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염소와 풀밭>, <바보사막> 등을 낸 신현정( 시인이 16일 오전 1시20분 병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1.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1974년 <월간문학>을 통해 시 ‘그믐밤의 수’로 등단했고 카피라이터로도 활동했다. 83년 첫 시집 <대립> 이후 긴 공백기를 가지다 2000년대 이후 대표 작품집을 잇따라 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서라벌문학상, 한국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정휘씨와 딸 혜율·혜빈씨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8일 오전 7시30분이다. (02)2072-2018.
평소 존경해마지 않던 신현정 시인께서 별세 하셨다. 그저께, 사무실로 출근 하던 중 애지 발간인이신 반경환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퇴근 시간을 앞당겨 영안실로 달려갔다. 영정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활칵 쏟아졌다. 생전에 보았던 미소,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미소가 마치 살아계신 듯 하였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문학청년이었던 30여년 전, 첫 시집 "대립"을 내신 후, 오랜 공백 기간을 거쳐 다시 시단에 나오신 직후 좋은시 문학회에서 활동할 때였다. 뒤풀이 시간, 나를 불러내어 시에 관한 이모저모를 말씀해주셨던 선생님, 짧은 시간 동안 배웠던 것들은 육화 되어 내시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 잊지못할 한 분이시다. 두번 째 시집" 염소와 풀밭"을 내실 때 " 강시인 시좀 골라 봐" 하시면서 부족한 내게 120여편의 옥고를 보내준 것 역시, 더할 수 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사진 속의 푸른 잠바는 몇년동안 늘 보아왔던 선생님의 아웃 웨어, 미네르바 기행 때였던가? 잠바를 잃어버려서 어둠에 물든 백사장을 헤매던 기억, 또한 새롭다. 선생님의 세번째 시집 " 자전거 도둑" 을 받고 감상문을 써드렷더니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선생님 편안히 가시기 바랍니다
신현정 시인(가운데 푸른 잠바 입으신 분), 오른 족이 나/ 좋은시문학회 가을 기행에서의 어느날 우주를 훔치는 광활한 독백을 엿듣다 -신현정 시인의 시집 “자전거 도둑”을 읽고/ 강영은
지난 3월 25일 출판기념회관에서 행해진 제38회 시협상을 수상하면서 신현정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기껏 자전거를 훔치는 좀도둑이 상을 받아서 죄송하다고, 앞으로는 우주를 통째로 훔치던가 하나님을 보쌈해서 줄행랑을 치겠다는 대도로서의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미 그의 시에게 영혼과 마음 한 자락을 도둑맞은 나로서는 앞으로 그가 훔쳐낼 저, 광활한 우주 한 귀퉁이가 나에게 분양될지도 모른다는 행복한 상상에 시의 식탁에 푸성귀처럼 싱싱하게 차려질 또 다른 시들이 벌써 기다려지는 바이다. 이미 그는 시집 표4에 씌어진 윤석산 시인의 말처럼, 유니크한 자기만의 스타일로 전매특허를 받은 셈인데 외형적인 스타일 뿐 만 아니라 예술로서의 언어의 싸움, 시적 이미지까지 독특하여 자기만의 예술성을 확고히 구축한 그의 조리법에 입맛을 바친 많은 마니아들을 보유함으로써 이미 一家를 이루었다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여러 문학지에서 그만의 비법이 무엇인지 그가 무엇을 훔쳐간 것인지, 무엇을 훔치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 조사 중이며 그와 공범인 오리와 염소 뿐 만 아니라 기러기, 달팽이, 빗자루, 귀뚜라미, 개똥, 민들레, 풍뎅이, 물고기 등을 탐색하며 정확한 배후를 캐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칠흑의 어둠이나 밤이슬 속에서 그가 훔쳐낸 것이 저녁 해나 달처럼‘당신이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고 쓴 시집 속의 말처럼 그의 혐의가 은은한 광휘를 발휘하고 있는 점이다. 행복을 나누어 주는 도둑인 그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의 시집을 열심히 읽고 대도로서의 징후를 파악하는 일이다. 시집의 제목을 대하는 순간 1948년에 상영되었던 비토리오 데시카의 영화 “자전거 도둑”이 생각난 것은 신현정 시인이 가지고 있는 비극적인 풍모 때문이다. 