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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진교리 제1강: 교구청 성소국장 김종원(히지노)신부님(2026-04-19)>>
본당 임해원(안토니오) 주임 신부님께 견진성사 받으실 분이 스물일곱분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교구청의 성소국장으로 있는 김종원 하지노 신부입니다. 그 전에 완월동 성당이 있었습니다. 어제 교구청 행사(교구설정 60주년 및 교구청 봉헌식)에 오신 분들 계시죠. 어제 무척 더웠지요?
교구청에 있는 저희들은 어제 비가 올까 봐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아침까지 조마조마했는데, 행사 때에는 비가 안 와서 참으로 다행하게도 너무나 잘 마쳤고, 저는 지금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서 오늘 좀 쉬려고 그랬는데, 제가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임해원 신부님하고는 서품을 같이 받은 사이입니다.
여러분의 견진교리 강의는 오늘은 제가 하고 다음 주는 본당 주임 신부님이 그 다음 주는 월남동 변종원(요셉) 주임신부님이 해주시고,네 번째는 윤행도(가롤로) 신부님이 해 주신다고 합니다.
오늘 견진성사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견진성사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견진성사는 ‘견진’이라는 말과 ‘성사’라는 말이 합쳐져서 견진성사라고 합니다. 예비자들이 와서 배우다 보면 성체성사, 고해성사 같은 용어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사가 무엇입니까? 제가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속담에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죠.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는 참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하지만, 그 속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른 이를 사랑한다면,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마음은 속에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야 알 수 있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던 사람들이 화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속으로만 ‘화해하자’라고 생각하면 알 수 없지만, “미안하다”라고 말하거나 손을 내밀면 화해의 표시가 됩니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반지를 주고받는 것도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또 졸업식, 결혼식, 생일 같은 기념할 만한 날에는 꽃을 주고받으며 기쁨을 표현합니다. 저도 어릴 적에 꽃집을 하셨던 어머니께 꽃을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리를 비운 사이, 밤에 술에 취한 아저씨가 집에 들어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어머니가 안 계셔서 손님께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리고, 제가 옆에서 종이를 깔고 안개꽃을 올린 뒤 꽃가지 끝을 고무줄로 묶어 꽃다발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 원에 팔았습니다. 저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자랑을 했는데, 오히려 어머니께 크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걸 받은 아내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니? 도대체 너는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시며 꾸중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 술에 취한 어르신이 아내와 아이들의 기념일을 챙기려던 것 같습니다. 꽃은 이렇게 우리의 마음과 내면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물건들을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죠. 내가 너를 사랑한다. 성사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사를 통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표현하십니다. 교회는 특별히 일곱 가지 성사, 즉 칠성사를 말하는데, 이 칠성사는 인간 삶의 중요한 단계와 순환을 담고 있습니다.
제나라에는 성당이 있고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성당 뒤에는 묘지가 자리하고 있어, 사람은 태어나서 살아가며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또 결혼식도 성당에서 올리며, 신앙생활 속에서 성체성사를 받고, 마지막에는 장례도 성당에서 치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성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교회는 사람의 일생을 일곱 가지 성사로 정리했습니다. 곧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성품성사, 병자성사입니다.
이 가운데 신자가 받을 수 있는 성사는 여섯 가지입니다. 저는 혼인성사를 받을 수 없고, 여러분은 성품성사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칠성사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신자가 받을 수 있는 성사는 여섯 가지입니다. 먼저 세례성사입니다. 사람은 태어나 귀여운 아기의 모습으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가족의 일원이 됩니다. 가족은 함께 길을 걸으며 기쁨과 고통을 나누지요.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가족의 자녀가 되는 것을 넘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받으면 세례명이 주어지고, 새로운 이름으로 신앙 안에 들어서게 됩니다.
