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관련된 인지 이론 분야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인지의 부정적인 성향이다. 즉 개인의 인지 내용과 가치 추구에 '병적인 편향'이 나타나느냐 하는 것이다. 20세기 말 긍정심리학이 탄생하면서 심리학 분야에서 인류의 행복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심리적 질병과 부정적인 인지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한편, 긍정적인 심리 요인과 심리 건강에 주목하며 개인과 군중, 사회 전체의 발전과 자아실현을 위해 기여하고자 했다.
긍정심리학에서는 '고통 경감과 행복 증진은 별개의 독립적인 변수이며, 진정한 심리학이란 인간의 고통을 경감하고 행복을 증진하는 과학'이라고 역설했다. 이 이론에서는 우울증 환자 등 심리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연구할 때 그들에게 있을 수 있는 문제, 결점, 잘못, 부정적인 인지를 따로 떼어 내어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 자아를 하나의 복잡한 전제로 바라보고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한 개체안에 공존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그리하여 긍정적심리학은 개인을 새롭게 이해하고 심리적 질병을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선천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본능과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심리적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도 긍정적인 정서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정상인과 비교할 때 그런 것이 일시적으로 억제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심리적 질병 가운데 부정적인 변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변수는 그대로 두고 긍정적인 변수를 자극함으로써 건강한 심리를 유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에서는 우울증의 원인을 긍정적인 에너지 부족에서 찾는다. 긍정적인 인지의 '오류'를 비롯해 체험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울한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분야의 학자들은 '심리 건강'이란 단순히 심리적 질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체험과 긍정적인 동기를 자극할 때 실현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긍정적인 체험과 감정이 '심리적 질병을 막아 내는 최고의 무기'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기존의 관점을 보완하고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다. 우울증 또는 기타 심리적 질병에 대해 증상을 없애고 단점을 보완하는 데만 중점을 두지 않고 긍정적인 잠재력을 이끌어내 저항력과 적응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심리적인 질병을 앓고 있을 때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서로 독립적이며 각기 다른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낙관적 성향과 비관적 성향을 서로 상반된 것으로 인식했다. 그리하여 낙관적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비관적 성향이 낮고, 비관적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낙관적 성향이 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성향이 상반된 것이라면 양자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성립되어 상관계수가 -1.0에가까워야 한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중년층을 상대로 실시한 연구 결과 두 성향 사이의 상관계수는 -0.02에불과했다. 미국에서 노년층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상관계수는 -0.27이었고, 중국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에서도 -0.25였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만도 2008년 발표한 논문에서 우울함과 행복감의 상관계수는 -0.35에 불과하다며 이는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것은 모두 긍정성과 부정성이 서로 독립하며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다. 항상 희망에 가득 차 있는 사람도 있만, 희망과 절망이 불안정하게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이도 있고, 우울증 환자들처럼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도 있다. 우울증 환자들은 염세적인 경향을 나타내며, 일할 능력을 상실하여 약물이나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 판단 기준에 부합하지만 기본적으로 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우울한 사람들'이란 바로 후자를 의미한다. 그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여전히 긍정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허버트 마시가 제시한 다면적 자기 개념은 우울한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자기 평가 기제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전반적으로 자기 평가를 하고, 그와 동시에 특정 영역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도 내린다. 일반적인 자기 개념과 특정한 상황의 저차원 자기 개념은 다면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서로 독립되어 있다. 또한 저차원 자기 개념에 해당하는 것들도 서로 독립적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자기 개념은 긍정적이지만, 저차원 자기 개념은 상당히 부정적일 수 있다. 반대로 긍정적인 요인과 부정적인 요인이 한 개체 안에 공존할 수 있다.
펠럼의 주장에 따르면 자아 안에는 긍정적인 신념과 부정적인 신념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우울한 사람들은 전자보다 후자와 더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울한 사람들도 저차원 자기 개념에서는 자신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중국의 심리학자 샤오펑도 이러한 관점에서 동의했다. 그는 학생들을 정상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는 그룹, 경미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룹, 우울증환자 그룹 이렇게 셋으로 나누고, 각각 자아의 감정과 관련된 단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우울감이 심한 사람일수록 부정적인 단어를 많이 떠올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우울증이 부정적인 자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점은 우울증이 심한 환자라 할지라도 자아에 대한 감정 안에는 부정적인 요인과 긍정적인 요인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아 체계안에 두 요인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우울감을 가진 사람들은 '부정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고 정상적인 사람들은 '긍정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연구자들은 자아라는 복잡한 기체를 다차원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그런 관점에서 우울한 사람과 정상적인 사람의 차이를 탐색해야 한다.
