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코스 : 광천마을 버스 정류장 - > 칠장사
이천시와 안성시 경계부터 함께한 영남길과 또다시 하나가 되어 걸어간다. 버스 정류장을 건너니 조선의 명장 임경업 장군이 충주시에서 이곳 대사골 서당에 와서 천문지리와 축지법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임경업 장군은 명나라와 힘을 합쳐 청나라에 대항해 병자호란의 수치를 씻으려 했으나 사대 존숭의 시대 상황에서 한번도 전투다운 승부를 겨룰 수없어 웅지를 펼칠 수 없었던 불운의 명장이다. 천자로 일컬은 중국을 향해 사나이의 기개를 당당하게 외쳤던 용천검이란 한편의 시가 머리를 감싼다.
龍泉劍
三尺龍泉萬卷書 : 석자의 용천검은 만권의 서적과 같다.
皇天生我意何如 : 하늘이 나를 냄은 어인 뜻인가?
山東宰相山西將 : 산동에 재상나고 산서에 장수 난다는데
彼丈夫兮 我丈夫兮 : 저들이 대장부면 나 또한 대장부가 아니냐
임경업 장군의 국가에 대한 충의 정신이 서려 있는 대사골은 또한 삼대를 이어 효자 효부를 배출했다는 현풍곽씨 충효각이 세워져 있어 광천마을이 바로 효孝, 충忠의 고장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충효각에 세워진 검은 비석을 바라보며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며 칠장사를 향하여 걸어간다. 이곳에서 칠장사까지는 18km이다. 다소 멀다고 할 수 있는 기리이지만 효충孝忠의 기운을 듬뿍 안았으니 가볍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저 멀리 손짓하는 비봉산을 향하여 걸어갈 때 퇴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예전에는 시골길을 걸으면서 축사에서 퍼지는 소똥 냄새에 코를 가리고 지나갔지만, 둘레길을 걸으면서 어느새 시골의 향기로 익숙해진 탓인지 아. 이곳이 우리의 시골 마을이라는 것을 느끼며 걸어간다.
장암리를 지날 때 눈길을 끄는 바위가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며느리 소원을 이루어진 갓바위였다. 갓바위는 손님 대접에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며느리가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인데 과연 소원을 이룬 것일까?
“ 예전 장암리 금 망아지 골에 큰 부자가 살았다. 그 집 며느리는 손님 접대에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시주를 하러 온 스님을 며느리는 극진히 대접했다.
스님은 고마움에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고, 며느리는 자기 손에 물이 마르게 해 달라고 했다. 스님이 보니 집 앞에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 그 갓바위가 부의 원천이었다.
스님은 주인을 불러 갓바위가 재앙의 씨앗이니 갓을 떼어 땅에 묻으라고 했다. 갓이 사라지니 집은 가난해져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며느리 손에도 물이 말랐다. “<영남길 안내판에서 옮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당장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똑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지금의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 바로 사람의 갈 길인 줄 누가 모르겠느냐마는 우선 곶감 먹기가 달기에 현재의 고통에서 하루빨리 면하기만을 바라는 것이 보통사람의 삶인데 나 또한 예외일 수가 있을까?
잘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피나는 노력이 돋보이고 못 되는 것을 보면 바로 나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으니 어찌 가슴을 치며 부끄러워하며 후회하지 않겠는가? 오로지 지난날을 반성하며 이제부터라도 오늘의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으리라!
이곳은 도시 계획이 되지 않은 농촌 지역이다. 멀리 조그마한 동산들이 솟아 있고 드넓게 논, 밭이 펼쳐진 곳, 그 안에는 비닐하우스도 있고, 축사도 있는 곳이며 길도 포장된 곳도 있고 되지 않은 곳도 있다.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도심의 아파트 공간 속에 익숙한 도시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곳이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전 국토의 70% 정도가 바로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마치 고향길을 걸어가는 것 같다.
죽림 15교를 지나니 비봉산과 죽주산성이 확연히 눈에 잡힌다. 예전 영남길을 걸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죽산면 소재지에서 일죽면 금산리를 향하여 걸어갔고 오늘은 그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때에는 2016년 8월 여름철 이어서 사방 천지가 온통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고추밭, 인삼밭. 깻잎, 벼가 풍성하게 자라 있었고 심지어 길가의 무성한 잡초들마저 푸른 빛을 띠며 온 마음을 푸르게 물들게 하였지만, 오늘은 드넓게 광장으로 펼쳐져 있다.
하지만 빈 땅이 되어 봄을 기다리는 드넓은 평원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하며 대지의 기운을 마음껏 마실 수 있으니 언제 걸어도 좋은 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길에서 어찌 신이 나지 않겠는가?
걸으면 걸을수록 흥이 절로 나는 길에서 죽산 성지에 이르렀다. ” 원래 이 부근은 몽고군의 3차 침입 때 죽주산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진을 친 곳으로 이진 夷陳이라 불렀던 곳인데 병인박해 때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 터’가 되었는데 후에 음이 변하여 ‘이진터’란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가슴 저린 이야기가 서려 있다“고 영남길 이야기는 적고 있다.
7년 전 영남길을 걸으면서 이곳에 이르러 느꼈던 그때의 마음을 다시금 헤아려 본다. ” 종교의 목적이 모든 고통을 여위고 즐거움을 얻는 데 있다면 종교를 통해 오직 한 번뿐인 삶을 보다 충실하게 영위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생은 이 세상에서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이 참다운 삶이기에 순교를 통해서 영생의 즐거움을 얻고자 함인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순교자들의 고귀한 정신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순교의 길을 택한 것이 애달프게 느껴진다. “<땅의 향기를 찾아서 6>
죽산성지에서 광천마을에서 어깨동무하며 나란히 걸어왔던 영남길과 헤어지고 물 좋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자랑하는 종배마을에 이르렀다. 마을에는 고사목인듯한 신기한 나무가 가던 길을 멈추게 하였다.
