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를 마시는 것도 도 닦는 일입니다
지금은 저 새소리로 눈과 귀를 씻고 있습니다
“일상이 그대로 도 닦는 일인 것입니다”
고명인이 눈을 떴을 때는 새벽 5시였다. 묘봉암 스님과 선혜는 벌써 일어나 몽당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다. 멀리 산능성이 위로 지는 달이 희미하게 그 윤곽만 보였다. 달은 여명의 푸른빛을 받아 아침 저편으로 물러서고 있었다. 고명인은 습관대로 인사를 했다.
“굿모닝.”
그러자 묘봉암 스님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답했다.
“굿모닝.”
“꿈 한 줌 꾸지 않고 달콤한 잠을 잤습니다. 과연 묘봉암 터가 명당인 모양입니다.”
새벽에 드러난 선혜의 얼굴은 생기가 넘쳐 보였다. 얼굴은 크림을 바른 것처럼 번쩍거렸다. 새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 귓속이 개운하게 씻어지는 듯했다. 새들 간에 무슨 신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청량한 기운이 귓속을 맴돌았다.
“고 선생, 새벽차를 한 잔 할까요.”
묘봉암 스님도 끼어들었다.
“찻물을 떠오겠습니다.”
“스님, 새벽에 차를 마셔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일 것 같습니다.”
“이 묘한 봉우리의 묘봉암에서는 차를 마시는 것도 도 닦는 일입니다. 고 선생은 어제 꿈 없는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번뇌가 있는 사람이 꿈 없는 잠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저 새소리로 눈과 귀를 씻고 있습니다. 역시 도 닦는 일이지요. 그러니 일상이 그대로 도 닦는 일인 것입니다. 평상심이 도라는 금언이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묘봉암 스님이 찻물 주전자를 들고 오더니 한 마디 했다.
“고 선생, 어제 밤에 별들이 흐르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까.”
“별들도 소리를 냅니까.”
“흐르는 것들은 다 소리를 냅니다. 별들도 은하를 이루어 우주 공간을 강물처럼 흐르니까요.”
선혜가 차를 따르며 우스갯소리로 바꾸었다.
“우리 묘봉암 스님은 기도를 잘하시어 별들의 소리도 듣는 초능력이 생긴 모양입니다. 하하하.”
“제가 초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과장이고요, 어서 차나 한 잔 하십시다.”
그러자 선혜가 ‘함허대사의 다시(茶詩)를 한 수 읊조리겠다’며 염불을 하듯 외웠다.
한 잔의 차는 한 조각 마음에서 나왔으니
한 조각 마음은 한 잔의 차에 담겼어라
마땅히 이 차 한 잔 한 번 맛보시게
한 번 맛보시면 한없는 즐거움이 솟아난다네.
一椀茶出一片心
一片心在一椀茶
當用一椀茶一嘗
一嘗應生無量樂
묘봉암 스님도 맞장구를 쳤다.
“선혜스님,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다시입니다. 조주스님의 다시인 줄 알았는데 함허대사의 시였군요. 우리 고승의 시라서 그런지 오늘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좋은 차와 좋은 다시를 만났으니 새벽기도가 더 잘될 것 같습니다.”
묘봉암 스님이 법당으로 나가자 고명인은 다시 선혜와 마주앉아 차를 마셨다. 방금 선혜가 외운 시 구절처럼 선혜의 마음을 담아 우리는 차라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선혜의 마음을 마신다는 생각이 들어 ‘아, 이것도 이심전심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그러니 차를 마신다는 것은 마음을 주고받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차를 몇 잔째 마시고 난 후 고명인은 화제를 돌렸다.
“스님, 일타 큰스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렇지요. 일타스님을 알고 싶어 미국에서 왔다고 했지요. 그런데 아셔야 될 것은 제가 하는 이야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도솔암에서 잠깐 동안 살 때의 얘기뿐이지요. 그래도 듣고 싶으시다면 해드리지요.”
“저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일타 큰스님께서 수행하셨던 곳을 답사하려고 합니다. 얘기를 듣고 가면 큰스님께서 수행했던 터가 마치 스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더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겠습니까. 저는 스님의 유적지를 순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스님의 영혼을 만나 뵙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긴장이 됩니다. 하하하. 우리스님을 모셔놓고 대중공사를 붙인 것이 떠올라 부끄럽기도 하고 죄를 지은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우리스님께서 워낙 자비로우셔서 그랬을 겁니다.”
