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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回 先軫詭謀激子玉 晉楚城濮大交兵
제40회: 선진은 속임수로 성득신을 격분시켜 진나라와 초나라는 성복에서 크게 교전하다
話說,趙衰奉了晉侯密旨,乘車來看魏犨。時魏犨胸脯傷重,病臥於牀,問:「來者是幾人?」左右曰:「止趙司馬單車至此。」魏犨曰:「此探吾死生,欲以我行法耳!」乃命左右取疋帛:「為我束胸,我當出見使者。」左右曰:「將軍病甚,不宜輕動。」魏犨大喝曰:「病不至死,決勿多言!」如常裝束而出。趙衰問曰:「聞將軍病,猶能起乎?主公使衰問子所苦。」魏犨曰:「君命至此,不敢不敬,故勉強束胸以見吾子。犨自知有罪當死;萬一獲赦,尚將以餘息報君父之恩,其敢自逸!」於是距躍者三,曲踊者三。
한편, 조쇠가 진문공의 밀지를 받들어 수레를 타고 위주의 병세를 살피러 갔다. 그때 위주는 가슴에 중상을 입고 침상에 누워 있다가, 묻기를, “찾아온 사람이 누구냐?” 하니, 좌우시종이 말하기를, “사마 조쇠 혼자 수레를 타고 오셨습니다.” 했다. 위주가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생사를 탐지하여 나에게 법을 집행하려는 것이다.” 하고, 이에 좌우시종에게 명하여 비단을 가져오게 하여 “내 가슴을 싸매어라. 내가 나가서 사자를 뵙겠다.” 하니, 좌우시종이 말하기를, “장군은 병이 위독한데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했다. 위주가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병이 들었으나 죽을 지경은 아니다. 결단코 다른 말을 하지 말라.” 하고, 평상복을 입고 나갔다. 조쇠가 묻기를, “제가 듣자 하니, 장군의 병이 위중하다던데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소? 주공께서 나를 시켜서 아파 고생하시는 장군을 위문하라 하셨습니다.” 했다. 위주가 말하기를, “주군의 명이 이러한데 감히 불경하게 누워서 맞이할 수야 없지요. 굳이 가슴을 비단으로 동여매고 대감을 만나려고 일어났습니다. 이 주(犨)는 지은 죄가 마땅히 죽음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용서를 받는다면 아직 남아 있는 목숨을 바쳐 주군에게 입은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어찌 감히 스스로 편안함을 추구하겠습니까?” 했다. 위주가 말을 마치고 발을 굴러 세 번을 높이 뛰어오르고 몸을 뒤틀며 세 번 춤을 췄다.
趙衰曰:「將軍保重,衰當為主公言之。」乃復命於文公,言:「魏犨雖傷,尚能躍踊,且不失臣禮,不忘報效。君若赦之,後必得其死力。」文公曰:「苟足以申法而警眾,寡人亦何樂乎多殺?」須臾,荀林父拘顛頡至,文公罵曰:「汝焚僖大夫之家何意?」顛頡曰:「介子推割股啖君,亦遭焚死,況盤飱乎?臣欲使僖負羈附於介山之廟也!」文公大怒曰:「介子推逃祿不仕,何與寡人?」乃問趙衰曰:「顛頡主謀放火,違命擅刑,合當何罪?」趙衰應曰:「如令當斬首!」文公喝命軍正用刑。刀斧手將顛頡擁出轅門斬之。
조쇠가 말하기를, “장군은 몸을 보중하시오. 이 쇠가 주공에게 말씀을 올리겠소.” 했다. 조쇠가 진문공에게 복명하여 말하기를, “위주는 비록 상처가 심하기는 하지만 아직 뛰어오르고 춤을 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하로서 예의를 잃지 않아, 주군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만약 용서하시면 후에 반드시 죽을힘을 다할 것입니다.” 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나는 다만 법을 세워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려고 했을 뿐이오. 과인인들 어찌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겠소?” 했다. 잠시 후에 순임보가 전힐(顚頡)을 결박하여 문공 앞으로 끌고 왔다. 진문공이 꾸짖기를, “너는 무슨 마음으로 희대부의 집을 불 질렀느냐?” 하니, 전힐이 말하기를, “개자추는 허벅지 살을 베어 국을 끓여 주군께 바쳤음에도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하물며 음식 몇 가지를 바친 것이 뭣이 그리 대단합니까? 신은 희부기를 개산의 개자추 사당에 붙이려고 한 것입니다.” 했다. 진문공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개자추는 벼슬을 하기 싫다고 해서 달아난 사람이다. 어찌 과인에게 허물을 따진단 말이냐?” 했다. 진문공이 이에 조쇠에게 묻기를, “전힐이 주모한 방화는 명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형벌을 가했으니 어떤 죄에 해당하는가?” 하니, 조쇠가 응답하기를, “참수형에 해당합니다.” 했다. 진문공이 군 법무관에게 형을 집행하라고 큰소리로 명했다. 도부수들이 전힐을 진영의 원문 밖으로 끌고 나가서 그의 목을 참했다.
命以其首祭負羈於僖氏之家,懸其首於北門,號令曰:「今後有違寡人之令者,視此!」文公又問趙衰曰:「魏犨與顛頡同行,不能諫阻,合當何罪?」趙衰應曰:「當革職,使立功贖罪。」文公乃革魏犨右戎之職,以舟之僑代之。將士皆相顧曰:「顛魏二將,有十九年從亡大功,一違君命,或誅或革,況他人乎?國法無私,各宜謹慎!」自此三軍肅然知畏。史官有詩云:「亂國全憑用法嚴,私勞公議兩難兼。祇因違命功難贖,豈為盤飱一夕淹?」話分兩頭。卻說,楚成王伐宋,克了緡邑,直至睢陽,四面築起長圍,欲俟其困,迫而降之。忽報:「衛國遣使臣孫炎告急。」
진문공이 명하여, 전힐의 수급을 희부기의 집에 가져가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수급을 북문 위에 달아놓게 했다. 그리고 명령하기를, “이후로 과인의 명령을 어긴 자는 이것을 보라!” 했다. 진문공이 다시 조쇠에게 묻기를, “위주가 충고하여 막지 못하고 전힐과 함께 저질렀으니, 무슨 죄에 해당하는가?” 하니, 조쇠가 응답하기를, “마땅히 그의 직위를 내리고 뒤에 공을 세워 속죄하게 해야 합니다.” 했다. 진문공이 이에 위주를 어가의 오른쪽에 타는 직책에서 바꾸고, 주지교(舟之僑)로 대신하게 했다. 장수와 군졸들이 모두 서로 쳐다보며 말하기를, “전힐과 위주는 주군을 19년 동안 망명에 따라다니면서 큰 공을 세웠음에도, 군주의 명령을 한 번 어김으로써 한 사람은 죽임을 당하고 한 사람은 직위가 삭탈되었으니,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나라의 법에 사사로움이 없으니 우리 모두 각기 근신해야 할 것이다!” 했다. 이로부터 삼군의 군기가 엄숙해지고 군명의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엄한 법에 의지하려 하는데. 사사로운 공로와 공평한 의론은 겸하기가 어렵다. 한 번의 잘못으로 지은 죄를 옛 공으로도 속죄하지 못했으니, 어찌하여 한 끼의 음식을 바쳐 세운 공이라고 참지 못했는가?” 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초성왕은 송나라를 정벌하여 민읍(緡邑)을 점령하고, 바로 송나라 도성인 수양성(睢陽城)에 이르러 사방을 에워싸고 송나라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시에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 낼 생각이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위나라에서 사신 손염(孫炎)을 보내와 위급을 알려 왔습니다.” 했다.
