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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하나님
1.기독교에서 본 성령관
창조주 하나님의 영.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에게 있어 아버지 하나님,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구별되는 제3위격(位格, 마 28:19; 고후 13:4). 구약에서는 ‘거룩하신 영’, ‘성신’, ‘하나님의 신’ 등으로 나타난다. 성부, 성자와 함께 창조 사역을 하셨으며, 신약에서는 성도의 구원을 이루고 완성하실 보혜사(保惠師)로 성도 가운데 함께 계신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에게 임하여 성도를 지키고 보호하시고 구원을 완성시킨다(눅 11:13; 요일 4:13). → ‘삼위일체’를 보라.
「네이버 지식백과] 성령 [聖靈, Holy Spirit] 라이프성경사전」
성령(聖靈)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에서 하느님을 이루는 세 위격(페르소나) 중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성령이 가지는 성격에 대해서 삼위일체로서의 위격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용하는 강력한 영 즉 활동력이라고 주장도 있다. 과거에는 성신(聖神)이라고도 했으며, 개신교의 전래 초기에는 숨님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구약성서에서는 히브리어 "루아하 코데쉬" (רוח הקודש), 신약성경에서는 코이네 그리스어 "프뉴마" (πνεῦμα)이며 라틴어로는 "스피리투스 상투스" (Spiritus Sanctus)로 번역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하여 본격적인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교회력에서는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가 시작된 날을 성령강림주일로 기념한다.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고백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는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는다. 성령은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경배와 영광을 받으신다’고 고백한다. 단,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령께서는 성부로부터 발하신다’로, 서방교회 전통에서는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필리오케 문제) 발하신다’고 고백하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삼위일체임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의도는 같다. 「위키백과」
삼위일체 즉 성부, 성자, 성령 중에서 가장 적게 알려진 것이 성령론이다. 교의신학을 보면 성부론인 신론도 있고 성자론인 기독론도 있으나 성령론은 따로 없다. 구원을 다룰 때 성령의 사역을 잠깐 말씀한 것뿐이다. 이것은 큰 잘못이다. 더구나 지금은 성령의 시대가 아닌가? 물론 많은 부흥사가 성령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성자에 대한 말씀을 적게 하는 것도 문제이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삼위일체론을 논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해서 형평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사실 성령론을 경시하여 많은 교회의 설교가 차가워진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또 어떤 교단은 성령론만을 너무 강조하여 균형을 잃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을 마치 어떤 에너지나 유령 혹은 권능과 동일시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성령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동일하지 결코 열등한 신이 아니란 점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성령은 지, 정, 의를 가진 인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성령론이 중요한가. 무엇보다도 구원을 우리에게 연결시켜 주는 것이 바로 성령이기 때문이며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사랑과 화평을 이루게 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평신도 신학 신성종」
2. 성령은 어떤 분인가.
① 아타나시우스의 존재론적 삼위일체에서 말하는 성령
「아타나시우스의 존재론적 삼위일체 신조 44」
3. 이 신앙은 다음의 것들이다. 우리는 삼위일체 되신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4. 이 삼위일체는 인격을 혼합한 것도 아니요 그 본질을 나눈 것도 아니다.
5. 왜냐하면 아버지의 한 인격과 아들의 다른 인격 또한 성령의 또 다른 인격이 계시기 때문이다.
6.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머리 되심은 모두가 하나요 그 영광도 동일하며 그 위엄도 함께
영원한 것이다.
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8.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결코 창조되지 않았다.
19. 우리는 이 각각의 세 분이 그 스스로 하나님이시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독 교의 진리로
받는 바이다.
20. 따라서 세 분 하나님이 계시며 세 분 주님이 계시다는 말은 참 기독교인으로서 금한다.
