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틈 사이로 시냇물은 흐르고
양상태
틈.
틈새, 사이, 간격, 간극, 구멍, 거리, 겨를. 골, 같은 뜻일 것 같으면서 어감과 쓰임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한 번쯤 새겨 볼 단어들이다.
틈은 공간개념이나 기회나 겨를을 엿보는 시간적 의미를 내포하고 간격은 공간적인 길이나 거리를 품는 사이를 뜻한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같이 나란히 존재하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시간 속에 공간이 있고 공간 속에서 시간이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없는 공간을 상상해 보라. 혹은 공간이 없는 시간을 상상해 보라. 우리는 뜻하지 않게 시간이 없는 공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꿈이다. 꿈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그것에 맥락이 없기 때문이고 맥락이 없는 것은 거기에 시간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작품 속에서 예술적으로 표현되는 시공간을 경험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이요 사화는 공간 개념일 따름이다.
틈새는 거리를 탐하지 아니한다. 인적 관계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발전해 가기를 바랄 뿐이다. 틈이 생기면 누구든지 메우려 들것이다. 이것은 인간 고유의 본성이 아닐까 한다.
벌어진 공간적 여유가 있어 숨이 트이기도 하며, 스미고, 스며들고,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 문을 열기도 하고 녹이기도 하며 받아들이기도,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또한 감정을 다스릴 시간을 주어 인간성을 키우는 겨를을 준다. 더하여 뚫어진 빈틈 사이로 생긴 구멍을 찾아 허술한 구석을, 모순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인도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공원 벤치에서 발아래 보도블록 사이 틈새가 보이면 옆 보도블록 위에 쌓인 모래를 살며시 발로 끄집어 공간을 메우려 들 것이다. 채우려는 습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흐르는 물은 앞서간 물을 따라잡으려 하지 않는다. 위치를 지키되 앞서거나 뒤서거나 아니하고 목적지에 다다라서야 합할 뿐이다. 간격을 유지하다 흡수력을 통해 결국 수용하는 것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함과 웅덩이를 만나면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 준다. 또한, 바위를 관통할 힘을 가지고 있으나 막히면 유유히 돌아가 주는 여유도 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부부 끼리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유지해 가며 잘 살아가고 있다. 2차원적 길이에 연연하지 않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안으로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끔 소원해지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인간이나 사물도 마찬가지. 애착을 가졌던 사물이나 상대에게서 멀어지기도 한다. 이에, 마음의 여유를 들고 때를 찾아 스스로 간격을 극복해야 하리라 믿는다.
생각과 가치에 따른 차이에서 거리는 생기기도 한다. 거리를 좁히고 구멍을 찾아 봉합하는 길을 모색하는 참다운 슬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물질적인 차이나 틈을 회복하기에는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경계하여야 할 부분은 인간관계에서의 거리 즉, 골이다. 특히 감정에 쌓인 골을 헤쳐 나가는 일은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각자의 현명한 처신에 맡기고 싶다.
벌어지고 열리어 숨을 쉬고, 스며들어 받아들이고 겨를이 생겨 통하는 것이다. 그동안 생겨났던 사이, 틈, 거리를 초기화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으면 한다
‘그래’ ‘그럼’ ‘그래야 하지요’라며 긍정적 사고와 시간적 여유로 작은 일에도 만족해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하곤 한다.
*김수영 50주기 헌정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중
169페이지, 집으로 가는 길이 가장 먼 길이 되었다 (함성호) 인용.
*노자의 도덕경 上善若水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