楚王召問其事,孫炎將晉取五鹿,及衛君出居襄牛之事,備細訴說:「如救兵稍遲,楚丘不守。」楚王曰:「吾舅受困,不得不救。」乃分申息二邑之兵,留元帥成得臣及鬥越椒、鬥勃、宛春一班將佐,同各路諸侯圍宋。自統蒍呂臣鬥宜申等,率中軍兩廣,親往救衛。四路諸侯,亦慮本國有事,各各辭回,止留其將統兵。陳將轅選,蔡將公子印,鄭將石癸,許將百疇,俱聽得臣調度。單說,楚王行至半途,聞晉兵已移向曹國,正議救曹。未幾,報至:「晉兵已破曹,執其君。」楚王大驚曰:「晉之用兵,何神速乃爾?」
초성왕이 손염을 불러서 그 일을 물으니, 손염이 진(晉)나라 군사가 오록(五鹿)성을 취하고, 위(衛)나라 군주가 도성에서 나와 양우(襄牛)에 머물게 된 일을 세세하게 하소연해 말하고, “만약 구원병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초구성은 지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했다. 초성왕이 말하기를, “내 장인이 위태롭게 되었다니 구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하고, 이에 신(申)과 식(息) 두 고을의 군사를 나누어, 그 반은 원수 성득신과 투월초(鬪越椒), 투발(鬪勃), 완춘(宛春) 등과 일반 장수에게 주어 여러 제후와 함께 송나라를 포위하게 하고, 초성왕 자신은 위여신(蔿呂臣), 투의신(鬪宜申) 등과 중군 양광(兩廣)을 거느리고 친히 위나라를 구하러 갔다. 진(陳), 채(蔡), 정(鄭), 허(許) 등 네 나라 제후들은 본국에 변란이 있을까 걱정하여 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갔으나, 그들의 장수들을 남겨서 군사들을 거느리게 했다. 진나라 장수 원선(轅選), 채나라 장수 공자인(公子印), 정나라 장수 석계(石癸), 허나라 장수 백주(百疇) 등이 모두 성득신의 지휘에 따랐다. 한편, 초성왕이 반쯤 진군했을 때, 진(晉)나라 군사들이 이미 조나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고, 조나라를 구원하려고 상의했다. 얼마 안 되어 보고하기를, “진나라 군사가 이미 조나라를 함락하고 그 군주를 잡았습니다.” 했다. 초성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진(晉)나라의 용병이 어찌 이리 귀신처럼 신속한가?” 했다.
遂駐軍於申城,遣人往穀,取回公子雍,以穀地仍復歸齊,使申公叔侯與齊講和,撤戍而還。又遣人往宋,取回成得臣之師,且戒諭之曰:「晉侯在外十九年矣,年踰六旬,而果得晉國,備嘗險阻,通達民情,殆天假之年,以昌大晉國之業。非楚所能敵也,不如讓之。」使命至穀,申公叔侯致穀修好於齊,班師回楚。惟成得臣自恃其才,憤憤不平,謂眾諸將曰:「宋城旦暮且破,奈何去之?」鬥越椒亦以為然。得臣使回見楚王:「願少待破宋,奏凱而回。如遇晉師,請決一死戰;若不能取勝,甘伏軍法。」
초성왕은 즉시 군사들을 신성(申城)에 주둔하게 하고, 사람을 제나라의 양곡(陽穀)으로 보내어 공자 옹을 소환하고, 양곡 땅을 제나라에 돌려주려고 했다. 그래서 신공 숙후를 제나라에 보내어 군사를 철수시키고 땅을 돌려주고 강화를 맺으라고 하였다. 또 사람을 송나라에 보내서 성득신의 군사를 돌아오게 하고 경계하기를, “진문공이 외국에 19년간이나 있었고 나이가 육순이 넘어서 진나라 군주에 올랐으니 일찍이 험한 일을 다 겪었고 백성들의 사정을 꿰뚫고 있으며, 아마도 하늘이 그에게 천명을 내려서 진나라를 번창시키도록 하고 있으니, 우리 초나라가 능히 대적할 수 없다. 차라리 우리가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 했다. 사신이 양곡에 도착하여 신공 숙후가 양곡에서 제나라와 수호하고 초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왔다. 오직 성득신이 스스로 재주를 믿고 화를 내어 불평하면서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송나라 도성을 머지않아 함락할 것인데 어찌하여 떠나라는 말인가?” 했다. 투월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였다. 성득신이 사자에게 초성왕을 뵙고 말하게 하기를, “원컨대 조금만 기다리면 송나라를 함락하고 개선을 아뢰면서 돌아가겠습니다. 만약 진(晉)나라 군사와 만난다면 목숨을 걸고 한번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군법을 달게 받겠습니다.” 했다.
楚王召子文問曰:「孤欲召子玉還,而子玉請戰,於卿何如?」子文曰:「晉之救宋,志在圖伯;然晉之伯,非楚利也。能與晉抗者惟楚,楚若避晉,則晉遂伯矣。且曹衛我之與國。見楚避晉,必懼而附晉。姑令相持,以堅曹衛之心,不亦可乎?王但戒子玉勿輕與晉戰,若講和而退,猶不失南北之局也。」楚王如其言,吩咐越椒,戒得臣勿輕戰,可和則和。成得臣聞越椒回復之話,且喜不即班師,攻宋愈急,晝夜不息。宋成公初時,得公孫固報言,晉侯將伐曹衛以解宋圍,乃悉力固守。及楚成王分兵一半,救衛去了,得臣之圍愈急,心下轉慌。
초성왕이 자문을 불러 묻기를, “내가 자옥을 불러 돌아오게 하려는데 자옥이 싸우기를 청하니 경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니, 자문이 말하기를, “진(晉)나라가 송나라를 구하려고 하는 이유는 패업에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晉)나라의 패업은 초나라에 이롭지 않습니다. 능히 진(晉)나라와 대적할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초나라뿐인데, 만약 초나라가 진(晉)나라를 피한다면 진(晉)나라가 마침내 방백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조(曹)나라와 위(衛) 나라는 우리 초나라를 받들고 있다가, 초나라가 진(晉)나라 군사를 피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두려워하여 진나라에 붙을 것입니다. 잠시 서로 버티어서 조나라와 위나라의 마음을 안정시킨 후에 또한 철수시켜도 되지 않겠습니까? 대왕께서 다만 자옥에게 경계하여 경솔하게 진나라 군사와 싸우지 말고, 만약 강화를 하고 물러난다면 오히려 남북의 국면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초성왕은 자문의 말대로 투월초에게 분부하여 성득신은 함부로 싸움을 하지 말고 강화를 할 수 있으면 강화를 하라고 경계했다. 투월초가 돌아와 전하는 초성왕의 명을 들은 성득신은 우선 군사를 철수시키지 않는 것에 기뻐하며, 송나라를 더욱 급하게 공격하여 주야로 쉬지 않았다. 송성공은 처음에 공손고의 보고를 듣고, 진문공이 장차 조나라와 위나라를 치면 초나라 군사가 송나라의 포위를 풀 것이라고 생각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성을 지켰다. 그리고 얼마 후에 초성왕이 군사의 반을 나누어 위나라를 구하러 간 후에, 성득신의 포위공격이 더욱 급해지자 마음이 어리둥절해졌다.
大夫門尹般進曰:「晉知救衛之師已行,未知圍宋之師未退也。臣請冒死出城,再見晉君,乞其救援。」宋成公曰:「求人至再,豈可以空言往乎?」乃籍庫藏中寶玉重器之數,造成冊籍,獻於晉侯,以求進兵,只等楚兵寧靜,便照冊輸納。門尹般再要一人幫行,宋公使華秀老同之。二人辭了宋公,覷個方便,縋城而出。偷過敵寨,一路挨訪晉軍,到於何處,逕奔軍前告急。門尹般華秀老二人見了晉侯,涕泣而言:「敞邑亡在旦夕,寡君惟是不腆宗器,願納左右,乞賜哀憐!」
대부 문윤반(門尹般)이 나와서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사는 위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초나라 군사가 송나라에서 물러갔다는 것만을 알고, 아직도 송나라를 포위한 초나라 군사가 물러가지 않았다는 것을 모릅니다. 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성을 나가서 다시 진나라 군주를 만나 구원을 청해 보겠습니다.” 하니, 송성공이 말하기를, “또다시 구원을 청하러 가는데 빈손으로 가서 되겠는가?” 하고, 즉시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보옥과 귀중한 기물들의 수를 적어 장부로 만들어 진나라 군주에게 바치고, 군사를 보내어 구원해 주기를 청하게 했다. 그리고 초나라 진영이 조용해질 때를 기다려 장부에 적힌 대로 실어다 바치려고 했다. 문윤반이 다시 자기를 도와서 동행할 한 사람을 요청하니, 송성공이 화수노(華秀老)에게 명하여 함께 가도록 했다. 두 사람이 송성공에게 인사를 하고 초나라 진영의 정세를 살핀 후 밧줄을 타고 성 밖으로 나가서 초군 진영을 몰래 통과했다. 그 길로 진나라 군사를 찾아가다가 어느 곳에 이르러 샛길로 달려가 진영에 급히 고했다. 문윤반과 화수노 두 사람이 진문공을 뵙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우리 송나라는 아침저녁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군주께서 변변치 않은 기물을 적어 주셨으니 원컨대 받아 주시어 불쌍한 저희들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했다.