23.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왔으나 지음을 받았거나 유래되었거나 발생된 분이 아니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은 아타나시우스의 존재론적 삼위일체 신조를 바탕으로 교리화 되어 있어서 제 삼위의 하나님으로 스스로 존재하시며 고유의 인격을 가지고 계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성령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았는데 어떤 교단이 성령 부흥 운동이란 명분으로 설교할 때 성령을 강조하면서 교인의 수가 늘어나자 자극을 받아 너도나도 교회에서 성령을 말하거나 강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예배나 집회 때마다 “성령의 임재‘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들이 알고 있는 ‘성령’은 행2장 오순절 사건을 예로 들면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금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가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2-4) 성령하면 방언이며, 방언이 성령 받았다는 증표로 여깁니다.
어떤 교단은 신학생을 모집할 때 모집요강 중 ‘성령세례 받은 자’란 표시를 하게 만든 입학원서도 있었습니다.
‘성령세례 받은 자’는 어떤 자를 말하는 것일까?
이들이 말하는 성령세례는 분명 ‘방언’일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성령입니다.
몸으로 뜨거운 것이 나타나면 성령, 입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면 성령, 그래서 어떤 3살 박이 아이가 옹알이를 하니 그 부모는 “우리 아이가 방언 할 줄 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부모를 보면서 “참 교회가 무식하구나!” “어찌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탄식이 나옵니다.
지금도 기독교 신문에 ‘성령 은사 집회, 성령 치유 집회’라는 광고가 도배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이들이 말하는 성령 집회는 세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집회입니다.
하나님 빙자해서 자기 사욕을 채우는 집회이며, 하나님 이름 팔아 먹고 사는 삯군일 뿐입니다.
성령은 제 삼위의 하나님,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독자적인 인격을 가진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아버지의 생명이며 이 생명이 활동을 하면 성령이라 합니다.
② 성령은 한 분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의 활동이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독자적으로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의 활동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아타나시우스의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기독교의 정통으로 받아들여 성령을 제삼위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15. 성부께서 주님이시듯이 성자와 성령도 주님이시다.
19. 우리는 이 각각의 세 분이 그 스스로 하나님이시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독 교의 진리로
받는 바이다. (아타나시우스의 존재론적 삼위일체 신조44)
아타나시우스가 주장하는 삼위일체는 각각 독자적으로 세 분 하나님이 계시다고 설명하고 있고 따라서 성령 하나님도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으로 교리화하여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교리를 믿고 있는데, 성경은 성령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히3:7-8)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다음 광야에서 물이 없어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한 사건을 ‘성령’이 이르셨다고 했으나 똑같은 사건을 출17:5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출17:5-6)
똑같은 사건을 출17:5-6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으나 히3:7절에서는 ‘성령’이 이르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있는 따로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활동이시기 때문에 구약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셨다 라고 되어 있고 신약에서는 성령이 이르셨다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③ 성령을 소유격으로 말씀하는 구절
아타나시우스가 말한 것처럼 성령이 스스로, 독자적으로 계시는 분이라면 어떻게 아버지의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계시다는 것은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성령은 성령대로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스스로 계시는 분은 아버지 밖에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4)
아들은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낳아야 아들입니다.
“아들을 낳으니리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1:21)
아버지에게서 나온 존재가 아들이 됩니다.
아버지에게서 나오지 않았는데 아들이 되는 존재가 있습니까?
세상에 나가서 한 번 물어보십시오.
스스로 존재하는 아들이 사람과 짐승을 포함해서 한 존재라도 있는지! 왜 기독교는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일까요?
모든 것을 믿음과 결부시켜 “무조건 믿어야지 이렇게 믿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존재다”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23.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왔으나 지음을 받았거나 유래되었거나 발생된 분이 아니시다.
아타시우스가 말하는 성령은 ‘23조 성부와 성자에게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위에 있는 도식을 보면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셨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의 이 신조가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7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8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결코 창조되지 않았다. 라고 말했으면서 23조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다?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아니면 그냥 믿습니까.
