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다.
미국에서 목회하는 처남에 관한 일이다.
현재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서 다른 교회의 담임목사로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담임목사로 청빙되는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겪었던 사례와 달라 흥미롭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 전, 친구의 여동생이 결혼을 한다기에 방문한 곳이 지금의 사랑의교회다.
당시 여동생의 남편은 사랑의교회 부목사였다.
지하로 내려갈 때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강남 한복판에 자리했지만 빨간 벽돌이 주는 어떤 편안함이 있었다.
특히 지하로 한 발, 한 발 내 디딜 때 오는 어떤 엄숙함과 겸손이 그렇다.
대형교회에서 어릴 적 시골 개척교회의 모습과 떠올라 기분이 묘했다.
주례는 당시 옥한흠 목사님께서 하셨고 흔한 일인지 알았다.
빛나는 외모도 아니었고 어떤 카리스마도 읽을 수 없었다.
촌스럽기까지 했다.
결혼식 촬영을 위해 불러 온 사진기자 몇 명은 주례 주변을 건방(?)스럽게 오고 가며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개인적으로 사랑의교회와 첫 인연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후, 이들 부부는 오랜 동안 사랑의교회를 섬기다 외국으로 나섰다.
근황에 대해서는 친구를 통해 간간히 전해 듣고는 했다.
그러다 이번에 꽤 큰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청빙되는 과정이 재미있다.
아니, 청빙하는 한인교회 당회의 세밀한 검증시스템이 놀랍다.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날, 여동생 집에 서너 명의 남자들이 불쑥 찾아온다.
P교회 장로들이라고 밝힌 이들의 방문에 여동생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당연하다.
사전에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이런 무례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는 들어와 집안을 수색하듯 눈길이 이곳저곳에 머물기도 하고 훓고 지나기도 했단다.
당황한 여동생은 차를 내왔을 것이고 남편에게 연락을 취하려 하자 만류했단다.
남편은 이미 P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을 한 적이 있다.
이는 여동생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 넉살좋은 장로들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는 저녁까지 달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저녁까지 다 먹고서야 그 간의 일들을 말해 주었다.
P교회가 후임 담임목사를 청빙한다 하니 지원자가 꽤나 있었던 모양이다.
나름대로 서류전형을 끝내고 서너 명의 후보자로 압축됐다.
이때부터 청빙위원회는 후보자들을 관찰하는 암행에 나섰다.
후보자들이 사역하는 교회에 잠입(?), 여러 형태들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 등이다.
그리고 교인들로부터의 평판 등을 세밀하게 듣기도 한다.
그렇게 하기를, 근 한 달의 시간이라고 했다.
이때 후보자의 결격사유 등 여러 문제들을 면밀하게 검토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들의 활약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으로 들이 닥친 것.
그것도 후보자가 없을 때를 정해 사는 모양 등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자녀들의 모습과 먹는 것은 물론, 집안의 모양 들을 관찰한다.
사전에 준비하는 어떤 형태의 겉모습을 배제하여 지금의 모습 그대로를 노출토록 한 치밀한 계획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돌아가기 전 장로들은 저간의 일들을 말해주었고 뒷조사하듯 무례한 점 등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돌아가고 이들 부부는 이 때의 일을 지웠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있어 안됐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처남이 P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키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들이 돌아가 각 후보자들을 암행관찰 한 내용을 토대로 어떠한 결과 보고서를 만들어 냈는지는 모른다.
오랜 시간동안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것은 위와 같은 일들로 가늠할 뿐이다.
친구에게, 지금 한국 대형교회 문제로 인해 미국 내 한인교회들도 많이 바뀌는 모양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의 말은 달랐다.
그날 저녁식사를 마친 장로들에 따르면, 교회는 한번 담임으로 오면 오랜 동안 목회를 하므로 이토록 세밀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전임 목사도 15년을 함께 하고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P교회는 큰 잡음 없이 평온해 보인다는 말도 전해왔다.
첫댓글 좋은 정보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나 따라해도 후회하는 일은 없겠군요
감사합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30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가짜 목사들이 많았다. 어머님이 다니시던 교회를 방문했을 때 담임목사님이 1년간 한국에서 특별사역을 하고 돌아오기로 했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교계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만류했다. 담임목사는 한국 사역을 포기하고 그대로 그 교회에서 사역을 계속하기로 했다. 후임 목사를 추천한 교인들이 난동에 가까운 항의가 있었다. 후에 알려지기를 후임으로 오려던 목사는 신학교 근처에도 가지 아니한 가짜 목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