文公謂先軫曰:「宋事急矣!若不往救,是無宋也。若往救,必須戰楚。郤縠曾為寡人策之,非合齊秦為助不可。今楚歸穀地於齊,與之通好,秦楚又無隙,未肯合謀,將若之何?」先軫對曰:「臣有一策,能使齊秦自來戰楚。」文公欣然,問:「卿有何妙計,使齊秦自來戰楚?」先軫對曰:「宋之賂我,可謂厚矣!受賂而救,君何義焉?不如辭之。使宋以賂晉之物,分賂齊秦,求二國向楚宛轉,乞其解圍。二國自謂力能得之於楚,必遣使至楚。楚若不從,則齊秦之隙成矣。」文公曰:「倘請之而從,齊秦將以宋奉楚,與我何利焉?」
문공이 선진에게 말하기를, “송나라의 일이 급하구나! 만일 가서 구하지 않는다면 송나라는 망할 것이다. 만약 구하러 간다면 반드시 초나라와 전쟁을 해야 할 텐데 극곡이 죽기 전에 나에게 말하기를, 제나라와 진(秦)나라의 도움 없이는 초나라와 싸우지 말라고 하였다. 오늘 초나라가 양곡의 땅을 제나라에 돌려주고 강화조약을 맺었고, 진(秦)나라와 초나라는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 우리와 함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장차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니, 선진이 대답하기를,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제나라와 진(秦)나라가 스스로 찾아와서 초나라와 싸울 것입니다.” 했다. 진문공이 기뻐하며 묻기를, “경은 무슨 묘책이 있기에 제나라와 진(秦)나라를 스스로 와서 초나라와 싸우게 한단 말이오!” 하니, 선진이 대답하기를, “송나라가 우리에게 뇌물로 바치겠다고 장부에 적어서 가져온 것이 아주 많습니다. 뇌물을 받고 그들을 구한다면 주군께서 어떻게 의리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송나라로 하여금 우리에게 바치겠다고 한 뇌물을 나누어서 제나라와 진(秦)나라에 바치도록 하고, 두 나라가 초나라에 대항하여 송나라의 포위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게 하십시오. 두 나라는 자기들의 능력이 능히 초나라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틀림없이 사신을 초나라에 보낼 것입니다. 초나라가 만약 두 나라의 요청을 따르지 않으면 초나라는 제나라와 진(秦)나라에 틈이 생길 것입니다.” 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만약 초나라가 제나라와 진(秦) 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제나라와 진(秦)나라는 송나라로 하여금 초나라를 맹주로 받들라고 할 텐데 그리되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했다.
先軫對曰:「臣又有一策,能使楚必不從齊秦之請。」文公曰:「卿又有何計,使楚必不從齊秦之請?」先軫曰:「曹衛,楚所愛也;宋,楚所嫉也。我已逐衛侯,執曹伯矣。二國土地,在我掌握,與宋連界。誠割取二國田土,以界宋人,則楚之恨宋愈甚。齊秦雖請,其肯從乎?齊秦憐宋而怒楚,雖欲不與晉合,不可得也。」文公撫掌稱善。乃使門尹般以寶玉重器之數,分作二籍,轉獻齊秦二國,門尹般如秦,華秀老如齊,約定一般說話,相見之間,須要極其哀懇。秀老至齊,參見了昭公,言:「晉楚方惡,此難非上國不解。若因上國得保社稷,不惟先朝重器不敢愛,願年年聘好,子孫無間。」
선진이 대답하기를, “신은 또 하나의 계책이 있는데, 능히 초나라로 하여금 제나라와 진(秦)나라의 요청을 거절하게 할 것입니다.” 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경이 또 어떤 계책이 있기에 초나라로 하여금 제나라와 진(秦)나라의 요청을 거절하게 한다는 것이오?” 하니, 선진이 말하기를, “조(曹)나라와 위(衛)나라는 초나라가 애착하는 나라이지만, 송나라는 미워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미 위나라 군주를 내쫓았으며 조나라 군주는 사로잡아 가두어 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나라 영토는 우리의 수중에 있으며 또한 그 영토는 송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만약 두 나라의 영토를 쪼개어 그 일부를 송나라에 떼어 준다고 하면, 초나라는 송나라에 대한 원한이 더욱 깊어져 제나라와 진(秦)나라기 비록 요청한다고 한들 그것을 따르겠습니까? 제나라와 진(秦)나라가 송나라를 불쌍히 여기고 초나라를 노여워한다면, 비록 우리 진(晉)나라와 힘을 합치지 않으려 해도 합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했다. 진문공이 박수를 치며 훌륭한 계책이라고 칭찬했다. 이에 문윤반을 시켜 보옥과 귀중한 기물들의 목록을 둘로 나누어, 제나라와 진(秦)나라에 각각 바치게 하고, 문윤반은 진(秦)나라로 가고, 화수노는 제나라로 가서 같은 말을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각기 그 군주를 뵐 때에 극진하고 간곡한 마음으로 구원을 청하기로 했다. 화수노가 제나라에 도착하여 소공을 뵙고 말하기를, “진(晉)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미워하여 상국이 아니면 이 어려움을 풀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상국의 수고로 인하여 우리가 사직을 보전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기물을 감히 아깝다고 하지 않고 바칠 뿐만 아니라 해마다 사절을 보내어 대대로 우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했다.
齊昭公問曰:「今楚君何在?」華秀老曰:「楚王亦肯解圍,已退師於申矣。惟楚令尹成得臣新得楚政,謂敝邑旦暮可下,貪功不退。是以乞憐於上國耳!」昭公曰:「楚王前日取我穀邑,近日復歸於我,結好而退,此無貪功之心。既令尹成得臣不肯解圍,寡人為宋曲意請之。」乃命崔夭為使,逕至宋地,往見得臣,為宋求釋。門尹般到秦,亦如華秀老之言。秦穆公亦遣公子縶為使,如楚軍與得臣討情。齊秦兩不相照,各自遣使。門尹般和華秀老俱轉到晉軍回話。文公謂之曰:「寡人已滅曹衛,其田近宋者,不敢自私。」
제소공이 묻기를, “지금 초나라 군주는 어디에 있는가?” 하니, 화수로가 말하기를, “초왕도 역시 포위를 풀어 줄 뜻으로 이미 군사를 신성(申城)으로 물렸습니다. 단지 초나라 영윤 성득신이 초나라의 정사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에서 군사를 물리치지 않고 우리의 도성을 아침저녁 사이에 함락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상국에 도움을 청하려고 온 것입니다.” 했다. 제소공이 말하기를, “초성왕이 옛날에 우리 양곡 고을을 빼앗아 가더니 얼마 전에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고는 화의를 맺고 물러갔다. 이것은 공을 탐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초나라의 영윤 성득신이 포위를 풀어 주지 않고 있다 하니 과인이 송나라를 위해서 간곡하게 청해 보겠다.” 하고, 즉시 최요를 사자로 삼아 곧바로 송나라 땅에 주둔하고 있는 성득신을 만나 송나라를 포위한 것을 풀어 주라고 청했다. 한편 문윤반도 진(秦)나라에 이르러 역시 화수노와 같은 말로 진목공에게 호소하였다. 진목공도 역시 공자집(公子縶)에게 명하여 송나라 땅에 주둔하고 있는 성득신에게 송나라를 포위한 것을 풀어 주라고 청했다. 제나라와 진(秦)나라는 서로 의논하지 않고 각기 사자를 보냈다. 문윤반과 화수노가 진(晉)나라 진영으로 돌아와서 보고했다. 문공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과인이 이미 조나라와 위나라를 멸했는데 그 땅이 송나라와 가까워서 감히 우리의 땅으로 만들 수가 없소.” 했다.
乃命狐偃同門尹般收取衛田,命胥臣同華秀老收取曹田,把兩國守臣,盡行趕逐。崔夭公子縶,正在成得臣幕下替宋講和,恰好那些被逐的守臣,紛紛來訴,說:「宋大夫門尹般華秀老倚晉之威,將本國田土,都割據去了。」得臣大怒,謂齊秦使者曰:「宋人如此欺負曹衛,豈像個講和的?不敢奉命,休怪,休怪!」崔夭和公子縶一場沒趣,即時辭回。晉侯聞得臣不准齊秦二國之請,預遣人於中途邀迎二國使臣,到於營中,盛席款待,訴以:「楚將驕悍無禮,即日與晉交戰,望二國出兵相助。」崔夭公子縶領命去了。
이에 진문공은 호언과 문윤반에게 명하여 위나라 땅을 거두게 하고, 서신과 화수로에게 명하여 조나라 땅을 거두게 하여, 그 땅을 지키던 장수들을 모두 쫓아버리게 했다. 최요와 공자집은 그때 마침 성득신의 군막에서 송나라를 대신해 강화를 하던 중에 쫓겨난 위나라와 조나라의 장수들이 와서 성득신에게 호소하기를, “송나라 대부 문윤반과 화수노가 진(晉)나라의 위세에 기대어 우리나라의 땅을 모두 나누어 갔습니다.” 했다. 성득신이 크게 노하여 제나라와 진(秦)나라의 사자들에게 말하기를, “송나라 사람들이 조나라와 위나라를 이같이 속이니 어찌 강화를 맺을 수 있겠소? 나는 감히 요청을 받들지 못하니 괴이히 생각하지 마시오.” 했다. 최요와 공자집이 그동안 노력한 일이 한꺼번에 허사가 되자 즉시 돌아가 버렸다. 진문공은 성득신이 제나라와 진(秦)나라가 청한 강화를 거절했다는 것을 듣고, 미리 사람을 보내 중도에서 두 나라의 사신을 맞이하여, 진(晉)나라 군영으로 데리고 와서, 성대하게 접대하면서 호소하기를, “초나라 장수 성득신은 오만무례하고 난폭한 자입니다. 즉일로 우리 진(晉)나라와 교전할 것인데, 두 나라에서 군사를 내어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했다. 최요와 공자집은 문공의 말을 듣고 돌아갔다.
