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구조적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심지어 사람은 없고 구조만 있다는 말도 하지요.
그런 여러 구조들이 , 사람이라는 집약체, 매개체를 통해 구현 되는데 , 그럼 사람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공이라고 하나, 저는 공을 잘 모릅니다 ㅎㅎ. 다 해체가 된다는 것인데, 이런 구조들 역시 해체 가능한 것이겠지요.
자기관찰의 중요성에 대해선, 많이 들어왔지만 자기안의 어떤 구조가 어떤 역할로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지 뿌리깊은 것까지 다 해체 시켜봐야 한다는 건가봅니다.
그래야 구조가 아닌 내가 나로써 , 나라고 주장하면서 살수 있을거 같아요.
프랑스에서는 해체를 말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다른 철학들이 나왔지요.
아직 우리나라엔 우리것이라 할 만한 철학은 없는것 같지만, 언젠가는 꼭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근대 문화에 대한 반발로 부각되는 직접적인 계기는 프랑스에서 있었던 1968년의 문화 혁명이다. 근대의 정신이 계몽주의 혁명으로 구현되었다면, 근대 이후의 사조, 탈근대의 사유체계가 드러난 상징적 사건으로 우리는 이 '68 혁명'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혁명은 1968년 5월, 드골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하여 일어난 학생운동이었다.
이른바 '68혁명'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미국과 일본 등의 전세계적인 혁명운동으로 연결되면서 문화사적 변동을 초래하였다. 그것이 반전, 반핵 운동에서 냉전체제에 대한 반발,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벗어난 탈식민주의로 이어진 것은 이 운동을 세계체제론적 관점에서 해석하게 만든다. 그러기에 그 움직임은 이어지는 신사회운동에 기반한 신좌파의 출현과 신마르크스주의의 태동을 간직하고 있었다.
근대의 문화가 이룩한 결실에 대한 반성은 결국 반문화운동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가능하게 하였다.
무엇보다 이 혁명이 중요한 것은 여성해방이나 탈식민주의 운동 등의 문화운동으로, 나아가 철학적으로 근대의 문화 전체를 반성하는 움직임으로 전개된 데 있다.
결국 이러한 움직임은 근대라 이름하는 '시대정신' 전체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근대의 기획 전체를 반성하려는 새로운 사유체계를 탄생시켰다. 프랑스 후기구조주의는 이런 움직임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의 주체는 언제나 그에 참여하는 '지금 이곳의' '우리'이다."~p10
"무엇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근대의 정신과 구별되는 점은 서구의 전통 철학이 이룩한 체계로서의 동일성과 일원성을 문제시한다는 데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본질적으로 근대가 완성한 동일성에 대한 해체를 주장한다. 동일성과 일원성의 해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반이며, 이는 곧바로 '다원성'에의 강조로 이어진다. p13
포스트모던주의자들 스스로 다양한 언어의 공약 불가능성, 공통된 규범이 없다는 점을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p14
"탈형이상학적 사유란 '차이의 사고', 즉 존재론적 차이의 사고이며, 또 그에 힘입은 언어의 철학이다.
'예술'은 이성과 달리 '차이'를 발생한다. 학문은 보편성이란 지반에 기초하지만, 예술은 차이에 근거한다.
이렇게 생성되는 차이가 근대의 존재론적 동일성과 일원성을 넘어 '다원성'을 창출한다.
탈근대의 과제는 다원주의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유 구조를 도출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원성에 부합하는 '새로운 합리성' 에 대한 요구이다.
서양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문화적 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단련하고' , 나아가 '통합될 수 없는 것을 그 자체로 견뎌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강화' 하는 것이다. 탈중심의 문화는 각 문화의 정당성을 가로지르는 다원적이며, 전체가 서로 역동적으로 관련을 맺는 '다층적 총체성의 문화' 이다." p43
"철학이 근대에 와서 종말에 이른 모습은 과학,기술주의와 자본주의에서 극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성을 지닌 인간이 자연과 인간, 주체와 객체란 이원론적 도식에 따라 자연과 사물을 객체,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를 '소유' 하려는 사고체계가 과학 기술주의이다.
이 같은 과학 기술주의는 주체로 설정된 개인의 소유를 보장하는 체제, 즉 자본주의로 이어진다.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고유한 무한한 지식의 욕구를 효율성의 원리로 포섭하여 자본의 산출과 이익의 관계를 무한히 극대화한다.
탈근대주의는 현대 기술문명의 논리인 '도구적 합리성'을 다시' 생활세계의 의미체계' 로 환원시킬 수 있는 '다른 사유'를 추구한다. 자연을 더 이상 인간과 대립하는 물질세계로 객관화하는 대신에 인간과 자연을 유기적 관계로 파악하는 체계이다. 인간을 자연과 대립되는 존재로 보지 않고 자연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 '열린 존재' 로 받아들인다.