예비자는 아직 신앙의 ‘태중’에 있는 존재와 같습니다. 마치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처럼, 아직 성체를 직접 모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체성사 때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예비자는 응답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이는 곧 신앙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이며, 세례를 통해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 성체를 모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 있는 모습은 아직 준비 단계에 있는 신앙인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 다음은 성체성사입니다. 아기가 태어나 자라면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의 성체를 받아야 합니다. 성당에 나오지 않고 성체를 모시지 않는다면 신앙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마치 밥을 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학교 가기 전에 밥 잘 챙겨 먹어라”라고 말하듯, 하느님과 신부님들도 신자들에게 “성체를 잘 받아 모셔라”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성체는 신앙인의 영적 양식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견진성사입니다. 사람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는 시기가 오듯, 신앙도 성숙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사회에서는 성인식을 통해 어른으로 인정받듯, 교회에서는 견진성사를 통해 성숙한 신앙인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겉모습만 어른이라고 해서 진정한 성숙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듯, 견진성사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견진성사는 성숙을 위한 은총을 주지만, 그 은총을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견진성사는 주교님의 안수와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은혜를 받는 성사입니다. 주교님께서 직접 오셔서 신자들에게 성령을 내려 주시며, 신앙을 성숙하게 하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 다음은 혼인성사입니다. 사람이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짝을 찾아 결혼을 하게 됩니다. 혼인성사는 단순히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것을 넘어, 하느님 앞에서 서로에게 성사를 집행하며 가정을 성화하는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혼인성사는 한편으로 ‘봉사의 성사’라고도 불립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성품성사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사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는 성사로,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은총을 줍니다. 그래서 성품성사 역시 ‘봉사의 성사’라고 불립니다. 성직자는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제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고해성사가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항상 건강할 수만은 없습니다.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큰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병이 들면 병원에 가듯, 신앙생활에서 죄를 지었을 때는 고해성사를 통해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신자들은 이 성사를 가장 힘들게 느끼기도 하지만, 바로 이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고해성사는 참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저희 외삼촌도 오랫동안 냉담 생활을 하다가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장 걱정되는 것이 바로 고해성사였습니다.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망설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외삼촌은 모르는 신부님께 가서 고해성사를 드리면 더 편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광주나 순천 같은 전라도 지역으로 가서, 얼굴을 잘 모르는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드리면 마음이 더 가벼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신 겁니다.
사실 고해성사는 방 청소와도 같습니다. 방 청소가 힘들어도 하고 나면 깨끗해지듯, 죄를 고백하는 과정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끝나고 나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평화로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고해성사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영혼의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듯, 진실된 고백을 통해 여러분의 영혼도 깨끗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더욱 풍성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제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성당에 대해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신부님께서도 함께 나누실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병자성사입니다. 시간이 지나 죽음이 다가오면 우리는 무덤에 묻히게 됩니다. 죽기 전이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큰 수술을 앞두거나 중병에 걸렸을 때 받는 성사가 바로 병자성사입니다. 이 성사를 통해 신자는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위로와 힘을 받습니다.저도 예전에 파티마 병원에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병자성사를 받는 분들을 보며, 이 성사가 얼마나 큰 위로와 은총을 주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에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신부님께 전화가 와서, 수술실 안에서 어떤 신자가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 보니 열 명 정도가 한 줄로 누워 있었고, 모두가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가가 “기도를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한 분이 “제가 평생 냉담했는데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친 뒤 나오는데, 다른 분들도 손을 들어 보이며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때 어떤 분은 “신부님, 저도 냉담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기도를 드리면서 느낀 것은, 우리 삶에는 사고의 위험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교통사고도 있고, 크고 작은 사고들이 주변에 늘 산재해 있습니다. 그래서 수술 직전이나 큰 병을 앓고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 의탁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병원에 가시거나 입원하기 전에 신부님을 통해 병자성사를 꼭 받으시라는 것입니다. 병자성사는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성사가 아니라, 필요할 때 여러 번 받을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도 마찬가지로 여러 번 받을 수 있지요.
반면에 세례성사, 견진성사 같은 성사들은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학자들은 성사들 가운데 성체성사를 가장 으뜸으로 꼽습니다. 성체성사는 반복해서 받을 수 있으며,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성사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례성사는 성체를 모실 자격을 주고, 견진성사는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성체를 받게 합니다. 고해성사는 성체를 받기에 합당한 준비를 시켜 주며, 성품성사(신품성사)는 성체를 축성하고 분배할 수 있게 합니다. 혼인성사는 성체의 신비, 곧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합니다. 병자성사는 그래서 ‘모사성체’라고도 불립니다. 병자성사 때 신부님이 주시는 성체를 특별히 모사성체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본당에서 신부님들이 여러 번 강조하셨을 겁니다. 우리가 성사를 받을 때, 성사의 효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사효성(事效性)’이고 다른 하나는 ‘인의성(人意性)’입니다. 사효성은 하느님께서 성사를 통해 은총을 주시는 객관적인 효력이고, 인의성은 성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미사 시작할 때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말이 지금은 “사제의 영과 함께”로 바뀌었지요. 이것이 바로 사효성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신부님마다, 또 신자마다 느끼는 마음은 다릅니다. 어떤 분은 “빨리 다른 신부님이 오셨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신부님이 오래 계셨으면 좋겠다”라고 바라기도 합니다. 이런 개인적인 반응과 태도가 바로 인의성에 해당합니다.
