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가 "제인 구달 희망 시리즈의 마침표이자 느낌표"라고 표현한 '희망의 책'이 출간됐다.
사진 제공 = 사이언스북스
[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최재천 교수가 "제인 구달 희망 시리즈의 마침표이자 느낌표"라고 표현한 '희망의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글로벌 아이콘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서,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희망이란 무엇인가?'에서는 희망의 진정한 의미를 떠올리며 어떻게 희망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 탐구하고 2부 '희망에 대한 제인의 네 가지 이유'는 희망의 네 가지 주요 근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인 구달은 인간의 놀라운 지능, 자연의 회복 탄력성, 젊음의 힘,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을 희망의 이유로 꼽는다.
3부 '희망은 끊임없이 갱신된다'는 제인 구달의 여정이 처음 시작된 시절에서 출발해 다음번 모험에 대한 기대로,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1934년 4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본머스에서 자란 제인 구달은 1957년 케냐 방문 중에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처음 만난 이후 1960년 곰베 침팬지를 관찰하러 떠났다. 제인 구달은 『희망의 책』에서 시간이 지나면 침팬지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다 포기했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침팬지와 환경에 대한 염려는 그가 곰베를 떠나게 된 이유였다.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전역의 침팬지들에 대한 위협을 깨닫고 1986년 6개국 현장을 방문한 이후 비단 침팬지뿐만 아니라 인간과 환경 전반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고자 전 세계를 다니기 시작했다. 제인 구달 연구소(Jane Goodall Institute)는 침팬지를 비롯한 야생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1977년 설립되었으며 현재 세계 28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전 세계적인 풀뿌리 환경 운동 모임인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은 1991년에 “모든 사람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적인 철학에 따라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다. 한국 내 뿌리와 새싹 소모임 운영 관리와 지원 업무는 2013년 설립된 생명다양성재단(The Biodiversity Foundation)에서 총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달리 내가 자주 받는 질문은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까?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 나는 진심을 다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가 그간 지구에 끼친 해악을 치유하기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의 창문이 아직은 우리에게 열려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창문은 닫히고 있다. 우리 아이들과 그들의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자연의 건강을 염려한다면, 우리는 함께 힘을 모아 행동에 옮겨야 한다. 바로 지금,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제인 구달
희망의 아이콘을 만나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이 책의 공저자이자 기획자인 더글러스 에이브럼스는 전작 『기쁨의 발견(The Book of Joy)』에서 달라이 라마, 데스먼드 투투 대주교를 만나 나눈 대화를 담아낸 바 있다.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로 희망이 사라진 듯한 이 시대, 희망의 메신저 제인 구달과의 만남은 곧 코로나 19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절실한 것이 되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된다. 1부 「희망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두 사람이 생각하는 희망의 진정한 의미를 떠올리며 어떻게 희망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 탐구하고 있다. 2부 「희망에 대한 제인의 네 가지 이유」는 희망의 네 가지 주요 근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인 구달은 인간의 놀라운 지능, 자연의 회복 탄력성, 젊음의 힘,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을 희망의 이유로 꼽는다. 3부 「희망은 끊임없이 갱신된다」는 제인 구달의 여정이 처음 시작된 시절에서 출발해 다음번 모험에 대한 기대로,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두 사람의 첫 번째 만남은 2019년 8월 에이브럼스가 탄자니아의 옛 수도 다르에스살람에 있는 제인 구달의 집을 방문하며 시작되었다. 1년에 300일 이상 세계를 다니며 바쁜 활동을 해 온 제인 구달은 1년에 두 번씩 손자들이 지내고 있는 다르에스살람에 잠시 들른다. ‘희망’은 무엇일까? 제인 구달이 의미하는 ‘희망’은 정말로 무엇일까? 희망은 종종 오해를 부른다. 사람들은 희망이 단순히 수동적이고 부질없는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무언가가 일어나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행동과 참여를 요하는 진짜 희망과는 정반대다.
