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評傳)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배우고 익힌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고 하였다. 과거의 사실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전망을 짐작하고 가능한 정확한 예측을 하기 위함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이며 역사가인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는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라고 선언했다. 이를 인용한 E.H. Carr(1892~1982)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또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서 과거를 봄으로써 성립하고, 역사가의 주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만일 역사가가 평가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기록할 만한 것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즉,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사실은 과거의 것이고 역사가는 현재에 산다. 과거의 사실 가운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기준과 그 사실들을 일정한 관계로 맺어 주는 해석의 관점은 역사가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 역사가의 경험, 역사가의 이념과 개인적 기질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그래서 사실과 역사가의 상호작용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먼 과거에 관한 것이라도 역사는 현대사일 수밖에 없다. 역사란 오늘을 사는 역사가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두려워한다면 우리 모두는 진지한 자세로 세상을 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를 망각하고 오히려 역사의 평가에 대한 오만한 태도로 살아간다.
어느 누가 이르길 역사 공부를 함에 있어 개인의 평전(評傳)보다 좋은 자료는 없다고 하였다. 그 속에는 당시 그가 살았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 대한 시대상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은 물론이고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지에 대한 성장 과정과 세밀한 내용까지도 파악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고전적인 평전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루타르코스(AD 50~120년)는 그리스와 로마 영웅들의 위대한 업적들을 그리되 역사가의 시각에서 정치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영웅들의 내면세계와 성격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인물의 특징을 밝혀내고 있다. 그러기 위해 그는 개개 영웅들의 태어난 환경과 성장 과정, 성격, 기질, 행동, 미덕, 업적 등을 잘 드러내주는 일화 등에 많은 관심과 열정을 기울였고, 그러한 노력 덕분에 우리는 영웅들의 생생한 면모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도 이 범주에 속한다.
최근 들어 「안 경환」 전 서울 법대교수가 쓴 『이 병주 평전』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법률 지식을 넘어 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다양한 주제로 많은 글을 썼으며, 이미 『조영래』, 『황용주』, 『윌리엄 더그라스』 등의 평전을 쓴 인물 전기의 달인이기도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 근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이 병주」가 쓴 수많은 분량의 소설에 대한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기록을 넘어 어려운 시대를 살다간 한 지식인의 피 끓는 기록이며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은 얼마나 격조 있고 심금을 울리는 말인가. 나는 일찍이 「이병주」작가가 쓴 『동서양 고전탐사기』를 통해 박학다식한 논객의 진면목을 흠모하게 되었다. 그가 천착한 『사마천』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연구는 전무후무한 탁월한 수작인지라 적어도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기도 하다. 그는 보통의 작가와는 달리 소위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에 대한 소명의식이 투철하였다. 오죽하면 이 시대가 낳은 위대한 문학평론가인 「김 윤식」교수가 그를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라고 평가를 했겠는가.
「이 병주」는 일제 강점기시대에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격동기를 살면서 동 시대의 대부분 지식인처럼 숱한 굴곡의 삶을 살았다.
진주 농업학교를 퇴교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독학으로 ‘메이지대학 전문부 문예과’에 진학하였다. 학병으로 중국 전선에 배치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상해에서 귀국 후 진주농고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어서 신설된 진주농대 교수로 복무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에 체포되어 타의로 문화선전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부역 문제로 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작가는 국민을 버리고 먼저 한강을 넘어간 이 때의 상황을 소설 『관부연락선』에서 이렇게 적었다.
“국민에게만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게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할 의무를 포기하고 도망쳐버렸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안전은 국민의 권리이고 국가의 의무다. 도대체 조국이란 어디에 있으며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라고 절규하였다. 치열한 전쟁 중에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 한 지식인의 호소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거대한 국가조직의 직접 개입 혹은 무방비 하에서 자칫 절명의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성을 잃으면 인간의 품격은 손상된다. 그러다보니 약자의 슬픔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결국 인간의 슬픔을 위로하고 달래는 것은 시간뿐이다. 시간이 무마하지 못하는 슬픔이란 없다. 시간은 슬픔도 슬퍼하는 사람도 함께 망각의 『레테의 강』 너머로 매몰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슬픔을 달래며 연민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산자의 책무다.
