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지침> ppt 참조 물의 이야기 책 p37-40
모든 것이 창조물의 일부이므로 여러분의 순례는 끊임없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편적인 성격을 띤 순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는 모든 사람의 모든 행위를 제 것으로 삼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그것을 제 사랑과 함께 아버지께 바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또는 이렇게 특정한 것을 순례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떨어지는 모든 빗방울에 제 목소리를 넣고 이 빗방울들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그렇게 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어떻게 말씀드릴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 아버지께서 지난 6천년 동안 사람들에게서 마땅히 받으셔야 했으나 받지 못하신 모든 것을 – 아버지께 드리기 시작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된 것은 그 동안 사람들이 아버지께 바로 가지 않고 멀리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례 여행을 하는 것이 다소 복잡해 보이면,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보십시오.
실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피조물 중 일부를 자기 것으로 삼거나 그들 안에 자기의 목소리를 넣습니다. (예컨대, 새들, 꽃들, 하느님이 별들을 빚으신 순간, 예수님의 모든 기적들, 성인들의 행위들, 모든 자녀들의 목소리들…)
2. 그들 속에 그대의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넣습니다.
3. 이를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께 바칩니다.
4.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을 위해서도 바칩니다.
5. ‘나라’가 오시도록 청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 뜻의 안에서 사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6천년 동안 먼데로 빙 둘러가는 길 위에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원래의 길로 가는 중입니다.
이런 우리가 하느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그분께 드린다면, 그분은 ‘나라’가 오시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단, 하느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이란 모든 이가 마땅히 바쳐야 할 영광을 뜻합니다.)
그대의 기도를 ‘진짜’ 순례로 만들려면 위의 말을 전부 써야 하겠지요?
말할 것도 없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요’입니다. 이를 시작할 무렵에는 그 중 상당수를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실행 중인 강력한 활동, 곧 (순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는 자기 자신의 순례를 개발할 일입니다.
이제 하나의 단순한 순례를 해 보기로 합시다. 야구 시즌 마지막 경기 중 그대가 1루수 위치에 있습니다.
이렇게 해 보십시오.


그대는 지금 1번 타자가 타석으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대가 하느님의 어좌 쪽으로 야구 선수들(과 그들의 활약들을 모은) 거대한 더미를 밀고 가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 가상의 더미에 하키, 미식축구, 축구 및 농구 선수들의 모든 활약도 던져 넣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고 그렇게 결행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대는 타자가 첫 스윙을 하기 전에 이미 순례를 한 번 행한 셈이 됩니다.
그대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한 것입니다.)
(1)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든 활동을 자기 것으로 삼았습니다.
(2) 그 위에 그대의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찍어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예수님과 함께 하면 무엇을 하든지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3)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그대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좌 쪽으로 그 더미를 밀고 가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4) 또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그것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시는 법 없이, 우리 모두를 위하여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5) ‘나라’가 오시도록 청했습니다. (그대는 알고 있었습니다. 경기 도중에 예수님과 함께 이 더미를 밀고 가는 것은 단지 재미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한 (영적) 행위가 곧 예수님과 함께 도움을 주어, ‘나라’를 맞아들이게 하려는 하느님 뜻의 행위인 것입니다.)
1루에서는 순례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먼젓번 타자가 다음 타자와 교체되는 동안, 또 상대편에서는 새로운 투수를 준비시키는 동안, 그대와 예수님은 하느님의 어좌 쪽을 향하여 나무 더미를 밀고 갑니다. 이웃집 개가 동물 더미도 밀고 가라고 부추깁니다. 그런가 하면 파리가 윙윙거리면서 그대에게 거대한 곤충 더미를 만들 생각을 하게 합니다.
타자가 몸에 던져진 공(hit by the pitch)을 맞았습니다.
그대는 그의 고통과 다른 이들의 부상과 병에서 오는 고통의 거대한 더미를 아버지께 바쳐 올립니다. 그리고 스트라이크아웃이 된 후 더그아웃(dugout : 야구장의 선수 대기소) 쪽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예수님께서는 청소년 시절에 어떤 놀이를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행하신 모든 것을 쌓아 거대한 더미를 만들고,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 어좌 쪽으로 그것을 밀고 갑니다.
보십시오. 그와 같이 1루에서만도 여러 순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대가 야구 경기 도중에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어디선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무엇이나 예수님과 함께 하십시오.
그대가 하느님의 뜻 안에 성장함에 따라, 성령께서 그대 자신의 순례들을 안내하실 것입니다. 그대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는 행위로 가득한 그대의 하루에 이 순례들을 보탤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순례가 참으로 제2의 천성, (곧 버릇같이) 되면, 캄캄한 방으로 들어가서 불을 켜듯, 그대는 하느님의 생명을 사는 이 길을 환히 밝히며 안전하게 걸어갈 것입니다.
첫댓글 (나)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효과에서 - 완전한 행복을 누릴 권리 : 좋지 못한 일은 아무것도 겪지 않을 면제의 특전을 받음(고통, 굶주림, 불행을 겪지 않고, 불사불멸의 존재로 늙지도 않음)
이라고 되어있는데요 약간 오류가 있는 말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꺽지 이것은 영혼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내적인 일이니까요.
외적인 고통이 내적인 고통이 아니고
하느님 뜻 안에 살기 시작한 때부터
영원한 삶이 시작된 첫해라고 할 수 있으며, 육체는 늙어갈지라도 영혼은 항상 젊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뜻 양식을 먹으니 영혼에 굶주림이 없고, 영원한 생명을 지금부터 사는 것을 아니, 천국에서처럼 지금 그 불사불멸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적으로 말입니다.
@코스모스 아하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