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자의 날에 부쳐
헌법재판소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는 병역거부자 이준규씨의 모습을 신문으로 보았습니다. 저는 오늘로 여기 수감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병역거부를 선언한 준규씨가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진을 보며 마음 한켠이 먹먹했습니다. 지금으로선 감옥에 갈 것이 뻔한 선택을 놓고 수많은 갈등과 고뇌로 번민했을 준규씨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외박도 휴가도 없는데 그냥 군대 가지 왜 굳이 감옥에 왔냐는 얘기를 방 사람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러게요, 저도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라고 답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괜한 비아냥 섞인 논쟁을 피하고 싶어서 저는 그냥 웃고 맙니다. 한 번은 “제가 군대 안가고 여기서 고생하는게 안타까우세요?”라고 물었더니 “그럼 안타깝지. 뭐 부모가 물려줄 돈이 많아서 앞으로 살 걱정 안해도 되면 모르겠지만”이란 대답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서로 징역살이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 한 분이 “여기는 빵(감옥)도 아니”라고 상황을 정리하면서 이제 저는 단지 군대보다 덜 힘든 감옥에 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젊었을 때 이걸(병역거부) 알았으면 당연히 군대 안 가고 여기 왔을 것인디. 군대보다도 짧고 훨씬 편하잖어”라고 말하는 그 분이 20대였을 70년대에는 지금보다 더 긴 형기에 심지어 반복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별개로 하더라도, 그 분 말씀대로 징역살이가 군복무보다 편한 것이라면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한 병역거부자의 숫자가 지난 10년간 왜 50여명 밖에 되지 않는가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 수를 합하더라도 연 600명이라는 수치는 한국군 규모의 0.1%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실제로 징역살이가 군복무보다 쉬운지 아닌지는 제가 군인이 되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실제로 감옥이 군대보다 편한 곳이라면 제가 군대보다 감옥에 왔다고 믿는 그 분들의 근거를 반박할 마음은 없습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보통은 좀 더 쉽고 편한 것을 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제가 여기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그래도 군대보단 나을 거야” 생각하는 것은 잠시나마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제게 남는 아쉬움은 제가 군인이 도저히 될 수 없어서 교도소에 제 발로 걸어올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과 사회적 맥락을 이해받았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살상을 할 수 없어서 총을 들지 못한 제 양심과 일상에서 채식을 하는 제 모습이 하나의 일관된 삶의 방식으로 보여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 바람이 처음 만난 관계에 어울리지 않는 무리한 욕심일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언젠가는 이 곳 사람들도 총을 안 들고 채식을 하는 이들이 지향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아직은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위해선 저 역시 그들에 대한 선입관이나 편견을 내려놓고 인간으로 만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현빈과 저의 전생에 서로 어떤 인연이 있었는진 모르겠으나, 제가 검찰조사를 받던 날 해병대 입대 선언을 하던 그를 이곳에서 TV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현빈이 해병대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가 TV에 나온 것입니다. “극기 훈련”중이라면서 “4시간 자고 주먹밥으로 배를 채우고 사격(살인)훈련”을 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한편 불쌍하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때 이런 제 마음을 알아채고 하는 말인지 모를 “빵은 저기 비하면 빡센 맛이 없네. 옛날엔 빵도 무지 빡셌는데 말이야. 명진아 너도 저기 한번 가서 고생 좀 해봐야지” 하는 말이 옆에서 들려옵니다. 이 모든 말들이 비아냥처럼 들리는 것은 비단 저의 자격지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병역거부자는 군대 대신 더 편한 감옥을 선택한 (비겁한) 존재이기에 “빵 생활을 더 빡세게” 해도 마땅하다고 보는 사회는 타인의 사상과 양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근간으로 삼는 민주주의의 모습과는 분명 거리가 있습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앞두고 요 며칠 제가 상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찾아온 교도관이 저에게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현행 병역법 제 88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으므로 오늘 부로 석방합니다”는 말을 전해주는 상상입니다. 이제 막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준규씨가 감옥에 가게 되지 않도록 헌재가 전향적인 판결을 내리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입니다.
2011. 5. 11.
서울남부교도소에서 날맹