스스로 존재하고 결코 창조 되지 않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성령이 어떻게 또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올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20)
성령은 독자적으로 계시는 분이 아니라 아버지 속에 있는 아버지의 생명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소유격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빌1:19)
빌1:19절에서는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성령이 독자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면 어떻게 아버지의 소유가 되며 또 예수님의 소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은 아버지의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요5:26) 아들이 되시므로 예수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성령이 아버지 속에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아버지의 소유이며 바로 아버지의 생명이기 때문에 아버지 속에서 나오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④ 성령은 삼위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 자신의 생명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동등하며
따라서 일위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신 이유는 성령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밖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입니다.
26. 다만 세 분이 함께 동등하다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가 말하는 것처럼 세 분이 동등하다면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은 절대 동등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성령은 아버지와 동등할 수 있는가?
바로 아버지 자신이기 때문에 동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와 내 자신의 생명과 동일한 것, 이것이 동등입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 주장하는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세 분이 각각 존재하시면서 함께 동등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때는 말씀과 성령이 포함된 분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말씀은 여호와 속에 있는 생명 안에 있는 생각을 말씀이라고 하며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생명 자체를 성령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속에 있는 생명과 생각을 ‘태초에 계신 말씀’이라 하는데 이 태초에 계신 말씀 곧 생명과 생각이 입을 통하여 언어로 나오면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1:20)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40:5)
사람의 형체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속에 있는 생명과 생각이 입을 통하여 나오게 될 때 말씀 하나님이 됩니다.
이 말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속에 있는 생명이 생명 안에 있는 생각을 통하여 입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과 여호와 하나님은 구별은 되어도 말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명 안에 있는 생각을 통하여 입으로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면 이것을 성령이라고 합니다. 즉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 속에 있는 생명이 말씀하신대로 옮기면 성령이므로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과 구별은 되어도 여호와 자신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이 ‘일위’이듯이 성령도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삼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위’가 되는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성령이 독자적으로 계시다면 삼위가 되는 것이요, 아버지의 생명이 성령이시다면 일위가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은 인격은 있지만 독자적인 인격은 없습니다.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독자적으로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 안에 아버지의 생명이 성령이기 때문에 인격은 있으나 독자적인 인격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일하시면 아버지의 생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1:18)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예수님 육체의 생명과 아버지의 생명인 성령이 연합된 생명입니다.
왜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실 수 있습니까?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9:5)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딤2:13)
예수님 안에 아버지의 생명인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빌1:19)
예수님 안에 있는 성령이 예수님의 생명과 하나가 되어 예수님께서 일하실 때 예수님의 인격으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신 이유는 예수님 속에 있는 생명이 곧 성령이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의 생명인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이며 선물로 받은 성령은 받은 자 즉, 믿는 자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4. 아버지와 아들은 형체가 있지만 성령은 형체도 없고, 보좌도 없으며,
이름도 없습니다.
구약에서 형체를 가지고 계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밖에 안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 안에 지혜로 말씀으로 계셔서 독자적인 형체가 없으며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이기 때문에 형체가 없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11:7)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창1:26-27) 그래서 남자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남자같이 생겼음을 알 수 있고 여자는 남자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여자를 보면 남자도 똑같이 생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출24:9-11절에 모세, 아론, 나답,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고, 왕상22:19절에 미가야가 만군과 함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창18:1-3절에는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보았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 안에 말씀으로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이 되셨을 때 아들인 예수의 형체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체가 있다는 사실은 신약성경 4복음서에 많이 나와 있으므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뀌는 붙는 불이며”(단7:9)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사람의 형체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보좌에 앉아 계실 수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3:21)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는데 그 보좌가 바로 아버지 보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아마존에서 기도하다가 5박6일 동안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천국에 가보니 여호와 하나님은 키가 약 500m 되며 보좌 중앙에 앉아 계시고 예수님은 오른편 보좌에 앉아 계시고 성령은 왼편에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고 왔다고 합니다. 한국의 유명한 목사님도 천국에 가 보니 보좌가 세 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보좌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왜 보좌가 하나 밖에 없느냐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계3:21절에 예수님은 내 보좌가 곧 아버지 보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10.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영원한 분이시다.
