었어?”
주영이가 또 킥킥댔다.
“뭐야 이거? 혹시 당신도 알고 있었어?”
“제대로 먹혔나 보네.”
주영이는 여전히 킥킥대고 있었다.
“아니, 내가 뭘 알어.”
그러면서 남편도 히죽거렸다.
“그래, 나 계속 놀려먹어라. 그렇게 좋으면.”
주영이의 킥킥대는 소리는 계속 들리고, 남편도 계속 히죽거렸다. 남편과 딸의 사이가 언제부터 저렇게 좋았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씩씩거리면서, 남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주영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런 나를 보면서 연신 깔깔대고 있었다. 뭐, 그렇지. 딸이 웃으면 좋지 뭐. 나의 하루는 그렇게 즐거운 듯, 서러운 듯 가고 있었다.
텔레레터-접속
1.
“당신은 성경 전체통독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경수가 연습장 속의 그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지?’
경수는 그 글자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는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근데 이건 왜 글자가 저절로 써지지?’
경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써진 글자에 대답을 한다.
“아니요, 없어요.”
그러자 다시 글자가 저절로 써진다. 마치 경수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어볼 마음은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어요. 왜 묻는 거죠? 그리고 이건 뭐예요?”
“이건 텔레레터라고 합니다.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접속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구요. 혹시 저랑 대화를 원하십니까?”
“정말 사람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게 가능한 건가요?”
“지금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마구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레터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일 거고, 저 역시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저는 지금 텔레레터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와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 레터를 받으시는 분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는 그냥 학생이에요. 학생이고, 철학을 전공하죠. 근데, 이 레터는 왜 되는 거죠?”
“아마도 하나님께서 많은 걸 이루시기 위해 저에게 주신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요?”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인가요? 이거 전에는 아주 안 좋은 거였다는데?”
레터 속의 그 사람은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레터 속의 그 사람은 사라졌다.
2.
다음 날, 영희에게 물었다.
“영희야, 혹시 텔레레터라고 알아?”
“아, 너도 드디어 알게 되었구나?”
“알아?”
“요즘 유행하는 거야.”
“유행이라니?”
“요즘 텔레레터로 대화하는 사람 많아.”
“무슨 대화?”
“그 사람이 여러 가지 물어봐. 너한테 뭘 물어봤어?”
“성경 볼 생각 있냐고.”
“나한테는 카피 써 본 적 있냐고 물어봤는데.”
“사람마다 다른 질문이 가나?”
“그런 거 같아.”
“근데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알아.”
“몰라 사람인 거 외에는 몰라.”
“사람이야?”
“사람인 거 확실해. 왜냐하면 사람이 아니면, 24시간 대화가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근데, 부르면 대답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대화하다가도 자기 화장실 간다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그러니까 사람 맞는 거지?”
“아, 그러네. 사람은 맞네. 근데 이게 어떻게 가능해?”
“옛날에도 되지 않았어?”
“아, 그때는 못된 귀신들이 하는 거 아니었어?”
“아, 그런 거였나?”
“그래서 그때는 귀신들이 하는 줄 알고 그런 말 많이 했잖아. 악한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아, 그렇지 맞아. 그래서 그때는 거의 서로 간에 속고 속이는 거였지.”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
“지금은 그냥 물어보기만 하던데?”
“어, 왜 물어보기만 하지?”
“그리고 특별한 얘기는 안해?”
“몇 번 물어보고 끝이야.”
“그게 좋아?”
“응, 나한테 누군가 뭔가를 물어봐 준다는 거,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걸 말할 수 있다는 거. 그게 좋던데?”
“넌 안 그래?”
“아니, 난 얘기하다가 끊겨서.”
“아, 제대로 얘기 못했구나. 그 사람 그래. 얘기하다가도 무슨 일 생기면 막 끊기고 그래.”
“아, 진짜 사람 맞구나.”