펠럼 등의 심리학자들도 우을증 환자들이 자아에 대해 긍정적인 자기 평가를 하는지 연구했다.* 그들은 우울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특정 상황에 대한 자기 평가와 일반적인 자기 평가를 측정했다. 여기에서 '특정 상황'이라 특수한 재능에 대한 평가를 의미한다. 가령 '나는 음악적 재능이 있어,' '나는 농구를 잘해' 같은 특정 분야에 대한 자기 평가다. 일반적인 자기 평가란 '나는 남들에게 호감을 준다.' '나는 예의바른 사람이야,' '나는 유능한 사람이야' 같은 추상적인 평가를 의미한다.
그들은 피실험자들을 우울하지 않은 그룹(A), 경미한 우울감을 가진그룹(B)으로 나누고, 그들이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어떻게 비교하는지 조사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예의가 바릅니까?' 또는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매력적입니까?' 등의 질문을 하고 그 결과를 백분위로 나타내게 했다. 50은 주변 사람들보다 뛰어나지도 뒤지지도 않는 점수다. 여기에서 자신이 낫다고 생각하면 더 높은 점수를 주고, 뒤진다고 생각하면 더 낮은 점수를 매기게 했다. 그 결과 일반적인 자기 평가에서는 A,B,C,D 그룹의 점수가 각각 65,56,46,41점으로 나왔다. 하지만 절대치로 보면 C와 D 그룹의 점수도 크게 낮은 것은 아니며, 중간(50점) 보다 약간 부정적일 뿐이다. 다만 특정 분야의 자기 평가를 함께 고려하면 우울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도 전혀 자괴감이 나타나지 않았다. A,B,C 그룹의 점수는 각각 88, 85,80점이 최고이었는데 뜻밖에도 D 그룹의 점수는 86점이었다. D 그룹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자신이 휼륭한 능력을 가졌다고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울증 치료에 매우 중요한 돌파구가 된다.
중국 심리학자 저우야는 고등학생들 중 우울감을 가진 이들과 정상적인 이들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자존감과 특정 분야에 대한 자기 평가의 차이를 조사했다. 그 결과 동성과의 관계, 이성과의 관계, 정서 안정성, 수학능력, 일반적인 학업 능력, 전반적인 자존감, 이 여섯 가지 항목에서 우울감을 가진 학생들의 점수가 낮았다. 정상적인 학생들에 비해 자기 평가가 낮은 것이다. 외모, 체격 조건, 부모와의 관계, 성실성, 언어 능력에 대한 평가는 정상적인 학생들과 두드러지는 차이가 없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성실성 항목에서 우울감을 가진 학생들의 평군 점수가 정상적인 학생들보다 높았다는 점이다. 우울한 사람들도 특정 분야에서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심지어 몇몇 분야에서는 정상적인 사람들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펠럼 등의 심리학자들은 우울한 사람들이 스스로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야에서 실제로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를 연구했다. 많은 사람들이 최소 한 분야에서는 자신의 능력이나 인격적 특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예를 들면 여러 부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수학 암산 능력에 대해서는 매우 높이 평가하거나,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성실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우울감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지능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 자신에게 원인을 찾고 앞으로도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정한 분야에서는 내부 귀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인의 평가를 구하는 방식에서 우울증 환자들과 일반인들의 차이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전자는 후자에 비해 타인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이나 평가를 구하려는 성향을 나타냈다. 예를 들어 전자는 연인에게 평가를 구할 때 부정적인 질문을 한다. "왜 나를 대인관계에 서툰 사람이라고 생각해?", "왜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고 생각해?" 라고 묻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긍정적인 자기 평가를 하는 분야에서는 타인에게 좋는 평가나 피드백을 구하려고 한다. 가령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험 성적보다 먼저 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게 어때?" 라고 말한다. 자기 평가가 긍정적인 분야에서는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남의 칭찬을 들으려고 한다. 우울감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인 자기 개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울감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특정한 계기가 있을 경우 우울감이 해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특정 분야에 대한 긍정적인 자기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간 정도의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그들의 회복 정도와 특정 분야에 대한 긍정적인 자기 평가는 서로 관련성이 있음이 증명되었다. 환자가 특정 분야에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수록 그들의 치유 속도도 더 빨랐다.
출판사 : 비바체 지은이 : 류상핑 옮긴이 : 허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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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주님께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