且說,得臣誓於眾曰:「不復曹衛,寧死必不回軍!」楚將宛春獻策曰:「小將有一計,可以不勞兵刃,而復曹衛之封。」得臣問曰:「子有何計?」宛春曰:「晉之逐衛君,執曹伯,皆為宋也。元帥誠遣一使至晉軍,好言講解,要晉復了曹衛之君,還其田土,我這裏亦解宋圍,大家罷戰休兵,豈不為美?」得臣曰:「倘晉不見聽如何?」宛春曰:「元帥先以解圍之說,明告宋人,姑緩其攻。宋人思脫楚禍,如倒懸之望解,若晉侯不允,不惟曹衛二國怨晉,宋亦怒之。聚三怨以敵一晉,我之勝數多矣。」
한편, 성득신은 초나라의 장수들 앞에서 맹세하기를, “조나라와 위나라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차라리 죽을지언정 회군하지 않을 것이다!” 했다. 초나라 장수 완춘(宛春)이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무기를 쓰지 않고도 조나라와 위나라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하니, 성득신이 묻기를, “어떤 계책이오?” 했다. 완춘이 말하기를, “진(晉)나라가 위나라 군주는 쫓아내고 조나라 군주는 사로잡았는데, 이것은 모두 송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원수께서 만일 사자 한 명을 진(晉)나라 진영에 보내어 좋은 말로 강화를 청하면서 진(晉)나라에 조나라와 위나라의 군주를 복위시키고 그 땅을 돌려준다면 우리도 역시 송나라에 대한 포위망을 풀겠다고 하십시오. 이렇게 되면 모두 전쟁을 그치고 군사를 쉬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했다. 성득신이 말하기를. “만일 진(晉)나라가 거절하면 어떻게 할 것이오?” 하니, 완춘이 말하기를, “원수께서는 먼저 포위망을 풀 것이라고 송나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잠시 공격을 늦추십시오. 송나라 사람들이 초나라의 공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 마치 거꾸로 매달린 사람이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진(晉)나라 군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조나라와 위나라가 진(晉)나라를 원망할 뿐만 아니라 송나라 역시 분노할 것입니다. 세 나라의 원한을 모아 하나의 진(晉)나라를 대적하면 우리가 이길 운수가 많습니다.” 했다.
得臣曰:「誰人敢使晉軍?」宛春曰:「元帥若以見委,春不敢辭。」得臣乃緩宋國之攻,命宛春為使,乘單車直造晉軍,謂文公曰:「君之外臣得臣,再拜君侯麾下,楚之有曹衛,猶晉之有宋也。君若復衛封曹,得臣亦願解圍去宋,彼此修睦,各免生靈塗炭之苦。」言猶未畢,只見狐偃在旁,咬牙怒目罵道:「子玉好沒道理!你釋了一個未亡之宋,卻要我這裏復兩個已亡之國,你直恁便宜!」先軫急躡狐偃之足,謂宛春曰:「曹衛罪不至滅亡,寡君亦欲復之。且請暫住後營,容我君臣計議施行。」欒枝引宛春歸於後營。
성득신이 말하기를, “누가 진(晉)나라 진영에 사자로 가겠소?” 하니, 완춘이 말하기를, “원수께서 만약 맡길만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했다. 성득신이 이에 송나라에 대한 공격을 늦추고 완춘을 사절로 삼아 수레 하나에 태워 진(晉)나라 진영으로 보냈다. 완춘이 진문공에게 말하기를, “군주의 외국 신하 성득신이 군주 휘하에 절을 올립니다. 초나라에 있어서 조나라와 위나라는 마치 진나라에 있어서 송나라와 같습니다. 군주께서 만약 위나라 군주를 복귀시키고 조나라 군주를 풀어주어 군위에 앉게 한다면, 성득신 또한 송나라 도성에 대한 포위를 풀겠습니다. 피차간에 화의를 이루어 도탄에 빠져 고생하는 뭇 백성들을 구하고자 합니다.” 하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호언을 보니 이를 갈고 부릅뜬 눈으로 욕하기를, “자옥(성득신)이라는 놈은 도리가 없는 놈이로구나! 아직 망하지도 않는 송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어 주는 일과 이미 망해 버린 두 나라를 다시 회복시키는 일을 같이 맞바꾸자 하니 어찌 이렇게 뻔뻔하냐!” 했다. 선진이 급히 호언의 발을 밟으며 완춘에게 말하기를, “조나라와 위나라의 죄는 멸망에 이를 정도는 아니니 우리 주군께서도 역시 회복시켜 주려고 하였소! 잠시 진영 뒤에 있는 방으로 가서 쉬고 계시면 우리 군신들이 상의하여 시행하겠소!” 했다. 난지가 완춘을 인도하여 진영 뒤쪽 방으로 데려갔다.
狐偃問於先軫曰:「子載真欲聽宛春之請乎?」軫曰:「宛春之請,不可聽,不可不聽。」偃曰:「何謂也?」軫曰:「宛春此來,蓋子玉奸計,欲居德於己,而歸怨於晉也。不聽,則棄三國,怨在晉矣;聽之,則復三國,德又在楚矣。為今之計,不如私許曹衛,以離其黨,再拘執宛春以激其怒,得臣性剛而躁,必移兵索戰於我,是宋圍不求解而自解也。倘子玉自與宋通和,則我遂失宋矣。」文公曰:「子載之計甚善!但寡人前受楚君之惠,今拘執其使,恐於報施之理有礙。」欒枝對曰:「楚吞噬小國,凌辱大邦,此皆中原之大恥;君不圖伯則已,如欲圖伯,恥在於君。乃懷區區之小惠乎?」
호언이 선진에게 묻기를, “자재(선진)는 정말로 완춘의 청을 들어줄 생각입니까?” 하니, 선진이 말하기를, “완춘의 청은 들어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안 들어줄 수도 없습니다.” 했다. 호언이 말하기를, “그게 무슨 말씀이오?” 하니, 선진이 말하기를, “완춘이 여기에 온 것은 모두 자옥(성득신)의 간계에 따라, 자기에게 덕을 돌리고 진(晉)나라에 원망을 넘기려고 하는 수작입니다. 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곧 세 나라를 버리는 것이라 그들의 원망이 모두 진(晉)나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 청을 들어주면 곧 세 나라를 회복시켜서 덕이 모두 초나라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지금을 위한 계책으로는 우리가 비밀리에 조나라와 위나라 군주에게 복위를 허락하고 초나라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 다음에, 다시 완춘을 구금해서 성득신을 격노케 해야 합니다. 성득신은 원래 성격이 강직하고 조급하여 틀림없이 군사를 동원하여 우리와 결전을 서두를 것입니다. 이것은 송나라 도성에 대한 포위망을 풀어달라고 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풀어지게 할 것입니다. 만일 자옥(성득신)이 스스로 송과 통하여 화의를 맺는다면 우리는 마침내 송나라를 잃게 됩니다.” 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자재(선진)의 계책이 대단히 훌륭합니다. 다만 과인이 옛날에 초왕에게서 은혜를 입었는데, 이번에 그의 사자를 구금한다면 은혜를 갚는 도리를 저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했다. 난지가 대답하기를, “초나라가 소국들은 병탄하고 큰나라는 능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중원의 큰 수치입니다. 주군께서 패업에 뜻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패업을 도모하시려면 그 치욕은 바로 주군의 것입니다. 어찌하여 구구하게 작은 은혜를 생각하십니까?” 했다.