도솔암에서 일과표대로 정진하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무문관처럼 문을 닫아걸고 용맹정진하려고 했는데, 신도들이 대중공양을 하기 위해 공양물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오곤 했다. 대중공양이란 수행을 잘하는 스님들을 격려하기 위해 신도들이 올리는 공양을 뜻했다. 도솔암에서 일타와 상좌들이 정진을 잘하고 있다는 소문이 절집에 돌자, 신도들이 너도 나도 신심이 나서 도솔암에 대중공양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선혜는 풋중이었으므로 사형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데 일타의 상좌들이 공부를 해야 하니 보살들이 오지 못하게 하자고, 수행자들 간의 회의형식인 대중공사를 부쳤다. 대중공사에 참여한 사람은 혜문, 자혜, 선혜, 행자 혜웅이었다. 선혜와 혜웅은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혜문과 자혜는 신도들의 발걸음 자체를 봉쇄할 수는 없으니 절만 하고 돌아가도록 결론을 내렸다.
봉화 소천면에서 백련암까지는 30리 길이었다. 시오리는 계곡이고 시오리는 산비탈 길이었다. 짐꾼에게 물건을 지고 오는 데 운임만 쌀 한가마니를 부르는 곳이었다. 운임이 그러하므로 짐꾼을 부르지 못하고 스님들도 걸망에 곡식을 조금씩 담아 나르곤 했다.
일타는 상좌들이 내린 대중공사의 결론을 다 듣고 나서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를 걸망지고 오려면 젊은 너희들도 힘든데 보살들이 이고 지고 오는데 말이여, 그렇게 어렵게 온 신도들을 인사만 하고 가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스님께서는 어찌하시렵니까.”
“나는 인사만 하고 가라는 소리는 못하겠다. 그러니 너희가 알아서 해라.”
그때 선혜는 일타를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은사를 앞에 모셔놓고 대중공사를 한 예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없었던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타는 화를 전혀 내지 않고 대중공사의 당사자로서 자신의 의견을 낼 뿐이었다.
“지금부터 나는 묵언을 할 테니 너희가 알아서 해라.”
신도가 와서 공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타의 생각이었다. 신도가 왔을 때 묵언을 하면 공부하는 데 아무 장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혜는 도솔암에서 살았던 기억이 또 다시 떠오른 듯 말했다.
“고 선생, 밭두둑에서 햇감자를 캐보신 일이 있습니까. 우리스님과 살았던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탐스런 햇감자처럼 주렁주렁 나오네요.”
선혜는 일타와 살았던 추억들을 햇감자로 재미있게 비유하고 있었다. 그것이 수행자로서 평생의 양식이 되었다면 햇감자보다는 씨감자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도 싶었다.
암자 한편에 조그만 밭뙈기가 있었다. 하지 무렵에 감자를 캐고 나면 그 자리에 상추와 열무를 심고 가을이 되면 배추를 심었다. 시골 장이 30리 밖에 있으므로 싱싱한 채소는 그런 식으로 자급자족했다. 그런데 배추밭에 배추만 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배추벌레가 나타나 배추 잎을 숭숭 갉아먹었다.
점심공양이 끝나고 나면 각자 산길을 포행하며 소화를 시켰다. 그런데 일타는 포행을 나가지 않고 젓가락을 들고 배추밭으로 가곤 했다. 하루는 선혜도 일타를 따라갔다.
“스님, 배추밭에서 젓가락을 들고 무얼 하십니까.”
“보면 모르겠는가. 너도 이렇게 하거라.”
일타는 배추 잎을 뒤적이며 일일이 배추벌레를 떼어내고 있었다. 때마침 가을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으므로 선혜는 일타의 굼뜬 행동이 답답하게 보였다. 선혜는 꾀를 내었다. 일을 빨리 마치고 계곡으로 내려가 멱을 감고 싶어서였다.
“스님, 이렇게 하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선혜는 배추벌레를 한 마리 잡아서 바로 싹싹 비벼 죽였다. 그러자 일타가 선혜의 어깨를 토닥토닥 때리면서 꾸중을 했다.
“배추 한 잎 더 먹겠다고 배추 잎에 붙어 있는 중생을 그렇게 죽이면 되겠는가.”
“스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참회를 했으면 됐어.”
그러나 선혜는 가을날 내내 젓가락으로 배추벌레를 떼어내느라고 혼이 났다. 배추벌레를 한 마리 발로 죽인 벌이었다.