위험 한계선에 도달한 지구, 희망을 찾는 뜨거운 대화
에이브럼스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게 되어 갑작스럽게 중단된 대담은 2019년 12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근처의 자연 보호 구역에서 재개되었다. 탄자니아, 미국, 중국, 전 세계에서 조금씩 뿌리내리기 시작한 제인 구달의 열정이 어느덧 젊은이들 손에서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들려주고 있다. “멋진 말씀이지만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압도적인 독재와 폭정을 생각하면 바다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라는 에이브럼스의 회의적인 질문에 제인 구달은 기꺼이 답한다. “하지만 수백만 개의 물방울이 실제로 바다를 이루잖아요.” 수천 명이 실천하는 윤리적 행동과 노력이 쌓이면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 지구를 지키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은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에 관해 각각 공유한 슬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에서도 희망의 한 조각을 발견해 낸다. 세 번째 만남은 제인 구달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영국 본머스의 고향집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가을, 줌(zoom)을 통해 각각 본머스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다시금 연결될 수 있었다. 노트북 화면 너머로 제인 구달이 소중히 여기는 가족들, 친구이자 스승인 반려견 러스티, 가장 먼저 제인 구달에게 마음을 열었고, 흰개미를 잡는 도구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의 사진을 볼 수 있다. 25년 넘게 함께 여행을 떠나는 원숭이 인형 미스터 H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받은 봉제 인형들도 간직해 두었다. 또한 강연 때 사용하는 희망을 상징하는 물건, 모잠비크 내전에서 수거한 대인 지뢰 금속으로 만든 종과, 지뢰 제거 작업 중 폭발 사고를 당한 크리스 문이 의족을 낄 때 사용하는 양말을 공개하며 그에 얽힌 이야기도 나눈다. 인간이 지구에서 개성과 생각과 감정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님을, 우리가 놀라운 동물의 왕국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부분임을 알고 있던 제인 구달의 연구 방식은 전통적인 과학자들과는 달랐지만 결국 오늘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냈다. 1986년, 의학 연구소의 침팬지 처우 개선을 위해 나선 제인 구달은 이후 쉼 없이 새로운 강단에 서고 청중의 손을 잡아 왔다. 제인 구달이 자연을 연구하면서 배웠던 희망의 이야기를 공유한 이 책은 우리 모두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희망은 전염된다.
이 책 안에서 자신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세상에 선사한 제인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제가 제인을 찾았던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드물고도 필수적인 지식을 가진 자연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와 지구를 대변하는 인도주의자이자 지혜의 인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인이자 작가로서, 한마디 한마디 본인이 품고 있는 가장 위대한 진실을 정확히 표현하려는 제인의 헌신적인 노력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제인과 함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탐구하고 희망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는 과정은 내 인생에 찾아온 엄청난 특권이었습니다. 처음엔 사적인 비탄이 만들어 낸 험한 지형 속에서 내가 헤매는 동안, 그리고 곧이어 전례 없이 찾아온 전 지구적 팬데믹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정 얼마나 취약하고 소중한지 우리 모두가 깨닫는 동안, 병든 지구 곳곳에서 제인의 길잡이를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도 제인은 대단히 너그럽게 시간과 지혜와 우정을 나눠주었습니다.-더글러스 에이브럼스
1부 희망이란 무엇인가? 위스키와 스와힐리콩 소스 … 19 희망은 진짜일까? … 26 희망을 잃어 본 적 있는가? … 31 과학이 희망을 설명할 수 있을까? … 52 시련의 시기에도 희망을 품는 법 … 59
2부 희망에 대한 제인의 네 가지 이유 첫 번째 이유: 인간의 놀라운 지능 … 71 선사 시대의 유인원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까지 … 75 절반은 죄인, 절반은 성인 … 81 새로운 보편적 도덕률 … 88 ‘지혜로운’ 유인원 … 95
두 번째 이유: 자연의 회복 탄력성 … 103 생태적 비애 … 114 살려는 의지 … 124 적응하거나 소멸하거나 … 130 대자연이 인도하리라 … 133 아슬아슬한 위기에서 구조된 … 139 생명의 태피스트리 … 146 우리에게 자연이 필요한 이유 … 157
세 번째 이유: 젊은이들의 힘 … 165 희망 없는 곳에서 피어난 사랑 … 176 “나는 당신들의 희망을 바라지 않는다.” … 185 수백만 개 물방울이 바다를 이루듯 … 192 미래 보살피기 … 198 네 번째 이유: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 … 209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가겠다고 결심한다면 … 213 절대 굴복하지 않는 정신력 … 222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면 … 233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이 우리의 치유를 돕는 방법 … 235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다 … 241
3부 희망은 끊임없이 갱신된다 제인 구달의 삶, 희망의 길 … 251 아프리카에서 겪은 도전 … 278 수줍음 많은 젊은 여성에서 세계적인 강연가로 … 281 “그냥 사명이었다고 칩시다.” … 285 모든 게 우연이었을까? … 291 영적인 진화 … 298 제인의 다음번 위대한 모험 … 306
맺음말 제인 구달이 보내는 희망의 편지 … 319 감사의 글 … 333 더 읽을거리 … 342 옮긴이의 글 … 353
제인 모리스 구달(영어: Dame Jane Morris Goodall, DBE, 1934년4월 3일 ~ )은 영국의 동물학자, 환경운동가이다. 침팬지의 행동 연구 분야에 대한 세계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1960년 아프리카의 곰베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10여 년간 침팬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침팬지에 관한 다양한 행동들에 대한 사실을 발견해 내었다.