文公曰:「微卿言,寡人不知也!」遂命欒枝押送宛春於五鹿,交付守將郤步揚小心看管。其原來車騎從人,盡行驅回,教他傳話令尹曰:「宛春無禮,已行囚禁,待拿得令尹,一同誅戮。」從人抱頭鼠竄而去。文公打發宛春事畢,使人告曹共公曰:「寡人豈為出亡小忿,求過於君?所以不釋然於君者,以君之附楚故也。君若遣一介告絕於楚,以明君之與晉,即當送君還曹耳。」曹共公急於求釋,信以為然,遂為書遺得臣云:「孤懼社稷之隕,死亡不免,不得已即安於晉,不得復事上國。上國若能驅晉以為孤寧宇,孤敢有二心耶?」
진문공이 말하기를, “경의 말이 아니었다면 과인이 깨닫지 못할 뻔했소.” 하고, 난지에게 명하여 완춘을 오록에 압송하게 하여 그곳을 지키던 장수 극보양(郤步揚)에게 넘겨주어 감시를 철저히 하라고 했다. 그리고 완춘을 따라왔던 시종을 모두 초나라 진영으로 돌려보내어 영윤 성득신에게 말을 전하게 하여, “완춘이 무례하여 이미 감옥에 가두었다. 영윤마저 잡으면 함께 참수하려고 한다.” 했다. 완춘의 시종이 머리를 싸고 쥐새끼처럼 달아났다. 진문공이 완춘에 대한 일을 처리한 다음, 사람을 조공공에게 보내 고하기를, “과인이 망명했을 때 받은 작은 수모 때문에 그대에게 어찌 앙갚음을 구하겠소? 그대에게 석연치 않은 행동을 하게 된 까닭은 그대가 초나라 편에 섰기 때문이오. 그대가 만약 편지를 한 장 써서 초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진(晉)나라와 수호를 맺겠다고 하면 즉시 그대를 조나라에 돌려보내 주겠소.” 했다. 조공공이 급히 풀어 주기를 바라 정말로 생각하여 즉시 편지를 써서 성득신에게 보냈다. 편지에 이르기를, “과인은 사직이 끊기고 죽음을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부득이 진(晉)나라를 섬기기로 했습니다. 초나라를 다시 상국으로 섬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상국이 만약 능히 진(晉)나라 군사를 몰아내어 나를 편안하게 했더라면 내가 감히 두 마음을 품을 수 있었겠소?” 했다.
文公又使人往襄牛見衛成公,亦以復國許之。成公大喜。寧俞諫曰:「此晉國反間之計,不可信之。」成公不聽,亦致書得臣,大約如曹伯之語。時得臣方聞宛春被拘之報,咆哮叫跳,大罵:「晉重耳,你是跑不傷餓不死的老賊!當初在我國中,是我刀砧上一塊肉,今纔得返國為君,輒如此欺負人!自古『兩國相爭,不罪來使。』如何將我使臣拿住?吾當親往與他講理。」正在發怒,帳外小卒報道:「曹衛二國,各有書札上達元帥。」得臣想道:「衛侯曹伯流離之際,有甚書來通我?必是打探得晉國什麼破綻,私來報我,此乃天助我成功也!」
진문공이 또 사람을 양우(襄牛)에 보내어 위성공을 만나 (초나라와 절교하는 편지를 쓰면) 복위를 허락한다고 전했다. 성공이 크게 기뻐하니, 영유가 간하기를, “이것은 진(晉)나라의 반간계입니다. 믿으시면 안 됩니다.” 했다. 위성공이 듣지 않고 역시 성득신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조공공의 것과 같았다. 그때 성득신이 바야흐로 완춘이 갇혀있다는 보고를 듣고, 큰소리로 울부짖고 발을 동동 구르며 크게 욕하기를, “진(晉)나라 중이 너 간신히 도망 다니다가 굶어 죽기 직전에 살아남은 늙은 도적놈아! 당초에 우리나라에 있을 때 내가 한칼에 죽여 버리려다가 살려 주었더니, 이제 겨우 자기 나라로 돌아가 군주가 되어 이렇듯 사람을 괴롭히느냐! 자고로 두 나라가 서로 싸울 때는 사자에게 죄를 주지 않거늘, 어찌하여 내가 보낸 사신을 잡아다 가둔단 말인가! 내가 마땅히 네놈을 찾아가 도리를 따지겠다.” 하며,성을 내고 있는 중에 장막 밖에서 군졸이 보고하기를, “조나라와 위나라에서 각각 편지를 원수님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했다. 성득신이 생각하기를, “위성공과 조공공은 떠돌거나 갇혀있는데 무슨 편지를 나에게 보냈단 말인가? 이것은 틀림없이 진(晉)나라의 파탄을 탐지하여 몰래 나에게 보고하려는 것 같으니, 이것은 곧 하늘이 나를 도와 일을 이루게 함일 것이다.” 했다.
啟書看時,如此恁般,卻是從晉絕楚的話頭,氣得心頭一片無明火,直透上三千丈不止,大叫道:「這兩封書,又是老賊逼他寫的!老賊,老賊!今日不是你就是我,定要拼個死活!」吩咐大小三軍,撤了宋圍,且去尋晉重耳做對。「待我敗了晉軍,怕殘宋走往那裏去!」鬥越椒曰:「吾王曾叮嚀『不可輕戰』。若元帥要戰之時,還須稟命而行。況齊秦二國,曾為宋求情,恨元帥不從,必然遣兵助晉。我國雖有陳、蔡、鄭、許相幫,恐非齊秦之敵。必須入朝請添兵益將,方可赴敵。」得臣曰:「就煩大夫一行,以速為貴。」越椒奉元帥將令,逕到申邑,來見楚王,奏知請兵交戰之意。
성득신이 편지의 겉봉을 뜯고 읽어보니, 생각과는 달리 진나라를 따르고 초나라와는 절교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성득신의 가슴속에서 다시 울화가 일어나더니 삼천 길이나 치솟아 올라 크게 외치기를, “이 두 편지는 늙은 도적놈이 그들을 협박하여 쓰게 한 것이다. 늙은 도적놈, 늙은 도적놈! 오늘 네가 아니면 내가 죽어서 반드시 사생결단을 내겠다!” 하고, 3군에 분부하여 송나라 도성의 포위를 풀고, 진(晉)나라 중이(重耳)를 찾아 대적하라고 하여, “내가 진(晉)나라 군사를 격파하면, 남아 있는 송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했다. 투월초가 말하기를, “대왕께서 일찍이 ‘가벼이 싸우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만약 원수께서 기어코 싸우려 하신다면 품하신 후에 행하셔야 합니다. 더욱이 제나라와 진(秦)나라가 이미 송나라를 위하여 온정을 청하였음에도 원수께서 들어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여, 틀림없이 군사를 보내어 진(晉)나라를 도울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비록 진(陳)나라, 채(蔡)나라, 허(許)나라, 정(鄭)나라가 돕고 있으나 제나라와 진(秦)나라를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대왕을 뵙고 장수와 군졸을 더 청하여야만 비로소 대적할 수 있습니다.” 했다. 성득신이 말하기를, “번거롭겠지만 대부께서 한번 다녀오시오! 빠를수록 좋습니다.” 했다. 투월초가 원수의 명을 받들어 지름길로 신읍에 이르러 초성왕을 뵙고 군사를 청하여 교전하겠다는 뜻을 아뢰었다.
楚王怒曰:「寡人戒勿與戰,子玉強要出師,能保必勝乎?」越椒對曰:「得臣有言在前:『如若不勝,甘當軍令。』」楚王終不快意,乃使鬥宜申將西廣之兵而往。(楚兵二廣,東廣在左,西廣在右,凡精兵俱在東廣。止分西廣之兵,不過千人,又非精卒,乃是楚王疑其兵敗,不肯多發之意。)成得臣之子成大心,聚集宗人之兵,約六百人,自請助戰。楚王許之。鬥宜申同越椒領兵至宋,得臣看兵少,心中愈怒,大言曰:「便不添兵,難道我勝不得晉?」即日約會四路諸侯之兵,拔寨都起。這一去,正中了先軫的機謀了。髯翁有詩云:「久困睢陽功未收,勃然一怒戰群侯;得臣縱有沖天志,怎脫今朝先軫謀!」
초성왕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과인이 싸우지 말라고 경계를 주었다. 자옥(성득신)이 억지로 군사를 끌고 가서 반드시 이긴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했다. 투월초가 말하기를, “성득신은 제 앞에서 말하기를, ‘만약에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마땅히 군령을 달게 받으리라!’ 고 했습니다.” 하니, 초성왕이 끝내 내키지 않아 하면서, 투의신을 시켜 서광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게 했다. (초나라 군에는 양광이 있는데, 동광은 왼쪽을 맡고, 서광은 오른쪽을 맡았다. 모든 정예병들은 동광에 있었다. 단지 서광으로 나누어진 군사들은 천여 명에 불과하고 또 정예병이 아니었다. 이것은 초성왕이 그 군사가 패할 것을 의심하여 많은 군사들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성득신의 아들 성대심(成大心)은 문중의 사람들을 모두 모아 약 6백여 명으로 싸움을 도우러 가겠다고 자청하니 초성왕이 허락하였다. 투의신이 투월초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송나라에 도착하니, 성득신이 지원병의 수가 적은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더욱 분노하여 큰 소리로 말하기를, “설령 병력 보충이 없다 한들, 우리가 진나라 군사를 이기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 그날로 네 제후의 군사들과 만나기를 약속하고 진영을 뽑아 모두 일어섰다. 이렇게 된 것은 선진의 능란한 계책에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오랫동안 송나라 수양성을 포위했으나 공을 세우지 못하고, 벌컥 한번 화를 내어서 여러 제후와 싸우는구나. 성득신이 비록 하늘을 찌를 듯한 뜻이 있다 한들, 어찌 오늘 아침 선진의 계책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오.” 했다.