이때 자연과 인간은 더 이상 어떤 '실체' 로 파악되지 않고 '관계성의 존재' 로 이해된다. " p51
형이상학의 극복 모형은 결국 근대성의 극복과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탈근대적 진리 모형은 '진리의 총체성'을 복원하며, 인식론적 이성에 일면적으로 제한된 이성의 다른 모습을 되살리려 한다.
여기에 신화와 예술, 전통적으로 비합리성이라 폄하되던 진리 주장의 원형들이 복원된다.
서구 이성 이외의 또 다른 이성이든 또는 서구 이성의 일면성에 의해 잊혀진 '이성의 다른 부분' 을 복원 하는 것이든 이 점에서는 한결같다. p71
지금까지의 우리의 사고기반이 되던 전체성이란 이름의 권위적 지배체계의 형이상학, 신 개념, 원리들이 힘을 상실하면 두려움과 허무주의를 맛본다고 니체는 말합니다.
이러한 실존은 '흔들리는 실존' 이며, '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요.ㅎ
그것은 확정되고, 확실하며 본질적인 구조가 아니라 오로지 상호 '어우러짐'의 근거에서 살아가는 실존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선 불교의 연기론이 떠오르네요. ^^
이때 필요한 새로운 사고는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의 유목민적 가로지르기' 라고 합니다. 그것은 차이를 사유하는 것이며, 그 차이들의 다원적 모습을 유목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야말로 보편과 중심주의를 '가로지르는 이성' 입니다.
이것은 이성이 지니는 전통적인 권한과 위치를 포기하고, 되어가는 이성,즉 역동성으로 이해되는 이성입니다.
이미 내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는 지금 되어가는 중이다. 이런 의미일까요?
지금 여기서 이런 생각과 행위를 하고 있는 나를 이름하여 '나' 라고 한다. 이렇게요?
"가로지르는 이성은 단순한 제원리의 통합을 넘어 원리들을 '엮어내는 사유' 로 작용해야 한다.
이것은 학문의 세계에서 영역적인 관할권, 지배권, 학문원리들과 학문영역으로 분류되었던 역사를 극복하는 것이다." p80
'잊어버린 근원'을 새로운 삶 안에 다시 불러오려는 탐구의 도정으로 '도래하는 신' 이라는 모형의 새로운 신화학이 제시됩니다. 예술의 아름다움이 존재자가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라 하면서, 미학적 사고를 강조하지요.
잊어버린 진리의 근원을' 예술적 체험 과 '신화의 세계' 안에서 새로이 찾으려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죠.
예술적 인간의 도래, 미학적 인간, 자기 인생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포스트모더니즘적 성찰이 제대로 체화 된 것일까요?
첫댓글 우린 도닦는 사람이고 도는 지성적이라고 하면 지적인 특이점을 넘어간 지성이다.
그 지식이 어느이상의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어서 구조주의나 후기 구조주의나 이런 것을 이해못하면 공이라도 각성해야 지금시대엔 지식인으로서 행세할 수 있다. 이미 해체하지 않는 상태에서 입론할 수가 없으니 그렇지 않다면 그 엉성한 지식을 어따 쓰것나 마구는 더욱 심각한데 세상의 지식이 어느정도를 가고 있는지 모르면 그건 마구가 아니라 망상이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의 사회를 문제삼기 때문인데 지금 사회가 저러한 과정을 거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사회이슈가 되고 있는데 여성학의 논리에 이런 정도의 철학은 기본으로 깔로 논하
논하고 있는데 사회문제 이면에 그 철학적인 기반을 모르고서 어떻게 뭔가 의도를 내보이는 행위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나
도는 문명 지식이고 그것도 첨단의 지식이어야 하며 서양철학 정도를 이해못하는 지식으로서 그 성취가 어떨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하겠다. 과거 유학이나 도학이 이보다 쉬웠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지식이든 어느정도 하면 그 특이성을 보이는 것이고 그것을 넘어간 논의와 대화가 있어 왔던 것이지 저급한 고집으로 하는 주장을 학문이라고 한 적은 없다.
공이라도 각성해야 지식인으로서 행세할 수 있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이세상 모든 보편적인 지식을 아우를 수 있는,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나요?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으니까 공이라도 각성해야 한다는 것인지...맞나요?
@인우 아뇨 그렇다기 보다 공과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지식인들의 이론이 해체를 근간으로 해서 다시 이론을 만들게 되어요 그래서 해체라는 것을 모르면 뒤떨어진 논리가 되어서 비웃음을 사게 되구요 그건 거론할 가치가 없죠 과학처럼 시대에 뒤떨어진건 뉴튼식으로 계산하는 것이 되어요 양자역학된지 한참인데 아직도 뉴튼이 맞는지 아는 것이죠 그런 문제가 잇어요
@제라울 아...해체...공이네요.....
근데 과학자들이 해체를 해 봤다고 공을 아는건 아니지요?
@인우 그렇게 말하면 공에도 여러가지가 있다고 해야 합니다. 이미 양자물리학은 사물을 다르게 봅니다 물질로 보지도 않고 사건으로 보는데 일반인과는 다른 시각입니다. 이것이 공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해야 하는 시각인데 서로 다른 분야이니 다르기도 하고 비슷한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똑 같다고 간단히 할 수가 없습니다.