1965년 침팬지와 개코원숭이의 생태 연구를 위해 곰비 스트림 연구센터를 설립했으며, 1975년에는 침팬지 등 야생동물 연구를 위해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했다. 동물보호와 환경 보호를 위해 전 세계를 돌며 강연을 하고 있으며, 각지의 실험실과 동물원 등지를 방문해 그곳에 수용된 침팬지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이라는 이름으로 아동 대상 환경 보호 운동을 실시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제인의 아버지는 군대의 공학자로 징집되었고 그 후 점차 가족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제인의 부모는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다. 195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인은 대학에 입학할 여유가 되지 않아 옥스퍼드 대학교의 비서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녀는 다큐멘터리에 사용되는 음악을 선별하는 런던 영화 제작 회사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1956년 5월, 제인의 친구인 클리오 옴은 제인을 케냐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 초대하였다. 제인은 런던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케냐행 선임비 및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였다.
루이스 리키는 영국인 선교사의 아들로 케냐에서 태어났고 고고학자이며 키쿠유 족과의 생활 등으로 그곳의 말과 문화를 잘 알았다. 그는 아내인 메리 리키, 아들인 리처드 리키와 함께 케냐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고인류의 화석을 발굴해 명성을 얻었다. 제인 구달은 1956년에 부모의 농장이 케냐에 있는 학교 친구의 초대를 통해 그곳에 가보게 되었다. 한달 남짓친구의 농장에서 지내던 중에 그 지역 주민이 제인 구달의 동물에 대한 관심을 알아보고 루이스 리키 박사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그 곳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자금도 필요했기 때문에 그 당시 나이로비의 국립 자연사 박물관장이었던 그를 찾아갔다. 제인 구달을 만난 루이스 리키는 동물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보았고 제인 구달을 조수로 채용했다.[4]
제인 구달은 루이스 리키를 따라서 영리한 박물학자들이었던 직원들, 동료 조수 등과 함께 발굴작업을 하였다. 그들로부터 자연에 대해 관찰하는 방법들을 배우며 일을 하였고 루이스가 침팬지 연구에 대해서 제인 구달에게 제안을 했다. 당시 루이스는 선사 시대 인간의 화석들이 자주 발견되는 호숫가에 사는 침팬지를 연구함으로써 선사 시대 인류의 행동 양식에 관해 단서를 잡을 수 있으리라 예상하였다. 제인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루이스는 그 연구를 위한 자금 확보에 나섰고, 일리노이 주의 데스 플레인즈의 윌키 재단에서 자금을 지원 받게 되었다.[5]
1960년 7월, 제인 구달은 정부 당국에서 유럽인 동행자를 데려가야 한다는 조건으로 보호자인 자신의 어머니 밴 구달과 함께 아프리카로 향했다. 제인 구달은 처음 연구를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하였다. 제인 구달은 그곳에서 연구를 시작하여 관찰일지를 기록하였고, 곰비 침팬지의 일상 생활 그리고 침팬지들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관찰하였다. 1962년 루이스 리키는 제인 구달의 과학적 성과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제인 구달이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도록 도와주었고, 1965년에 그녀는 학사학위를 취득하지 않고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1964년, 곰비 스트림 연구 센터에 대학원생과 침팬지를 연구하고자 하는 다른 과학자들이 가게 되었다. 그 해 3월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에서 파견한 재능 있는 야생 동물 사진 작가였던 휴고 반 라윅과 런던에 있는 첼시 올드 교회에서 결혼을 하였고 아들 휴고 에릭 루이스를 낳았다.[6]
1970년대에는 침팬지에 관한 제인 구달의 생각이 많이 변화되었다. 과거에 관찰되었던 침팬지의 행동과는 다르게 유아 살인과 같은 어두운 측면의 모습들을 자주 목격하였고 그는 동물의 행동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1974년, 휴고 반 라윅과 서로의 시각 차이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잦은 다툼이 일어났다. 결국 그들은 이혼하였다. 1975년, 데릭 브라이슨과 재혼하였다. 데릭 브라이슨은 탄자니아 국립공원의 관리자이자 다르 에스 살람 의회의 의원이었다. 데릭 브라이슨은 그 해 5월에 곰비에서 벌어졌던 납치 사건으로 인해 연구가 중단될 위기로부터 구해 주는 등 제인의 든든한 동반자였다.[7]