得臣以西廣戎車,兼成氏本宗之兵,自將中軍。使鬥宜申率申邑之師,同鄭許二路兵將為左軍。使鬥勃率息邑之兵,同陳蔡二路兵將為右軍。雨驟風馳,直逼晉侯大寨,做三處屯聚。晉文公集諸將問計。先軫曰:「本謀致楚,欲以挫之。且楚自伐齊圍宋,以至於今,其師老矣。必戰楚,毋失敵!」狐偃曰:「主公昔日在楚君面前,曾有一言:『他日治兵中原,請避君三舍。』今遂與楚戰,是無信也。主公向不失信於原人,乃失信於楚君乎?必避楚。」諸將皆艴然曰:「以君避臣,辱甚矣!不可,不可!」
성득신이 서광의 전차와 성씨 문중의 군사들을 보태어 친히 중군을 거느렸다. 투의신에게는 신읍(申邑)의 군사들과 정나라, 허나라의 병사들을 합하여 좌군을 거느리게 하고, 투발에게는 식읍(息邑)의 병사들과 진(陳)나라, 채(蔡)나라의 병사들을 합하여 우군을 맡게 했다. 성득신은 비바람이 몰아치듯 군사들을 휘몰아 진(晉)나라 군주의 본영에 바싹 다가가서 세 곳에다 진영을 세웠다. 진문공이 여러 장수들을 불러 계책을 물었다. 선진이 말하기를, “본디 우리 계책은 초군을 끌어들여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초나라는 제나라를 치고 송나라를 포위했기 때문에 지금은 피로가 심합니다. 이제 초나라와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했다. 호언이 말하기를, “주공께서 옛날 초나라에 머물 때 초왕의 면전에서 말하기를, ‘후일 중원에서 초군과 만나 교전하게 되면 삼사(三舍)의 거리만큼 뒤로 물러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마침내 초나라와 맞붙어 싸우게 되었으니, 이것은 신의가 없는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지난날 원성(原城)의 백성들에게도 신의를 잃지 않으셨는데 초성왕에게 신의를 잃으실 것입니까? 반드시 초나라 군사를 피해 3사를 후퇴하십시오.” 했다. 여러 장수가 얼굴을 붉히고 말하기를, “군주가 적국의 신하를 피해 물러난다면 그 치욕이 심합니다. 절대 불가합니다.” 했다.
狐偃曰:「子玉雖剛狠,然楚君之惠,不可忘也。吾避楚,非避子玉。」諸將又曰:「倘楚兵追至,奈何?」狐偃曰:「若我退,楚亦退,必不能復圍宋矣。如我退而楚進,則以臣逼君,其曲在彼。避而不得,人有怒心;彼驕我怒,不勝何為?」文公曰:「子犯之言是也。」傳令「三軍俱退!」晉軍退三十里,軍吏來稟曰:「已退一舍之地矣。」文公曰:「未也。」又退三十里,文公仍不許駐軍。直退到九十里之程,地名城濮,恰是三舍之遠,方教安營息馬。時齊孝公命上卿國懿仲之子國歸父為大將,崔夭副之;秦穆公使其次子小子憖為大將,白乙丙副之;各率大兵,協同晉師戰楚,俱於城濮下寨。宋圍已解,宋成公亦遣司馬公孫固如晉軍拜謝,就留軍中助戰。
호언이 말하기를, “자옥(성득신)이 비록 굳세고 사납지만, 초성왕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초성왕의 군사를 피하는 것이지 자옥을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했다. 여러 장수 또 말하기를, “만약 초나라 군사들이 추격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호언이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군사를 물리면 초나라도 같이 물러나서 틀림없이 다시 송나라를 포위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물러났는데도 초나라 군사가 추격해 온다면 저쪽 신하가 우리 군주의 약속을 핍박하므로 잘못은 초나라 쪽에 있게 됩니다. 피했는데도 피할 수 없으면 사람은 분노하게 됩니다. 저들은 교만하고 우리의 군사들은 분노하게 되니 어찌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자범(호언)의 말이 옳습니다.” 하고, 즉시 영을 내려 “삼군은 모두 물러나라.” 했다. 진(晉)나라 군사들이 30리를 물러나자, 군 사무관이 와서 아뢰기를, “이미 일사(一舍)의 거리를 물러났습니다.” 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아직 충분치 않다.” 하니, 다시 30리를 물러났으나, 진문공이 진영을 세우지 못하게 하고, 다시 일사를 물러나서 바로 90리 거리에 있는 성복(城濮)이라는 곳에 이르러 비로소 진영을 세우고 말을 쉬게 했다. 이때 제소공은 상경 국의중(國懿仲)의 아들 국귀보(國歸父)를 대장으로, 최요를 부장으로 임명하여 대군을 이끌게 하고, 진목공은 둘째 아들 소자은(小子憖)을 대장으로, 백을병을 부장으로 삼아 대군을 거느리고 진(晉)나라 군사와 협동하여 초나라 군사와의 싸움을 돕도록 하니, 두 나라의 군사들이 모두 성복에 진영을 세웠다. 송나라의 포위가 풀려서 송성공도 또한 사마 공손고를 보내어 진(晉)나라에 감사하고 군중에 남아 싸움을 돕도록 했다.
卻說,楚軍見晉軍移營退避,各有喜色。鬥勃曰:「晉侯以君避臣,於我亦有榮名矣。不如借此旋師,雖無功,亦免於罪。」得臣怒曰:「吾已請添兵將,若不一戰,何以復命?晉軍既退,其氣已怯,宜疾追之!」傳令「速進!」楚軍行九十里,恰與晉軍相遇,得臣相度地勢,憑山阻澤,據險為營。晉諸將言於先軫曰:「楚若據險,攻之難拔,宜出兵爭之。」先軫曰:「夫據險以固守也。子玉遠來,志在戰而不在守。雖據險,安所用之?」時文公亦以戰楚為疑。狐偃奏曰:「今日對壘,勢在必戰。戰而勝,可以伯諸侯;即使不勝,我國外河內山,足以自固。楚其奈我何?」文公意猶未決。
한편, 초나라 군은 진(晉)나라 군사들이 진영을 뽑아 물러가는 모습을 보고 모두 기뻐했다. 투발이 말하기를, “진문공이 군주의 신분으로 초나라 신하인 성득신을 피하니 우리에게는 또한 영예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을 빌어서 군사를 돌리는 것이 좋습니다. 비록 공을 세우지는 못했으나 죄는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성득신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내가 대왕에게 원군을 청하였는데, 만약 싸움도 한 번 하지 않고 어떻게 대왕께 복명을 하겠는가? 진(晉)나라 군사들이 퇴각한 이유는 그들이 이미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마땅히 빨리 뒤를 쫓아야 한다.” 하고, 명령을 전하여 “빨리 진격하라!”고 했다. 초나라 군사가 90리를 행군하여 진나라 군사와 만났다. 성득신이 지세를 살펴보고 산을 뒤로하고 늪을 앞으로 하여 험지를 의지하여 영채를 세우게 했다. 진(晉)나라 장수들이 선진에게 말하기를, “초나라 군사가 험지에 의지하여 진영을 세우면 함락시키기 어려우니 마땅히 군사를 내어 빼앗아야 합니다.” 하니, 선진이 말하기를, “무릇 험지에 의지하는 것은 굳게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자옥(성득신)이 멀리서 행군하여 와서 뜻은 싸우는 데에 있지, 지키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비록 험지에 의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했다. 그때 진문공도 역시 초나라와 싸우는 것을 의심했다. 호언이 아뢰기를, “지금 대치 상태를 보니 형세가 반드시 교전하려고 합니다. 싸워서 이긴다면 천하의 제후들을 아우르는 방백이 될 수 있고, 설사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진(晉)나라는 밖은 황하와 안은 태항산(太行山)에 의지하여 족히 스스로 지킬 수 있습니다. 초나라가 우리를 어쩌겠습니까?” 하니, 진문공이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是夜就寢,忽得一夢,夢見如先年出亡之時,身在楚國,與楚王手搏為戲,氣力不加,仰面倒地,楚王伏於身上,擊破其腦,以口啑之。既覺,大懼。時狐偃同宿帳中,文公呼而告之,如此恁般:「夢中鬥楚不勝,被飲吾腦,恐非吉兆乎?」狐偃稱賀曰:「此大吉之兆也!君必勝矣!」文公曰:「吉在何處?」狐偃對曰:「君仰面倒地,得天相照;楚王伏於身上,乃伏地請罪也。腦所以柔物,君以腦予楚,柔服之矣,非勝而何?」文公意乃釋然;天色乍明,軍吏報:「楚國使人來下戰書。」文公啟而觀之,書云:「請與君之士戲,君憑軾而觀之,得臣與寓目焉。」
진문공이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 꿈을 꾸었다. 꿈에 옛날 망명 시절 초나라에 있을 때 초성왕과 수박희(손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무예)를 하다가 진문공이 힘이 다하여 하늘을 향하여 땅에 드러누웠다. 초성왕이 진문공의 몸 위에 엎드려 그 머리를 쳐 깨뜨려서 입으로 먹었다. 꿈에서 깨어난 진문공은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때 호언이 같은 막사에서 자고 있었는데 진문공이 호언을 불러 꿈 이야기를 하고, 이같이 말하기를, “꿈속에서 초성왕과 싸웠는데 이기지 못하고 나의 뇌를 먹히게 되니, 걱정컨대 길조가 아니지요?” 했다. 호언이 축하하면서 말하기를, “그 꿈은 크게 길할 징조입니다. 주군께서는 틀림없이 승리할 것입니다.” 하니, 진문공이 말하기를, “어디에 길한 게 있습니까?” 했다. 호언이 대답하기를, “주군께서 땅에 넘어져 하늘을 쳐다보고 계셨으니, 이것은 곧 하늘이 보살핀다는 뜻이며 초성왕이 주군의 몸에 엎드린 것은 곧 땅에 엎드려 죄를 청하는 것이며, 뇌라는 것은 부드러운 것이라 주군께서 뇌를 초나라에 준 것은 곧 부드러운 것으로써 강한 초나라를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했다. 진문공은 뜻이 이에 환하게 풀렸다. 날이 밝아 오자 군 사무관이 와서 보고하기를, “초나라에서 사람을 보내 개전 통지서를 보내왔습니다.” 했다. 진문공이 열어 보니, 통지서에 이르기를, “군주의 군사들과 전쟁놀이를 청합니다. 군주께서 수레 앞턱 가로 댄 나무에 기대어 관전하신다면 이 성득신도 더불어 주시하겠습니다.” 했다.