선혜는 일타의 자비로운 행동을 떠올리며 행복해 했다. 선혜는 도솔암이 동물의 왕국이었다는 듯이 다람쥐 얘기를 먼저 꺼냈다. 여름이나 가을철 참선 시간에는 방안이 덥기 때문에 문을 열어 놓고 일타를 중심으로 좌우에 상좌들이 앉는데, 방안에 묵을 쑤려고 모아둔 도토리 때문에 다람쥐들이 들락거렸다. 참선 중에는 움직일 수 없으므로 다람쥐들은 마음대로 방안의 도토리를 물고 나갔다. 문턱을 넘어와 스님들의 어깨를 타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스님들에게는 얼씬도 하지 않는 다람쥐들이 일타의 무릎 위로 오르는가 하면, 팔을 타고 넘어가기도 했다. 마침내 상좌들이 다람쥐가 도토리를 가져가지 못하게 하자, 일타는 그러지 말라고 제지했다.
“내버려두어라. 다람쥐가 가져가면 얼마나 가져가겠느냐.”
겨울이 되면 암자 밖에서 곰들이 재주를 부렸다. 도솔암 스님들도 마찬가지지만 곰들도 눈을 좋아했다. 어미 곰이 새끼 곰을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고 떨어지면 또 올리곤 했다. 장난치느라고 어미 곰이 그러했겠지만 그것을 보는 도솔암 스님들도 즐거웠다.
그런데 그 곰 때문에 혼비백산한 일이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싸리버섯을 따러 도솔암 식구 모두가 태백산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상좌들은 농구화를 신고 일타는 상좌들이 구해온 워커를 신고 산속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상좌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곰이 엎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가서 자세히 보니 죽은 지 오래 된 곰이 엎어져 썩고 있었다.
“스님, 썩는 냄새가 도솔암까지 나는 것도 아니니 그냥 갑시다.”
상좌들 모두가 지나치자고 하자, 일타는 상좌들을 나무랐다.
“마을로 내려가 인부를 불러와 잘 묻어주자. 이런 일이야말로 스님이 할 일이다.”
정말로 일타는 인부를 오게 하여 묻어주고 죽은 곰이 극락왕생하게끔 간소하게 천도재까지 지내주었다.
고명인은 은해사로 다시 내려가는 동안에도 선혜에게 일타의 얘기를 들었다. 선혜의 얘기는 실타래가 풀어지듯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고명인은 차창을 열고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귀를 기울였다.
“좀 전에 제가 천도재를 얘기했습니다만, 우리스님께서는 영(靈)이 다른 수행자보다 청정하셨는지 망자의 영가를 극락왕생 시키는 데 뭔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이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대련화 보살도 도솔암에 올라 대중공양을 많이 한 신도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대련화 보살이 안동에 사는 보살을 데리고 와 삼일기도를 하고 갔는데, 그 안동 보살은 유복자 아들이 하나 있는 과부였다. 선혜는 상좌 중에서 막내급이라 별수 없이 목탁을 잡았다. 일타는 삼일 째 되는 날에야 안동 보살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주었다.
그런 뒤, 여섯 달이 지나서였다. 대련화 보살과 안동 보살이 이불 한 채와 쌀 한가마니를 짐꾼에게 지어 도솔암으로 올라왔다. 일타가 천도재를 지내주고 나서 영험을 보았다며 대중공양을 하러 온 것이었다.
선혜는 안동 보살이 직접 하는 얘기이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안동 보살의 얘기인즉 교육대학을 나온 아들이 교사로 발령받아 가는 데마다 여교사와 문제를 일으켜 그 학교를 떠나곤 했는데, 천도재를 지내고 나서는 그런 불미스런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도재를 막 지내고 간 날 밤 꿈에 앳된 여인이 나타나 ‘내가 당신 아들을 끝까지 따라 다니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을 풀고 갑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지려 할 때, 여인 뒤로 목이 없는 귀신들까지 안동 보살에게 꾸벅꾸벅 절을 하고 떠났다는 것이고, 다음 날 안동 보살이 아들에게 꿈에서 보았던 여인의 생김새를 이야기하자, 아들은 그 여인이 대학 다닐 때 사귀던 친구였는데 무슨 일로 자살했다고 놀라더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새로 간 학교에서 아들이 아무 말썽 없이 3개월째 잘 다니고 있으니 안동 보살로서는 큰 걱정거리가 사라졌고, 천도재를 지내준 일타에 대한 고마움으로 대중공양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선혜는 백흥암을 지나서 지프차를 세웠다. 그제야 고명인은 차만 마시느라고 세수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했다. 선혜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엉겅퀴와 망초 꽃이 핀 풀밭을 향해 합장했고, 고명인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골짜기로 내려가 두 손을 계곡물에 담갔다. 계곡물은 얼음처럼 투명하고 차가웠지만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는 정답고 포근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