그는 서울에서 1948년에 태어났으며 1974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대립>(1983), <염소와 풀밭>(2003) <자전거 도둑>(2005)이 있으며 '서라벌문학상'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했다. 20여 년 동안 시 쓰기를 포기하고 있다가 근년에 와서 새롭게 전개하였다. 서라벌고등학교 등에서 국어 선생을 지냈으며 한동안 카피라이터 일을 하며 광고장이로 있다가 지금은 충무로에서 작은 편집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현재 가지고 있는 시인의 약력이다. 그를 직접 만나보면 세상의 쓸쓸함과 고독함을 가득 지닌 모습은 자전거가 없어 일자리를 잃어야 했던 주인공, 그 자전거를 훔쳐가는 현실, 남의 자전거를 훔쳐야 했던 주인공과 외적인 분위기가 흡사하다. 안타까운 현실을 직면하게 했던 영화 속 주인공에게는 먹고 사는 1차적인 문제의 해결인 구직만이 있을 뿐이며 수평적 삶의 끈을 쥐고 있는 것이 자전거를 도둑맞음으로써 그는 수직적 하강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일을 얻게 되어 부인과 기뻐하며 열심히 일 하려는 평범한 그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손찌검하게' 하고, 미신이라던 '점을 보게' 하고, 끝내는 남의 자전거를 훔치게 한 것은 그에게 자전거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는, 혹은 관심도 없는, 그를 둘러싼 세계이다. 신현정 시인이 말하는 자전거 도둑과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말하려는 점은 다소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시대, 혹은 심리적 공황의 세계를 탈출하려는 의도에는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하겠다. 그가 말하는 도둑은 어떤 도둑인가 우선 그의 시를 읽어보자
봄밤이 무르익다 누군가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자전거를 슬쩍 타보고 싶은 거다 자전거에 냉큼 올라가서는 핸들을 모으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은빛 패달을 신나게 밟아보는 거다 꽃나무를 사이사이 빠지며 달 모퉁이에서 핸들을 냅다 꺾기도 하면서 그리고 불현듯 급정거도 해보는 거다 공회전하다 자전거에 올라탄 채 공회전하다 뒷바퀴에 복사꽃 하르르 날리며 달빛 자르르 깔려들며 자르르 하르르, -자전거 도둑 전문-
어린 날의 꿈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우리에게 자전거를 훔쳐 탄 그는 달빛과 복사꽃잎을 자르르 하르르 날려 보낸다. 달빛과 복사꽃잎은 무엇인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지만 그가 날려 보낸 이것들은 시적진술의 묘미처럼 우리 마음바탕에 자르르 하르르 깔려들며 시집 앞머리에 나오는 시인의 말처럼 “당신이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반드시보고야 말겠다” 는 확신에 찬 약속을 지키고 있다. 몸과 마음이 두루 아픈 자신의 삶을 이겨내며 그는 오늘도 행복한 시를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은빛 페달을 밟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은 영화 속 주인공과 겉모습만 비슷할 뿐 그의 낡은 외투 속에 숨겨진 진실은 이처럼 아름답다. 아름다운 도둑인 그의 시집을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시집 속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점은 묘사적인 측면보다 진술적인 축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외형상 독백의 형태가 눈에 띄는데 이 독백은 얼핏 보아 묘사형의 작품 속에 끼어드는 설명과 유사해 보이지만 설명과는 아주 다른 즉, 의미 있는 깨달음을 바닥에 깔고 있어 정서적 호소력이 큰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평이하게 서술된 시행이라 할지라도 종소리의 여음과도 같이 길고 큰 울림의 감동을 준다 시에 있어서의 두 축은 묘사와 진술이라 할 수 있다. 시적 묘사는 근본적으로 언어를 회화적인 방향으로 가시화하고 시적 진술은 독백의 양상으로 가청화한다. 시적 진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가청적, 고백적, 해석적 성향이 그의 시에 잘 드러난다고 할 수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평이성에도 불구하고 시적 진상의 파장은 매우 다르다. 그의 시에 두루 나타나는 이 가청적, 고백적, 해석적인 진술은 관찰을 통한 감지라기보다 관조를 통한 감지 쪽에 가까운 것으로 깨달음을 동반한 새로운 표현이다. 그만큼 우리들 정서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상투적인 의미체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예문을 보자. 와 공짜달이다 어젯밤에 봤는데 오늘 또 본다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놈이면 오늘 공짜 달을 다 보는가 말이다. -낮달 전문- 나를 휘감는 달디 단 채찍이여 오 나를 휘감는 달디 단 당근이여 나는 질주하였으므로 길은 최후의 장면만 보여주었다 당근이여 채찍이여. -경마장에서 전문-