狐偃曰:「戰,危事也,而曰戲,彼不敬其事矣,能無敗乎?」文公使欒枝答其書云:「寡人未忘楚君之惠,是以敬退三舍,不敢與大夫對壘。大夫必欲觀兵,敢不惟命!詰朝相見。」楚使者去後,文公使先軫再閱兵車,共七百乘,精兵五萬餘人。(齊秦之眾,不在其內。)文公登有莘之墟,以望其師,見其少長有序,進退有節,嘆曰:「此郤縠我之遺教也。以此應敵可矣。」使人伐其山木,以備戰具。先軫分撥兵將,使狐毛狐偃引上軍,同秦國副將白乙丙攻楚左師,與鬥宜申交戰。使欒枝胥臣引下軍,同齊國副將崔夭,攻楚右師,與鬥勃交戰。各授計策行事。自與郤溱祁瞞中軍結陣,與成得臣相持。
호언이 말하기를, “전쟁이란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놀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성득신은 전쟁을 신중하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어찌 패배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진문공이 난지로 하여금 답서를 보내어 이르기를, “과인이 초성왕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삼가 삼사의 거리를 물러나 감히 장군의 군사들과의 싸움을 피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대부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내가 어찌 명을 따르지 않겠는가! 내일 아침에 서로 봅시다!” 했다. 초나라 사자가 돌아간 다음 진문공이 선진을 시켜 다시 전차와 군사들을 사열하게 하니 모두 전차 700대와 정예병 5만여 명이었다. (제나라와 진(秦)나라의 지원군은 포함되지 않았다.) 진문공이 성복 땅의 고대 유신씨(有莘氏)의 폐허에 올라 군사들을 살펴보았다. 군사들이 장유의 차례가 있고 앞으로 나가고 뒤로 물러나는데 절도가 있었다. 진문공이 보고 감탄하기를, “이것은 죽은 극곡이 훈련시켜 나에게 넘겨준 군사들이라! 이만하면 적군과 한번 싸워볼 만하다.” 하고, 군사들을 동원하여 산 위의 나무들을 베어 전투에 필요한 기구들을 준비하게 했다. 선진은 병사들과 장수들에게 각각 맡은 바 임무를 부여했다. 호모와 호언 형제에게는 상군과 진(秦)나라 부장 백을병이 지휘하는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 좌군 장수 투의신을 맡게 하고, 난지와 서신에게는 하군과 제(齊)나라 부장 최요와 그 군사들을 이끌고 초나라 우군 장수 투발과 교전하게 했다. 그 밖의 장수들에게도 각각 임무를 주고 자신와 극진 그리고 기만은 중군을 연결하여 성득신과 대적하도록 했다.
卻教荀林父士會,各率五千人為左右翼,准備接應。再教國歸父小子憖,各引本國之兵,從間道抄出楚軍背後埋伏,只等楚軍敗北,便殺入據其大寨。時魏犨胸疾已愈,自請為先鋒。先軫曰:「留老將軍有用處。從有莘南去,地名空桑,與楚連谷地面接壤,老將軍可引一枝兵,伏於彼處,截楚敗兵歸路,擒拿楚將。」魏犨欣然去了。趙衰、孫伯糾、羊舌突、茅茷等一班文武,保護晉文公於有莘山上觀戰。再教舟之僑於南河整頓船隻,伺候裝載楚軍輜重,臨期無誤。次日黎明,晉軍列陣於有莘之北,楚軍列陣於南,彼此三軍,各自成列。得臣傳令,教「左右二軍先進,中軍繼之。」
한편 순임보(荀林父)와 사회(士會)는 각기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좌익과 우익이 되어 서로 지원하도록 준비하게 했다. 또 귀국보(國歸父)와 소자은(小子憖)은 각각 이끌고 온 본국의 병사들을 인솔하여 지름길로 초군의 배후로 돌아 매복하게 하고, 초군이 패배할 때를 기다려 그들의 본영으로 돌입하게 했다. 이때 위주는 가슴의 상처가 이미 다 나아서 선봉을 자청했다. 선진이 말하기를, “노장군은 별도로 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이곳 유신에서 남쪽으로 가다 보면 공상(空桑)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초나라의 연곡(連谷)으로 통하는 길목입니다. 장군은 한 떼의 군마를 데리고 그곳에 가서 매복하고 있다가 패주하는 초군들의 퇴로를 끊고 초나라 장수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위주가 기쁜 마음으로 물러갔다. 조쇠(趙衰), 손백규(孫伯糾), 양설돌(羊舌突), 모패(茅茷) 등 일반 문무 대신들은 진문공을 보호하여 옛 유신씨의 산상에서 관전하게 했다. 다시 주지교에게 명하여 황하의 남쪽 강가 남하(南河)에 배들을 모아 놓고 정비한 후 기다리게 하여 초나라에서 얻은 치중들을 실어 나르는데 착오가 없도록 했다. 다음날 여명에 진(晉)나라 군사가 유신의 북쪽에 진을 펼치자 초나라 군사는 남쪽에다 진을 쳤다. 양쪽의 삼군이 각자 전열을 가다듬었다. 성득신이 명령을 내리기를, “좌군과 우군이 먼저 진격하고 중군이 뒤를 따르라.” 했다.
且說,晉下軍大夫欒枝,打探楚右師用陳蔡為前隊,喜曰:「元帥密謂我曰:『陳蔡怯戰而易動。』先挫陳蔡,則右師不攻而自潰矣。」乃使白乙丙出戰。陳轅選蔡公子印,欲在鬥勃前建功,爭先出車。未及交鋒,晉兵忽然退後。二將方欲追趕,只見對陣門旗開處,一聲砲響,胥臣領著一陣大車,沖將出來。駕車之馬,都用虎皮蒙背。敵馬見之,認為真虎,驚惶跳躑,執轡者拿把不住,牽車回走,反沖動鬥勃後隊。胥臣和白乙丙乘亂掩殺,胥臣斧劈公子印於車下,白乙丙箭射鬥勃中頰。鬥勃帶箭而逃,楚右師大敗,死者枕藉,不計其數。欒枝遣軍卒,假扮作陳蔡軍人,執著彼處旗號,往報楚軍,說:「右師已得勝,速速進兵,共成大功。」
한편, 진(晉)나라 하군 대장 난지는 초나라 우군이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군사들을 전대(前隊)로 삼았음을 알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원수(선진)께서 나에게 몰래 일러주기를,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병사들은 겁이 많아 쉽게 흩어질 것이다’라고 하셨다. 먼저 진나라와 채나라의 군사를 꺾는다면 초나라 우군은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하고, 이에 백을병에게 출전하게 했다. 진(陳)나라의 장수 원선(轅選)과 채나라의 공자인(公子印)은 투발(鬪發)이 보는 앞에서 공을 세우려고 앞다투어 전차를 타고 나왔다. 미처 접전을 하기도 전에 진(晉)나라 군사들이 갑자기 후퇴했다. 원선과 공자인이 뒤를 쫓으려고 하자, 기가 꽂힌 진영 문이 열리더니 포소리가 한번 울리면서 서신이 한 떼의 큰 전차를 거느리고 앞으로 치고 나왔다. 전차를 끄는 말들은 모두 호랑이 가죽이 씌워져 있었다. 적군의 말들이 그것을 보고 진짜 호랑이인 줄로 알고 놀라 뛰니 마부들이 고삐를 당겨 멈출 수가 없었다. 말들이 전차를 끌고 방향을 바꾸어 돌진하여 투발이 이끌던 후위군의 진영을 혼란에 빠뜨렸다. 서신과 백을병은 초나라 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쳐부수어 서신은 도끼로 공지인을 찍어 전차 밑으로 떨어뜨리고, 백을병은 활을 날려 투발의 뺨을 맞췄다. 투발은 화살에 꽂힌 채 도망하니 초나라의 우군은 크게 패하여 죽은 군사가 어지러이 널려 그 수를 셀 수 없었다. 난지가 군졸들을 시켜 진(陳)나라와 채나라 군사들의 옷으로 바꿔 입고 그들의 깃발을 들고 초나라 본영으로 달려가 보고하기를, “우군이 이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빨리 진격하면 큰 공을 함께 이룰 것입니다.” 했다.