신부님들도 각자 다른 길로 쓰임을 받으시지만, 모두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 안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의성입니다. 반면에 사효성은 하느님께서 성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주시는 은총, 곧 성사의 본질적인 효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견진성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견진성사에는 사효성과 인의성이 함께 작용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인호(성령의 인호)는 주교님을 통해 객관적으로 부여되는 은총이며, 이것이 사효성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견진을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거룩해지고 완전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사를 받은 후에도 일상 속에서 부족함과 연약함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의성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성사를 통해 받은 은총을 일상 속에서 키워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사 자체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은총이라면, 그 은총을 어떻게 살아내느냐는 우리의 응답과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효성을 믿고 감사하면서, 동시에 인의성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 성사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이며, 교회에서는 신부님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해줍니다. 그러면 단순한 물질에 불과했던 사물이 거룩한 성물로 변화하게 됩니다.
저도 오동동 교구청에 있을 때, 큰 배들이 들어올 때마다 선주들이 축복을 요청하는 전화를 종종 받곤 했습니다. 프랑스 배도 들어오고, 이태리나 독일에서 온 배들도 많았는데, 신자들이 배 축복을 자주 청했습니다.
성물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물을 단순히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하느님의 보호가 보장된다고 믿는 것은 미신입니다.
필리핀 같은 곳에서는 택시나 집을 축복받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물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신앙을 새롭게 하는 마음이지 단순한 물질적 보호가 아닙니다.
집에 성물이 많다가 깨지거나 손상되면, 그것을 쓰레기처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으로 태우거나 땅에 묻는 방식으로 경건하게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성물이 깨지거나 손상되면 성당으로 가져오시면 됩니다. 예전에는 땅에 흙이 많아 묻도록 했지만, 요즘은 땅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당에서 모아 처리합니다.
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사를 통해 그 사랑이 우리에게 가시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성사는 눈에 보이는 은총의 표징입니다.
견진성사의 정의를 보면, ‘견진’이라는 말은 한자가 아니라 ‘굳을 견(堅)’과 ‘떨칠 진(振)’에서 온 말로, 라틴어 Confirmatio와 같은 뜻입니다. 이는 ‘강하게 함’, ‘굳건하게 함’을 의미합니다.
견진성사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주교님의 안수이고, 둘째, 주교님이 성유를 사용하여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견진성사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성령께서는 세례와 견진을 통해 우리에게 은총을 주십니다. 성령의 7가지 은사는 이사야서 11장 1절에서 3절에 나오며, 성령의 9가지 열매는 갈라티아서 5장 22절에 나옵니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은사와 열매를 통해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나십니다.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기 위해서는 성령의 7가지 은사와 9가지 열매를 알아야 합니다. 특히 견진성사를 준비하는 대상자들은 반드시 성령의 은사 7가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성령의 은사 7가지를 배우고 익혀 보겠습니다.
첫 번째 은사는 지혜입니다. 지혜란 내 좁은 시야가 아니라 하느님의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깨닫는 힘입니다. 이를 망원경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은사는 지식입니다. 손을 머리에 얹고 기억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주신 두뇌로 말씀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식입니다.
세 번째 은사는 이해입니다. 이해란 우리가 잘 듣고 깨달아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알아가는 힘입니다.
성령의 은사 가운데 네 번째는 의견(계략, 올바른 판단)입니다. 손을 서로 맞잡는 동작으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의견이란 하느님과 나 사이의 올바른 관계, 나와 이웃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깨닫고 교류하는 힘입니다.
지금까지 배운 네 가지 은사는 지혜, 지식, 이해, 의견입니다.
다섯 번째 은사는 용기(굳셈)입니다. 손을 불끈 쥐는 동작으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용기란 어려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힘입니다.
성령의 은사 가운데 다섯 번째는 굳셈(용기)입니다. 굳셈의 은사가 있어야 우리가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용기가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올바른 말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해성사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성인들은 “고해소의 문 손잡이를 잡고 들어가는 순간 죄가 사라진다”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만큼 고해소의 문을 열기가 어렵고, 용기가 필요합니다. 고해소의 문 손잡이만 잡아도 죄가 없어진다는 말은 형식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만큼 회개와 용기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 중 굳셈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꼭 필요한 힘입니다. 어려움 앞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은사이지요.
여섯 번째 은사는 효경(경건)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효경은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듯, 하느님께도 마땅히 공경과 사랑을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은사는 경외(하느님을 두려워함)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을 무서워서 도망가는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지을 때 하느님께서 슬퍼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로부터 도망가는 마음입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두려움입니다.