제인 구달은 침팬지의 무분별한 포획 문제로 관심을 돌렸다. 침팬지는 유전적, 신체적으로 인간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인간의 질병을 연구하거나 약의 임상실험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여러 연구소를 방문하면서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의 수에 한계를 설정하고 동물들의 사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86년, 그녀는 침팬지 보존 및 관리 위원회를 설립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샌디에고 동물원 협회에서 폴 게티 야생 생물 보존 상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회 센테니얼 수상 등 많은 상과 영예를 얻었다. 현재 제인 구달이 진행하였던 연구는 코네티컷에 있는 야생 동물연구, 교육 그리고 보존을 하고 있는 제인 구달 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고, 구달은 전 세계를 순회하면서 동물 보호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의 행동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이 연구 이전에 야생의 침팬지의 행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사람은 헨리 닛슨 교수뿐이었다. 그는 프랑스령 기니에서 약 두 달 반 동안 연구를 하였다. 이것은 충분히 선구적인 작업이었으나 충분한 연구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제인 구달은 오랜 시간 동안 침팬지의 행동을 연구하며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었다. 그녀가 관찰하여 알아낸 사실들에는 침팬지들의 도구 사용, 서열형성, 성생활, 성장, 육아, 폭력성 등이 있다.[8]
1986년에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곰비의 침팬지들》을 출판하였고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시카고 과학 아카데미 원장인 폴 헬트니 박사와 함께 '침팬지의 이해'라는 제목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녀는 이 학술대회를 통하여 침팬지와 관련된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면서 침팬지 보호와 교육활동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숲에서 나무를 베고 땅을 경작하여 침팬지의 거주지가 좁아지고 아프리카에서 식용으로 사용하면서 침팬지의 인구수는 계속하여 감소하였다. 이를 보며 그녀는 연구실과 실험실을 방문하여 과학자와 관리자와 토론하고, 열악한 환경에 사는 침팬지들을 위해 캠페인과 로비 활동, 일련의 강연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프리카의 침팬지들을 돕기 위해서 많은 행사를 진행하면서 침팬지가 주로 서식하는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환경 담당 관리들이나 정부의 담당자들을 만나거나 각 지방의 환경 단체들을 만나 토론을 하기도 했다. 1987년 3월에는 동물 연구를 하는 SEMA 법인 연구소를 방문하였는데, 침팬지들이 좁은 격리실에서 생명이 아닌 하나의 실험대상체로써 사육이 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일하는 관계자들을 불러 놓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실험용 침팬지들의 사육환경 개선에 대해서 강조하기도 했다.[9] 그의 노력으로 세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작업 과정을 환경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연구소에서는 피실험 동물에 대한 윤리를 적용시키기 시작하였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들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침팬지들이 가느다란 풀줄기를 이용하여 개미구멍에 넣었다 뺐다 하는 방식으로 흰개미들을 낚아서 먹는 등 도구를 사용하는 행동들이 관찰되었다. 개미사냥의 경우 말고도 열매를 따먹을 때 나뭇가지로 친다거나 무언가를 열 때 지렛대를 사용하거나, 돌멩이를 망치처럼 이용해 견과를 으깨는 모습 등 아주 다양한 도구 사용을 보여주었다.[10] 이 관찰은 그 당시 도구는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사용할 수 있고 이런 특징 덕분에 인간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한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이후 인간의 행동에 대한 좀 더 세분화된 정의가 필요해졌다.[11]
침팬지들 사이에는 바로 확인할 수 있고 뚜렷하게 구별된 각자의 서열이 있다. 그리고 그 서열에 따라 행동을 하는데 예를 들면 서열이 낮은 개체는 서열이 높은 개체에게 침팬지만의 특유의 복종의 행위를 하게 되고 반대로 서열이 높은 개체는 털을 골라주거나 토닥여주거나 하는 행동을 통해 서열이 낮은 개체를 진정시킨다.
