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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파리 시내도로를 거쳐 외곽고속도로로 접어들었는데 고속도로도 차량들이 많아 군데군데 정체현상을 빗는다. 50분 정도 걸려 베르사유궁전 앞 주차장에 도착한다. 2006년 파리에 왔을 때도 다른 일정에 밀려 보지 못했던 말로만 듣던 그야말로 세계의 궁전이란 칭호가 붙은 베르사유궁전을 보게 되는구나 하는 설레임이 앞선다.
베르사유궁전 정문
베르사유궁전 전경
베르사유궁전 우측 건물(좌측 줄이 표를 사려는 인파)
금빛으로 도금된 궁전 입구의 쇠창살문이 강렬한 햇빛을 받아 더욱 빛난다. 문을 통과해 궁전 입구로 들어가니 이런 젠장! 입장권을 사려고 늘어선 줄이 뱀또아리 틀 듯 구불구불 엉켜있다. 그늘도 없는 이 뙤약볕에서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데 가이드는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란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으니 패키지여행의 경우 통상 3일 전 인원이 확정되기 때문에 인터넷 예매가 어렵다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은 워낙 유명한 관광지로 관람객이 워낙 많아 09:00~10:00 사이에 궁전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먼저 정원과 트리아농, 왕비의 마을을 관람한 후 성수기에는 16:30~17:30 사이, 비수기에는 15:30~16:30 사이에 궁전을 둘러보는 것이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일정에 쫒기는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그 시간에 둘러보기는 힘들다.
베르사유 궁전 건물
베르사유 궁전 정원<펌>
베르사유 궁전으로 들어가자 러시아 페테스부르크에 있는 여름궁전과 빈에서 보았던 쇤브룬 궁전 등 그간의 유럽에서 보았던 궁전들의 모습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 궁전들이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지었다는 말이 이제 실감난다. 베르사유 궁전 건축이후로 유럽의 수많은 궁전과 성들이 이곳을 모티브로 지어졌고 어떤 곳들은 아예 갖다 베긴 듯하다.
태양왕 루이 14세(Louis XIV)는 신하인 재무장관 푸케(Nicolas Foucquet)의 보 르 비콩트(Vaux-le-Vicomte) 성을 둘러보고 온 후 그 어마어마한 화려함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보 르 비콩트의 건축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을 불러 유사 이래 가장 화려한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을 하게 된다. 이에 파리에서 약 20km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 건축가 르 보(Le Vau), 망사르(Jules Hardouin-Mansart), 실내 장식가 르 브룅(Charles Le Brun), 조경가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 등이 참여해 50년 동안 막대한 비용을 들여 궁전을 지었는데, 원래 습지였던 이 땅의 자연 조건을 완전히 바꾸어서 숲을 만들고, 분수를 만들기 위해 몇 개의 강줄기를 바꾸고, 거대한 펌프를 만들어 센 강의 물을 150m나 길어다 부었다고 한다. 또한 궁전의 상판에서 천장의 못 하나까지 모두 장식을 할 정도로 화려하게 궁전을 지어 1682년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왕궁이 옮겨 온 이래 매일 수백 명의 귀족들이 모여 화려한 연회를 열었는데 이것은 루이 14세에게 언제 반기를 들지 모르는 귀족들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나약하게 만들려는 전략이었지만, 결과적으로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다. 또한, 이곳에 궁전이 세워진 1682년부터 1789년까지는 프랑스의 정치적 수도이자 부와 권력의 중심으로 루이 14세부터 루이 16세까지의 절대왕권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오디오 가이드 기기
입구를 지나자 안내소에서 지도를 받고 건너편 우측에서 무료인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받는다. 이 오디오가이드는 전시물에 옆에 붙어있는 번호를 기기에 입력하면 한국어로 안내 음성이 나오는 기기로 궁전에서만 사용하고 출구에서 반납한다. 방마다 전시물의 번호를 눌러가며 관람하면 나름 재미가 있다.
