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1850~60년대)에 들어서서 서양,특히 독일음악계에서는 미래의 음악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심각하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대립의 한쪽은 당시 독일 바이마르에 거주하고 있던 리스트(Liszt)를 중심으로 모인 '진보 그룹'이었는데,이들은1850년에 발표된 바그너(Wagner)의 <미래의 예술 작품>이라는 논문에서 착상하여 '미래의 음악가'라고 칭했다. 그러다가
1859년에 음악 비평가 브렌델(F.Brendel)이 이 그룹을 '신독일악파(Neudeutsche Schule)'이름지었고, 바그너,리스트,베를리오즈를 이 그룹의 핵심인물로 부각시켰다.이들은 '절대음악'즉 절대적 기악음악은 공허한 음의 울림에 불과할 뿐이며,음악이 본질적으로 출현하려면 극적·시적 모티브를 가진 총체적 예술작품이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와 대립되는'보수주의자'그룹은 음악이 다른 예술과 무관한 절대음악의'빈 고전주의'의 정신과 양식을 계승한다고 자부하는 그룹으로1847년에 사망한 멘델스존을 이은 브람스와 음악 비평가 한슬리크(Eduard Hanslick)등이다. 한스리크는1854년에'음악적 아름다움에 관하여'를 발표하여,음악의 형식적·고전적 이상을 옹호하고, '신독일악파'의 음악의 감성에 대한 호소를 배격했다.
<출처: 서양음악사100장면(2),pp.189~1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