종배마을에 이르러서도 논, 밭. 비닐하우스의 시골길은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도시처럼 막힘은 없고 대지의 광장 같은 펼침만 있는 대자연의 길에서 대지의 기운을 마음껏 마시는데 마스크가 웬 말이냐를 연발할 때 지방도로에 이르러 잠시 차도를 걸어가다가 용설 저수지에 도착하였다.
지금까지는 대지가 광장을 이루었지만, 이곳은 물의 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곳곳에는 낚시를 던지기 위해 설치난 좌대가 여기저기 둔에 띠는데 낚시는 인간이 물고기와 싸우는 것 같아 애당초 관심이 없고 저수지에 가득한 물만을 바라볼 뿐이다.
저수지에 가득한 물을 바라보니 절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물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싫지 않고 또다시 듣고 싶은데, 저수지에 가득한 물은 바라보면 볼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고 넉넉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박찬일 사장님은 땅에서 바라본 풍광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늘에서 바라본 풍광은 어떠한지 보고 싶은지 드론을 날린다. 박 사장님은 유튜버다. 그는 우리 땅을 걸으면서 동영상을 촬영하여 그가 운영하는 산머루 TV에 영상을 올리어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수변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며 저수지 변 카페의 쉼터에서 배낭을 내렸다. 저수지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장소였기에 차 한 장에 장소를 빌린다고 여기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잘 먹고 좋은 장소에서 잘 쉬었다 가는 대가로 차 한잔을 마시겠다고 들렸는데 카페는 문이 잠겨 있었다. 수변 산책로는 예상보다 길었다. 길면 길수록 좋은 것은 그만큼 좋은 풍광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끝날 줄 모르던 수변 산책로에서 차도인 용설로에 이르러 아스팔트 걷다가 산길로 진입하였다.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비록 산길이 오르막이 되어 다소 힘들지라도 흙길이 되어서 힘이 든지 모르고 걸어간다.
산길을 내려서니 또다시 차도인 용설로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차도 따라 걸어오는 길이 자동차의 위험으로 다소 가파른 산길로 우회하였던 것이다. 차도를 피하여 산길과 물길로 차도를 우회하였던 것은 경기 옛길을 걸으면서 체질화되었기에 비록 시간이 더 소요될지라도 흥겹게 걸어간다.
차도인 용설로에 또다시 진입하여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다 당진 새마을 3교를 건너며 천변으로 진행한다. 이 또한 차도를 우회하는 길이다. 칠장사 가는 길은 평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스팔트의 도로도 고갯길이 되어 경사진 언덕을 오르는 길이었으며 한 고개를 넘으면 또다시 다른 고개를 넘어야 했고 그 고갯길은 예상보다 길었다. 하지만 한발한발 전진하는 비록 작은 발걸음에 목적지가 임박하였으면 알린다.
한겨레 중고교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동행한 걷기의 달인 김 총무는 요즈음 어머님의 간호로 지친 탓인지 2km가 이렇게 먼 거리인지 오늘 알았네요라고 그답지 않은 말을 한다.
칠현산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아스팔트 길에서 칠현산 정기 어린 극락 마을을 지나고 400년 전통 어린 신대리 복조 마을도 지나고 칠장사 주차장에 세워 놓은 경기 둘레길 39코스 날 머리와 40코스 들머리를 알리는 표지판을 세워 놓은 지점에 이르렀다.
경칩을 하루 앞둔 화창한 날씨에 봄 소풍을 같은 기분을 느끼며 걸어온 길에 서로를 위로하며 즐거워할 때 낯모르는 사람이 또다시 자동차를 타고 와서 경기 둘레길 걷기 인증 도장을 찍고 간다. 무엇 때문일까? 속일 것이 없어 걷는 것까지 속이는 것인가?
80을 눈앞에 둔 우리의 박 사장님은 배낭 가득 짊어지고 장도의 길을 흥겹게 걸어가고 있는데 젊고 젊은 중년의 남아들은 헛된 도장을 찍고자 이곳저곳을 자동차 기름값 아까운 줄 모르고 다니고 있으니 세상이 어디로 가는 것이냐!
다소 씁쓸한 마음을 안고 칠장사에 오르니 사찰의 규모는 예상보다 장대하였다. 대웅전 전각은 비록 3칸에 불과하였지만,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는데 부처님의 말씀은 귀먹은 언어장애인이 되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대웅전 주련>
海底泥牛含月走 : 바다 밑의 진흙 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
巖前石虎抱兒眠 : 바위 앞의 돌 호랑이는 새끼를 안고 졸고 있다.
鐵蛇鑽入金剛眼 : 쇠 뱀은 금강의 눈을 뚫고 들어가고
崑崙騎象鷺鶿牽 : 흑인(崐崙)이 코끼리를 타고 해오라기가 이끌어 줌이로다
● 일 시 : 2023년 3월5일 일요일 흐린후 맑음
● 동 행 : 박찬일 사장님. 김헌영 총무
● 동 선
- 08시45분 : 광천마을 버스 정류장
- 09시40분 : 죽산 성지
- 10시45분 : 용설 저수지
- 14시55분 : 칠장사 주차장
●총 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8km
◆ 소요시간 : 6시간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