“사람 맞으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어떻게 해? 그럴 때는?”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얘기해 보곤 하지. 그러다 보면, 우리끼리 더 얘기하다 보면 문제가 풀리기도 해.”
“아, 그렇게 해?”
“응, 혹시 그 사람한테 해결해 달라고 떼쓰거나 조르면 그 사람이 그렇게 얘기한대. 내가 그걸 왜 해? 라고 얘기한대.”
“그래? 그렇게 얘기한대?”
“자기는 그냥 물어보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해결은 스스로 하는 거라고 얘기한대.”
“아, 그럼 진짜로 속이는 사람은 아니네?”
“맞아, 속이는 사람은 아니야. 다음에 얘기가 되면, 몇 개 물어봐 달라고 해봐.”
“아, 그래볼까? 점점 궁금해지네”
“그치, 나도 그렇게 빠져들었지. 텔레레터의 세계에.”
“그래?”
“근데, 주의할 게 있어.”
“뭔데?”
“너무 재밌다고 막 하면 안 돼.”
“왜?”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그리고 거기에 빠져서 자기가 할 것들을 놓치면 안 돼.”
“아 그렇지. 맞아.”
“그러니까, 여유가 되는 시간에 해야지. 자기 할 것들 내팽개쳐 놓고 하면, 그 사람한테 혼날지도 몰라.”
“아, 그래?”
“응, 그러니 혼나고 싶지 않으면 조심해.”
“아, 응… 알았어…”
3.
“저와 이야기해 보시겠습니까?”
드디어 경수가 기다리던 텔레레터의 반응이 왔다.
“네, 하겠습니다. 질문 좀 해주세요. 어떤 질문이든지요?”
“어떤 질문을 원하십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지금 원하시는 공부가 있습니까?”
“저, 지난번에 얘기했던 철학과 학생인데요. 혹시, 철학에 관해 뭐 질문하실 건 없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네에.”
“상담에 관련된 책을 100권 이상 읽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철학과도 상담에 관련된 책을 읽어야 하나요?”
“읽으면 안 되나고 생각하시나요,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아,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저, 읽은 게 없는데 어떻게 해요?”
“그렇다면, 읽으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읽을 의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 보세요.”
“네, 잠깐만요.”
경수는 인터넷서점에 접속한다.
“접속했어요”
“상담을 검색해 보세요.”
“네 검색했어요”
“거기서 책을 하나 골라보세요.”
“이유가 많으니 그냥이라고 할 수밖에”
“그 책을 선택하셨습니까?”
“네,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철학과님에게 미션을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뭔가요?”
“제목을 보고 그 느낌을 적어보세요.”
“아, 제목만 보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상담에 관련된 책을 100권 이상 읽으신 후에 저를 불러주세요.”
“언제든 부르면 대답해 주시나요?”
“말씀드리자면, 저는 당신의 필요에 따라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움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상담에 관련된 책 100권 이상을 읽고 난 후에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당신의 선택이 됩니다. 만약 그때에 제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당신의 길이 따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 느낌을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이유가 많으면 그냥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은 대답해 드리지만, 제가 모르는 부분은 대답해 드릴 수 없네요. 철학과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유가 없으면 그냥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유가 많으면 그 이유들을 일일이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철학과님, 그럼 이 텔레레터를 종료하시겠습니까?”
“아니, 벌써요?”
“철학과님, 저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럼 이만 접속을 종료해야 할 듯합니다. 철학과님, 그럼 다음 기회에 또 뵐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아, 네에.”
이렇게 금방 끝난 경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연습장 속의 그 사람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4.
“영희야”
“응?”
“텔레레터 속의 그 사람은 왜 이렇게 금방 나가 버려?”
“우리도 길게 얘기 안하는데?”
“우리라면?”
“아, 우리? 같이 모여서 얘기하는 애들 있어.”
“그래?”
“우리, 같이 모여서 얘기하다 보면, 접속이 되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 같이 얘기하곤 하는데, 길어야 5분이야.”