성령의 은사 7가지 복습
지혜– 하느님의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
지식–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힘
이해– 잘 듣고 깨달아 하느님의 뜻을 알아가는 힘
의견(올바른 판단)–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깨닫는 힘
굳셈(용기)–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힘
효경(경건)– 하느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
경외– 죄를 멀리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두려움
이렇게 성령의 은사 7가지를 정리하면 견진성사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성령의 은사 7가지는 이사야서 11장 1절에서 3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성령의 9가지 열매는 갈라티아서 5장 2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가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는지 교리 상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에서는 세례를 받은 사람만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견진성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분별력을 갖출 나이가 되어야 하는데, 보통 만 12세 이상, 중학교 2학년 정도부터 가능하다고 합니다.
세례를 받고 나서 견진을 언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습니다. 오늘 세례를 받고 오늘 밤에 견진을 받을 수도 있고, 내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견진성사를 받을 때 세례명(성명)을 바꿀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법이 바뀌어 더 이상 바꿀 수 없습니다. 세례명은 세례 과정에서 신중하게 정해야 하며, 이후에는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과거에는 신부가 될 때 세례명을 바꿀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는 대부·대모를 정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세례를 받을 때 이미 대부·대모를 정하셨을 것입니다. 견진성사를 받을 때도 보통 세례 때의 대부·대모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분들과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이미 돌아가셨다면 새로운 대부·대모를 정해야 합니다.
견진성사 당일에 대부·대모가 갑자기 결혼식이나 다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다른 사람이 대신 역할을 맡아줄 수 있습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원래 정해진 대부·대모가 기록에 남습니다.
대부·대모의 역할은 단순히 행사 당일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견진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잘 챙기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 마산교구에도 여러 신심 단체들이 있는데, 그중에 ‘선택’이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젊은 20대, 30대 남성들이 함께하는 모임으로, 제가 약 10년 동안 이끌었습니다. 인생을 돌아보면 20대와 30대는 직장, 결혼 등 중요한 선택을 하는 시기이기에 신앙 안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친구들이 모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이 ‘선택’ 모임의 목표는 알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종교를 선택한 것도 하느님을 먼저 찾으려는 선택이었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먼저 알아야합니다. 내가 다니는 천주교를 잘 알고,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면 먼저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그 직장에서 필요한 지식을 알아야 하고,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상대방을 잘 알아야 하듯이, 신앙생활도 하느님을 잘 알아야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은 직장, 배우자, 신앙생활에도 이어집니다.
세상의 것들은 알면 알수록 실망하거나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하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당연히 남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견진성사를 미리 축하드립니다. 이번 견진을 통해 여러분은 신앙 안에서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이제는 어른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사랑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견진성사는 바로 그런 성인식이자, 신앙을 굳건히 하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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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
1.성사의 의미: 성사는 하느님의 사랑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은총을 구체적인 행위와 표지로 체험하게 합니다.
2.칠성사(7성사):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성품성사, 병자성사로 구성됩니다.
21.신자가 받을 수 있는 성사는 여섯 가지(혼인성사 제외, 성품성사 제외).
22.성체성사가 가장 중심이 되는 성사로 반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3.견진성사
31.‘견진’은 ‘굳을 견(堅)’과 ‘떨칠 진(振)’에서 온 말로, 라틴어 Confirmatio와 같은 뜻
32.주교님의 안수와 성유 도유(聖油 塗油)가 핵심 요소.
33.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성체를 합당하게 모시고, 성인의 삶을 살아가도록 은총을 줍니다.
4.성령의 은사 7가지 (이사야서 11, 1-3)
1절>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절>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절>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5. 성령의 열매 9가지 (갈라티아서 5, 22):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6.성령의 은사 7가지 (이사야서 11, 1-3)
➀지혜 -하느님의 시야로 세상을 보는 힘
➁지식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힘
➂이해 –잘 듣고 깨달아 뜻을 아는 힘
➃의견(올바른 판단)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깨닫는 힘
➄굳셈(용기) –어려움 속에서도 뜻을 따르는 힘
➅효경(경건) –하느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
➆경외 –죄를 멀리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두려움
7.교리 상식
○견진성사는 세례 받은 사람만 가능.
-보통 만 12세 이상, 중학교 2학년 정도부터 받을 수 있음.
-세례 후 언제든 견진을 받을 수 있으며, 특별한 시간 제한은 없음.
-과거에는 세례명을 바꿀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
-대부·대모는 세례 때 정한 분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나, 사정이 있으면 새로 정할 수 있음.
-대부·대모의 역할은 단순히 행사 당일이 아니라, 이후에도 신앙생활을 도와주는 것.
8. 신앙의 선택과 성숙
-20~30대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시기이며, 신앙 안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이 중요.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남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됨.
-견진성사는 신앙의 성인식으로,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사랑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줌.
<정리> 2026-04-19. 김동출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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