왕실 성당
오디오 가이드를 받아들고 처음으로 간 곳은 왕실 성당(Chapelle Royale)이다. 이곳은 망사르가 설계한 성당으로, 높은 천장에는 삼위일체 이야기, 예수의 부활과 재림 등 성서를 모티브로 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루이 15, 16, 18세와 샤를 10세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있었으며, 1770년에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도 거행되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의 방
왕실성당에서 나오면 이어지는 곳이 헤라클레스의 방(Salon d’Hercule)인데 궁전의 북쪽 날개에서 중앙으로 연결되는 부분에 위치한 이 방은 궁전의 방 중에서 가장 크다. 이 방은 현재의 부속 예배당을 완공한 후 1710년에 해체된 임시 예배실이 있던 자리에 착공해 루이 14세의 죽음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1736년에 가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는데 벽난로 위에는 성경을 주제로 한 베로네즈(Véronèse)의 대형 회화가 있고, 천장은 르 무안(François Le Moyne)이 그린 천장화 〈헤라클레스 예찬〉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 그림은 영웅의 12가지 시련을 암시하고 있는 모습을 하늘 여기저기에 배치하고 있는 눈속임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리석으로 마감한 벽면은 황금빛 청동으로 된 코린트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어 루이 14세 시대의 영화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헤라클레스의 방 천장화 "헤라클레스 예찬"
헤라클레스의방 모서리 장식
그리고 네 곳 모서리에는 힘, 인내, 가치, 정의의 상징들이 그려져 있고 그 주위로는 올림푸스 신들이 영웅의 영광을 지켜보고 있다.
풍요의 방
비너스의 방
풍요의 방은 건너뛰고 비너스의 방(Salon de Vénus)으로 간다. 이 방은 1677년에서 1680년 사이 외국 사절단의 계단을 건설하던 당시 만들어졌는데 계단의 두 출구 중 하나였다고 한다. 비너스의 방 천정에는 우미의 3여신에 둘러싸여 있는 비너스(Venus)의 모습과 정면에는 로마식 복장을 한 루이 14세(Louis XIV)의 모습이 있다. 대접견실에 속하는 여러 방 가운데 비너스의 방은 가장 독특한 장식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비너스의 방 천장화
이 방은 눈속임 기법이 사용되어 방문객을 일순간 당황하게 만든다. 벽면은 실제 대리석과 실물처럼 그려진 대리석이 혼재하고 있다. 즉 방의 안쪽에 있는 문을 둘러싸고 있는 이오니아식 기둥은 프랑스산 대리석임에 반해 측면에 보이는 기둥은 그려진 것이다.
루이 14세의 대리석상
창문 맞은편에 있는 대리석재를 입힌 아치형의 벽감에는 고대 로마 풍으로 무장한 루이 14세 대리석상이 있고 그 맞은편 창문 사이의 가짜 벽감 안에는 각각 신화 속의 멜레아그로스와 아탈란타를 형상화 한 역시 가짜인 조각상이 보인다.
다이아나의 방 천장화
비너스의 방에서 연결되는 다이아나의 방(Salon de Diane)은 비너스의 방과 더불어 외국 사절단의 계단으로 연결되는 입구 역할을 했는데 다이아나 여신에게 바쳐진 이 방 천장 중앙의 원 안에 그려진 그림은 24시간 변화하는 향해와 사냥을 주관하는 신 다이애나를 묘사한 것이다.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
가브리엘 블랑 샤르가 향해와 사냥을 주관하는 모습
다이아나 방에 있는 당구대 장식
4개의 커다란 천장 등이 있는 이 방에 루이 14세는 벨벳 천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당구대를 들여놓게 하고 방의 모서리에 각각 4개의 은제 샹들리에를 달았으며 한쪽에 궁정 사람들이 편안히 앉아 당구 경기를 관전 할 수 있도록 긴 소파들이 놓아 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이애나의 방 안에 있는 루이 14세의 흉상
창문 맞은편 벽에는 황금빛 청동으로 장식한 초석 위에 루이 14세의 대리석 흉상이 놓여있는데 이 흉상은 루이 14세 시대의 최고의 조각가중 한사람인 지안로렌조 베르니니의 작품으로 루이14세가 베르사유궁전으로 불러들여 조각을 하게 했는데 이 흉상은 루이 14세가 허락한 소량의 초상화 흉상 중 하나라고 한다. 루이 14세의 젊음, 장엄함, 그리고 왕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마르스의 방
다이아나 방에서 이어지는 마르스의 방(Salon de Mars)으로 가면 대접견실의 다른 방의 천장처럼 마르스의 방의 천장에서도 이탈리아식의 장식을 볼 수 있다.
마르스의 방 상부 아치
여러 명의 예술가가 마르스의 방 천장 장식에 동원되어 군주의 군사적인 업적을 그렸는데 천장 중앙에 있는 그림 '늑대가 이끄는 마차를 탄 군신 마르스가 소문의 여신 파마의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는 역사와 전쟁의 신을 대동한 모습' 에서는 늑대들의 배와 전쟁의 신을 무기로 들고 있는 아이들의 발바닥이 보인다.