수컷의 경우에는 침팬지 특유의 과시행동을 하여 자신의 서열을 높인다. 이때 행하는 과시행동에 도구가 쓰이는데 주로 나뭇가지 등을 끌고 다니며 더욱 소란스럽고 과장된 행위를 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서열이 하위권이었던 침팬지 한 마리는 제인 구달의 캠프 주위에 굴러다니는 깡통을 이용하여 지금껏 다른 침팬지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요란한 과시행동을 통해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암컷의 경우 과시행동과 같이 요란한 행위는 없으나 서열이 자연스레 정해져 있다. 암컷과 수컷 두 경우 모두 자신에게 도전하는 개체에게는 최대한 사납게 응수한다. 때로는 자신의 동료와 함께 상대에게 과시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12]
암컷의 경우 “35일마다 일어나는 월경 주기의 중간 지점에서 약 열흘정도 생식기가 팽창”하며 발정기에 들어선다. 그리고 팽창되는 정도는 암컷 개체마다 다르다고 한다. 그 기준은 확실하지 않지만 성적 매력에 그들만의 기준이 있다. 그 근거로는 나이에 상관없이 열렬한 구애를 받는 암컷이 있는 반면에 거의 무시당하는 암컷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암컷의 경우 발정기 때 여러 마리의 수컷들을 거느리고 다닌다. 한 번의 짝짓기에 대략 10초에서 15초 정도 소요된다. 때문에 한 마리의 암컷이 연속해서 여러 마리의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특이한 점은 어미가 짝짓기를 할 때 새끼가 자주 방해를 하고 가끔 그 방해가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짝짓기를 하고 있는 수컷은 자신을 밀쳐내려고 하는 새끼를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암컷은 한번 출산을 한 다음 약 5년 동안 발정기를 가지지 않는다.[13]
침팬지들의 수명은 40-50년 정도이다. 유아기의 침팬지들은 주로 어미의 배에 매달려서 다니며 수시로 젖을 빤다. 이 시기는 어미가 새끼를 집중적으로 보호하는 시기이다. 새끼가 조금 무거워지면 어미가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닌다. 어린 침팬지가 4-5살 정도가 되면 서서히 젖을 떼고 어미의 등을 벗어나 또래 친구들과 함께 놀기 시작한다. 이 때 형제나 자매가 새끼들과 놀이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8살 정도의 사춘기가 되면 성적으로 조금씩 성숙해져 간다. 수컷들의 경우 어른 암컷들에게 올라타 짝짓기 흉내를 내고 암컷들의 경우에도 어른 수컷들에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짝짓기 흉내를 낸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몸집이 성인 침팬지의 절반 정도이며 생식능력은 없다. 어른 침팬지들의 경우 대부분 이들의 예행연습을 받아준다.[14]
암컷과 수컷 모두 자유롭게 짝짓기를 하기 때문에 암컷이 임신을 해도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모른다. 즉 어미가 모든 육아를 담당한다. 육아의 경우 이미 새끼를 낳아본 경험이 있는 어미와 처음 낳아본 어미와 아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어떤 경우 처음으로 어미가 된 암컷은 출산 직후 새끼를 어찌할 줄을 모르고 놔두다가 새끼가 죽기도 한다. 그에 반해 경험이 있는 어미의 경우 능숙하게 새끼를 돌보아준다. 어미의 성격도 육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어미는 항상 자신의 새끼를 주시하며 과보호를 하는 한편 어느 어미는 새끼를 오히려 귀찮아하며 내치고 새끼가 어미에게 억지로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15]
초기에는 제인 구달조차 침팬지들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가 보았던 폭력은 고작 서열 다툼 이나 사냥 정도였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점차 관찰되기 시작한 그들의 폭력성은 굉장히 끔찍했다. 예를 들면 영역다툼이 있다. 원래 같은 무리였다가 지리적으로 갈라져 나온 경우 영역간의 경계선에서 서로 만나면 경계하며 어떤 경우 싸우기도 하였다. 실제 제인 구달의 연구팀이 관찰한 예로 큰 무리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무리가 새끼를 낳지 않은 젊은 암컷들 빼고는 모두 살해당한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주변에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같은 무리안의 서열이 높은 암컷이 다른 서열이 낮은 암컷의 새끼를 일부러 빼앗아 잡아먹기도 했다.[16]
제인 구달은 자신이 관찰하던 침팬지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이는 당시 동물 행동학계에서 금기로 여겨지던 행위여서 거센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좋은 과학적 자료 수집을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냉정해야 했기 때문에 연구자가 연구 대상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17] 하지만, 그는 이 지적인 동물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가능하였다고 말하면서 감정이입의 불가피함을 주장하였다.[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