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바로 앞 식당에서 삼겹살과 함께 막걸리 한잔을 거나하게 걸치고 1km정도 내려가 야간 초정행궁을 찾았다
한 때는 꿈에 부풀어 개발했던 이곳도 거의 인적은 없었다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았는데 그나마 한 곳에 우리의 저녁을 위한 자리 펼 곳이 있어 행복한 저녁을 하고 이렇게 저녁 산책을 나선 것이다
좌구산 줄기의 산 밑에 조성된 개발지라 저녁이 되니 그나마 열기가 조금 식어 있었다
초정행궁에 도착하니 때마침 시원한 소나기 한 줄기도 세차게 뿌리고 사라진다
초정약수는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하루 약 8,500L 정도 솟아나는 무균의 탄산수이므로, 인체에 무해한 각종 미네랄(광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흔히 ‘세계 3대 광천수’라고 불린다.
초정(椒井)이란 지명은 '후추처럼 톡 쏘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고려 시대에는 초정리 일대가 초자은소(椒子銀所)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세종실록 지리지》에 남아 있다. 1444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세종대왕이 행차하여, 초정행궁을 짓고 117일 동안 기거하며 눈병과 피부병을 낫기 위한 요양 생활을 하였다. 이후 1464년 세조가 초정 일대에 행차하였다.
초정행궁은 1448년 3월 전소되었다.
초정약수는 1907년 7월 장호원의 일본인 小野網方에게 매수되었다가, 1919년 8월 소유자가 나카하라 데츠오미(中原鐵臣)로 바뀌었다. 나카하라는 중원탄산수공장(中原炭酸水工場)을 세우고 이듬해인 1920년,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영천(靈泉) 둘레에 벽돌을 쌓아 우물의 형태로 만든 뒤 그 물을 공장으로 유입시키기 시작하였으며, 1921년 8월 즈음부터 음료수로 상품화하였다
1935년 시바타 신(柴田震)이 나카하라와 무관하게 별개의 탄산천에서 시바타탄산수장(柴田炭酸水塲)을 개업하여, 동아일보 청주지국과 연계하여 열차표 할인이 동반된 초정 일대 관광단을 모객하며 초정 지역의 관광지화를 이루기도 하였으나, 시바타는 1939년 사망하였다.
한편 광산업자 고바야시 우네오(小林采男)는 1939년 7월 충북천연탄산주식회사(忠北天然炭酸株式會社)를 인수하여 경영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회사는 1972년 초정약수주식회사로 바뀌었다가 1999년 1월 일화에 합병되었다.
이런 이곳에 청주시는 행궁 복원을 한 뒤 다시 새로운 야경명소를 조성하기 위해 2022년 4월부터 4억 5000만 원을 투입하여 3개월간의 공사 끝에 행궁의 한옥건축물, 조경 등과 어울리는 야간 경관조명 연출과 포토존을 설치해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덕분에 나같은 나그네에게 더없이 좋은 오늘 하루의 추억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 외에 단 한 명도 탐방내내 행궁 안에서 인적은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