천장화-스테판 오드랑(Stephane Audran)
그러나 이 그림 왼쪽에는 <풍요와 지복의 신과 함께 헤라클레스의 부축을 받고 있는 승리의 신>이, 오른쪽에는 <지상의 세력들을 압도하는 공포, 두려움, 불안> 이 있고 사이사이로 고대 그리스 장군들의 모습을 새겨놓은 금동 조각 6점이 있다.
루이 15세의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Marie Leszczynska)의 초상화
거울의 방
거울의 방(La galerie des Glaces)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총 길이 73m, 폭 10.50m에 달하며 17개의 창문과 578개의 거울이 있는 방이다. 원래 2층 테라스가 있었던 곳으로 건축가 프랑수아 망사르(Francois Mansart)의 설계로 아주 거대한 화랑이 건설되어 대연회무도회장으로 사용한 방으로 천정에 걸려있는 샹들리에와 함께 빛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노라면 당시 가면무도회의의 화려한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루이 14세 친정 17년을 상징하는 17개의 대형거울과 서쪽을 향한 17개의 창문을 통해 바라 볼 수 있는 대 정원, 대 운하는 정원을 향해 열린 바로크양식의 심오한 느낌을 준다.
거울의 방 천장
거울의 방 회랑 조각품들
천장에는 르 브룅(Le brun)이 루이 14세의 생애를 그린 천장화가 있고, 크리스털 샹들리에, 황금 촛대, 화병 등의 장식품도 당시의 최고급품으로 놓여 있다. 이 방은 프랑스의 발전된 제조기술을 과시라도 하듯이 아치형의 대형 거울이 맞은편 유리창과 대칭을 이루며 장엄하게 일렬로 늘어서 있다. 베르사유를 방문한 귀빈이 국왕을 만나러 대접견실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했던 이 방은 외국사절 접견이나, 루이 15세의 아들인 왕세자의 결혼식 같은 매우 특별한 경우에 사용되었다.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그림은 둥근 천장에만 그려져 있는데 내부 장식과 천정화는 왕실 최고화가 샤를르 르브룅( Charles le brun)은 처음에 아폴론이나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그릴 생각이었으나 곧 생각을 바꾸어 루이 14세의 영광에 대해 그리기로 하고 루이 14세가 1661년 통치권을 장악한 때부터 유럽 최고의 통치자가 되게 한 1678년의 네이메헨 조약에 이르기까지 루이 14세의 모든 업적이 묘사되어있다. 긴 회랑을 따라 그림들은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어 그려져 있고, 벽면에 띠 모양으로 돌출 된 코너에는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한편 회랑 양옆에 나란히 배치된 2개의 방은 각각 전쟁과 평화에 헌정된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곳의 장식에서도 거울의 방 천장화의 주제가 계속되어 자연스럽게 국왕의 내실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가 뚜렷한 이러한 내부 장식은 당시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이 거울의 방은 장식이 그 중에서도 매우 특별하다. 그림의 내용을 보면, 국왕의 업적과 그가 이룩해 놓은 업적들을 이야기하는 의인화된 상징에서, 왕은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과 영웅 또는 고대의 위대한 인물처럼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있다. 그림은 관람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수직으로 눈을 들어 쳐다봐야 볼 수 있게 마치 천장에 표구된 듯 배열되어 있다. 양 옆에 나란히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을 거느린 이곳에서 1871년에는 프랑스 공화국을 선포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종결식이 있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서려있는 방이 아닐 수 없다.
베르사유 궁전 전체 지도
거울의 방에서 바라본 정원
서쪽 회랑 전체를 차지한 이 홀에서는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궁전과 정원을 아우른 아래 베르사유궁 약도를 보면 길이 680m에 이르는 궁전 건물이 맨 아래 자그맣게 표시돼 있다. 궁전 본관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축을 중심으로 꽃밭과 울타리, 라톤의 분수, 아폴론의 분수, 십자 모양의 대운하 등이 있어 주위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데 아쉽게도 정원을 돌아 볼 시간이 없다. 이 모든 것을 끝없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가게 설계해 태양왕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태양신 아폴로의 햇살처럼 무한하게 뻗쳐나가는 절대왕권을 표현하고 있다. 사방팔방으로 빛을 내뿜는 태양은 요즘 말로 루이14세의 엠블렘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