전쟁 이후 작가는 『국제신문』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근무하면서 『부산일보』의 「황용주」와 함께 「이승만」 정권에 대한 매서운 필봉을 휘둘렀다.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부산에서 근무하던 「박정희」 장군에게 술자리에서 부패한 정권에 대한 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1961년 쿠테타 직후에 제정된 ‘소급법’에 의해 10년 징역을 받고 2년 7개월을 복역하였다. 반공을 국시로 한 군사정부가 혁신계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이었다. 옥중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독파하고 발분(發憤)의식에 불타 역사를 기록하는 작가가 될 결심을 하였다. 이후에 작가로 변신하여 주로 지식인의 고뇌를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여 발표하였다. 많은 다작의 작가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원하는 인기 작가로 활동하였다.
나중에 지인을 경유한 「박정희」의 배려로 석방되었다. 하나 그는 「박정희」 정권뿐만 아니라 인간 「박정희」에 대해서도 가차 없는 단죄를 내렸다. 실록 대하소설 『그해 5월』은 박정권 18년에 대한 정치적 선고이며, 『그를 버린 여인』은 인간 「박정희」에 대한 가혹한 평가였다.
소설 『지리산』은 「이병주」 문학의 진수로 빨치산을 최초로 다룬 작품으로 훗날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태」의 『남부군』을 모방했다는 평이 있기도 하다. 『포은 정몽주』, 『소설 정도전』, 『허균』 등의 역사소설을 썼는데 『바람과 구름과 비』가 그의 역사소설의 백미이다.
그는 엄청난 장서를 소장했으며, 수많은 책을 독파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그의 거대한 서재를 부러워하고 그의 비상한 머리와 박학다식함에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김수영」시인과 마지막으로 술잔을 나누던 날 교통사고로 떠난 시인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살았으며, 고향 친구인 「이 광학」의 허무한 죽음과 영어의 달인이며 명문장가인 「박 희영」 교수와의 인연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사형선고를 받은 「신영복」의 구명을 위해 「박희영」이 쓴 탄원서가 주효했다고 한다. 「이병주」도 「박희영」에게 감동하여 중앙정보부 차장 「이병두」를 소개했는데 세 사람은 학병의 운명과 추억을 공유한 사이였다. 이 차장이 관계서류를 무한정 책상 서랍 속에 처넣어 후임 중정부장이 올 때까지 기다려 「신영복」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다.
「전두환」대통령과는 의외로 뜻이 맞아 백담사 유배 길에 국민에게 드리는 성명서를 감수하기도 하였다. 진즉부터 수시로 시국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통행금지 해제』는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기도 하였다. 그의 일생은 우리 현대사 이상으로 굴곡진 삶이었으며 그래도 비교적 양지에서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역대로 손꼽히는 지식인으로 해박한 지식과 유머 감각 그리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간적인 매력이 풍부한 인물이었다. 「이후락」, 「김현옥」, 「이병두」와는 격의없이 지낸 우정의 친구였다. 작가 「황석영」과 「이문열」을 함께 포용하는 큰 그릇으로 평생을 진정한 휴머니스트로 살아간 당대의 큰 인물이었다. 다소 복잡한 여자관계도 있지만 끝까지 가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일련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 대한 침묵을 하고, 결과적으로 「전두환」 정권에 동조함으로써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진행형인 셈이다.
이같이 평전은 한 인물의 생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도록 해준다. 더구나 보통의 역사 기록에서는 알 수 없는 세밀한 내용까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의 실타래를 풀어주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래서 가능하면 주변 사람들이나 학생들에게도 평전을 많이 읽을 것을 권유한다. 역사를 비롯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린 세대에게 읽히는 위인전은 일반 공부에 버금가는 성장 잠재력을 선사하게 된다. 학원 수업도 좋지만 위인에 대한 차분한 설명과 독서는 아이들을 올바로 키우는 자양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2022. 12. 27 작성/ 2023. 1. 3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