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장 시스템 입문과 생활 스트레스
후지쓰우 연수원 입원식후 기념사진
(처음 게재했던 사진이 잘못되어 교채했음)
기술연수 두번째 날, 출근하자 마자 과장이 부르셨다. 그는 내 학력을 보았는지 OO대학출신이라 도와주고 싶다며 연수 일정을
바꾸자고 했다. 원래 계장팀의 기술연수는 니혼고깐에서 3개월 후 계측기 메이카에서 제품 검수를 겸해 2개월로 되어있었다.
과장은 먼저 계장 시스템 메이카에 가서 기본을 익힌 후 제철소 연수를 하자고하셨다. 그런 일정을 조정하자면 시간이 필요하므로 첫 주일은 여기서 하고 둘째 주부터 제강분야 계장시스텀 공급업체인
후지쓰우(富士通)에서 기본을 익히고 그 다음 제선분야 시스템공급업체인
야마다께 하니웰(山무 Honeywell)에서 연수후에 제철소
연수를 하자는 것이었다. 다른 의견이 없으면 일정조정은 자기들이 해 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로 서는 고마울 뿐이었다.
며칠은 그런대로 잘 지내 갔다. 첫번째
별일은 4-5일 지난 뒤 독신료에서 생겼다. 석식 중에 식당
배식 여직원이 비명을 질렀다. 모두들 놀라서 치어다 보니 연수생 중 일원이었다. 식당 매니저도 나오고 야단이었다. 놀라서 담당팀장과 함께 나가 무슨
일이냐 니까 밥을 좀 더 달라고 배식 여직원의 손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바로 매니저에게 말이 통하지 않아 배식을 좀더
달라고 한 것이니 이해를 부탁드리며 매니저와 여직원에게 정중히 사과를 드렸다. 매니저는 바로 ‘나니모 아리마셍(아무일도 없다)’하며
식당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이마에 식은 땀이 날 정도로 매니저의 조치에 감사를 드렸다.
하지만 한국인의 식사량이 일본보다 많으니 모두들 밥을 더 먹었으면 하는 생각은
똑 같았다. 그러나 배식 하는 여직원은 거의 습관적으로 배식접시에 떠 줄 뿐이다. 상황을 설명 드리고 매니저에게 한국인은 식사량을 좀 더 늘여 달라고 부탁했더니 매니저는 배식 접시를 가져오면
두 번이던 세 번이던 먹을 수 있다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어떤 친구는 세번이나
먹었다고 자랑들을 했지만 일본인에게는 창피한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한국식은 일식에 비해 반찬 량도 많고 밥도 푸짐했지만 그때 일본인들은
소식(小食)을 하고 있었다.
가끔 일본 민속춤에는 벼 이삭을 주어 떡을 해 먹는 것들이 보인다. 일본인들은 그때부터
먹을 게 없어서 벼 이삭까지 주워서 먹고 사느라고 소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들 흔히들 일본의
부(富)는 허리띠를 졸라 맨데에서 나왔다고들 하기도 한다.
그 사이 조금씩 현장에 익숙해 갔으나 두번째 별일은 회사 지원 팀에서는 욕실
예법을 지켜 달라고 했다. 근무가 끝나면 온 몸이 먼지투성이라 반드시 몸을 씻는데 욕실에서는 타월로
국부를 가려달라는 당부였다. 처음부터 주의를 받았지만 습관이 안되어서인지 타월로 국부를 가리지 않고
욕실내를 다닌다며 직원들의 불편한 이야기가 제기된다고 했다.
지금도 일본 온천탕에 가면 큰 타월과 작은 타월 하나씩을 쓰게 된다 작은
것은 국부를 가리는 게 그들의 생활 습관인데 국부를 들어내 놓고 다니니까 불만이 나올 만도 했다. 그
다음날부터 목욕도 팀장과 함께 들어가 단속하기로 했다. 하지만 습관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아 팀장들도
실수를 하곤 했다.
세번째 별일은 주말에 후지쓰우(富士通, 富士通信株式會社의 약어)로 갈 준비를 하는데 요장(寮長)이 쫓아왔다. 각
팀장들이 언어소통이 잘 안되니 한국인에게 전달하는 사항은 무조건 제방으로 쫓아오는 것이었다. 야간에
늦게까지 음향기기를 틀어서 이웃방에서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저녁 9시 이후는 삼가 해달라는 것이다. 방번호를 찾아가니 팀장 방이었다. 사연인 즉 그 사이에 룸메이트와
소니와 아이와의 워크맨을 사서 어느 게 음질이 더 좋은지? 녹음이 잘되는지 시험을 해 보았다는 것이다. 무심코 저질렀지만 독신료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왜 하필 늦은밤에 워크맨을 트냐고 물었더니 연수는 오후 5시에 끝나지만 목욕을 하고 귀료(歸寮)해서 식사 후 자료정리를 하고 나면 그런 걸 틀어볼 시간이 늦은
시간뿐이었다는 것이다. 독신료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호텔로 옮겨야 하는데 시설은 더 좋겠지만 비용이 거의 10배는 차이가 났다. 연수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각팀장들을 통해 쫓겨나지 않으려면 규칙을 지키라고 했다.
월요일 아침 계장팀은 요장과 협의하여 큰 짐은 내방에 모아 놓고 후지쓰우에서
보내 준 버스로 하찌오우지(八王子)에 있는 연수원으로 갔다. 정문을 들어서니 입구에 태극기가 일장기와 나란히 게양되어 있어 왠지 기분이 좋았었다.