@제라울 사물을 '사건'으로 본다는것이, 주체를 말하지 않거나, 명사가 아닌 동사로 말한다는거 같은데요.. 물질로 보는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아로 찰나에멸해서 찰나에 생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무엇이 있어서 그것이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에 멸해서 순간에 생한 것이니 이전것이 지금것으로 변한게 아니라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운동이란 물질이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봅니다. 더는 모름 저두 물리학은 모름 ㅠㅠ
@제라울 저는 사물을 사건으로 본다는 댓글을 보고 주희의 물은 사(事)와 같다는 것을 떠올렸는데요.
원문을 읽은게 아니라 도올의 '대학학기 한글역주' 발췌독 한 것이라 한계가 있겠지만,
대강 격물에서 내가 사물을 이해한다고 할 때 사물의 무엇을 아는 것인가 생각해 볼 때 사물자체의 특성이나 과학적인 어떤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관계에서 지금 그 사물이 내게 대상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내 앞에 나에게 대상으로 인식된 그 사물과의 관계에서 이해된 그 의미로 인해 나에 대한 다른 이해가 생기게 되는데 이게 사물 자체에 대한 이해라기 보다는 나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었죠
@제라울 그래서 그로 인해 나는 그 이해 이전과는 다르게 변해가는 것이 있고 그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이 변해가거나 나 자체가 이미 변한 것이라서 사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즉 사를 사건이나 의미로 이해한 것이죠.
@해원 더 나아가면 어떤 물질의 본질이 있는게 아니라 관계속에서 어떤 형태를 이룬다가 되어 일종의 연기론이 됩니다. ㅎㅎ
@제라울 지금의 것이, 이전의 것이 변해서 된게 아니라는 말은, 인과법칙이 적용 안되다는거 같은데요, 의식이 계속 이어지지않고, 불연속적으로 중간에 끊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설명과도 같은가요? 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따라 얼마든 다른 결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도 같네요. ㅜ
@제라울 예, 더 쓸려다가 너무 거창하게 나가는 건가 싶어 관둔게 있는데
그 관계가 하나의 운이나 운명이 되기도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작게는 주변에 나타남이 있고
크게는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지 않나 싶은데 이게 마구로 보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죠.
말씀하신 어떤 형태라는 것을 운으로 생각하면 어떨지요..
@해원 형태고 물질이죠 양자역학에서도 관찰자 시점이 있으니 우리 의식과 연관해서 물질이 형성되니까요
인과법칙보다 무주론 같은 것이 됩니다. 이전의 나는 내가 아니고 일신우일신이 되고 항상 창조되고 영원회귀론이나 차이론이나 다 이런 것들입니다. 다르게도 말하면 인과 없슴이 이유 안따지고 지금만 보고 과거로 보거나 판단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그런 것도 됩니다
그래서 도라든가 지식이라든가 뭐든간에 해체되고 공이 된 상태를 지나서 하나의 이론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것이 아니면 일반적인 사회인이라면 상관없지만 마구는 안된다는 것이죠 도를 닦아서 성취를 하는데 그정도의 지적 성취가 있어야 하죠
간단히 여성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길러진거라고 하는 말을 하는데 이런말은 우리의 유교관습에서는 천인공노할 말이되죠 여성의 선천적으로 여성이고 하늘이 부여한 것이 되는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되니까요 천륜을 어기는 것도 되고 정면으로 우리의 관습에 배치하는 것이 되어요 여성이라는 성 자체도 부정하는 것이고 성이라는 개념자체도 재고하게 하고 이미 해체가 있는 것이 되죠 이건 공을 이해한 사람은 이미 알았어야 하는 것인데 과거 스님들이 여성에 대해서 거부하고 감당하지 못해서 출가하고 여성곁으로 안가려고 하고 성욕을 억제하니 저말을 한 사람에 비하면 너무 저열합니다. 머 그런 식입니다.
네덜란드 법원에서, 처음으로 남녀 성이 아닌 제3의 성이 인정된 판결이 났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과거에도 남녀 성만으로 환원이 안되는 부분이 현실적으로는 있었을텐데요, 이런식이면 제4의성, 5의성 이렇게 나아갈수도 있을거같아요. 여성의 본성이라 믿어져온 것들을 해체하여 보고 싶어집니다. 모성애나 그런부분까지도요.
@아로 그게 왜 힘든 것인지 모르것음요 굳이 꼭 남자와 여자로 사람을 구분해야 하는지가 애매함 전혀 납득이 안되는 것임요 꼭 성인지도 모르것고 그런 것이 아니면 뭐가 문제가 생기는지도 모르것음요 문제 생기면 또 어떻고 ...
삭제된 댓글 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예술사조에서 나온말인걸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계룡님이 전문가 이실듯하네요 ^^ 어려운 개념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