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舅淸風府院君謚忠翼金㕣之墓
국구청풍부원군시충익김연지묘
德恩府夫人宋氏祔左
덕은부부인송씨부좌
이 비석은 조선 현종의 장인이자 명성왕후의 아버지인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 1617~1675) 선생의 묘비 입니다. 충익공(忠翼公) 김우명 부원군의 묘비명에서 쉬운 '공변될 공(公)' 대신 굳이 '숲속의 늪 연(㕣)' 자를 사용한 데에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깊은 철학과 가문의 위상을 드러내려는 세 가지 핵심적인 연유가 있습니다.
1. '덕(德)의 깊이'를 시각화하기 위함
단순히 '공(公)'이라고만 하면 '공적이다'라는 사실만 전달되지만, '숲속의 늪(㕣)'이라는 글자를 쓰면 그 공적인 마음이 얼마나 깊고 고요한지를 상징하게 됩니다.
국구(임금의 장인)라는 지위는 자칫 사사로운 권력으로 흐르기 쉽지만, 김우명 공의 마음은 숲속 깊은 곳의 늪처럼 흔들림 없이 고요하고 깊어 사사로움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는 점을 극찬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어필(御筆)'의 특수성과 피휘(避諱)로 이 글씨는 임금이 직접 쓴 어필입니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숙종 임금이 외할아버지인 김우명의 묘비명을 직접 쓰면서 정중함과 예우를 갖추기 위해 일반적인 서체와는 다른 형태를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2. '산택통기(山澤通氣)'의 함축적 의미
주역(周易)의 원리에 따르면 산(山)과 늪(澤)은 서로 기운을 통하게 합니다.
숲속의 늪은 산의 정기를 모아 만물에 나누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김우명 공이 왕실의 어른으로서 국가의 정기를 갈무리하고, 그 혜택을 백성들에게 공평(公)하게 흘려보냈다는 정치적 도덕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반적인 '공'자보다 격조 높은 '연'자를 택한 것입니다. '공(公)'의 고체(古體) 또는 이체자 사용은 한자에는 같은 뜻이지만 모양이 다른 이체자(異體字)가 많습니다.
공변될 공(公)의 윗부분인 '여덟 팔(八)'과 아랫부분 '사사 사(厶)'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당시 서예 기법이나 전서/예서의 고풍스러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 ' 㕣 '의 형태로 쓴 사례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㕣(연) 자는 늪이나 늪의 구렁을 뜻하기도 하지만, 형태적으로 '公'과 유사하여 비석이나 어필에서 격식을 높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선택되기도 합니다.
3. 가문의 격조와 문학적 수사
조선 시대의 비문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이 짓습니다. 이때 너무 쉬운 글자보다는 고전적이고 전아(典雅)한 글자를 사용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우이자 가문의 권위를 세우는 방법이었습니다.
차별화된 비문으로 누구나 쓰는 '공'자 대신, 자원(字源)상 공평함의 근원을 뜻하는 '숲속의 늪' 자를 사용함으로써 "이 비문의 주인공은 범상치 않은 깊은 덕을 지닌 분"임을 지나가는 이들에게도 알리려 했던 것입니다.
성함 '우명(佑明)'과의 관계는 묘비의 중앙 줄을 보면 "國舅 淸風府院君 謚忠翼 金㕣 之墓"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하신 글자는 '김(金)' 자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보통은 '김공(金公) 우명(佑明)지묘'라고 써야 할 자리에 '공(公)' 대신 '연(㕣)' 모양의 글자가 들어간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오기가 아니라, 임금이 신하(혹은 가족)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삼가고 높여 부르기 위해 글자의 모양을 살짝 바꾸거나(결획), 가장 고전적이고 권위 있는 형태를 빌려온 서법상의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요약하자면 보통의 묘비에는 '공(公)'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묘비는 임금이 직접 쓴 어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최고의 예우를 갖추기 위해 고어(古語) 형태나 이체자를 사용하여 장식적인 효과와 격조를 높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학계나 문중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김우명 선생의 권위와 왕실과의 깊은 관계를 상징하는 독특한 서체적 특징으로 평가받습니다.
4. 결론적으로 : 단순히 '공평하다'는 결과를 말하는 것이 '공(公)'이라면, 그 공평함이 어디서 왔는지(깊은 수평의 마음)를 보여주는 글자가 바로 '숲속의 늪 연(㕣)'입니다.
비문에 새겨진 이 특별한 글자는 김우명 공이 지녔던 '사사로움 없는 깊은 뜻'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전하고자 했던 임금의 고심 어린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로서 '연(㕣)' 자의 사용 이유에 대해 몇 가지 핵심적인 배경을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