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진 10루피의 외상 값
알라, 알라, 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4년 전에도 그랬었는데, 이번에도 알라를 부르는 소리에 새벽 잠을 깼다. 국민의 90퍼센트가 힌두교를 믿는 국가에 알라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으니 묘한 감정이 든다. 아이러니컬하지만 힌두교 국가에서 알라의 외침과 함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4년 전인 2010년 10월 9일 더먹을 방문했을 때 콧수염의 찻집 주인
문득 4년 전 아침 더먹 길거리에서 마셨던 찌아(인도의 짜이를 네팔에서는 찌아라고 부른다)차가 생각이 났다. 그때 그 사람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차를 팔고 있을까? 나는 4년 전에 찻값을 치르지 못한 10루피의 외상 빚이 떠올랐다.
4년 전 20여명의 자비공덕회 회원들과 함께 나는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는 네팔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 더먹에 왔었다. 그리고 아침거리로 산책을 나갔다가 길거리에 파는 차를 한 잔 주문했다. 차를 마시고 찻값을 치르려고 하는데 마침 네팔 돈이 한푼도 없었다. 카트만두공항에 도착하자말자 바로 더먹으로 날아왔기 때문에 환전을 할 시간이 없었다. 차 한 잔에 10루피(약 120원)라고 했다. 지갑에는 1달러짜리 지폐가 몇 장 들어 있었다.
▲네팔 사람들은 차를 한잔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거 미안해요. 네팔 루피가 없으니 이 돈을 받으시오.”
그러나 콧수염을 기른 40대의 찻집 주인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1달러 지폐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손을 훼훼 저으며 이런 돈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찻값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어는 통하지않지만 사람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 이 세상 어디에서나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하게 되어 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차를 팔고 있었다. 옆에 있던 부인도 그냥 웃어 보였다.
“정말 미안하오. 네팔 돈을 바꾸어서 꼭 갚을 게요.”
그는 미안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괜찮다는 듯 씩 웃어보였다. 그렇게 찻값을 갚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나는 바쁜 행사일정 때문에 그와의 약속을 깜박 잊고 그냥 더먹을 떠나고 말았다. 이곳 네팔 동부 칸첸중가 설산에서 가까운 더먹 지역은 외국인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라고 했다. 이곳엔 볼거리도 없고 기업체나 큰 도시도 없다. 그러니 외국인 방문이 거의 없고, 따라서 달러를 구경하기도 힘든 곳이다.
나는 4년 전에 외상값 10루피를 생각하며 이번에는 내 지갑에 네팔 루피를 확실하게 챙겨 넣었다. 4년 전에 네팔에서 쓰다 남은 1000루피 정도의 돈을 서울에서부터 가져왔던 것이다. 이번에는 곱절로 찻값을 갚아야지.
나는 아직 어둑어둑한 밖으로 나갔다. 나이 많은 호텔 수위가 갑자기 차렷 자세를 취하고 거수경례를 했다. 그렇게까지 아니해도 되는데… 나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수위가 열어준 쇠창살 문을 밀고 거리로 나갔다.
▲4년 후인 2014년 10월 28일 다시 찾은 콧수염 찻집 주인
더먹의 거리는 여전했다. 릭샤들이 아침부터 손님을 태우려고 여기저기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유명한 인도의 타타 버스들이 빽빽 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 차를 팔았던 그 때 그 자리로 가니 아, 콧수염을 기른 그때 그 사람이 여전히 차를 팔고 있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나는 그에게 차 한 잔을 주문하며 그에게 말했다.
“헬로 미스터, 4년 전에 코리아에서 왔던 사람이오. 코리아, 기억나세요?”
“코리아?”
“네, 코리아, 기억나세요?”
"......."
그러나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둥거리며 그냥 씩 웃더니 난로에 찻물을 올려 펄펄 끓였다. 어찌 그가 잠시 스쳐 지나갔던 나를 알아 볼 수 있겠는가? 4년 전의 나를 기억하느냐고 묻는 내가 우스꽝스럽게 생각되었다. 차를 끓이는 손놀림이 능숙하고 유연했다. 오랫동안 끓여왔던 노련한 솜씨다.
찌아차는 홍찻잎에 향신료와 물, 우유를 넣고 끓인 네팔 전통 차다. 인도에서는 '짜이'라고 하는데 네팔에서는 '찌아'라고 한다. 찻잎을 우려내어 우유, 설탕, 계피 가루 등을 넣어 펄펄 끓여서 마신다. 그는 내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차를 한 잔 내게 내밀었다. 입에 대고 한모금 마셔보니 찻맛이 기가 막히다!
▲4년 후에도 콧수염 주인이 끓여주는 차맛은 기가 막히다.
“찻값이 얼마지요?”
그는 대답대신 주머니에서 10루피 짜리 지폐를 꺼내보였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찻값은 똑 같았다. 나는 10루피 짜리 두장을 꺼내 들고 그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자, 여기 20루피요. 이 10루피는 내가 4년 전에 갚지 못한 외상 값이오.”
“노노, 10루피.”
그는 내가 10루피를 더 주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10루피만 받겠다고 하는 그에게 나는 다시 10루피를 내밀었다. 한동안 묘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는 10루피를 더 주겠다고 하고, 그는 찻값이 10루피이니 10루피만 받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가 4년 전에 진 외상 10루피의 사연을 알 턱이 없다. 그러니 10루피만 받겠다는 그의 주장이 옳다. 그러면서 그는 끝내 내가 내민 10루피를 받지 않았다.
“그럼 짜이나 한 잔 더 주시오.”
“오케이.”
돈을 받지않는 그에게 나는 차를 한 잔 더 주문했다. 그는 다시 뜨거운 차를 내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내가 10루피의 돈을 그에게 건네주자 그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10루피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차를 한 잔 더 마셨지만 엄밀히 계산하면 4년 전에 진 빚 10루피는 여전히 남아있는 샘이다. 어떻게 할까?
▲4년 전에 진 외상값 10루피를 그는 받지않았다.
그때 마침 호텔이서 아내와 민들레님, 바다님 등 몇 분의 일행이 산책을 나왔다. 나는 손짓을 하며 그들을 불렀다. 그리고 뜨거운 차 한 잔씩을 콧수명에게 주문했다. 모두들 차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고 했다. 이 아침에 마시는 뜨거운 차이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조금 지나자 또 다른 일행들이 산책을 나왔다. 나는 그들에게도 모두 차를 권했다. 그렇게 해서 그 콧수염 찻집 주인에게 10여 잔의 차를 더 팔아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100루피를 지불했다. 그래도 4년 전에 진 빚 10루피는 여전히 갚지 못한샘이지만, 그렇게 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주변에는 차를 파는 곳이 한군데 더 있었다. 빚을 갚지 못했지만 그 인연으로 콧수염 찻집 주인을 찾아 차를 많이 팔아 주었으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다.
▲언제 다시 와서 콧수염 찻집주인이 끓여주는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을까?
“코리아, 잊지 말아요. 나중에 반드시 다시 올게요”
"오케이."
내가 손짓을 하며 다시 오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다시 씩 웃었다. 인간미가 넘치는 표정이다. 몇 년 후에나 다시 그를 만나 차를 마실 수 있을까? 나는 콧수염의 찻집주인과 악수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다시 오면 그땐 차를 따따블로 마셔야지.
첫댓글 하하하 좋은 인연이네요. 다음에 혹시나 저도 갈 수 있으면 저도 한잔 따따블로!!
호야님 가시면 따따따따따따블로 마시게 할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