후지쓰우는 자기들 제품을 구입한 회사에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그 회사 직원들을
연수시켜서 보낸다고 했다. 과정별로 기간이 다른데 계획은 2주일
코스지만 니혼고깐의 특별한 요구에 따라 3주코스로 들어간다고 했다.
입원식을 했다. 원장의 이야기로는
대만분과 필립핀 분들은 연수를 시킨 적은 있지만 한국인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니혼고깐의 부탁도 있어 부담없이 지원할 터이니 잘 배워서 후지쓰우 기기를
잘 써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제 계장 맨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감돌았다.
입원식이 끝나고 그야말로 계장(계기장치) 시스템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했다. 옛날 4대강 유역 수량관리 시스템때 후지쓰우 사람에게 배운 적이 있어 조금은 낮이 덜 설었다. 교육은 오전 4시간 오후는 실습을 포함해서 4시간, 8시간이지만 진도에 따라 조정된다고 했다. 함께 간 직원들의 언어가 불편하니 통역을 하면 어떠냐 고 제의했더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통역을 하면서 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를 확인도 할 겸 통역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교육시설은 초보자도 배울 수 있도록 시설들이 갖추어 져 있었고 모형들과 실물들이
준비 되어있어서 한눈에 어떻게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끔 만들어 놓았다. 시설들은 직접 입력치를 변경해가며
결과에 따라 변환출력과 현장기기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가 있도록 시뮤레이터(Simulator, 모의시험장치)가 잘 되어있었다. 지금까지 계장은 계기판만 보고 작업을 하는 줄
알았는데 계기는 시스템의 입력 신호를 검출한 것을 보여줄 뿐이고 이 신호를 변환하여 작동신호를 만들어 현장의 기계들을 움직이는 게 계장시스템이라고
했다.
4대강 유역 개발설계때엔 수위를 측정해서 펌프를 가동시키고 그래도 수위가 낮아지지 않을 때는 기계측에서
댐 문을 열도록 했지만 이제 이게 모두 시스템 분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철강제조업에서는 조업팀은 계측기만 보고 생산하지 그 제품이 제대로 생산되는지
아닌지는 계장시스템의 관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철강제조 중에는 너무 뜨거워 아무런 확인도 할
수 없으니 그들은 계장시스템만 믿고 식은 다음에 품질을 체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계장시스템이 잘못되면
전부 불량품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숙소는 일식 여관을 정해주었다. 연수원내에는
장기간 숙식할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단 중식만은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여관은 온천장처럼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한국의 여느 옛 여관들처럼 방이 복도를 따라 이어져 ‘ㄷ자' 형으로 되어있고 가운데는 일본식 정원이 아담하게 꾸며져 있어
아름다웠다. 정원가운데 있는 연못에는 팔뚝 만한 잉어들이 노닐고 있었다. 숙식비가 자부담이라 가격을 고려해서 선택했다는 것이다. 식사는 우리끼리
한자리에 모여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 다음 날 아침식사는 밥 한공기에 미소시루와 낫또(納豆), 일본차 그리고 몇 가지 쓰께다시(付出)뿐이었다. 여전히 한국사람들의 식사량에는 부족했다.
연수는 8시부터 시작되지만 세수하고
식사를 하려면 늦어도 6시는 기상해야 후지쓰우에서 오는 버스를 탈수 있었다. 오전수업은 용어들의 설명이었다. 통역을 하기로 하고 그로 인해 지연될
경우는 오후 5시가 넘어도 그날 일과는 끝내기로 했다. 일본사람들은
내 말에 간사이벤(関西弁)이 섞겨있다며 어디서 일본어를 배웠냐고 물었다. 미에껜 나가지마(長島)시에서 교민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관서지방
사투리를 배운 것 같았다.
연수가 시작되면 후지쓰우에서
과일과 오차를 강의실에 준비해 주었다. 모두들 아침 식사량이 모자라 그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우리가 이름만 들어본 바나나도 있었다. 휴식시간이 되면
화장실보다 바나나를 한 개씩 먹는게 우선이 되었다. 잠깐사이에 과일바구니를 비워버렸다. 나도 배가 허전한데 현장직원들은 더했을 것이다. 강사는 다시 과일
바구니를 다시 채워 놓겠다며 한국사람은 바나나를 좋아하는 모양이지요 했다. 좀 창피하기도 하지만 한국엔
바나나가 귀해서 그렇다고 변명을 했다.
여관의 석식은 아침보다는
좋았다. 작지만 생선토막도 보이고 반찬도 몇 가지 추가되었지만 밥은 여전히 공기 밥이었다. 일본사람들의 식사량이 우리보다 적적은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 잘
먹었느냐 는 여관주인의 말씀에 고찌소우사마데시다.(御馳走,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은 했지만 양이 적어서인지 찬까지 한가지도 남김없이 먹은 걸 보고 여관주인은 오가주가 고노무(好)데수까, 못도 아게루요(반찬을 더 원하냐, 좀 더 드릴까요).
할말이 없었다. 창피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을 해야 할 사항이었다. 배가 고파 일을 못한다면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주인장께 솔직히 한국사람은 식사량이 일본사람보다 많고 반찬 량도 한국이 많으니
좀 늘여 달라고 했더니 한마디로 그러지요 했다.
그 다음 날 아침 식탁엔 아예 전기밥솥을 놓고 ‘오가와리(御代)시데 구다사이(추가로 드세요)’라고 하셨다. 반찬
량도 두배쯤 되었다. 직원들은 한 공기 씩 더 먹을 수 있어 식사량은 그런대로 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