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및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 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에 대한 소개가 미흡하였던 것 같아서 보완하여 봅니다. 죄송합니다.
“ ‘목적이 선하면 수단도 선해야 한다’는 순도 100% 평화주의자인 간디를 흔히 ‘신에게 가장 가까이 간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순도 100% 반 제국주의자인 체 게바라는 ‘지금 신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마도 그는 산책하면서 제국주의 악마들이 숨통을 죄고 있는 저 세상으로 같이 내려가자고 신을 설득하고 있을 것이다.”
이산하(시인, 〈체 게바라 시집〉 엮음) -
“양손이 절단된 체의 시체와 일부 동료들의 시체는 볼리비아 중부의 작은 산악 지대 마을 바예그린데 외곽의 비포장 활주로 근처에 묻혔다. 세상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게릴라 전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장교들은 대중이 경의를 표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묘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체가 실종됨으로써 체 게바라의 신화 역시 종결되길 원했다. 그러나 ‘체’라는 신화는 누구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퍼졌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시인과 철학자들은 열정적인 추도문을 썼고 음악가들은 곡을 바쳤으며 화가들은 갖가지 영웅다운 자세를 취한 체의 초상을 그렸다. 자신들의 사회에 ‘혁명’을 일으키기를 열망하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의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들은 전투에 나설 때마다 체가 그려진 깃발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미국과 서유럽의 젊은이들이 베트남 전쟁 ‧ 인종편견 ‧ 사회적 정통성에 반대하여 기존질서에 대항하여 봉기할 때, 체의 저항적인 모습은 그들의 강렬한 믿음을 상징하는 궁극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체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이 정신은 살아남았다. 체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동시에 어느 곳에나 존재했다.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대륙혁명’의 불꽃을 일으키겠다는 희망을 안고서 혁명 쿠바에서의 명예시민권 ‧ 장관직 ‧ 사령관 직위를 포기하고 부인과 다섯 아이들까지 떠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아르헨티나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의대를 졸업한 그가 세상을 바꾸려고 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볼리비아의 작은 마을 바예그란데에서는 체의 시신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마침내 성과를 거두었다. 1997년 7월에 양손이 없는 체의 유골이 쿠바와 아르헨티나 공동 감식팀에 의해 발견되었다. 체의 유골은 비포장 활주로 아래쪽 2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다른 여섯 구의 유골과 함께 누워 있었다. 발굴 후 게릴라들의 유골은 관에 담겨 쿠바로 옮겨졌고, 조심스럽지만 감상적인 기념식이 열렸다.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형제가 기념식을 주재했으며 체의 미망인과 자녀들이 참석했다. 1997년 10월에 그의 유골은 산타클라라 시 외곽에 특별히 지은 웅장한 무덤에 공개 이장되었다.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지난 후 체 게바라가 드디어 제2의 조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바예그란데의 진흙벽돌로 지은 전화국 벽에는 스페인어로 휘갈겨 쓴 그라파티가 남아 있다. ‘체 – 그들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살아 남다.’ 아마도 이 구절은 체의 진정한 유산을 그 무엇보다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어쨌거나 체 게바라는 대중의 상상력을 강하게 사로잡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으로 보인다. 영원히 젊고, 용감하고, 준엄하고, 반항적이고, 목적과 의분이 가득한 눈으로 쏘아보는 체는 죽음과 싸워서 이겼다. 가장 가까운 친구와 동지들이 나이를 먹으며 시들거나 안락함에 굴복하여 더 이상 ‘혁명’이 설 자리가 없는 생활을 할 때에도 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살아생전 다른 사람들에게 추구하라고 열심히 설득했던 새로운 인간의 유일한 본보기가 되어 영원히 살아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존 리 앤더슨(영국 언론인) 저 ‘체 게바라 혁명적 인간’(플래닛 펴냄) 중에서 -
“체가 죽은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동시대인들의 마음 속에 신화로 떠돌고 있던 그는 아직도 여전히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다. 가치가 전복되고 기계가 중심이 되어버린 파편화된 세계 속에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그는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체는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뜨거운------.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 뜨거운 심장을 쓰고 싶어했다. 그러나 당시의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의 비밀경찰들은 이 영원한 돈키호테의 분신이자 우리 시대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피를 안데스의 산맥에 뿌리도록 만들었다. ‘전사 그리스도’로 까지 부르는 그의 재조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지금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예술가와 화가 ‧ 조각가 ‧ 사진작가들은 루브르 광장에서 출발하는 자유의 행진을 계획 중이다. 그것은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체가 던졌던 질문을 생각해보고, 이에 답해보려는 시도이다. 그의 질문은 사회의 파편화가 가속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장 코르미에(프랑스 언론인) 저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 펴냄) 중에서 -
“체 게바라는 20세기를 살다간 그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다.”
장 폴 샤르트르 -
“망월동 구묘지에서 지금의 국립 신묘역으로 이장을 하고 나서부터 어머니가 이상해졌다고 그의 형은 말했다. 눈 덮인 무덤들 속에서 마침내 그의 것을 찾아냈다. 오래전에 찾았던 망월동 그의 묘에는 사진 없이 이름과 생몰 연도만 있었는데, 이제는 학생기록부에 있던 것을 확대한 흑백사진이 묘비에 붙어있었다. 그의 오른편과 왼편 무덤은 모두 고등학생들의 것이었다. 아마도 중학교 졸업 사진일 검은 동복 차림의 앳된 얼굴들을 나는 들여다보았다. 어젯밤 그의 형은 계속해서 말했다. 동생이 운이 좋았다고, 총을 맞고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이상하게 열기 띤눈으로 내 동의를 구했다. 동생과 나란히 도청에서 총을 맞았으며 동생과 나란히 묻힌 고등학생 하나는 바로 안죽고 살아 있다가 확인사살을 댱했던 모양이라고, 이장하면서 보니 이마 중앙에 구멍이 뚫리고 두개골 뒤쪽은 텅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 학생의 아버지가 입을 막고 소리 없이 울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거라고 나(스물 세 살의 교대 복학생)는 믿고 있습니다. 학생 대표의 말대로 우리가 총기를 도청 로비에 쌓아놓고 깨끗이 철수했다면, 그들은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을지도 모릅니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한 강(작가)저 ‘소년이 온다’(창작과 비평사 펴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