26. 다만 세 분이 동등하다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의 존재론적 삼위일체 44신조)
세 분이 스스로 계시고, 동등하시는데 성령의 보좌만 없다면 어떻게 동등할 수 있습니까?
성령은 보좌가 없습니다.
왜 보좌가 없느냐 성령은 아버지의 생명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형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좌도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주’라고 말씀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도 ‘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성령을 ‘주’라고 말씀한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19. 우리는 이 각각의 세 분이 그 스스로 하나님이시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독교의 진리로 받는 바이다
성경에는 단 한 구절도 성령을 주님이라고 말씀한 곳이 없는데 성령을 주님이라고 말하므로 독자적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만들어서 세 분이 각각 스스로 계시는 주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눅4:18)
눅4:18절에 ‘주의 성령’이라는 말씀은 성령이 주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60:1-2절을 인용하신 것인데 곧 주는 여호와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이며 주의 성령은 성령이 독자적으로 계시는 주가 아니라 성령이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이름이 없습니다.
이름은 보이는 형체에게 붙여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의 생명이며 그 활동이기 때문에 이름이 없습니다.
혹자는 ‘보혜사’가 성령의 이름이라 하는데 보혜사는 예수님도 보혜사이며 아버지도 보혜사입니다.
예수님이 보혜사이기 때문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했습니다.(요14:16)
보혜사란 보호하시고, 은혜주시고, 가르치신다는 것이지 이름은 아닙니다.
5.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믿는 자는 위에 있는 구절대로 믿으면 누구든지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성령을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처럼 한 분 성령, 성부와 따로 계시는 성령이라면 어떻게 믿는 자들에게 선물로 주실 수 있을까요.
한 사람에게 주면 다른 사람은 받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호와’나 ‘예수’는 성경에 고유명사로 써졌고 ‘성령’이나 ‘그리스도’는 일반명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즉 ‘여호와’나 ‘예수’는 형체가 있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 나눠 줄 수가 없지만 ‘성령’이나 ‘그리스도’는 생명이므로 얼마든지 선물로 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1:18)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만일 아타나시우스의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성부와 성령을 각각 존재하는 분으로 믿는다면 예수님의 아버지가 성령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1:18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나를 잉태케 했다는 것은 나를 낳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령이 예수님을 잉태케 하셨으므로 성령이 곧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는 성령이다.”라고 말씀하신 구절이 있습니까?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5:26)
아버지 속에 있는 생명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것이고 이 말씀을 마태는 마태복음에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아버지 속에 있는 생명이나 아들이신 예수님 속에 있는 생명이 똑같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한다면 “DNA가 100%일치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친아들입니다.
이제 믿는 자들도 예수님과 똑같이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친아들이 됩니다.
그래서 요5:26 말씀이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믿는 나에게도 해당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2:11)
믿는 우리와 예수님은 다 똑같은 한 아버지에게 났습니다.
아들 아닌 자를 주워서 아들 삼아 준 자가 아닙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약1:18)
속지 마십시오!!
믿는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친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어디에 받았겠습니까?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1:21-22)
성령은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생명이기 때문에 안에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처럼 성령이 “내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나와 함께 하시다가 내가 죄 짖고 엉망으로 믿으면 떠나는 분”으로 믿는다면 생명이 떠났다가 다시 들어왔다가, 죽었다가 살았다가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고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믿는 자들이 정작 성경은 믿지 않습니다.
분명 “너희 속에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성령이여 임재하여 주옵소서”라 예배 시간마다 기도합니다.
이들을 기독교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이들은 성령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믿으면서 아들이라 하지만 진짜 아들은 아닙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요, 생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며, 성령이 저들 안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믿지 않고 자기주장대로 믿고 자기 믿음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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