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기묘
맑음. 새벽녘에 용궁 현감龍宮縣監이 작은 술병을 보내고, 돌아가는 길에 지은 시 세 수를 부쳐왔다. 이 사람은 시벽詩癖이 있다 할 만한데, 시 또한 원숙하여 볼 만하다. 정낙서鄭洛瑞가 찾아왔다. 밥을 먹은 뒤에 거원巨源 씨·이원而遠과 함께 낙서의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그길로 말을 나란히 하고 근암서원近嵒書院으로 왔다.
원장 및 근처의 노소 10여 인원이 모여서 비로소 우리 면 순제旬製를 채점하였다. 대개 한 달에 열 개 제목을 -시와 부를 합치면 20개 제목이다.- 내기 때문에 거두어진 시권이 많게는 3백여 장에 이른다. 유생들이 만약 열 개 제목을 다 짓는다면 5~6백 장은 되지만 대부분 그렇게 짓지 않으니 안타깝다.
율리栗里에서 보낸 편지와 서울 소식을 받아 보았다. 권중경權重經註 001 영공이 함경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정언正言 조지빈趙趾彬註 002이 상소하여 논박하고 아울러 영의정을 지낸 권대운權大運註 003을 함께 모욕하였고, 지난달 25일 인견引見 때는, 조성복趙聖復註 004은 빨리 국법에 따라 처형하고, 윤각尹慤註 005·류성추柳星樞註 006에게는 엄한 형신을 가해 정상을 캐낼 것을 청하여 윤허를 받았으며, 이 소훈李昭訓註 007이 독살될 때 장선掌膳註 008한 궁인을 국청鞫廳으로 보내어 독약을 시험한 형적을 조사하는 일은 한 번 계청啓請하자 곧바로 윤허하였다. 또 홍석보洪錫輔는 거제로 유배되었으며, 심중량沈仲良註 009 영공이 승지가 되고, 심단沈檀註 010 영공은 공조 참의가 되고, 이협李浹註 011 어른은 참봉이 되었다. 이조 판서 류봉휘柳鳳輝가 다소 공심公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겠으니, 아주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5월 29일
아침에 갰다. 치중致重의 편지를 받아 보았다. 오늘 아침에 소교小橋에 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하였기에 곧바로 가서 만나보고 막혔던 회포를 풀고는 저녁 무렵에 데리고 왔다. 그가 이곳에서 맡은 작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밤에 서원의 재사에 갔는데, 서일瑞一과 인백仁伯이 와 모였다. 치중이 서울 소식을 전해 주었다.
20일께 주상이 가뭄 때문에 친히 빌고, 또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구언求言하였는데, 말의 뜻은 가뭄을 걱정하는 것과 당론黨論에 관한 것이었다. 판서 홍만조洪萬朝註 020가 그 뜻에 응하여 짧은 상소를 올렸는데, 다른 말은 없고 오직 태빈太殯의 별묘別廟註 021에 빨리 알현하기를 청한 것뿐이었다.註 022 지금 당장의 국사가 유독 이 한 가지 일만이 아닌데, 이처럼 성급히 서두르니 한탄스럽다.
월초에 북쪽 사신이 왔는데, 탐욕스럽고 비루함은 저번 칙사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밤에 큰비가 내렸다. 울산 부사가 보내준 절선節扇(단오절에 선사하던 부채) 세 자루와 경상 감영에서 보내준 다섯 자루가 연이어 왔다. 울산 부사는 홍상빈洪尙賓註 02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