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진강 별천지선조들이 매화를 분에 얹어 가까이 하거나
정원에 있는 고매(古梅)의 꽃잎하나하나를 즐겨 감상했다면
이와 다른 매화의 모습을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에서 볼 수 있다.

섬진강가에서 바라보는 3월의 매화마을은마치
눈 덮인 산과 같이 장관(壯觀) 그 자체다.
백운산 동쪽 끝자락을 타고 내려와섬진강을 따라 수십리를 지천으로 피어

별천지를 연상하게 하는 광양매화는 다압면 전역에서
그 화려한 꽃잎을 피우고 진상과 진월의 경계를
넘어 옥곡까지 다다른다.

다압을 향해 진상에서 가다보면
맨 처음 마주치는 곳이 바로 넓게 펼쳐진 섬진강 둔치다.
둔치에 오밀조밀 피어있는 매화는
나고 자라서부터 푸른 빛 섬진강을 바라보았으니
그 묘한 인연과 조화가
방문객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매화마을 청매실농원】
수월정 모퉁이를 돌면 좌우 산으로 둘러 쌓여있는
1만여평의 매화동산이 펼쳐진다.

매화축제장이 있는 곳에서 300미터쯤 올라가면
"홍쌍리" 명인이 수십년동안 가꾸어 온 매실의
본가 청매실농원의 표석이 마중한다.

마치 이불솜을 흩뿌려놓은 듯한 풍광과 함께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
특히 가지런히 놓여 있는 2천여 개의 매실 장독대는
별천지에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77년 전인 1931년에
홍쌍리 명인의 시아버지인 율산 김오천 선생이
일본에서 건너오면서 밤나무 1만주와
매실나무 5천주를 가져와
섬진강변 백운산 기슭에 밤과 매실나무 단지를 조성한 것이
오늘날 매화마을의 기틀을 이뤘다.

다압으로 시집온 홍쌍리씨는
매화를 딸과 같이 매실을 아들과 같이
여기며 매실 제조방법을 연구한 끝에
95년에 매실 가공식품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전통식품으로 지정받았으며
97년에는 전통식품제조명인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청매실농원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숙성을 위해 매실을 담가 놓은 전통옹기는
이미 촬영배경의 단골 메뉴가 되었고

농원 뒤 오솔길을 따라 이어진 대나무 숲에서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취화선’이 촬영됐다. 임권택 감독의 백 번째 영화인
‘천년의 학’ 세트장도 눈 길을 붙든다.

작은 돌담이 있는 집 앞 길하며,
이엉을 이어 지은 초가삼간,
옛날 생활풍습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마당 전경이 사뭇 정겹다

퇴계 이황/시
나막신을 신고 뜰을 거니르니
달이 사람을 쫓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옷 가득 향기 스미고 달그림자 몸에 닿네.

매화가 좋다
매화가 피기 시작하였다
한자문화권에서 격조 높은 꽃으로
존중받았던 꽃이 매화이다

다른 모든 꽃들은
날씨가 따듯해져야 꽃을 피우지만
매화는 추운 날씨에서도 꽃을 피우고
암향(暗香)을 풍기기 때문이다
매화는 선비 중에서도
한사(寒士)에 비유되곤 하였다

정치적인 좌절
또는 개인적인 불행으로 인하여
춥고 배고픈 시절을 견디어야 했던
선비들에게 매화는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대변해 주는 꽃이었다

불행을 견디게 해주는
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일컬어졌다

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의 세한(歲寒)’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매화를 유독 사랑했던 인물을 꼽는다면
송나라의 임포(林逋)와
조선의 퇴계(退溪)이다

임포는 세상에 나가지 않고
오직 매화와
학을 기르면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아 길렀다
매처학자(梅妻鶴子)가 그것이다
나는 항저우에 갈 때마다 반드시 배를 타고 들어가
서호(西湖) 가운데에 있는
섬인 고산(孤山)에 들르곤 하였다

여기에서
임포가 은둔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관광객들로 인하여 격조를 잃었지만

고산은 중국의 역대 문사들이
매림귀학(梅林歸鶴)의 명소로
찬탄하던 곳이다

조선에는 퇴계가 있었다
퇴계는 매화가 피는 겨울 섣달 초순에 죽었다
그는 임종하던 날 아침에
“매화에 물을 주어라”는 말을 남겼다

이승을 마감하는
마지막 시점에 남긴 멘트가
“매화에 물을 주어라” 였으니
그의 매화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퇴계는 매화를 아주 좋아해서 매화에
대한 시 90여 수를 지었고
생전에 이를 모아
‘매화시첩’(梅花詩帖)을 편집해 두었다

그는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
매선(梅仙)으로 부르면서
매화를 인격체로 대접할 정도였다

조선 선비들은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벽에 붙여 놓고 봄을 기다렸다

동지로부터 날짜를 세기 시작하여
81일간이구구(九九)에 해당한다

흰 매화꽃 봉오리를 81개 그려놓고
매일 한 봉오리씩 붉은색을 칠해서
81일째가 되면 백매가
홍매로 변하는 그림이다

이때가 3월 12~15일 무렵이 된다
지금 드디어 그때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