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손진숙
지난여름 K시에서 문학행사가 있었다. 오후 3시에 시작된 첫날 행사가 1,2부로 나뉘어 밤 10시경에 끝났다. 여성회원 몇이 모여 조촐한 뒤풀이를했다. 입가심으로 청도복숭아가 예쁜 접시에 소복이 담겨 나왔다. 다들 맛있다며 입에 넣는데 유독 한 사람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의아하게 여긴 누군가가 왜 먹지 않느냐고 묻자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단다. 먹고 나서 고통을 겪기보다는 먹고 싶은 걸 참는 고통을 택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잔잔하게 웃는 모습에는 아쉬워하는 기색조차 없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반달처럼 생긴 복숭아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임신 5개월이 지나서였다. 그때 세 들어 살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청과물시장이 있었다. 과일가게마다 먹음직스러운 복숭아가 소담하게 쌓여 있었다. 사다 놓은 복숭아가 떨어지려 하면 사오고 또 사와 줄기차게 먹어댔다. 둥근달을 닮아가던 뱃속에서는 복숭아의 수분이 가득 차 출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 출렁거림 사이로 이따금씩 폴짝 차는 발길질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살짝 신기하기도 했다.
7월초였지 싶다. 정기검진을 받으러 산부인과에 갔다. 검진을 마치고 마주한 의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떨어졌다. “아기가 죽었어요. 종합병원에 가보셔야겠어요.”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했다. 믿을 수 없다는 내 표정을 읽은 의사가 “종합병원에 가서 수술하셔야 돼요,”라며 또박또박 명토를 박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종합병원 분만실 병상에서 가까스로 눈을 뜨는데 간호사가 아이를 받아 든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의식이 가물거리는 중에도 아이 성별이 궁금했다. “뭐예요?” 주변에서 남아선호사상으로 알게 모르게 나를 옥죄던 터였다. 간호사가 말했다. “아들이에요.” 첫딸을 낳은 후에 얼마나 바라던 아들이었던가.
긴 세월을 함께 하지는 못했다. 배 안에서만 겨우 7개월 품었을 뿐이다. 모자간의 교감이라면 간간이 느끼던 발길질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흘러 나왔다. 그 뒤 한동안은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다가도 배가 불룩한 여인이 눈에 띄면 쉽게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때 나의 눈에는, 아기를 가져 배가 불룩한 여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무엇을잘못했는지 곰곰이 더듬어 보았다. 복숭아를 너무 많이 먹은 것 말고는 다른 까닭은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 입덧에서는 유난히 복숭아가 당겨 하루 세 끼 밥은 뒷전으로 하고 복숭아로만식욕을 채웠으니….
내가 어릴 적, 고향집 사립문 앞에서 건너다보이는 저편 산자락에 복숭아밭이 있었다. 여름철이면 복숭아밭에 심부름을 가곤 했다. 농익은 복숭아는 늦봄에서 한여름까지 우리 식구들의 입맛을 돋워주는 청신과淸新果였다. 식구들과 함께 신선하고 달큼한 맛을 즐기면서 둥근 모양과 부드러운 감촉에서 아기의 홍조 띤 볼을 떠올리기도 했다.
여름 태풍이 끝나갈 즈음엔 앞 들판 가운데로 흐르는 강물에 복숭아가 떠내려갔다. 떠내려가는 복숭아를 한 자루나 주웠다는 소문을 듣고 강가에 나가 본 적도 있었다. 물살이 세차 건질 엄두를 낼 수는 없었으나 탐스러운 복숭아가 둥둥 떠내려가는 광경을 보면서 태풍이 한바탕 더 불어 닥치기를 남몰래 바라기도 했다. 복숭아 맛에 사로잡혀 과수원지기의 아픔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철부지였다.
7개월 동안 내가 품었던 그 아이도 강물에 떠내려가는 복숭아와 같은 처지였다. 지금 뒤돌아보면 나를 휩쓸고 간 크고 작은 바람 중 그 태풍보다 위력적인 바람은 없었다. 잎을 찢고, 열매를 떨어뜨리고, 가지를 꺾고, 줄기를 뒤흔들어 하마터면 뿌리까지 뽑힐 지경이었으니까. 그러나 소란하고 사나운 태풍이 있으면 고요하고 평온한 미풍도 있는 법. 태풍의 위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오래지 않아 소멸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리라.
뒤풀이 자리에서 집어든 복숭아 조각을 입에 넣는다. 향긋함이 입안에 감돈다.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던 신경이 깨어나 미세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함을 감지한다.
오는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호리못 근처로 매운탕을 먹으러 가야겠다. 맑은 호리못에 명지바람이 불면 잔물결이 눈부시게 반짝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농산물 도매시장에 들러 천도와 백도와 황도를 고루 섞어 봉지에 담아야겠다.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는 딸아이는 천도복숭아를 고를 것이고, 태풍이 지나간 다음 해에 태어난 아들은 단단하게 씹히는 황도를 거머쥘 것이다. 오래된 복숭아나무 등걸처럼 나이 든 남편은 물렁한 백도를 베어 물 것이다. 나는 복숭아라면 모양과 빛깔과 맛을 가리지 않는다.
이제 내 앞에는 미풍만 불기를 바란다. 복숭아를 사러 가기로 한 이번 주말이 은근히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