이처럼 고백적이며 해석적인 진술을 하고 있는데 보통 시적 진술은 객관화, 또는 가시화된 시행의 구조를 하고 있지 않으므로 절제된 표현이 숨기고 있는 시적 인식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내성적 자각의 진술은 대부분 논증이나 설명과 같이 논거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묘사형의 작품에서보다 해석적 오류를 범할 소지가 많다. 그러므로 묘사 못지않게 우리들 정서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상투적인 의미체계에 새로운 충격을 줄 수 있는 깨달음을 동반한 표현이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 명시적 표현의 한계 안에 갇히게 될 상상력의 표현을 생략함으로써 오히려 자유롭게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시적 진술의 백미를 선사한다 하겠다. 여러 시에서 자주 그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물고기야 나는 기쁘다 물고기야 새처럼 날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기쁘다 새처럼 훨훨 날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기쁘다 물고기야 잠 잘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니까 슬프다 -물고기- 전문 물고기가 난다는 사실은 상식의 바깥 범주에 있다. 시인은 물고기나 왜 어떻게 난다는, 날 수 있다는 명시적 설명을 생략함으로써 독자들은 훨훨 나는 물고기의 세계로 단번에 이동시킨다. 상상력의 공간 이동인 셈이다. 상상력의 극대화를 통한 시적 진술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시적 묘사는 대상에 관한 관찰을 축으로 하지만 시적 진술은 해명을 축으로 하는 것으로서 자성이라는 깨달음을 핵으로 갖는다. 그 깨달음은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형태의 어떤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형태의 어떤 것이다. 보여줄 수 있기보다 들려줄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시인의 들려주는 관념의 세계는 어떤 것인가.
그저 참새들이 앉았다 날아간 이 가지 저 가지가 반짝이고 울타리가 반짝이고 쥐똥나무가 반짝이고 마당이 반짝이고 아 내가 언제부터 이런 극명克明을 즐기고 있었나. -극명克明 후반부- 해가 어깨 너머에 있는 해질 무렵 -중략- 뒤돌아보지 않아도 등 뒤에 무엇이 남실대는지 안다 -역광 부분- 수련 보러 간다 수련 보러 가면서 수련 보러 가는 것이 어제인 듯 까마득하다 왜 발은 자꾸 진흙 속으로 빠지는지 한 발을 빼면 또 남은 한발이 마저 빠지는지 수련 보러 가는 길이 더디다 아마 수련을 보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수련 보러 가면서 왜 하품은 나오는 것인지 허공에다 하품을 몇 번 그리고 나니 정말로 한 백년을 자야 할 것 같다 수련 보러 간다 진흙 발을 겨우겨우 떼어 놓는다 이러다가는 다시 환속還俗하기도 쉽지가 않겠다 -수련이 피었다기에 전문-
극명한 관념의 세계다. 시인은 정말 수련을 보러 가는 것일까. 어제인 듯 까마득한 길 따라 백년은 자고 나서야 도달할 것 같은 그곳은 그야말로 仙人들이 사는 그런 곳인가 보다. 그 이상향을 향하여 진흙발로 겨우겨우 간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시에 대한 내적인 열망은 그러므로 오히려 더 간절하다 하겠다. 도처에서 보여지는 시적 진술의 묘미는 독백적이면서도 대상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비판이 깔려있다. 스스로 대상이 되어 자기반성을 진술하는 단순한 독백적 진술이 아닌 시적 대상에 대한 즉물적 인식을 가시화 하는 것만이 아닌 대상에 대한 이해와 비판이 적절히 어우러져 상상력의 극대화 속에 독자를 이상향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이처럼 신현정 시인은 관념을 개념으로, 독백을 천착적인 시적 진술로 거듭 태어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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