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레위기 20:1-8
한 어머니가 사랑하는 남자와 연애 중에 아들을 임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도 하기 전에 남편이 죽은 겁니다. 이 엄마는 그 후에 재혼을 하지 않고 오직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인생을 살았고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쉽지 않은 인생길을 간 것입니다.
이 엄마에게는 아들이 인생의 전부입니다. 이 아들도 엄마가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아들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내와 자기 않고 자기 엄마와 잔다는 겁니다.
자기 아내가 불평을 쏟아내면 우리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말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들의 입장에서도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고 키워준 어머니를 배신할 수 없는 겁니다. 이 남편은 아내가 아니라 자기 엄마가 언제가 먼저인 겁니다.
과연 이 아들은 결혼을 한 것일까요? 어머니는 자신보다 소중했던 아들을 잘 키운 것일까요? 아내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게 만든 것이 아들을 잘 키운 보람이 될까요?
이 엄마에게 아들은 무엇일까요? 자기 소유였던 겁니다. 자신의 자아를 숭배하기 위한 산 제물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신이 자기 제물을 빼앗기겠습니까? 하나님도 자기 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42장에서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말씀한 것입니다.
타락한 죄인들도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며 신인 자들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의 인생은 자신을 섬기는 자아숭배입니다. 부모는 자식으로 자신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악해도 자식은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에게 자식은 자신을 숭배하는 가장 큰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여 그 자식으로 자신을 숭배하기도 하지만 그 자식을 자신의 정욕과 탐심을 위해 희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자식을 몰렉에게 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는 이방인들의 풍습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이방인들은 자신의 종교적인 열심과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 자기 자식을 몰렉에게 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이 인신제사를 절대로 따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면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돌로 쳐 죽이는 것은 아주 부정한 죄로 저주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인 것입니다.
시편 127장 3절에서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자기의 소유로 삼게 되면 자식을 몰렉에게 제물로 바치게 되는 데 그 몰렉이 결국 무엇겠습니까?
자기 자신인 겁니다. 자식을 자신을 숭배하는 희생 제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식을 몰렉에게 바치는 제사가 많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언제인가 외국 신문에서 우리나라를 자식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을 자기의 소유로 삼아 그 자식으로 자신을 숭배하는 것에 성공하면 그것이 세상에서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여호와의 기업,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자식은 원래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엄마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구하 때 자신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구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장 11절에서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태의 열매가 하나님의 기업인 것을 알고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부모들은 자식을 자신의 소유로 삼아 자식을 통해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숭배하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식을 떠나보내야 할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자식은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임을 잊지 말고 그 육체와 정신이 성장하면 떠나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신을 위해 몰렉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떠나보낸 것입니다. 사무엘 1장에서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로 떠나보냈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어린 모세를 하나님께로 떠나보냈습니다. 출애굽기 2장에서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요게벳의 마음과 믿음은 어린 아들 모세를 하나님께로 보내는 것이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기업이고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요게벳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의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의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그가 널 구원하시리 그가 널 이끄시리라.’ 고백하는 겁니다.
자식은 애물단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애물단지는 몹시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구는 물건이나 사람을 뜻합니다. 물론, 자식은 애만 태우지는 않습니다. 기쁨도 줍니다. 위로도 줍니다. 그러나 결국은 부모를 떠나야 하는 존재인 겁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품에 끼고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다 심판을 받고 죽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 아들을 떠나보내신 것입니다.
그 떠나보내심으로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아들도 영광스럽게 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떠나보내심으로 그 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고 예수님도 아버지를 떠나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는 것은 큰 고통이었지만 그 고난을 통하여 영화롭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는 자식들을 하나님께로 떠나보내지 못했습니다. 아들들이 죄를 짓고 있음에도 인정에 매여 방관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엘리도 그 자식들도 모두 저주를 받고 만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자식을 통해 자신을 숭배하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멀리 떠나보내는 감정의 훈련을 미리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드리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부모와 자식이 다 잘 되는 복된 길입니다. 그리고 자식을 하나님께 멀리 떠나보내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십자가의 못을 박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부인을 통하여 십자가의 승리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먼 나라에 보낸 것은 그를 다시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탕자를 멀리 떠나보냄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게 된 거듭난 아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낸 것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거듭난 믿음의 자녀를 얻기 위해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식을 하나님께로 떠나보냄으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나를 구원하기 위해 떠나보내신 것과 나를 세상에 보낸 것은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함임을 믿으시고 구원의 믿음으로 갖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