“그래?”
“우리도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는데, 그렇게 얘기하곤 사라져.”
“아, 도대체 그 사람 누구인 거야?”
“사람은 맞는 건 확실한데, 알아야 돼?”
“아, 궁금해 미치겠어. 누군지.”
“왜?”
“그 사람하고 직접 얘기했으면 해서.”
“왜?”
“텔레레터로 하니까 얘기하다 말아버리는 것 같아서.”
“우린 아닌데.”
“아니야?”
“그럼 우리 모일 때 같이 모여서 해 볼래”
“그래도 돼?”
“응, 그래도 돼.”
5.
“몇 명이야?”
“경수까지 다섯 명”
“드디어 다섯 명이 된 거야?”
“응.”
“다섯 명 모이면 얘기하랬어.”
“아, 좋아! 드디어 다섯 명이다!”
“그럼, 시작해…”
“잠깐만.”
“왜?”
“이분 접속 가능 시간이”
“아 그렇지… 아직 5분 남았다.”
“경수야, 우리 5분 후에 이분하고 연습장으로 얘기할 건데.”
“아, 텔레레터로?”
“응, 텔레레터로.”
“우리 중의 대표자가 쓸 거야. 우리 5명 모이면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했어.”
“뭔데?”
“텔레북, 텔레신문, 텔레상담, 텔레토론, 텔레말씀”
“이게 다 뭐야?”
“한 사람당 하나씩이래.”
“그래서 다섯 명 모이면 이거 한다고 한 거야?”
“응.”
“그래서 한 사람당 하나씩 맡으랬어.”
“아, 그래?”
“난 뭐야?”
“텔레말씀”
“말씀이 뭐야?”
“성경이라고”
“아 내가 왜?”
“우리 다 교회 다니는데, 너만 안 다니니까.”
“그런 법이 어딨어?”
“안 할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할 거지?”
“할게”
6.
“저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 보시겠습니까?”
“네, 저희 준비되었어요.”
“그럼 첫 번째는 누구십니까?”
“기적이 1번이요.”
“어떤 걸 하시겠습니까?”
“저, 고민이 있는데요?”
“어떤 고민이 있으십니까?”
“텔레레터란 게 정말로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텔레레터로 하는 이 모든 걸 긍정적인 것으로 만드시겠습니까, 부정적으로 만드시겠습니까?”
“아, 그럼 그걸 우리가 만드는 건가요?”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긍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긍정적인 면을 보고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가도록 노력한다면 텔레레터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좋은 것이 될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저, 생각 좀 해 봐야 할 거 같아요. 다음 사람으로 넘겨도 되죠?”
“다음 분은 누구십니까”
“저, 텔레북 하고 싶어요.”
“아, 그러십니까. 그럼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책의 어떤 부분을 무작위로 펼쳐서 송신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은 / 단순히 일을 열심히, /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 적당한 쉼과 몰입의 시기를 /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 안상현 『네가 혼자서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중에서“
“이거 보고 막 뭔가 떠오르는데, 어떻게 해요?”
“떠오르시는 대로 막 쓰면 본인의 것이 됩니다. 본인이 쓰고 본인이 활용하시면 됩니다. 쓰는 동안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네에!”
“이번에는 누구십니까?”
“저는 토론을 하겠다고 한 사람인데요. 엑셀 자격증을 따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나요? 이거 여기서 토론하면 되나요?”
“네, 그렇습니다. 같이 얘기 해 볼까요?”
“같이요?”
“지금 접속하신 분이 좀, 많이 계실 텐데 떠오르시는 분 얘기하세요.”
“아, 우리만 있는 거 아니에요?”
“네, 많은 분들이 함께하시니, 같이 얘기하시면 됩니다.”
“연습장인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분이 얘기할 기회를 드려도 될까요?”
