솎아내는 농부
김외순
나는 농부다. 그것도 초보 농부. 시골로 들어온 지 벌써 24년 찬데 작은 텃밭에 상추나 심어 먹고 살다가 올해 처음으로 평수를 넓혀서 이것저것 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더니, 아니 그냥 익숙한 몸놀림이라고 해야 할까? 차츰차츰 몸에 익어가기 시작했다.
1월부터 감나무, 체리 나무, 살구나무, 무화과나무를 심고, 2월에는 생강씨랑 더덕씨를 사다 심고, 고구마 무강도 심어보고,
3월에는 상추씨 뿌리고 열무씨, 얼갈이 배추씨, 붉은 갓씨, 당근씨를 뿌렸다.
4월이 되니 무럭무럭 잘 자라는 듯싶더니, 갓이 삐들 삐들 맥을 못 춘다. 아마도 벌레가 생긴 모양이다. 얼른 살충제를 섞어서 분사했다. 며칠 지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방긋해 맑게 웃고 있다.
올해는 냉해가 심하다. 낮에는 여름 날씨처럼 뜨겁더니, 밤이 되면 초겨울 날씨가 되어 식물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1월에 심었던 나무들은 잘 자란 듯하더니 냉해로 가지 솎기로 들어갔다. 살며시 내려놓는 잎사귀들. 한 날 나가보면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어린 새싹들을 가감이 떨구고 서 있는 나무들. 그래 버려야 사는구나.
나무도 그럴진대 바닥에 있는 채소들인들 조용할까? 가만 보니 씨앗을 너무 많이 뿌렸는지 한 구멍에서 숨도 못 쉬고 빼꼭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5월 어느 날. 서울에서 손님이 오셨다. 채소 정리를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선 채반을 들고 가서 얼갈이배추를 솎았다.
간격을 두고 그 안에 있는 배추는 모두 내 손에 뽑혔다. 남은 배추들은 갑자기 빠져버린 친구들 때문에 힘이 없는 듯 픽 픽 쓰러지고 있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배추는 계속 내 손에 잡히는 대로 뽑아졌고 그 배추는 서울 언니들의 손에서 가지런히 놓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정리하고 갓도 뽑고 열무도 뽑아서 서울로 출발했다.
남은 이들은 비실비실하더니 이틀이 지나고 나니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나를 쳐다본다. 아! 솎아야 사는구나
사람 관계도 마찬가진 모양이다. 모든 사람이 좋다고 내 옆에 두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일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계곡에 놀러 갔었다. 한 친구가 기분이 너무 좋다고 술을 계속 마셨다. 다른 친구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취기가 올랐다. 그때부터 우리는 처음 보는
그녀만의 술주정. 펑펑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려보기도 하고 사정도 해 봤지만, 본인 인생이 고달팠다고 그 고달픈 인생이 생각난다고 하기에 그대로 두었다. 한소끔 울고 나면 조용해지겠지.
하지만 친구는 울면서 한 잔 두 잔 기울여서 계속 마시고 있기에 친구를 달래서 친구 친정으로 보냈다. 나머지 친구들은 노래방으로 직행했다. 노래방에 있는데 먼저간 친구의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쩜 그럴 수가 있느냐. 지금 우리 마누라는 죽는다고 난리가 났는데 본인은 멀어서 갈 수가 없다. 그래 물어보았다. 왜 죽는다고 하느냐고. 모르겠단다. 그래 안 죽을 거니까 그냥 두세요 하고는 장장 두 시간에 걸친 전화는 끊어졌다. 피곤하다.
다음 날 연락이 없는 그 친구를 두고 나머지 친구들이 모여서 놀았다. 친구는 조용히 본인 집으로 갔고 그렇게 그 날 모임은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어찌 친구가 괜찮냐고 전화도 없느냐고. 남편이랑 얘기하라고 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라고. 자기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팠다. 그냥 그만하자. 친구들 만나서 놀다가 실수 할 수 있다. 그런데, 본인 실수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을 왜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걸까?
솎아도 안되는 건 채소가 될 수 없다.
그 날 그 뒷처리 하나로 친구를 솎았다.
그래 나도 살려면 솎아야 하는구나.
마냥 좋다고 다 끼고 있어봐야 안 되는 것은 안 되는구나.
초보 농부는 오늘도 하나 배운다.
(2023.6 .1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