得臣憑軾望之,但見晉軍北奔,煙塵蔽天,喜曰:「晉下軍果敗矣!」急催左師並力前進。鬥宜申見對陣大旆高懸,料是主將,抖擻精神,沖殺過來。這裏狐偃迎住,略戰數合,只見陣後大亂,狐偃回轅便走,大旆亦往後退行。鬥宜申只道晉軍已潰,指引鄭許二將,儘力追逐。忽然鼓聲大震,先軫郤溱引精兵一枝,從半腰裏橫沖過來,將楚軍截做二段。狐毛狐偃翻身復戰,兩下夾攻。鄭許之兵先自驚潰,宜申支架不住,拼死命殺出,遇著齊將崔夭,又殺一陣,盡棄其車馬器械,雜於步卒之中,爬山而遁。原來晉下軍偽作北奔,煙塵蔽天,卻是欒枝砍下有莘山之木,曳於車後,車馳木走,自然刮地塵飛,哄得左軍貪功索戰。
성득신이 전차의 앞턱 가로 댄 나무 기대어 바라보다가 진(晉)나라 군사가 북쪽으로 달려가며 일으키는 연기와 먼지가 하늘을 덮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진(晉)나라 하군이 과연 싸움에서 패했구나!” 하고, 급히 좌군에게 힘을 합쳐 전진하라고 재촉했다. 투의신은 큰 깃발이 높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대장이 있는 곳으로 생각하여 정신을 차려 맹렬한 기세로 쳐들어갔다. 호언이 그의 앞을 가로막자 두 사람이 몇 합을 싸웠다. 진(晉)나라 군의 뒤쪽에서 큰 혼란이 일어나자 호언은 몸을 돌려 영문 쪽으로 달아나고, 큰 깃발도 역시 뒤로 물러섰다. 투의신은 진(晉)나라 군이 이미 붕궤되었다고 생각하고 정(鄭)나라와 허(許)나라 장수들을 이끌고 있는 힘을 다하여 호언의 뒤를 추격했다. 갑자기 북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선진과 극진이 한 떼의 정예병들을 이끌고 초나라 군사의 대열 중간에 나타나 초나라 군사를 둘로 잘랐다. 호모와 호언이 몸을 돌려 다시 싸워 양쪽에서 협공했다. 정(鄭)나라와 허(許)나라의 병사들이 먼저 놀라 흩어지자, 투의신도 더 버틸 수가 없어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하여 달아났다. 그러나 제나라 장수 최요를 만나또 한 무리의 초나라 군사를 죽이니, 초나라 병사들은 당해내지 못하고 전차와 말과 병장기들을 버리고 보병들 틈에 섞여서 산을 기어올라 달아났다. 원래 진(晉)나라 하군이 북쪽으로 거짓 달아나며 연기와 먼지를 일으켜 하늘을 가리게 한 것은 하군 대장 난지가 유신의 뒷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전차 뒤에 매달아 달리게 하여 땅을 긁어 먼지를 일으켜 초나라의 좌군을 속여 공을 다투어 싸우게 한 것이었다.
狐毛又詐設大旆,教人曳之而走,裝作奔潰之形。狐偃佯敗,誘其驅逐。先軫早已算定,咐咐祁瞞虛建大將旗,守定中軍,任他敵軍搦戰,切不可出應,自引兵從陣後抄出,橫沖過來,恰與二狐夾攻,遂獲全勝。這都是先軫預定下的計策。有詩為證:「臨機何用陣堂堂?先軫奇謀不可當。只用虎皮蒙馬計,楚軍左右盡奔亡。」話說,楚元帥成得臣雖則恃勇求戰,想著楚王兩番教誡之語,卻也十分持重。傳聞左右二軍,俱已進戰得利,追逐晉兵;遂令中軍擊鼓,使其子小將軍成大心出陣。
호모도 또한 큰 깃발을 세워 사람을 시켜 끌고 달아나게 하여 패하여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게 했다. 호언도 거짓 패하여 추격군을 유인했다. 선진이 이미 계산을 정하고 기만에게 분부하여 대장기를 중군에 세우게 하여 지키면서 적이 싸움을 걸더라도 절대로 나가서 싸움에 응하지 말라고 하고, 자기는 군사를 이끌고 진영의 뒤로 나가서 초나라 좌군의 허리를 끊어 마침 호모와 호언 형제들과 협공하여 마침내 대승을 거두었다. 이것은 모두 선진이 미리 정했던 계책이었다. 이를 두고 시로 증언하기를, “임기응변의 작전에 당당한 진영을 무엇에 쓰겠는가? 선진의 신묘한 계책은 아무도 당할 수 없었네! 호랑이 가죽을 말에 덮어씌운 것만으로도, 초나라의 좌군과 우군은 모두 달아났네.” 했다. 한편 초나라 원수 성득신은 비록 용기를 믿고 싸움을 걸었지만, 초성왕이 두 번이나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았음을 상기하고 십분 자중했다. 초나라의 좌군과 우군이 모두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거짓 보고를 들은 성득신은 진(晉)나라 군사를 추격하기 위해서 즉시 북소리를 크게 울리면서, 그 아들 소장군 성대심을 출격시켰다.
祁瞞先時,也守著先軫之戒,堅守陣門,全不招架。楚中軍又發第二通鼓,成大心手提畫戟,在陣前耀武揚威。祁瞞忍耐不住,使人察之,回報:「是十五歲的孩子。」祁瞞曰:「諒童子有何本事!手到拿來,也算我中軍一功。」喝教「擂鼓!」戰鼓一鳴,陣門開處,祁瞞舞刀而出,小將軍便迎住交鋒。約鬥二十餘合,不分勝敗。鬥越椒在門旗之下,見小將軍未能取勝,即忙駕車而出,拈弓搭箭,覷得較親,一箭正射中祁瞞的盔纓。祁瞞吃了一驚,欲待退回本陣,恐沖動了大軍,只得繞陣而走。鬥越椒大叫:「此敗將不須追之,可殺入中軍,擒拿先軫!」
기만은 앞서 선진이 출전할 때 지키기만 하라는 명에 따라 진영을 굳게 지키고 초군의 도전에 상대하지 않았다. 초나라 중군에서 다시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리더니 성대심이 화극(畵戟)을 쥐고 진영 앞으로 나와 무예를 뽐냈다. 기만이 보고 참지 못하여 사람을 시켜 살펴보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그는 열다섯 살 먹은 아이입니다.” 했다. 기만이 말하기를, “어린놈이 어찌 싸움을 알겠느냐? 내가 나가서 맨손으로 잡아 오면 우리 중군의 공이 되겠지.” 하고, 소리치기를, “북을 쳐라!” 했다. 북이 한번 울리자 진문이 열리는 곳에 기만이 칼춤을 추면서 나오니, 소장군 성대심이 그를 맞아 싸움을 벌였다. 두 사람은 20여 합이나 싸웠는데도 승부를 낼 수 없었다. 투월초가 진문의 깃발 아래에서 소장군 성대심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즉시 전차를 몰아 달려 나오면서 활에 화살을 메어 두 사람이 뒤엉켜 겨루는 모습을 노려보다가 화살을 쏘아 기만의 투구 끈을 맞추었다. 기만이 놀라서 본진으로 돌아가려다가 초군의 대병이 추격하여 들어올까 걱정하여 어쩔 수 없이 진영을 돌아 달아났다. 투월초가 크게 외치기를, “패장을 쫓을 필요는 없다. 중군으로 쇄도하여 대장 선진을 사로잡아라!” 했다.
不知勝負如何,且看下回分解。
승부가 어찌 될지 알 수 없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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