“네, 얘기해주세요”
<일단, 이 레터의 주인은 얘기한다>
<네, 제가 얘기해요?>
<우선, 시작을 하셔야지요.>
<아, 그렇죠. 시작할게요.>
<네.>
<일단, 따려는 마음은 잘 모른다. 대신, 못 따는 방법은 안다.>
<정말요?>
<못 따는 방법 알아요?>
<네, 압니다.>
<그럼, 오늘은 신다님의 얘기를 듣는 걸로.>
<아, 그럴까요?>
<잠깐만요. 이분 이름이 신다예요?>
<네, 그렇습니다. 이분 이름이 신다예요. 본명은 아니지만.>
<아 그렇게 부르는군요.>
<그러니까, 못 따는 방법은요?>
<못 따는 방법은>
<아 기대된다>
<대충 공부한다.>
<끄악~>
<공부할 마음을 갖지 않는다.>
<아악~>
<어떡해든 되겠지, 라는 마음을 갖는다.>
<이럴 수가!>
<엑셀 따려는 과정과 모든 과정에 대해서 귀찮아한다.>
<따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시험시간에 한 번 더 보면 떠올릴 수 있는 것도 귀찮아서 대충 보고 나온다>
<딸 마음 전혀 없네>
<그렇게 해서 신다는 단 한 문제 차이로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진짜요?>
<이렇게 용기 있게 고백합니다>
<끝인가요, 오늘 토론?>
<네 끝났습니다>
<아, 진짜 재밌어!>
“이렇게 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다음 분으로 넘어갈까요?”
“네에~ 다음으로 넘기래.”
“아, 나야?”
“다음 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텔레신문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시작하나요?”
“네, 신문에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합니다.”
“이건 어떻게 하시는 건가요?”
“텔레북과 방식은 비슷합니다. 다만, 신문으로 바뀌었을 뿐.”
“아, 네 그럼 문구 주세요!”
“과거를 떠올리며 상념에 잠기는 것이 아닌, 그 시간을 지금 여기로 가져오는 능동적인 행위였다. - 국민일보 2020년 12월 12일 토요일 오피니언 <오은의 문화스케치 중>”
“뭔가 느낌이 오는데 어떻게 하나요?”
“그 느낌 그대로를 기록하시면 됩니다. 느낌대로 기록하시다 보면 어느 순간에 어느 곳에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시면 되죠?”
“네에, 그렇습니다.”
“나는 이거 써야 돼! 네가 마지막이야!”
“아 그래? 드디어 나야?”
“그래! 그럼 행운을!”
“이번에는 누구십니까?”
“아 그게 저… 철학과 학생인데요…”
“아, 그분이시군요. 합류하셨나 보군요?”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담당하셨습니까?”
“텔레말씀이요.”
“아, 관심이 생기셨나요?”
“아니요, 이렇게 해야 제대로 얘기할 수 있다고 해서.”
“그럼, 바로 말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네… 네에…”
경수는 다소 당황하며 연습장 속의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 고린도전서 1장 10절”
“이게 성경에 나오는 내용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오늘 텔레레터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아니, 저, 끝이예요?”
“더 말씀하시길 원하십니까?”
“아 네. 좀 더 대화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지금부터 아주 길고 긴 대화를 철학과님과 하겠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아주 길고 긴 이야기가 될 듯하고요. 지금까지 했던 모든 텔레레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릴 겁니다.”
“그럼?”
“네, 이미 지금까지 들은 얘기 지금까지 한 얘기에 대한 보충 설명일 뿐입니다. 원하십니까?”
경수는 연습장 속의 그 글자들과 그 속에 있는 사람을 본다. 그 속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 속에는 삶이 있었다. 그리고 경수는 삶을 바라본다.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낡은 것들 속에 새로움이 있었다. 연습장. 컴퓨터가 아닌 시대. 전자화된 이 시대에서 다 떨어진 낡은 연습장이 경수에게 주는 것들은 지금까지 경수가 생각해오던 것, 또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경수는, 마음으로 중얼거린다.
텔, 레, 레, 터. 그, 렇,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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